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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7

    -흐흥-.

    루크는 그녀의 콧노래소리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감미로우면서도 묘하게 촐싹거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허밍은 마치, 레니에가 부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말로 레니에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막상 그 콧노래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면 얌전히 그러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들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레니에의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아린세이아의 갑주에 들어있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갑옷이 걸어다니는 꼴은 아무래도 눈에 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도록 하는 인챈트가 걸린 가면을 투구 위에 씌워두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충격적인 꼬락서니다.

    루크는 뻣뻣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레니에. 정말 그런 모습으로 따라올 건가?”

    레니에는 일순간의 지체도 없이 대꾸했다.

    -네, 물론이죠! 첫 외출인걸요? 그런데 물리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건 너무 아쉽지 않나요?

    레니에의 능력이라면 본체가 되는 마석도 딱히 필요 없이 그 엄청난 연산능력과 제어권 탈취 능력을 이용해 마법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니에는 그러지 않았다.

    갑주를 통해 움직이며 자신이 직접 세상을 보고 만지고 싶다는 모양.

    “에휴…….”

    루크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몸이 없는 존재가 몸을 얻게 되고 난 뒤에는 금방 사고뭉치가 되고 말던데.

    그것은 무려 파이리스가 자신에게 직접 몸으로 증명해준 사실이었다.

    그러나 레니에는 루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콧노래를 불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지능이라도 산책은 즐거운 일인 것일까?

    -흐흥, 흐흥흥-.

    그 음에 문득 루크는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곡은……재회인가?”

    -맞아요, 싱그러운 꽃밭의 재회. 아린세이아의 민요죠.

    그녀가 흥얼거리는 곡의 제목을 들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회라…….

    좋은 노래였지.

    루크는 레니에에게서 고갤 돌리고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허밍에 집중했다.

    그렇게하면 정말로 레니에와 재회라도 한 것 같아서.

    “후우-.”

    그 때였다.

    -철컥, 철컥.

    ……하고, 생각을 방해하는 기묘한 쇳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것은 레니에의 갑옷 관절부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이었다.

    이런 소음 역시도 마법사인 자신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모르겠어.”

    잠시도 추억에 잠길 틈을 주질 않는구나.

    —–

    옷가게는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들르기로 하고, 일단은 라함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옷가게는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들어간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거리로 나온 레니에가 곧장 함성을 내었다.

    -와하! 사람이 정말 많네요!

    비록 레니에의 그 눈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루크는 목소리만으로 그녀가 굉장히 들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좋은가?”

    -좋고 말고요! 이 상쾌한 공기! 맑은 하늘! 어찌나 기분이 좋은 지 몰라요!

    “후, 능청스럽기는…….”

    공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공지능인 레니에가 공기가 상쾌하다는 느낌이 들 리가 없고, 비가 오기 전의 하늘은 그다지 맑다고 말하기도 그랬기에 저 문장에는 거짓말이 벌써 두개나 섞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즐거운 것만큼은 진심인 듯 보였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 속에 비죽 솟아 있는 커다란 몸집의 갑주와, 그것에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이 기묘한 광경은 아무래도 쉬이 적응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 커다란 갑주가 대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할 지경.

    -도착했네요!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니, 라함의 집에는 금세 도착했다.

    “그래, 들어가 볼까.”

    -네!

    레니에의 힘찬 대답.

    그리고 루크가 문을 열려던 바로 그 순간.

    “아니, 너는 들어오면 안되지.”

    루크는 레니에를 제지했다.

    그에 레니에는 마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억울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네? 왜요!

    그에 루크는 레니에의 아세릴 몸체를 통통 두르리며 대답했다.

    “그런 몸으로 들어가긴 어딜 들어간다는 게냐?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해.”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는 레니에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 본질은 건장한 갑옷이었다.

    게다가 살상용으로 만들어져 형태 자체가 굉장히 위협적인.

    여긴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시설인데, 그런 살상용 갑주에 부딪혀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아무리 사람을 치유하는 신성력이 있다고 해도,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애초에 신성력 때문에 한번 애를 먹은 참이었으니까.

    그러자 레니에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해…….

    “너무해도 어쩔 수 없네. 여기서 기다리게, 알겠는가?”

    단호한 루크의 말에 레니에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에…….

    레니에가 내는 그 굉장히 슬픈 목소리에 레니에를 사랑했던 루크의 마음도 괜히 미어지는 듯 했지만, 아무리 그녀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끼익-.

    그런 레니에를 뒤로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라함은 바로 찾아볼 수 있었다.

    루크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는가, 라함?”

    “음……, 오오, 루크니? 하하, 이거 반갑구나.”

    루크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는 라함의 얼굴은 마치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듯 이전과 비교해서 더욱 수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굉장히 지쳐 보인다고 해야할까.

    보아하니, 그래도 선물은 잘 가져온 것 같다.

    “일단은…… 자, 받게.”

    루크는 라함을 위해 가져온 선물을 건넸다.

    “응? 이게 뭐니? 날 주는 거냐?”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열어보게.”

    루크의 제안에 라함이 봉투를 살짝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것은 작은 박스에 잘 포장되어 있는 찻잎이었다.

    “피로 회복에 좋은 찻잎이네. 피곤하면 타 드시게. 금방 다시 찾아오려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았어.”

    루크의 말에 라함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뭐 이런 걸 다 가져왔니. 맨손으로 와도 되는데.”

    “누굴 만나러 가는 데, 그럴 수야 없지.”

    “하하하, 참. 못말리겠구나.”

    루크의 예의범절에 대한 집착을 라함이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가 어른 행세를 하려는 모습은 아무래도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웃음은 전염되는 특성이 있었고.

    그것이 단지 비즈니스적인 미소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서로 웃음을 주고받던 중, 라함이 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그 뒤에 분은?”

    “뒤에 누구?”

    루크가 의문을 품고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어느새 들어온 지 모를 레니에가 해맑게 웃으며 (물론 가면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에 루크는 얼척이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 제가 그랬나요?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아차, 잠시 잊고 있었다.

    레니에와 닮은 그녀가 그저 정직할 거라고 생각하는게 잘못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이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그녀를 라함에게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사실대로 아린세이아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건 굉장히 이상하지 않은가, 그 대답은 최악. 

    그저 긁어 부스럼이다.

    그럼 ‘비서’나 ‘보디가드’는 어떨까?

    조금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본질적으로는 그것도 뭔가 미묘하다.

    라함이 아는 자신의 이미지와도 뭔가 어긋나는 것 같고 말이다.

    라함의 눈에는 레니에가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니, 뭐라고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게 비춰 보이는 레니에가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도 모르니까.

    루크는 라함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러니까…….”

    잠시 그 내용을 깊이 고민하던 루크는 결국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친구일세.”

    그러자 라함은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음, 그렇구나. 친구의 키가……, 크네.”

    라함이 그럭저럭 납득한 듯 보이자, 루크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친구라는 말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관계인가?

    그러자, 레니에가 다가와 속삭였다.

    -너무해, 우리 사이가 그것밖에 안돼요?

    레니에의 몸체에 맞지 않는 비련의 여주인공과 같은 목소리에 루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안되지.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대는 어제 나와 처음 만난 사이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요, 그렇게 딱잘라 말하기는 뭐하죠.

    “그럼 딱 잘라서 나와 그대는 대체 뭐가 어떤 사이인데?”

    그에 잠시 고민하던 레니에가 대답했다.

    -음, 차라리 연인이라고 하죠, 어때요?

    “뭐? 그건 좀 선을 넘는 거 아닌가? 제정신이야?”

    연인이라니, 그런 건 자신과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관계다.

    무, 물론 ‘진짜 레니에’와 연인이 되는 거라면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가짜와 진짜 정도는 구분을 하지.

    루크의 심각한 표정을 본 레니에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후후, 농담이에요, 농담!

    그는 대체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문 앞에 묶어둔 강아지가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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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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