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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8

       불꽃이 위협적인 모양으로 바뀌고 있을 때.

       

       “너희가 구태여 우리를 불렀음을 알고 있다. 어찌 모를까.”

       “흐으…흐으….”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는 오히려 두렵다.

       말에 담긴 그득한 살기가 저토록 짙거늘 어찌 두렵지 않을까.

       

       “우습잖은 발버둥은 지켜보기에 즐거운 편이나…. 안타깝게도 조금 질리는 맛이 있구나. 오래 보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철컥.

       

       마검후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말하지 않아도 의중을 파악한 모양이다.

       

       이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 빡쳤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빡친 느낌이다. 실실 웃으며 말하는 게 딱 그 꼴이었다.

       역시나 분노 조절 못 하기는 천하에서 손을 꼽는다.

       

       비연섬은 이미 한계로 보였다. 

       

       “후욱…후욱….”

       

       호흡은 잔뜩 거칠어져 있었고. 

       지닌바 내기는 잔뜩 흐트러진 게 선명히 보였다.

       

       비연섬은 코앞에서 마주한 마제의 압력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제의 마기가 사방을 잠식하고 있는 사이, 뒤편에선 묵권이 마인을 끌며 나타났다.

       

       아마 나와 마검후가 치고 나가니 다급히 속도를 높여서 인솔해온 모양이다.

       

       묵권은 눈치가 빠른 편이다.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뒤로 손짓을 보낸다.

       

       이에 마인들이 반응하듯 투기를 일으켰다.

       

       일촉즉발.

       

       딱 그게 맞는 얘기 같다.

       

       전투가 발발하기 직전이라는 의미다.

       나는 와중에도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바빴다.

       

       이 망할 상황이 왜 펼쳐졌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물론, 상황도 중요하지만.

       

       ‘어디 있지.’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묵권이 말했던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 분명 있을 것이다.

       

       ‘소검성….’

       

       이 시대의 위설아.

       

       그녀가 이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은 보이질 않았다.

       저 멀리 마을에 있는 건가?

       

       여기저기 시선을 보내고 있던 찰나.

       

       뚝.

       

       마제와 마주하고 있던 비연섬이 이내 비틀거리며 자세가 흐트러진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쓰러지기 직전으로 보인다.

       

       의아한 것은.

       

       마제는 물론이고 마검후, 더불어 묵권까지 비연섬에겐 이미 관심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안 보고 있었나.’

       

       그들의 시선을 따라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이다.

       

       그곳을 향해 기감을 집중했다. 무언가 있으니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자.

       

       ‘…!’

       

       정말 무언가 느껴졌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알 수 없는 서늘함이다.

       마치 누군가 검을 내게 겨누고 있는 것 같은 감각.

       

       그걸 떠올리며 육체의 기감을 활성화했다.

       

       이제야 다들 시선을 왜 저쪽으로 보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소검성에만 집중하고 있었더니 정작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파지직.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뇌기가 튀었다.

       그걸 본 마검후가 작게 반응한다. 저건 분명 그녀의 뇌기와 닮아있었으니까.

       

       쿵쿵거리는 심장을 짓누르며 허공을 보고 있으니.

       

       [그대는 여전한 모습이오.]

       

       점점 커지는 뇌기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드득-! 뇌기는 점차 덩치를 키우더니 금세 인영을 만들어냈고.

       

       기운으로 이루어진 것 같던 인영은 점차 진정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냈다.

       

       탁.

       

       허공에서 나타난 인물이 지면에 닿자.

       

       후우우욱-!

       

       주변에 퍼져있던 압력이 빠른 속도로 밀려 나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뒷짐을 쥐고선 가벼운 걸음을 보이며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걸 확인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사를 지닌 백발과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청색 안구가 보인다.

       나로서도 오랜만에 마주하는 인물이었다.

       

       더 정확히는 아직까지 회귀한 다음에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이다.

       

       “허억…헉….”

       

       압박이 풀려서일까. 비연섬은 연신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에게 다가간 노인이 손으로 비연섬의 등을 건드리자.

       

       “쿨럭.”

       

       비연섬이 검은 피를 토해냈다.

       

       뒤틀린 속을 강제로 바로잡아준 모양이다. 

       

       “조금 쉬고 있거라.”

       “죄…송합니다.”

       

       비연섬에 말에 노인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걸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마제가 노인을 향해 말했다.

       

       “어디 숨어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군.”

       “끌끌…. 숨어있었다니. 나는 숨었던 적이 없거늘.”

       “쥐새끼처럼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에, 겁에 질려 발악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이야.’

       

       듣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도발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저 망할 새끼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진짜 마기에 뇌가 절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저랬다고?’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삼존자 중 한 명이자, 남궁가의 절대자를 앞에 두고 저리 깡을 부릴 수 있었다니….

       

       ‘나 진짜 목을 내놓고 살았구나.’

       

       눈앞에 있는 노인은 바로 천존(天尊)이었다.

       

       중원의 하늘에 앉아있던 노괴를 앞에 두고, 마제는 아무렇지 않게 주둥이를 털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주변에 노괴가 있다고 하기에 죽여 없애려던 참인데. 잘 됐군.”

       

       끌끌.

       

       마제의 말에도 천존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노괴라…. 그래, 그 말이 맞다.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천존은 눈웃음을 지으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마검후가 있는 방향이다.

       

       “오랜만이구나.”

       “…”

       

       천존의 말에 마검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그를 바라볼 뿐이다.

       

       남궁가는 마검후의 손에 멸문당했고.

       천존은 이를 막지 못했으니, 전 중원에 남궁가의 핏줄이라면 지금 오직 이 둘뿐이 남아있으리라.

       

       참으로 불편한 관계였다.

       

       “…오랜만에 너를 만나 해야 할 얘기와 맺어야 할 이야기가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먼저 할 일이 있다.”

       

       할 일?

       

       천존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역시, 이곳에서 뭔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할 일이라….”

       

       천존의 말을 들은 건 다른 ‘나’ 또한 마찬가지다.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천존에게 말을 물었다.

       

       “교주님의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이리 나서야 할 일이 있다. 그 말인가?”

       “맞소.”

       

       천존은 마제를 향해 웃음을 머금는다.

       

       “우리는 그대들과 거래를 하고자 하오.”

       

       거래, 그 예상치 못한 말을 해석하려고 잠시 집중하려고 했지만.

       

       “하.”

       마제가 대뜸 터트린 헛웃음에 눈알을 굴려야 했다. 

       

       ‘아, 저거 안 좋은 징조인데.’

       

       아니나 다를까.

       

       “거래? 방금은 저 잡것이 내게 대화를 청하던데. 이번엔 노괴가 거래를 청하는군.”

       “이는 그대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닥쳐라. 귀가 썩을 것 같으니.”

       

       잠시 멈춰있던 압력이 다시금 치솟는다.

       마제에게선 그나마 남아있던 웃음기조차 사라지고. 정녕 노기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교주께선 네놈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나…. 언제나 그렇듯 주제를 모르는 놈들은 감사함을 잃기 마련이지.”

       

       마제에 몸에 불길이 휘감긴다.

       

       “그러니, 주제를 모른다면, 친히 알려주는 게 옳을 터.”

       “…그대는 항시 이렇게 피를 보아야 옳다고 보는 겐가?”

       

       천존의 말에 마제는 손을 휘저었다. 

       

       “네놈의 같잖은 이상향을 내게 뱉지마라.”

       

       콰아아아아아아-!

       

       손짓에 따라 허공에 떠있던 불꽃이 거친 소리를 내지르며 지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말을 뱉을 자격은 네놈들에게도 없으니까.”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염화구.

       그 속도가 절대 느리지 않거늘, 마제를 마주하고 있는 천존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 별다른 대처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뭐지?

       

       그걸 보며 침음을 삼킨다.

       

       ‘저걸 진짜 떨군다고?’

       

       아무리 이 당시의 내가 미친놈이라지만, 천존을 앞에 두고 이렇게 무작정 터트리지는 않을 터인데.

       

       대체 무슨 생각이지?

       

       놈의 의중을 모르겠다. 

       

       저 또라이 새끼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단 의미다.

       

       이때의 내가 저 노인을 이길 수 있던가.

       

       ‘무린데…?’

       

       아무리 봐도 그건 무리다.

       내기의 양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들은 나보다 엄연히 높은 격에 오른 이들이다.

       

       마검후와 합공해야지 가능성이 있을까 말까 한 정도.

       

       그게 삼존이 가진 위엄이거늘. 녀석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냅다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화르르륵-!

       

       불꽃은 점차 지면과 가까워진다. 

       이에 따라 주변에 있던 무인들의 표정에도 더 깊은 절망이 스치고.

       

       “아, 안 돼!”

       “살려줘!”

       

       우왕좌왕하며 진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천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검을 뽑지도 않을뿐더러, 기운을 일으키지도 않고 있다.

       

       왜일까.

       

       천존이 막지 못할 힘이라 그런가? 

       그럴 리는 없다.

       

       아무리 마기가 뒤섞인 것이라지만, 저 노인의 힘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한데 대체 왜.’

       

       불꽃은 더 가까워진다. 

       

       조금 있으면 지면에 맞닿아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죄다 태워버릴 생각인가 싶을 즈음.

       

       쉬익-!

       

       하늘 너머로 무언가가 불꽃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저게 무엇인지 확인도 제대로 못 하고 있거늘, 그 뒤로도 수십 개가 연달아 불꽃을 향해 파고들었고.

       

       그 즉시 이변이 일어났다.

       

       스으으으으–!

       

       “…!”

       

       압도적인 위엄을 뽐내던 거대한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허공에 떠 있던 흑염이 순식간에 존재를 감춘다.

       

       그 많던 불꽃이 사라지기까진 고작 몇 초뿐이 걸리지 않았다.

       

       ‘아.’

       

       이변을 확인하고서야 마제를 보며 놈의 뜻을 알아차렸다.

       놈이 그 많은 기운을 써가며 이 짓거리를 한 이유.

       

       ‘부르기 위해서였구나.’

       

       그건 기선제압도 있었겠지만, 진의는 다름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함이었음을 말이다.

       

       불꽃이 사라진 공간에 무언가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게 보인다. 검이었다.

       

       금색 빛을 머금은 이질적인 검 몇 자루.

       

       그게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불꽃이 사라지는 걸 눈으로 목격하니, 직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물들어있던 무인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저 검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오셨다…! 대주님께서 오셨어!”

       

       그들의 외침에 마인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때, 허공에 떠있던 금빛 검이 어딘가로 빠르게 날아간다.

       위치는 천존이 서 있는 바로 위.

       

       직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을 허공에 누군가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

       

       그녀를 확인하며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전생에 대한 환상이니만큼, 언젠가 혹시 만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를 기대라 표현해야 할지, 걱정이라 표현해야 할지.

       혹은 불안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보게 될지 모른다는 예상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직접 마주하니 예상보다 훨씬 여러 감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몇 자루의 검이 여인을 보호하듯 움직인다.

        

       여인은 허공에 떠오른 검 위로 태연하게 서 있었다.

       

       갈색빛이 아닌, 완전한 금색이 된 머리칼.

       빛이 나는 눈동자와 달리 피곤이 가득한 눈매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항상 웃음을 머금고서, 내 옆에 앉아 말을 지저귀던 여인과는 달랐다.

       

       “…소검성.”

       

       마제가 여인을 보며 작게 읊조린다.

       

       그 작은 목소리를 혹시 들은 걸까? 

       소검성이 이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마제를 보는 것 같….

       

       ‘응?’

       

       …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야?’

       

       소검성은 마제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게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소검성은 마제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제보다는….

       

       ‘날 보는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날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분명 날 보고 있었다.

       

       그것도 한껏 놀란 눈으로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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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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