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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8

        

       이양훈의 저택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마녀의 손길이 닿은 정원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련하기 좋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아린의 강력한 요구로 조용히 무공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쉼터들 역시 마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쉼터 중 하나에서,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그들은 자리를 잡았다.

         

       지나칠 정도로 본격적으로 말이다.

         

       하얀 머리의 소녀가 둘.

       이 저택에서 살고 있던 소녀가 둘.

         

       이 네 명은 글램핑(Glamping)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원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네 명이 들어간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텐트는 물론이고, 바람을 불어넣는 소파와 침대, 간이 샤워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천막에, 휴대용 TV와 노트북…거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가지고 온 빔프로젝터까지 있었다.

         

       캠핑한다기보다는, 자취방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들은 캠핑용 화목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정원 분위기 진짜 낯설다. 우리 집 아닌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과장이 아닐까요? 정원을 조금 고쳤긴 하지만….”

         

       “토끼야, 토끼야. 조금이 아니야…다 뜯어고쳤어….”

         

       “으음….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집인데….”

         

       화목난로의 투명한 창에서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철판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녀들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열기를 발해주었고, 화목난로의 윗부분에서는 모카포트가 김을 내면서 커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장작이 타는 소리.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벌레들이 우는 소리.

       모카포트가 끓는 소리.

         

       그리고, 향긋하게 퍼지는 커피의 향기와 화목난로의 위에서 은박지에 싸인 채 구워지는 가래떡의 고소한 냄새까지.

         

       그녀들은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근데 분위기가 좋기는 하네요…. 특히 춥지 않은 게 마음에 들어요.”

         

       “그래?”

         

       “그리고 날이 풀렸는데도 땅이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고, 걸을 때마다 신발에 진흙이 잔뜩 달라붙지 않는 것도 좋고, 야생동물이 겁도 없이 접근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고, 모기가 많지 않은 것도 좋고, 생명력 가득한 식물들이 가득한 것도 마음에 드네요.”

         

       “그거 러시아 말하는 거 같은데…. 토끼야. 너 러시아에서 있는 거 별로 마음에 안 들었구나…?”

         

       캠핑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은 엘라였다.

       복장부터가 아주 본격적이었다.

         

       그녀는 아웃도어 매장에서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바지와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오랫동안 캠핑 취미를 즐겨왔던 베테랑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거기다가 밤에 밖에서 잘 때 추울 것을 걱정한 것인지 따로 열선이 깔린 침낭을 구하기까지 했다. 그 침낭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잘 말려 있었는데, 그렇게 말려있는 침낭은 현재 엘라의 무릎 위에 얹어져서 그녀의 배와 다리를 따뜻하게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아린이 있었다.

         

       그녀는 벌레에 물리는 것이 두렵지도 않은지 너무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엘라와는 대조되게 작아 보이기까지 하는 돌핀 팬츠를 입고 있었으며, 밤공기가 쌀쌀한 것은 걱정하지도 않는다는 듯 민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신발 역시 슬리퍼였으며, 침낭 따위는 애초에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준비성이 부족하다 못해, 아예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이아린의 준비성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네요.”

         

       “뭔데?”

         

       “당신이요.”

         

       그 이유는…이아린의 현재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왜냐니…. 몰라서 묻는 건가요? 너무 달라붙어 있잖아요!”

         

       밤공기가 생각보다 차다는 핑계로 엘라에게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아린이 멍청해서 물건을 안 챙겨왔다기보다는, 엘라에게 들러붙을 핑계를 만들기 위해 고의로 그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뭐 어때. 좀 같이 쓰자.”

         

       “네? 같이 쓰자니요? 아, 붙지 말라니까요! 저리 가세요!”

         

       이아린은 엘라에게 꼭 붙어있었다.

       마치 엘라가 손난로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엘라의 바로 옆에 딱 달라붙었고, 엘라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침낭의 온기를 공유라도 하자는 듯 거기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게다가 손을 넣기 좋은 자세를 만들기 위해 자연스레 엘라의 몸에 머리와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몸은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기울어지는 속도를 보고 있자면 금방 자연스럽게 엘라의 무릎을 베고 누울 것 같았다.

         

       “하아….”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이세린이 있었다.

       그녀는 다리와 팔을 완전히 가리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사이즈가 좀 큰 것처럼 보였다. 바지는 길이도 딱 맞고 몸에 딱 맞아 움직이기 편해 보였지만, 상의는 그렇지 않았다.

       몸에 딱 맞는다기에는 한 치수에서 두 치수 컸다.

         

       “후우….”

         

       이는 이세린이 의도한 것이었다.

       운동할 때야 몸에 딱 맞는 것이 좋지만, 그냥 막 입기에는 조금 헐렁한 것이 편했으니까.

         

       특히 긴 소매는 활용하기에도 편했다.

         

       예를 들자면…소매 안에 손을 쏙 집어넣은 뒤 잘 구워진 가래떡을 들고 뜯어먹는다거나 하는 일을 할 때 말이다.

         

       “후우우….”

         

       이세린은 긴 소매를 장갑이라도 되는 것처럼 활용해 가래떡을 손으로 든 채 조금씩 뜯어먹었다. 입이 데지 않도록 후후 불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아린의 옆.

       자그마한 소녀가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가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묘하게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소녀는 달빛에 빛나는 하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자그마한 불만을 품은 듯 세 소녀를 보았다.

         

       “저기요?”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소녀는 세 소녀에게 말했다.

         

       “여기 나온다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말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엘라는 은근슬쩍 자신에게 닿는 면적을 늘리는 이아린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고, 이아린 역시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엘라의 반항을 제압하며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눕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구운 가래떡을 음미하는 이세린은 마치 자신이 미식가라도 되는 것처럼 음식에만 집중하다가 힐끗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응. 나오지, 아샤가….”

         

       이세린은 아까 아나스타시아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알리는 듯 그렇게 툭 말을 던지고는 다시 가래떡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식당에서 가지고 온 석청 꿀에 가래떡을 푹 찍고는 가래떡의 고소함과 꿀의 달콤함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으음.”

         

       아나스타시아는 이러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원피스 위에 걸치고 있던 항공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꿈틀거리는 이상한 까만색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것을 화목난로에 집어 던졌다.

         

       철퍽.

         

       아나스타시아가 던진 무언가는 화목난로에 부딪히자 점성이 있는 액체 특유의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꿈틀.

         

       하지만 그렇게 흘러내린 액체는 일반적인 액체처럼 바닥에 고여있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처럼 꿀렁거리며 움직이더니, 촉수처럼 보이는 것을 뽑아냈다. 그리곤 말미잘처럼 뽑아낸 촉수를 위로 흔들흔들 움직이더니, 달팽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화목난로의 창으로 향했다.

         

       그리곤 창에 바짝 붙어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이게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 왜 갑자기 어두워지지?”

         

       “불이 꺼진…건 아니고, 이상한 게 붙어있네요. 범인은 뻔하네요….”

         

       “아, 어두워지니까 졸리네. 나 잘게.”

         

       “…수작 부리지 말고 일어나세요. 제 무릎은 베개가 아니랍니다.”

         

       그렇게 화목난로의 불빛 때문에 밝았던 정원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텐트와 천막에서 캠핑 랜턴의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서 완전히 깜깜하지는 않았지만, 도리어 어중간하게 밝은 것이 묘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뿌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세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어두워져 당황스러워했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한숨을 쉬는 동생.

       어둠을 기회로 삼아 엘라의 무릎을 베고 누운 이아린.

       가래떡을 다 먹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세린.

         

       아나스타시아는 그 셋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캠핑할 때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이에요.”

         

       그녀는 당당하게 셋에게 요구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자고.

       이 끝내주는 분위기 속에서 괴담을 이야기하면서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말이다.

         

       “…아까부터 계속 분위기 잡으려고 하더니….”

         

       엘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언니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괴담을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보는 것 같더니….

         

       ‘그래도 뭐…. 이런 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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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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