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화. 침식 ( 3 )
운수 좋은 날이라는 작품이 있다.
하루 동안 유난히도 재수가 좋던 한 인력거꾼이 병든 아내에게 먹일 설렁탕을 사 들고 돌아갔지만.
일하는 사이 죽어버린 아내의 손을 붙잡고 통곡하면서,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하고 슬퍼한다는 이야기.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한 번쯤은 읽어봤을 유명한 소설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설렁탕이 맛있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도대체 왜일까…?’
어쩐지 불안한 느낌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알람을 뱉었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다가 알람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에서 올라온 알람이 우수수 떠오르며 화면 상단을 가득 채웠다.
《연옥에서 알립니다. 현재 원인 미상의 실종자가 발생하여 조사를ㅡ》
《연옥에서 알립니다. 현재 미확인 생명체와 교전ㅡ》
《연옥에서 알립니다. 현재 미확인 적대 생명체를 추격하는ㅡ》
《연옥에서 알립니다. 현재 미확인 적대 생명체와 교전ㅡ》
알람을 확인하자 머리가 살짝 띵하게 울렸다.
연옥, 연옥이라고?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연옥을?
‘연옥에 미확인 생명체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건드리고, 거기에 천사들이랑 교전하다가 도주. 천사들은 녀석을 추적하는 중….’
어쩐지 오늘 하루는 조금 운수가 좋더라니.
이런 횡액이 닥쳐오려고 운수가 좋았나 보다.
“하.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연옥을 건드려?”
머리 한쪽이 뜨끈하게 열이 오르면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연옥은 내가 만들면서 아주아주 공을 들이고, 애정을 쏟아서 가꾼 차원이다.
죽은 자의 윤회를 위한 차원인 만큼, 장식과 분위기, 노점과 가게들의 위치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나의 마스터 피스란 말이다.
박덕춘 부장의 눈치를 보다가 잰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배를 잡으며 끙끙거리는 척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야. 이제는 배도 아픈 거야? 젊은 놈이 가지가지 하는구먼…. 쯧.”
늘 그렇든 못마땅하게 혀를 찼지만, 그 안에 담긴 투박한 걱정이 느껴졌다.
약간의 죄책감이 양심을 찔러왔다. 하지만 이내 사라졌다.
지금은 연옥이 더 중요하니까.
“도대체 어떤 씹새끼인지 얼굴이나 좀 보자.”
사무실에서 적당히 멀어졌을 쯔음 곧바로 게임을 켜서 연옥으로 향했다.
화면에 비친 연옥은…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 “키르르르륵, 캬하으아악!”
– “햐크아아악! 캬흐아아아!”
– “찔러! 녀석들의 아가미를 찔러라!”
– “으으! 녀석의 비늘이 너무 딱딱해! 창이 안 들어가!”
박살이 난 노점, 굴러다니는 음식들.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찾는게 더 빠를 지경이다.
난장판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은… 날개 달린 물고기가…?
천사들이 날개 달린 물고기를 포위하고 창을 찔렀지만, 비늘이 제법 단단한지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 음? 나, 날개 달린 물고기…?”
물고기한테 날개가 달렸다는 것도 특이한데, 두 눈에서 검은 진액 같은 것을 줄줄 흘리는 것이 상당히 기괴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찌푸리게 했다.
– “녀석한테 창이 안 들어가. 비늘이 너무 딱딱해!”
– “불꽃을 피워서 녀석에게 던져!”
– 화르르륵!
연옥의 천사들은 악업을 씻는 불꽃 주변에서 일하는 것 때문인지, 작은 불꽃을 다룰 수 있었다.
플라잉 물고기에게 창칼이 통하지 않으니, 천사들은 손에 불꽃을 만들어 물고기에게 던졌다.
– “키햐아아아아아ㅡ!!”
– “녀석이 불에 탄다!”
효과가 있다. 불에 휩싸인 플라잉 물고기들이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오? 해치운 건가?”
생각보다 쉽게 당하는 모습.
하지만 나도 모르게 뱉은 마법의 주문 때문이었을까.
플라잉 물고기의 몸에 이변이 일어났다.
– 꾸드드득. 꽈드득! 콰자작!
– “으, 어어. 저, 저게 뭐야!”
– “녀, 녀, 녀석의 몸이 변하고 있잖아! 또 변하고 있다고!”
플라잉 물고기의 몸에서 검붉은 근육이며 가죽과 살갗이 튀어나오더니 한차례 살벌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언제 불에 탔냐는 듯, 멀쩡해진 모습으로 플라잉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와는 다르게 붉은색으로 번쩍거리는 키틴질 감촉의 비늘이 눈에 띈다.
“…허어?”
도대체 이게 뭔….
분명 플라잉 물고기가 불에 타고 있는 걸 내 눈으로 봤는데?
– “으아아악! 녀석이 또 변신했어!”
– “다, 다시 던져! 얼른!”
천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번 불꽃을 던졌다.
플라잉 물고기의 몸에 적중한 불꽃은 주홍빛을 화려하게 일으키다가… 그대로 꺼져버렸다.
불꽃에 휩싸인 플라잉 물고기의 몸은 멀쩡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녀석이야?”
갑자기 불꽃에 면역이라니.
거기에 변신을 했다고?
‘천사 말로는 또 변했다고 했지.’
그럼 저게 처음 변한 게 아니라는 말인데.
설마 저 날개가 첫 번째 변화인 걸까?
– “으아, 으아아아. 미, 미쳤어. 저건 미쳤다고! 창칼도 안 통하고, 우리의 불도 안 통하잖아!”
– “미, 미카에르 님은? 가이에드 님이라도 오셔야 해!”
– “후퇴! 일단 후퇴한다!”
패닉에 빠진 천사들이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와중에도 도망치지 못하고 남아있는 영혼들을 둘셋씩 챙겨서 날아갔다.
“흠.”
딸깍.
– 꽈르르릉! 콰쾅!
– “키햐아악!”
– “하으으으으각!”
벼락을 떨궈봤다.
플라잉 물고기는 곧바로 재가 되어 죽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왜 이번에는 한 번에 죽은 거지?
‘변신할 시간도 없이 죽여버리는 공격에는 변화를 못 하나? 즉사시켜야 변신을 안 하는 케이스?’
모르겠다.
급한 불은 플라잉 물고기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연옥에서 분탕 치는 썩을 물고기들을 잡아 족치는 거니까.
– 꽈르릉! 콰릉! 콰꽈앙!
부지런하게 연옥을 돌아다니며 플라잉 물고기가 보이는 족족 벼락을 떨궜다.
얼마나 떨궜는지 기억도 안 난다. 어림잡아 40마리는 넘게 잡은 것 같은데.
‘아니 그런데 지금 연옥이 이렇게 개판이 났는데 미카에르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 “흐아압! 차아앗! 죽어라, 이 사악한 마물아!”
연옥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미카에르는 보이지도 않고, 부사수인 가이에드만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촤악! 써걱.
가이에드가 검을 휘두르면 플라잉 물고기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물고기가 단번에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까 내가 봤던 것처럼, 불에도 견디는 몸으로 변신하지는 않았다.
‘변신하는데 무슨 조건이 있는 건가? 하, 머리 아프네.’
이번 일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플라잉 물고기가 변신하는 조건을 알아내야 하겠지만.
일단 전부 나중의 일이다.
– 꽈르르릉ㅡ! 콰앙!
부지런히 벼락을 떨구며 플라잉 물고기를 죽여나갔다.
플라잉 물고기들은 어지간히도 연옥을 개박살 내놨다. 가게와 노점, 여관에 술집까지 전부 무너져버렸다. 다시 건물 지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천사들은 제 몸을 지킬 무력이 있기에 피해가 전무에 가까웠다.
문제는 윤회를 기다리던 망자들의 영혼이다.
다행히도 천사들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돌이킬 수 없게 된 영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
기분이 불쾌했다.
아주.
* * * * *
물고기 마수가 나타난 해안가를 통제한 경비대장은 고민했다.
미지의 물고기 마수가 가진 능력은 사람의 인지, 혹은 상상력을 근원으로 삼는 것… 으로 추정됐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어설픈 병사 여럿보다는 숙련된 전사 두어 명이 더 능숙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 중에 조금 전의 나처럼 물고기 녀석이 진화할 여지를 줄 수도 있으니까.’
싸우는 와중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적에게 대응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하다.
마수 대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마수 사냥꾼들.
다행히도 경비대장은 특출난 마수 사냥꾼을 알고 있었다.
“허. 내가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집으로 돌아온 경비대장은 먼지 쌓인 나무 보석함 하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제 짝을 향해 날아간다는 짝잡이 벌레 한 마리.
검붉은 갑주의 짝잡이 벌레는 보석함 안에서 미친 듯이 난동 부리고 있었다.
자신의 짝을 향해 날아가려는 것이다.
경비대장은 조심스럽게 짝잡이 벌레를 창문 밖으로 날렸다. 짝잡이 벌레는 금방 푸르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부디 무사히 도착해야 할 텐데.”
* * * * *
찌르르르.
하늘을 나는 짝잡이 벌레의 여정은 고단했다.
덮쳐오는 새들에게서 도망치고, 은밀한 거미줄을 피해 다녔으며, 때때로 바람과 폭우를 만나 부단히도 고생했다.
무려 15년이나 만나지 못한, 제 수명의 3분의 2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던 짝을 만나기 위해.
그 일념 하나로 온갖 역경을 횡단했으니, 지극히 애절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흐음?”
그리하여 마침내 제 짝에게 도착한 짝잡이 벌레가 기쁨의 페로몬을 내뿜었다.
마수 사냥꾼들을 이끄는 단장, 셰이드는 갑작스레 날아온 짝잡이 벌레를 보며 이채를 띠었다.
셰이드의 허리에는 짝잡이 벌레가 들어 있는 작은 통 여러 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날아온 짝잡이 벌레가 여러 개의 통 중 하나에 앉는 것을 본 셰이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별일이군. 설마 저쪽에서 짝잡이 벌레가 날아올 줄이야.”
통 위에 적힌 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
오래전 마수 사냥꾼을 그만두고 은퇴한 사람의 것이었다.
“전부 들어라! 이 의뢰 끝나는 대로 다들 짐을 챙긴다. 너희들 선배가 도와달라고 의뢰를 넣었다.”
“예? 갑자기요? 다음에 하기로 한 의뢰는 어쩌고요.”
“그거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가?”
“아직 안 했으니 알 바 아니긴 하죠.”
그렇게 결정된 다음 목적지.
결투 축제가 어영부영 끝난 다음, 성도 주변에서 머물며 의뢰를 수행하던 차였기에 그리 멀지는 않았다.
셰이드는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봤다. 기분 탓인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짭조름한 소금 내가 가득한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나한테 도와달라는 일은 없을 거라더니.”
어지간한 일이라면 녀석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일로 부른 것인지 살짝 걱정도 된다.
그렇게 셰이드와 발리안을 포함한 마수 사냥꾼들은, 짝잡이 벌레가 날아온 길을 고스란히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도 타고, 마차도 타고, 가끔은 걷고 노숙을 밥 먹듯 하며 도착한 곳은.
쏴아아아, 철썩!
인어와 어인들의 도시, 아르테리스.
찍잡이 벌레를 보낸 경비대장이 있는 항구 도시였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데보라의 업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군요…!! 이 모습은 마치… 체르노빌의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 제어봉이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제 옆에 있는 꿀꽈배기 봉지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