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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8

   얼굴이 벌겋게 물든 간슈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가만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나랑 비슷할 정도로 자그마해도 신은 신인지라 그의 시선에는 나를 짓누를 힘이 존재했지만 난 주신의 신성을 끌어올리며 그 힘에 대응했다.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나의 뒤에 주신이 버티고 서 있는 한 간슈는 자신의 권능만으로 나를 제압할 수 없다.

   

   “혹시 위협하려고 노려보는 거야?♡ 너~무 무섭다고 해줄까?♡ 위대하신 간슈님~ 나대서 죄송해요♡ 라고 빌어 줄까?♡ 응?♡ 응?♡”

   “…실제로 당해보니 그대의 적들이 왜 자네에게 죽일 듯 달려들었는지 알 듯 하군.”

   “흐응~♡ 역사 씹덕은 그 허접들만큼이나 인내심이 부족하구나?♡ 하긴 신이면 뭐해♡ 방구석에 처박히는 바람에 사회성이 박살났는데 어쩌 겠어♡”

   

   간슈가 자신의 권능으로 날 짓누를 수 없단 이야기는 이 자가 나에 대해 기록하기 위해서 나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

   

   굳이 내게 권능을 주겠다며 말을 걸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쉽게 저항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아무리 내가 주신의 사도라지만 그래봐야 한낱 인간이니까.

   

   처음에 약간 굽히려 한 것도 그걸 걱정해서였고.

   

   근데 봐.

   

   지금 잔뜩 열이 받은 간슈가 자신의 권위를 도서관 전체로 퍼트리고 있음에도 난 멀쩡해.

   

   신의 분노 앞에서 바닥이 흔들리고.

   

   책장에서 책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먼지가 퍼지고.

   

   그의 기운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에도. 난 여전히 간슈를 마주하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어.

   

   왤까?

   

   주신의 사도라는 지위가 가져다 주는 권위가 내 생각보다 높은 걸 수도 있고.

   

   내가 그만큼이나 강해진 걸지도 모르고.

   

   지금의 내가 지닌 힘이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눈앞의 신이 지닌 권능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덜 한 걸 수도 있다.

   

   사실 뭐.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내가 간슈를 상대로 뻗대도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 뿐이야.

   

   “주신의 사도여. 신에 대한 존중을 보여라. 지금까지 이 세상을 이끌어 온 이들에 대한 존경을 비추어라. 그러지 않으면.”

   “않으면 뭐?♡ 내쫓게?♡ 마음대로 해♡ 나도 이런 쿱쿱한 데 더 있기 싫으니까♡ 외톨이 냄새가 배길 것 같아서 좀 그랬는데 잘 됐네♡”

   

   보란 듯 웃으며 팔을 펼쳐 보였지만 간슈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나라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한들 내가 앞으로 써내려갈 이야기는 포기할 순 없는 거겠지.

   

   “안 해?♡ 안 할 거야?♡ 신의 위엄 안 보여 줘?♡”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리인을 보낼 것을.”

   “아하핳♡ 그러게♡ 그랬으면 이런 추한 모습 안 봐도 돼서 참 좋았을 텐데♡”

   

   주먹에 힘을 더한 채 미간을 찌푸리던 간슈는 이내 머리를 쓸어 올리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아. 오냐. 져주마. 다만 착각하지 말거라. 이는 그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그대를 택한 주신을 존중하는 것이야.”

   “응♡ 그래♡ 그래♡ 알겠어♡”

   “이 빌어먹을 년.”

   “푸하핳♡ 화났다♡ 화났다♡”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만 간슈를 더 건드리던 나는 이 이상 하면 정말 터져버리겠다 싶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간슈가 재차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간슈의 손길을 따라서 엉망진창으로 흩어져 있던 책과 종이가 다시금 정리되고 우리의 사이에 책상과 의자가 나타났다.

   

   “빠르게 이야기를 하고 끝내지. 그대라는 극은 멀리서 바라보고 싶으니.”

   “왜? 날 가까이에서 보면 부끄러워? 사회성이 부족한데다 소심하기까지.”

   “닥쳐라.”

   “네에에.”

   “하여튼. 네가 바라는 것이나 이야기해라. 알겠나?”

   

   바라는 거라.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내가 아는 간슈의 축복을 적어 내렸다.

   

   사도에게만 주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권능은 필요치 않아.

   

   간슈가 자신의 사도에게 내리는 권능은 사이드 스토리 쪽에 좋은 것들이지 전투에 좋은 능력이 아니니까.

   

   내가 간슈에게서 바라는 축복은 좀 더 부가적인 쪽에 가깝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종이에 적어서 건네주자 간슈의 미간이 찌푸름 해졌다.

   

   “네 년.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글까지 이 따위로 적어야 속이 시원하더냐?”

   

   그의 불만을 들은 나는 말 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네 위에 있는 사람한테 항의해. 행동에 어느 정도 자유가 돌아왔음에도 소통이란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히 제약을 지키는 건 그 쪽이니까.

   

   “후우. [역사확인][첨언][역사의 지혜] 네가 바라는 축복이 이 셋이 맞나?”

   “눈도 안 좋으면 어쩌나 했는데 눈은 멀쩡하시네.”

   

   내가 간슈에게 요구한 것은 총 세 개다.

   

   [첨언]이라는 스킬은 말 그대로 훈수를 해주는 스킬이다.

   

   하루에 한 번.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애매한 순간 저 스킬을 사용하면 최선의 해답을 내어주지.

   

   게임에서는 NPC와 대화할 때나 퍼즐을 풀 때에나 사용하는 애매한 스킬이었지만 현실에선 다를 것이다.

   

   훨씬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야.

   

   [역사의 지혜]라는 스킬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킬이다.

   

   쉽게 말해서 지능을 올려주는 기술이지. 지능 58인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확인]이라는 스킬은 간슈와 그 신도들이 기록해 놓은 기록물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스킬이다.

   

   내가 굳이 간슈에게 축복을 받겠노라고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기록하고 저장해놓은 저 스킬은 게임 속과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유용할 게 분명하니까.

   

   내가 확인하고픈 여러 기록물들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들의 약점을 잡는 부분까지.

   

   흐흐흫. 다른 사람들이 곤란해 할 걸 생각하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새 나오네.

   

   이러다 진짜 메스가키가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일단 [첨언]의 축복을 부여하는 것은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건네줄 수 있지.”

   

   응.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일부러 끼워 넣은 거니까.

   

   “그리고 다음은 [역사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 다만. 이는 줄 수 없다.”

   “왜? 나한테 주기 아까워? 당신이라는 신은 정말 생긴 것처럼 쪼잔.”

   “이 축복을 주기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줄 수 없는 거다. 그대는 이를 습득할 자격이 없어.”

   “…응?”

   “단적으로 말해서 네 년은 너무 멍청하다. 그래서 이 축복을 감당할 수 없어.”

   

   …응?

   

   으으응?

   

   지금 뭐라고?

   

   진짜 진지하게 긁혀서 고개를 퍼뜩 쳐들었더니 한심하다는 듯 날 내려다보는 간슈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진짜로 내 지능이 58이라 그 축복을 받을 수 없단 거야!?

   

   그거 습득에 제한이 있는 기술이었어?!

   

   “크흡.”

   

   저기요! 할아버지!

   

   옆에서 웃음 참지 말아 주실래요!?

   

   저 심각하거든요?!

   

   “그리고.”

   

   옆에서 큭큭대는 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던 중 간슈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역사 확인]은 자격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지금의 그대에겐 내어줄 수 없다.”

   

   이 대답이 나올 건 알고 있었다. 여기에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하는 지도.

   

   “눈은 멀쩡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뭐?”

   “시험해보든가. 자신이 있다면 말야.”

   

   [역사 확인]이라는 스킬은 간슈의 사도가 될 때 지급받는 스킬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반대긴 하다.

   

   간슈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역사를 확인할 자격을 얻었기에 사도로 간택했노라고 했으니까.

   

   역사를 확인할 자격만 있다면 사도가 되지 않아도 저 스킬을 얻을 수 있단 이야기지.

   

   “내가 내리는 시련은 그리 가볍게 논할 것이 아니다.”

   “저어기. 음침하고 쿱쿱한 씹덕신. 너 귀엽고 멋진 내 영웅담을 쓰겠다고 그랬으면서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거 아냐?”

   

   내가 지능이 낮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지능과 썩은물로써의 지식은 별개야.

   

   소울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과 시련은 내 앞에서 무력해.

   

   “재잘재잘 떠들 시간에 시험이나 해 봐. 아님 뭐야? 자신 없어? 네가 만든 허접한 시련이 나한테 박살날까봐 무서워? 뭐 그럴 수 있지. 쪼끄마한 씹덕신님은 용기도 쪼끄만할 것 같으니.”

   “오냐. 네가 바라는 대로 해주마.”

   

   열기가 잔뜩 담긴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내 앞에 하얀 색의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 내 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

   

   *

   

   “이제 좀 조용하군.”

   

   씹어내듯이 목소리를 토해낸 간슈는 루시가 있던 자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푹 한숨을 내뱉었다.

   

   “루엘 자네는 어떻게 저 꼬맹이의 옆에서 버티고 있는 게지? 나 같으면 열불이 올라서 죽어버렸을 듯 하다만.”

   “겉은 저래도 속은 상냥한 아이입니다.”

   “그렇겠지. 주신께서 친히 선택한 자이니. 헌데 속이 멀쩡하다 하여 시건방진 겉모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은가.”

   

   간슈의 짜증에 루엘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확실히 지금 루시가 보여준 모습은 다소 선을 넘었다 싶을 정도로 건방졌다.

   

   주신의 사도라는 지위가 아니었다면 천벌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루엘은 차마 그녀에게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처음 간슈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다소 참는 기색을 보이던 루시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루시 그 아이는 자신의 주변을 건드리는 데에 너무도 민감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렇게 툭 튀어 나올 줄은.

   

   그만큼이나 날 가까이 봐준다는 건 기쁘긴 하다만 이에 대해서 좀 이야길 해두긴 해야겠어.

   

   언제까지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젠가 문제가 생길 테니.

   

   “루엘.”

   “예. 간슈님.”

   “자네 걱정이 되지 않나?”

   “걱정이라 함은?”

   “자네가 아끼는 아이가 본인의 시련 속에 들어갔지 않나.”

   “아아. 그것 말입니까.”

   

   루엘이 피식 웃음을 흘리자 간슈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웃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를 추측한 루엘은 다소 느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루시 알른이라는 아이는 그 어떤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사람입니다. 저토록 자신만만할 때는 더더욱 그렇죠.”

   

   루시와 오랫 동안 함께해 온 루엘은 방금 전 루시가 보여 준 자신감에 거짓이 없음을 알았다.

   

   “분명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저런 모습을 보일 때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해가면서 시련을 장난처럼 보이게 하곤 했으니.

   

   “…그래?”

   

   간슈는 그 대답이 거슬리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반박을 하진 않았다.

   

   그 까탈스럽던 성기사 루엘이 느슨히 웃고 있는데 무얼 하러 기분을 상하게 하겠는가.

   

   “뭐. 좋다. 이제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니.”

   

   간슈가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어 펼치자 그 위에 그림이 그려진다. 그의 시련을 수행하고 있는 루시 알른의 모습이 말이다.

   

   “…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된 순간 간슈는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이고 말았다.

   

   두루마리 속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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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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