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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8

    <448 – 삼대의 결실>

     

    24시간 같은 10분이 지나가는 동안 이슈타르는 홀로 고뇌했다.

     

    -10점이다. 네 우직한 편견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구나.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편견. 일방적인 견해. 충분한 견해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생각.

    누군가는 그것을 나쁘게 여길지 몰라도 이슈타르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용사의 시간은 귀해. 사방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누구를 도울지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야 해.’

     

    어디선가 한 명을 구해도 다른 곳에서 아흔아홉 명이 죽으면 아흔아홉 명의 유가족에게 욕을 먹는다.

    반대로 아흔아홉 명을 구해도 죽은 한 명이 대귀족이면 후원세력의 분노어린 징벌과 그 가문의 적극적인 방해를 맛볼 수 있다.

    정말로 재수가 없으면 귀족가문 하나가 변절해서 마왕군에 합류하기도 한다.

     

    ‘수많은 역대 용사들의 사료에 기록된 가치판단의 우선순위. 그 길을 따라가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

     

    역대 용사들이 피땀 흘려 찾아낸 정답.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전대용사인 디스트로이어가 오답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슈타르는 그 사실이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당신들에겐 그렇게나 시간이 많았다는 거야? 그래서 달라지길 기대하는 거야?’

     

    괴롭다.

    자신이 아는 사실이 부정된다는 점에서 이 강의는 다른 강의들과 느껴지는 부담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 다른 길을 걷는 용사가 겪은 실패담이.

    삼대거악을 믿어버린 자의 말로가.

     

    ‘그건… 오크노디를 믿은 자의 결말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삼대거악의 후계자.

    재단총수의 후계자.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그녀를 따르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이 강의의 끝을 보는 거다.

    달아나지 않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이슈타르.

    그녀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디스트로이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지.”

    “한스가 떠나고 우리가 튤립농장에 도착하기까지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재회한 소꿉친구가 직접 전해준 사건의 진실을 들을 시간이다.”

     

     

    * * *

     

     

    전직교수 하베스트의 마계종 이색튤립은 혁명가에게 기이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하베스트는 그 사실에 꺼림칙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 났다.

     

    “사람들은 마계종 이색튤립의 가능성을 얕보고 있네. 하지만 이 튤립은 마계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식물 네펜데스 이상의 악몽을 펼쳤지.”

    “호오. 하베스트 교수님께서는 마계에서 자라는 꽃을 직접 보신 겁니까?”

    “이 꽃의 씨앗을 마계령 밖에 심은 최초의 연구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바로 이 하베스트 님이다. 직접 보지 않고선 당연히 씨앗을 얻을 수도 없지.”

    “마계에서 자라는 튤립은 어떤 식물이었습니까?”

    “악몽이었네.”

     

    그런 하베스트조차도 원본튤립을 논할 때에는 일순간에 들뜬 기색이 사라지며 정색했다.

     

    “조금 돌아가는 이야기가 되지만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마계령의 횡단이 필수적. 가급적이라면 마왕 본인의 암살을 노리는 편이 이득이지.”

    “기프트 아카데미를 비롯한 대륙각국에서는 마왕암살을 위해 숱한 조사대를 파견했고, 튤립을 처음 발견한 것은 내 선친이 속했던 19차 마계조사대였다.”

     

    낯선 대지에 피어난 이색적인 보랏빛 튤립.

    조사대는 신중하게 소환수나 마법으로 부리는 하수인을 튤립 밭에 보냈다.

     

    “특별히 이상은 없군.”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무해한 꽃인가?”

     

    조사대는 튤립을 무해한 종으로 판명했다.

    소환수가 잎을 뜯어먹어도, 줄기를 뜯어먹어도, 꽃잎을 뜯어먹어도 독에 중독되어 쓰러지거나 죽는 모습 따위는 일절 없었다.

    심지어 황당한 발견까지 이루어졌다.

     

    “소환수가 왜 역소환되질 않지? 유지시간은 이미 지나갔는데.”

    “거짓말 말게. 마나가 저리 쨍쨍한데 어디서 비틱질이야? 새것으로 다시 소환해놓고 시치미 떼기는.”

    “…신께 맹세컨대 저 소환수들은 불러낸 이후로 마나를 재충전하거나 되돌려 보낸 적이 없다네.”

    “중급소환수는?”

    “당연히 부르지도 않았지.”

    “그럼 저 중급들도 자네가 불러낸 것이 아닌데 자네 명령을 따르고 있단 말인가?”

    “!!”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주변생물에게 마나를 채워주며 직접 복용하면 마나량마저 늘어난다.

    마나를 머금은 영약 사이에서도 단숨에 최고 순위에 오를만한 대단한 영초의 발견이었다.

     

    “이건 혁신이야. 하나라도 더 많은 튤립을 모아서 아카데미로 가져가야해!”

     

    조사대는 튤립열풍에 휩쓸렸다.

    멍청한 마계 놈들은 자기네 앞마당에 이런 영초가 자라는 줄도 모르고 있다니, 마족 놈들의 눈을 피해 마계를 횡단하던 것이 신의 한수라고 자찬하면서.

    모두가 충분한 양의 튤립을 채취하고 돌아가는 길, 머리에 뿔 하나가 달린 일각수 토끼가 나타났다.

     

    “치우게.”

     

    조사대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을 잡몹.

    짐꾼 노릇이나 하던 이들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버러지 중의 버러지.

    동패급 잡몹을 향해 짐꾼 하나가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은 일격에 일각수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참사가 시작되었다.

    사방에 자리한 튤립들이 빛을 뿜어내었다.

     

    “뭣?!”

    “허억, 마, 마나가 강제로 빨려든다!!”

     

    튤립들에서 생성된 매직미사일이 짐꾼이 사용한 매직미사일의 술식을 고스란히 재현하였다.

    대상지정도 없이 동쪽으로 날렸을 뿐인 마법이 모든 튤립의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불행히도 조사대는 모두 동쪽에 있었고, 유사시에 대비해 펼친 방호마법이 일제히 가동됐다.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기초마법이라도 사용한 마나의 양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튤립들은 살인적인 마나를 담아 매직미사일을 쏘았고, 가장 먼저 짐꾼들이 몸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

    다음은 비전투대원들이었다.

    그들을 지킬 실력이 있는 전투대원들은 한층 더 심각했다.

    튤립을 복용하며 체내에 스며든 튤립의 마나가 강제로 그들의 마나를 매직미사일로 추출했다.

     

    “모, 모두 도망쳐어어!”

    “안 돼, 캐스팅이 멈춰지지 않아!!”

    “으아아아악!!”

     

    강제로 마법을 펼치느라 방어마법을 펼치지 못한 전투원들이 죽었다.

    마나회로가 활성화되지 않은 검객들은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뽑혀나가는 마나의 충격에 호신기를 펼치지 못하고 오폭에 맞아 죽었다.

    서로가 서로의 마법에 맞아죽는 지옥도의 한복판에서 하비의 조부, 하베스트의 부친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왔다.

     

    “근방에서 발현된 마법을 강제로 모방하는 성질의 마나. 아주 영리한 식물이군!”

     

    하베스트는 튤립의 비밀을 깨달았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꽃이 꽃가루를 퍼뜨리기 위해 향기로 곤충을 유혹하듯이 튤립은 마나로 마계종들을 유혹했다.

    그렇게 마나를 머금은 생명체들은 근방에서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 강제로 마법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제 마법에 스스로 힘이 고갈되어 죽든, 분노한 다른 생물체에게 살해당하든 마나를 품은 기생체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튤립의 씨앗이 자라나는데 필요한 피와 거름이 되겠지!”

     

    하베스트는 튤립에게서 막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다음 조사대에 자신이 참전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불행히도 그 계획은 학회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마탑은 하베스트에게 조사대원의 자리를 내어주었고, 끝내 그는 마계종 튤립을 인간들의 영역에 가져오는 데 성공하였다.

    마법발현이 엄중히 관리되는 실험실에서 마계종 튤립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유해성을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그는 제국교수로 아카데미에 초빙되는 영광마저 누렸다.

     

    “연구의 반절은 성공했다. 모방할 마나를 모두 고갈한 뒤의 튤립은 공명의 성질을 지니되 마법을 발현하지 못하니까.”

     

    그 미약한 공명의 힘으로 주변토양을 오염시키는 마계의 성질을 모방하는 위험성도 세대를 거듭해서 개량된 품종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계의 위험한 대지 대신 안전한 중간계의 대지의 성질을 모방하며 유해성이 거세된 까닭이었다.

     

    “앞으로 조금이다. 조금만 더 개량하면 영초를 기르는 데 필요한 영맥의 대지를 튤립을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혁명군은 그 연구자금을 대줄 것이고, 결실이 나오거든 제국도 아카데미도 이 나를 인정해야만 할 거다!”

     

    하베스트의 광기에 찬 외침에 하비는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벌써 5년이 지났잖아요, 아버님…”

     

    기프트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고도 해내지 못한 일을 혁명군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낼 수 있을까.

    하비는 회의적이었다.

    저토록 위험한 꽃을 그저 마나를 머금고 형광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성질 하나만을 두고 집단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귀족들도, 혁명군도 모두 미쳤다.

     

    “당신들의 혁명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알겠어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쫓아가게 만들어 남들의 인생을 파멸시키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가는 튤립과 같아요. 아름답지만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위험종이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혁명이란 많은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비 양의 이론은 아버님의 연구의 결실로 반박되지 않았습니까?”

     

    혁명가는 자신의 실태를 지적당하고도 뻔뻔하게 반문하였다.

     

    “개량된 튤립은 위험성이 사라집니다. 인류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죠. 혁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듭할수록 더욱 도움이 될 겁니다.”

    “아버님을 이 이상 이용하지 말아요. 당신들의 연구는 아버님을 죽일 거예요.”

    “하비 양은 아버님의 연구가 싫으십니까?”

    “싫은 건 당신들이야.”

    “그렇다면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이제 곧 결실을 맺을 때가 다가옵니다.”

    “결실…?”

    “하베스트 교수는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혁명가는 큭큭 웃으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논하듯이 이야기하였다.

     

    “기프트 아카데미. 세계유수의 교육기관은 대량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는 영맥 위에 자리했습니다. 그곳엔 너무 많은 마나가 있었고, 튤립이 거듭 마나를 회복하며 이전세대와 다른 성질의 힘을 품을 기회가 존재하질 않았죠.”

    “…!”

    “반면에 이곳은 척박한 농토. 모방할 마나 따윈 한 줌도 찾기 힘든 대지입니다. 튤립이 이전세대의 성질을 모방하는 동조마법을 발현할 여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척박한 대지.”

    “너무 많은 지원을 받은 것이 오히려 해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직에서 쫓겨나 제국에서도 버림받고 어려운 형편에 구한 척박한 농토가 튤립의 개량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으니, 실로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운명의 인도를 느낍니다.”

     

    지평선 저 너머까지 자리한 튤립농장을 가리키며 혁명가가 두 팔을 벌렸다

     

    “아카데미도 제국도 가능성을 알되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튤립이 우리 혁명군과 만난 뒤에야 비로소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비 양의 아버님은 마계종 튤립에 마음이 꽂힌 순간부터 혁명군의 동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던 겁니다.”

    “…방해한다면 저도 죽이겠죠?”

     

    혁명가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삼일입니다. 앞으로 삼일 뒤, 전에 없던 새로운 품종의 튤립이 완성됩니다. 도움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아버님의 결실을 함께 봐주십시오. 아버님의 인생의 전부를 건, 선대의 조부로부터 이어져온 업이 인정받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당신들은 이 튤립을… 어떻게 사용하려는 거죠?”

    “무기화시킬 겁니다. 정확히는 1회용 마나스크롤이 되겠죠.”

    “…!”

    “마법에 무지한 천민들도 손쉽게 재배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재능 하나만 믿고 상류계층에 군림하는 마법사의 시대를 농민들의 시대로 끌어내릴 겁니다.”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아버님은 제국의 적이 될 가능성이 역력하다.

    그가 바라던 학회에의 복귀는, 아카데미 교권의 복권은, 제국의 인정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아버님의 소망이라면.

    그 소망을 이루어줄 유일한 사람이 혁명가라면.

    하비는 도저히 제 입으로 그 소망을 부정하고, 제 손으로 튤립들을 뽑아 없앨 수 없었다.

     

    “지켜보겠어요.”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응원하지 못할망정 방해는 할 수 없다.

    하비는 혁명가의 설득에 응했다.

    제국은 그러지 못했다.

    연구의 결실이 나오고 튤립의 상용화의 가능성이 보인 지 불과 이틀 뒤.

    하베스트는 제국학회에 새로운 논문과 신세대 이색튤립을 보냈고, 제국은 그의 결실을 인정하며 하베스트의 농장을 불사를 3만 대군을 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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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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