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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9

        

       하지만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엘라는 떼를 쓰는 아나스타시아에게 말했다.

         

       “아까 뉴스 봤잖아요?”

         

       그녀가 한 것은 TV에서 본 뉴스였다.

         

       “뉴스에서 섬 하나가 악귀에 점령당했다고 떠들어댔는데, 그걸 보고도 괴담을 하실 생각이 드시는 건지요?”

         

       뉴스에서는 독도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들고 있었다.

         

       물론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다.

       정부가 언론에 자세한 정보를 주기 꺼리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받은 정보는 하나도 없었고, 죄다 언론사들이 알아서 추측하고 떠드는 내용들이었다. 자칭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패널로 나와서 듣기에만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놓고, 경제와 관련된 사람이 튀어나와서 지금 상황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솔직히 말해서 영양가는 별로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치가 없는 것이었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TV에서 떠들어대는 내용 자체는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한낱 가십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박진성이 화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와 조합해본다면 대략적인 상황이 그려졌으니까.

         

       생각보다 독도를 점령한 악귀들이 강했고, 퇴치하기는커녕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전개가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곳곳에서는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가뜩이나 악귀가 가득 찬 땅을 위에 두고 있어서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섬 하나가 악귀에 점령당하기까지 했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축 처져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괴담을 떠들면서 논다…?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엘라는 따끔하게 아나스타시아에게 말했다.

       우리가 교양 없는 사람도 아니고, 다들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로 떠들썩하게 놀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토끼야? 축 처져있지는 않은데? 불행한 사건인 건 맞지만, 그래도 금방 해결될 거로 생각하고 있는데…? 북쪽에서 귀신 내려오는 일은 가끔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 그게 옳았다.

       교양이 있고 학식이 있다면 자제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미디어의 물결에 휩쓸려서 사건에 대해 떠드는 것보다는, 이렇게 진중하게 자제를 하는 것이 올바른 레이디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뉴스에서도 패널이 대놓고 자기가 겪은 괴담 이야기 떠들어대던데…. 괜찮지 않을까…?”

         

       엘라는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런 속담이 있잖아요? ‘악마의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악마가 나타난다(Talk of the devil, and he is sure to appear.)’ 라는 속담이요. 한국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고 들었어요. 귀신 이야기하면 귀신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몰려든다는 말.”

         

       엘라는 그 말을 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일본에서 유명한 말이었던가요? 으음…. 이건 조금 헷갈리네요.”

         

       “어, 그거 한국 거 맞아. 잘 알고 있네, 엘라. 역시 우리 토끼!”

         

       “고마워요, 퓨마. 그리고 그만 제 무릎 그만 베고 일어나세요.”

         

       “싫어. 말랑하고 푹신해서 좋단 말이야.”

         

       “하아…. 마음대로 하세요….”

         

       엘라는 강제로 무릎베개를 이어가고 있는 이아린을 몰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어쨌든 귀신 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는 상황에 귀신 이야기한다? 글쎄요…. 진짜로 우리한테 찾아올까 무섭네요. 그러니까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따끔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이 언니는 너무 기쁘네요!”

         

       하지만 그 외침은 엘라의 말에 긍정을 표하는 말이 아니었다.

         

       엘라가 기대했던 대답은 ‘알겠어요.’, ‘맞는 말이네요! 그럼 괴담은 포기하는 게 좋겠네요!’같은 말이었건만.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대답은커녕, 뜬금없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네?”

         

       “이 언니는 정말 기뻐요!”

         

       아나스타시아는 의문의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라를 보며 정말로 기쁘다는 듯, 감동하였다는 듯 말했다.

         

       “동생이 이렇게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게…! 언니로서 이만큼 기쁠 수가 없네요!”

         

       “네? 아니…. 잠깐만요. 그럼 당신은 절 평소에 뭐로 보고…?”

         

       “이 언니는 기쁘답니다!”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말에 숨겨진 뜻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나스타시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꼭 껴안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감동하였다거나 당황스러워서 멈춘 것은 아니었다.

       아나스타시아가 힘을 꽉 줘서 껴안았기 때문에 입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인 입막음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나스타시아는 감동적인 장면을 빙자한 입막음을 한 뒤 해명하기 시작했다.

       해명이라는 단어 앞에 ‘일방적이고 공격적인’이라는 말을 붙여야만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이 언니 역시 그 점은 진즉에 깨닫고 있었답니다. 그건 상식이니까요! 이 언니의 평소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언니는 매우 상식적이고, 매우 사회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잖아요?”

         

       “읍!”

         

       그리고 입막음 뒤의 해명은 첫 번째부터 엘라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라는 똑똑히 보고, 듣고, 겪었다.

       학교에서 온갖 비상식적인 짓을 하고 다니고, 자신을 귀여워하는 여학생들을 꾀어서 같이 이상한 짓을 해서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고 다닐 정도로 반사회적이며,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소란에 골머리를 앓는 교사진들을 공감해주지 않는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을.

         

       물론 아나스타시아의 외형과 언행이 귀여운데다가, 호감을 사는 능력은 기가 막혔고, 뒷수습까지 척척 하고 다니는 만큼 후폭풍도 피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아나스타시아가 상식적이고, 사회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읍!”

         

       그렇기에 엘라는 항변했다.

       진실을 고발하는 기자의 마음으로.

       입을 열어서 아나스타시아가 말한 저 거짓을 반박하고 진실을 그 자리에 채워 넣으려 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언어조차 되지 못한 소리.

         

       엘라의 꾹 막힌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아나스타시아의 몸에 완전히 밀착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어떻게든 아나스타시아를 밀어내고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어보고 싶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엘라의 힘으로는 아나스타시아를 밀어낼 수 없었다.

         

       작고 가냘픈 아나스타시아의 신체는 놀랍게도 엘라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엘라가 너무 빈약해서 아나스타시아를 제대로 밀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엘라는 아나스타시아를 힘으로 밀어낼 수 없고, 제압에서 자력으로 풀릴 수도 없다는 것.

       그렇기에 엘라는 항변도 항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세였다.

         

       즉, 아나스타시아가 말하는 헛소리를 얌전히 들을 수밖에 없는 몸이라는 이야기다.

         

       “뉴스를 보자마자 깨달았어요. 아, 한국의 괴담 시장이 위축되고 생산량이 줄어들겠구나. 수요는 몰라도 공급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양지에서 소비되는 것이 금기시되고 음지에서 주로 소비되게 되겠구나…하고 말이에요.”

         

       “으읍!”

         

       엘라는 괴담을 무슨 재화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항의했다.

       물론 그 뜻을 100분의 1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지만.

         

       “슬픈 일이에요.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양질의 괴담은 줄어들어서 거의 괴멸 직전에 이르게 될 테고, 음지로 불법적인 괴담이 유통되게 되겠지요. 당연히 그 질은 좋지 않을 게 분명해요…. 괴담의 미래가 어둡네요. 이 언니는 슬프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너무 슬퍼서 몸이 축 늘어지고 의욕이 솟지 않는다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엘라가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지만 이 언니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답니다. 뭐든지 대체재가 있는 법이 아니겠어요? 괴담이라는 것은 여러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고, 귀신은 그 괴담을 이루는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읍?”

         

       “그래서 이 언니는 제안하려 한 것이에요! 귀신 이야기가 아닌 괴담을!”

         

       아나스타시아는 마치 정치인이 자신의 포부라도 밝히는 것처럼 근엄하고 거창하게 말하고는 팔에 힘을 풀었다. 그리곤 자신의 품에 안겨 입이 봉인되었던 엘라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어때요, 동생. 재밌겠죠?”

         

       그녀는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엘라를 보았다.

         

       엘라가 자신의 ‘설득’에 감화되었기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엘라는 언니의 기대 속에 입을 열었다.

         

       “혹시….”

         

       “네에.”

         

       두근두근.

         

       아나스타시아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엘라를 쳐다봤다.

         

       “…부채로 입 얻어맞아 보신 적 있나요? 맞아 보실래요?”

         

       하지만 엘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매우 폭력적인 말이었다.

         

       아나스타시아의 붉은 눈이 동그랗게 뜨이게 할 정도로 말이다!

         

       “동생…? 설마…재미를 못 느끼는 건가요……?”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자기 동생을 바라보았다.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지을법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재미 문제가 아니라…. 아까 말했잖아요. 사회적 분위기….”

         

       아나스타시아는 엘라를 바라보았다.

         

       “…도 그렇고, 귀신이 올 수도 있다니까요….”

         

       그녀는 어느새 자세까지 낮추고 엘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진짜.”

         

       간절하게, 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하세요….”

         

       결국 엘라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나스타시아는 비 맞은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한 채 언제까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데도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며칠 동안 들들 볶을 것 같기도 했고.

         

       차라리 그냥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뭐…당장 이아린과 이세린도 불편해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녀 자신이 좀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런데 왜 이렇게 괴담에 집착하는 건가요? 뭐 이상한 거라도 들으셨나요?”

         

       엘라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나스타시아에게 물었다.

         

       대체 뭘 들었기에 이렇게 강경하게 주장하는 거냐고.

         

       “네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가져왔어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외국의 이야기랍니다. 재미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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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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