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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9

   귓가를 스치는 새의 노랫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숲에 쓰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내가.

   

   아. 간슈의 두루마리에 빨려들어 왔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린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일단 몸상태부터 확인을 해보자.

   

   한 번 탈진을 하고서 깨어난 나이지만 지난 번 불의 악신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상당히 회복된 상태였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가.

   

   이 정도면 움직이는 건 물론이고 싸우는 것도 크게 문제는 안 되겠다.

   

   진짜 전력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곤란하겠지만.

   

   뭐. 여기선 그럴 일 없으니까.

   

   다음은 장비 쪽이려나. 갑옷 있고. 방패 있고. 메이스는… 없네.

   

   할아버지가 저 쪽에 남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인벤토리에서 새 메이스를 꺼내든 난 숲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지금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것 같네. 여기라면 정상적인 루트를 타고 별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지만 그 꼬맹이의 얼굴을 떠올리면 좀 놀라게 해주고 싶단 말이지.

   

   내 시련을 망가트리지 마라! 같은 소리를 외치고 하고 싶어.

   

   지금의 내 스펙으로 가능할까 가늠하던 나는 웃으며 충분히 가능하단 판단을 내렸다.

   

   게임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나 정도면 오버스펙이니까.

   

   안 될 이유는 없지.

   

   생각을 끝마친 나는 즉시 발을 움직였다.

   

   간슈의 시련은 시련을 받는 자가 역사를 확인할 자격이 있는 지를 보고자 하는 곳이다.

   

   평가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우선은 역사에 새겨질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만한 능력이 없다면 제대로 된 역사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

   

   그 다음은 선함이다. 역사에 새겨진 여러 가지를 보고 그를 악용하지 않을 자만이 역사를 확인할 자격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호기심.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기 위해 달려들 수 있는 자만이 간슈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

   

   본래 간슈의 시련은 이런 요소들을 확인하기 위해 두루마리 안에서 자그마한 세계를 체험하게 만든다. 그 곳에서 벌인 여러 가지 행동을 기점으로 해서 평가를 내리지.

   

   이걸 조금 바꾸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행동이 어떤 평가를 가져다 주는지 알고 있다면 간슈가 당초 상정해 둔 것을 박살내버릴 수 있단 소리고.

   

   게임 속에서는 이런 식으로 통과해도 아무 말 없었는데 현실에서는 어떠려나.

   

   성격 더러운 꼬맹이 같았던 모습을 보면 가만있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숲을 내달리면서 이곳저곳에 있는 식물이나 동물, 비석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긴다. 필요 최소한의 호기심 점수를 채우기 위한 행동.

   

   그러다가 저 멀리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온 순간 한 치 망설임 없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내달렸다.

   

   썩어 들어가는 것의 지독한 향취.

   

   본능의 영역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

   

   벌레가 기어오르는 듯한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기점이 되는 장소에서 퍼져나가는 불온한 기운.

   

   닭살이 돋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도착한 장소에는 한 때 요정이라 불렸던 것이 있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이 할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존재.

   

   넘치는 장난기로 관심을 찾아다니는 이들.

   

   허나 그 본질은 선하기 그지없어 근처에 있는 이들에게 웃음을 전해주었던 생명.

   

   그리고 지금은 웃음 대신 비명을 전하기 위해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

   

   “끄. 하아. 흐흐. 하.”

   

   귓가를 간질이는 웃음소리의 앞에는 뒤로 나자빠진 남성 하나가 있었다.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내던진 채 벌벌 떨고 있는 이는 도망이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저 남자는 요정이었던 것에 의해 머리 안에 든 것을 모두 빼앗기리라.

   

   비유가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에서.

   

   그 광경을 보면 진심으로 속을 게워낼 자신이 있었던 나는 심호흡과 함께 신성을 주변으로 풀었다.

   

   “우와아♡ 생긴 거 장난 아니네♡ 진짜 징그럽다♡”

   

   요정이었던 것의 시선을 끈 나는 상대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걸 보고 방패를 치켜들었다.

   

   이성이 없는 적을 상대하는 건 무척이나 쉬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아는 방식대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니까.

   

   휘둘러지는 손톱을 튕겨내고. 안 쪽으로 파고 들어서. 신성이 깃든 메이스로 내리찍는다.

   

   일격으로 쓰러지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 다음을 준비하던 나였지만 그건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내 메이스에 의해 머리가 깨져버린 것은 재가 되어 바닥에 흩어져 버렸으니까.

   

   요정이었던 것에게 습격당했던 남자는 얼떨떨한 듯 가만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멍청한 표정을 본 나는 보란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뭐해?♡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렸어?♡ 푸하핳♡ 생긴 것처럼 한심한 겁쟁이네♡”

   “…예?”

   “헛소리 지껄일 힘이 있으면 집으로 뛰어가는 게 어때?♡ 지린내가 풀풀 풍겨서 완전 꼴불견이거든♡ 혹시 못~생긴 아저씨는 집까지 손잡고 데려다 줘야 하는 허접인 걸까?♡”

   “다. 당연히 아니죠! 다만 전.”

   “그럼 빨리 사라져♡ 아저씨 냄새 완전 극혐이라구♡”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남자가 입술을 달싹이다 저 멀리로 달려가는 걸 확인한 나는 그 뒤에 버프를 걸어 준 후 다음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

   

   간슈가 스스로 만들어 낸 시련은 그가 기록한 과거의 역사 속에 사람을 내던져 그 자가 지닌 여러 가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이 역사를 확인할 자격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간슈가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낸 시련은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점수를 매겨 평가를 도출해낸다.

   

   여태까지 간슈는 자신이 만들어낸 시련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시련 속에서 나온 결과는 간슈가 그 자를 오랫동안 보며 내린 결론과 비슷했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루시 알른이라는 변수가 눈앞에 찾아온 순간 간슈는 처음으로 자신의 시련을 의심하게 됐다.

   

   오만불손하며 건방진 꼬맹이.

   

   곁에 있으면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을 만큼 오만불손한 아이.

   

   허나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한없이 고결하고 명예롭다는 것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자.

   

   어째서 주신이 저 자를 간택하였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

   

   간슈는 루시 알른이 자신의 시련을 뛰어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루시에게는 이미 자격이 존재했으니까.

   

   당장 그가 루시의 영웅담을 쓰고 싶다고 먼저 말을 내뱉은 것부터가 루시에게 자격이 있음을 증빙했다.

   

   루시 알른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면 간슈가 눈을 벌겋게 물들인 채 먼저 접근했을 리가 있나.

   

   만약 루시 알른이 간슈에게 분명한 예를 갖추었다면 간슈는 시련 따위 대충 넘기고 루시에게 바라는 것을 건네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루시가 시련 속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눈에 띈다는 표현 정도로 끝마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시 알른은 간슈가 시련 속에 배정해놓은 여러 점수를 모조리 아는 것처럼 움직였다.

   

   자잘한 시선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해가며 시련을 통과하지 위한 점수를 쌓았다.

   

   놀라운 점은 이 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간슈의 시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숲 안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 지.

   

   그 사건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사건을 완벽히 해결한 후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루시 알른은 간슈보다도 시련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처럼 해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모두 다 명확한 정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하. 간슈님께서 이토록 당황하시는 건 저도 처음 보는군요.”

   

   시원한 웃음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 간슈는 루엘의 미소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꼭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하는 군.”

   “그럼 간슈님께서는 모르셨습니까? 여태 루시의 행적을 살피셨다면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지상의 일이잖으냐.”

   

   지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서 루시 알른이 기행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뒤에는 위대하신 주신이 도사리고 계시니 말이다.

   

   허나 이 곳에서는 아니다.

   

   주신이라 하여도 간슈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시련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것을 전해주는 것 또한.

   

   “저것이 주신의 도움이 아니라 루시 알른 본인의 능력이었을 줄은.”

   

   얼굴을 찌푸린 채 두루마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 간슈는 가만 루시 알른이 움직이는 것을 살폈다.

   

   저 속도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그녀는 머잖아 내 시련을 돌파할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흐음.”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저 꼬맹이가 시련을 통과한 후.

   

   ‘진짜 이딴 게 시련이야? 시련을 만든 게 꼬맹이라 그런가 저 안도 꼬맹이 전용 난이도네.’

   ‘정말 잠을 참느라고 힘들었어. 하마터면 저 안에서 잠에 빠지는 바람에 위험해질 뻔 했다니까?’

   

   같은 소리를 지껄일 걸 생각해보면 절로 열이 차올라.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나 하나의 감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련을 통과했다면 그것이 정답으로 생각하는 게 옳아.

   

   단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군.

   

   “루엘. 자네는 루시 알른이 그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해 보일 수 있다 하였지?”

   “예. 그렇습니다.”

   “그 확신에 어긋남이 없다면 지금 내가 하는 것에 의문을 지니지 말게.”

   

   간슈는 그리 말을 하며 자신의 권능을 두루마리 안에 펼쳤다.

   

   본래 존재하던 시련 속의 세상이 조금씩 뒤바뀌어간다.

   

   “새로운 시련의 끝에는 마땅한 보상이 존재할 테니까.”

   

   *

   

   피부 위로 닭살이 돋아나는 느낌에 발을 멈췄다.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이 세상을 뒤엎는다.

   

   자잘하게나마 들려오던 숲의 소음이 일순에 사라진다.

   

   숲에서 느껴지던 생기를 불길함이 좀먹는다.

   

   게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일이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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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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