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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9

    <449 – 막을 수 있었던 재앙>

     

    “제국장군 파르마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역적 하베스트는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마계종의 씨앗을 사적으로 발아하여 평화를 위협할 병기를 만들었다.”

    “이제 튤립을 금기종으로 지정함과 동시에 하베스트를 반란군과 협력한 제국의 적으로 간주한다. 자비를 청하려거든 모든 튤립을 스스로 폐기하여 반군의 품을 떠나 제국법정의 출두에 응하라.”

     

    삼만대군을 이끌고 온 장군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하비가 보아도 명백했다.

     

    “응하지 마세요. 따라가는 날이 아버님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요!”

    “가야만 한다.”

    “아버님!”

    “네 알량한 잣대로 황제폐하를 욕보이지 마라!”

     

    짜악.

    노교수의 억척스러운 손이 하비의 뺨을 때렸다.

     

    “네 조부가 조사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아비가 마계종의 씨앗을 거두고 연구하여 제국교수로 아카데미에 초청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폐하의 자비와 은총 덕분이다.”

    “횃불을 들고 튤립농장을 불태우러 온 녀석들이 무슨 은총을 베풀어요! 아버님의 연구를 모두 말소하고 없애려고 작정했잖아요!”

    “병기란 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민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법스크롤이 담아내는 것이 어찌 위험천만한 공격마법뿐이겠느냐.”

     

    하베스트는 제 딸의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사과했다.

     

    “치유마법. 생활마법. 마법사의 수가 부족해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대중은 누리지 못한 마법의 혜택을 가난한 농민들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아버님…”

    “일개 평민을 조사대의 일원으로 윤허하여주신 폐하라면, 마법학회라면 분명 알아줄 것이다.”

     

    노교수의 꿈은 이루어졌다.

    연구의 결실은 비로소 세상에 수줍게 꽃을 피웠다.

    이제 그 꽃의 아름다움을 모두가 알아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하비.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그리하면 제국귀족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네 혼삿길을 정할 수 있다.”

    “그런 건 전부 아버님의 욕심이잖아요. 저를 위해서라는 핑계 따위는…!”

    “용사를 짝으로 두더라도. 그래도 싫더냐?”

    “…!”

    “네 소꿉친구 디스트로이어를 노리는 제국의 황녀들마저도 너의 짝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설마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인석아. 소꿉친구가 순애로 이어지는 건 제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지지하는 참된 길이야.”

     

    인자하게 웃는 하베스트의 모습에 하비는 그만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녀를 달래는 하베스트의 눈가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교수가 아닌 아버지로서 오랜만에 제 몫을 해냈다는 기쁨에, 하비는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꼭 돌아오셔야 해요.”

     

    하비는 제국군대에 의해 농장이 불살라지고 아버지가 마차에 갇혀 제도로 압송되어도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기도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은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고마워요. 아버님을 도와주셔서.”

    “제가 한 것이 무어가 있겠습니까. 그저 약간의 자금조달을 해주었을 뿐인데.”

     

    사람 좋게 웃던 혁명가의 얼굴이 굳었다.

    턱 밑까지 겨냥된 비수의 차가움 때문이었다.

     

    “그래도 명심하세요. 아버님이 원치 않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신세대 이색튤립이 남용되는 것을 저는 인정하지 못해요.”

    “…혁명이 반드시 공격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안이 그런 결과를 그렸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하베스트 교수는 저희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셨죠.”

     

    혁명가는 솔직하게 본심을 토로하였다.

     

    “이 정도로 획기적인 발명품은 혁명군의 이름으로 대중에게 전해지기만 하여도 능히 병기로서 사용될 때 이상의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비 양이 우려하는 결과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믿어도 좋을까요? 지금도 불안해요. 당신이 저와 아버님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하비 양. 제가 거짓을 말한다면 언제든지 그 비수로 제 목을 찌르셔도 좋습니다. 지금까지의 저를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지금 절 죽이십시오.”

    “…!”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 하베스트 교수의 따님의 결정이라면, 혁명군의 미래가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저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겠습니다.”

     

    혁명가의 손이 하비의 두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자진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목을 향해 비수를 조금씩 들어올렸다.

     

    “목을 그으십시오. 아니면 뇌까지 단숨에 찔러 넣으십시오. 어느 쪽이라도 성과는 충분히 거둘 수 있습니다. 자아, 어서요!”

    “미쳤어요?!”

     

    하비는 온몸을 비틀어 그의 손으로부터 비수를 든 손을 빼내었다.

    목에서 핏방울이 맺힐 정도로 혁명가는 진심이었다.

     

    “믿어요. 지금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지켜봐주십시오. 혁명군의 달라질 모습을.”

     

    혁명군은 달라질 수 있다.

    혁명가가 스스로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제국은 그러지 못했다.

     

    “아아, 아아아…!”

     

    일주일 뒤.

    제국에서 발행한 제국일보에는 대역죄인 하베스트의 죄목에 대한 기고와 교수형 소식이 실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어요. 아버님은 튤립을 세상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으셨기에, 그래서 제국의 부름에 응한 거였다고요!!”

    “진정하십시오, 하비 양. 이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버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당장 알려주십시오. 저희 혁명군이 연락을 돕겠습니다.”

    “협회, 그래요. 마법협회가 있어요. 아카데미 교수진들에게도 연락을 보내야 해요! 아니면 하다못해 조사대 동기들에게라도!”

     

    하비는 손에서 피가 맺히도록 펜대를 쥐고 쉼없이 서신을 작성했다.

    부친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하베스트의 규명운동을 지원해달라는 논조의 서신이 수백 통이나 혁명군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베스트를 돕지 않았다.

     

    “아무래도 형의 집행일까지 대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한 사람이 남았어요. 그 사람이라면 설령 제국 황제의 뜻이라도 바꿀 권력이, 힘이 있는 사람이!”

    “놀랍군요. 그 정도의 권력자가 있다니. 대체 그가 누구입니까?”

    “디스트로이어. 당대 용사 니알라토텝의 동료이자 용사파티의 일원인, 세계최고의 도적이, 그가 제 소꿉친구라고요. 디스트로이어라면 도와줄 거예요!”

     

    디스트로이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소꿉친구.

    오지를 전전하는 모험담을 들으며 남 몰래 응원해왔을 뿐인 하비에게 세계를 구한 영웅과 예전 같은 인연이 이어지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것뿐이다.

    그는 하비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구명줄이었다.

     

    “죄송합니다.”

     

    혁명가는 숙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디스트로이어의 소재지는 파악했지만 그는 혁명군과의 만남을 피해 잠적했습니다.”

     

    희망의 끈이 끊어졌다.

    하베스트는 끝내 사형대에 목이 걸렸다.

     

    “하비 양… 앞으로의 생계는 걱정 마십시오. 하베스트 교수가 저희에게 보여주었던 혁명의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혁명군은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나요?”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희생 중 하나였나요?”

    “바라지 않았던 희생이었습니다.”

    “이제 혁명군은… 어떡할 거죠?”

    “교수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튤립이 답이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죠. 긴 시간이 걸려도 다시 연구를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품종을 양산해야겠죠.”

    “…마법스크롤의 대용으로요?”

     

    혁명가는 굳은 얼굴로 잿더미가 된 튤립농장을 돌아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잿더미가 그의 얼굴에 묻었다.

     

    “하비 양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버님의 꿈을 따르겠다면 다시 한번 평화를 꿈꾸며 제국의 비열한 만행을 폭로하고 대중에게 직접 튤립을 전달할 겁니다.”

    “아버님의 복수를 따르겠다면 혁명투사들이 창칼과 함께 튤립을 쥐고 싸우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국과 달리, 혁명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강요를 하지 않았다.

    언제나 양해를 구하고 인정을 부탁했다.

    노교수 하베스트가 죽어버린 지금, 적당히 팽해버리면 그만인 대역죄인의 딸에게도 그 깍듯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는 부녀를 진심으로 공경하였다.

    제국이, 마법학회가, 기프트 아카데미가, 조사대의 동료들이, 소꿉친구마저 그녀를 저버렸을 때에도.

    오직 혁명가만이.

    이 남자만이.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었던 남자만이.

     

    “아버님의 꿈은 끝났어요. 그 꿈은 제국의 손에 의해 직접 매장되고 불살라졌죠.”

    “…”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의 꿈을 이룰 차례라고 생각해요.”

    “하비 양…?”

    “병기로 쓰여도 상관없어요. 아니, 쓰고야 말겠어요. 저들이 거부한 평화의 대가가 무엇인지 제 손으로 반드시 증명해내고야 말겠어요.”

     

    하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베스트를 떠나보내던 날과 같이.

    단지 이번에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혁명가일 뿐이었다.

     

    “하비 양의 꿈은, 아버님의 복수는 제가, 저희 혁명군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마법협회는 하베스트의 죽음을 방조했고, 아카데미도 이를 막지 않았다.

    세상의 평화를 꿈꾸었던 세기의 발명가.

    노교수 하베스트의 꿈은 마계의 앞잡이, 타락한 연구자 하베스트의 역모로 더럽혀졌다.

    작은 순정을 품었을 뿐인 방년의 처자.

    연구에 몰두하는 완고한 아버지를 두었을 뿐인 하비의 순정에 종지부를 고했다.

     

    “고마워요, 혁명가.”

     

    이 모든 것이.

    단 한 번만 혁명군을 믿었다면.

    디스트로이어가 막을 수도 있었던 재앙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쌍한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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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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