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계속해서 변해간다.

       

       작은 마을이 큰 마을이 되고, 얕은 개천이 조금씩 커져가 그럴듯한 강이 되어가는 시간.

       

       작은 새싹이 우뚝 선 나무가 되어가고, 인간의 손에 베여 쓰러지는 정도의 시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세상을 둘러보며 돌아다니던 내 눈에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것이 나타났다.

       

       흐릿한 형체의 인간처럼 보이는 무언가. 물리적인 육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 곳에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

       

       상당히 흐려진 상태였지만, 조금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무언가.

       

       정령과는 다른. 무척이나 나약한, 덧없는 무언가.

       

       나는 그것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무언가의 발 밑에 죽어있는 인간의 시체가 있었으니까.

       

       그것과 똑같이 생긴 인간의 시체가.

       

       

       그것은 죽은 인간의 영혼이었다.

       

       

       「아…. 아아….」

       

       

       젊은 남성이었던 영혼은 멍하니 서서 자그마한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이런 영혼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뭐지? 왜 이런게 나타난거지?

       

       아니, 애초에 영혼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영혼이 있어야 했을텐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죽었는데….

       

       설마…. 인류의 지성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생명과 죽음,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탓인건가?

       

       그러고보면 이전에는 죽으면 그냥 죽는 것이었고, 시체를 정해진 곳에 묻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정도였는데…. 요즘의 인간들은 장례식 비슷한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건가? 그런건가?

       

       그로 인해서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확립되기 시작한건가?

       

       그렇다면 무언가 계기가 된 일이 있었을 터…. 흐음….

       

       이렇게 갑자기 변한다면,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것 중 원인이 될 사건은…. 법률?

       

       아니, 법의 집행으로 인한 사형 같은건 진작에 있었잖아. 사형으로 인해 영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진작에 나타났어야 했는데. 설마 내가 놓치고 있는 원인이 있는건가?

       

       잘 모르겠네. 음…. 명확하게 나타난 신의 존재로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전에 있었던 일식 때문인걸까?

       

       모르겠다. 짐작가는 것이 너무 많아서 명확하게 이거다! 하고 확신할 수가 없어.

       

       나는 우두커니 서있는 영혼을 향해 다가갔다.

       

       

       「아아…. 나는…. 여긴…. 도대체….」

       

       

       남성이 죽은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듯 했다.

       

       높은 곳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인지, 상처투성이에 목뼈가 꺾여 있었지만…. 시체가 크게 부패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불쌍한지고.

       

       허리춤에 벌목용 돌도끼 하나를 차고 있는 것을 보아 적당한 장작을 구하러 온 나무꾼일텐데. 음….

       

       나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나, 나는…. 나의 이름은….」

       

       

       내 말에 반응은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영혼. 흐음…. 곤란하구만.

       

       이 시체와 영혼을 이곳에 방치하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구만.

       

       나는 마력을 일으켜 남자의 망가진 시체를 일으켰고, 천천히 움직였다.

       

       우선 가까이 있는 인간의 마을로 향하도록 할까.

       

       그렇게 시체가 걸어가기 시작하자, 어째서인지 멍하니 서있던 영혼도 시체의 뒤를 따라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와 남자의 시체, 그리고 남자의 영혼은 가까이 있는 인간의 마을로 향했다.

       

       

       – – – – – – – – – – – – – – – – – – – –

       

       

       남자의 가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남자의 시체를 보고 기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까.

       

       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보니, 마을의 인구는 대략 50명 정도. 이런 작은 마을에서 마을의 일원을 알아보지 못하면 말이 되지 않겠지만.

       

       

       “맙소사! 크루트! 이게 무슨 꼴이야!”

       

       “당장 가서 오넷을 불러와! 크루트가 만신창이로 왔어! 약초 있는건 죄다 가져와!”

       

       

       모습을 감추고 있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인간들은 크루트라 불린 인간을 보고 상처투성이인 상황이라 생각하고 돌보려고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남자의 시체를 움직이던 마력을 거두었고, 시체는 맥없이 쓰러졌다.

       

       

       “젠장! 크루트!”

       

       “큰 비가 온 다음날에는 산에 가지 말랬는데! 억지로 가더니만!!”

       

       

       사람들은 남자의 시체를 부축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가족…. 여동생의 울음소리인 모양이었다.

       

       

       「여긴…. 우리 마을인데….」

       

       

       남자의 영혼은 우두커니 마을을 지켜보더니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소녀가 자신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오…넷…. 내…. 여동생….」

       

       

       자신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렸는데도, 가족에 대한 것은 기억하고 있었는가.

       

       남자의 영혼은 그제서야 자신의 죽음을 알았는지,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나는…. 죽은건가….」

       

       “그래. 너는 죽었다.”

       

       「당신은…?」

       

       

       남자의 영혼은 나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동자. 죽음을 마주한 남자의 눈동자.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무엇일까.

       

       후회? 비관? 슬픔? 간절함? 잘 모르겠다. 죽은 이의 감정이 무엇일까?

       

       소중한 가족을 남기고 죽은 이의 감정이 무엇일까?

       

       

       「당신은…. 신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눈에 보인 당신이 무척이나 거대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영혼이기에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접한 상태이기에 볼 수 있는 것일까?

       

       남자의 영혼은 나의 힘을 약간이나마 볼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전부는 볼 수 없었으리라. 이런 나약한 영혼이 나를 온전히 본다면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을테니.

       

       적당히 힘을 숨겨서 억제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줄이고 있는 것을 본 것이 아닐까?

       

       

       「당신이 신이라면…. 저를 되살려줄 수 있습니까?」

       

       “글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거짓말이다. 시간을 되감으면 살려낼 수 있다. 시간을 되감아 죽기 이전에 구해주면 될 일이지.

       

       하지만 그게 옳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 외에 시체를 수복해서 영혼을 넣는다거나 하는건…. 생각해 본 적이 없군.

       

       애초에 영혼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말야.

       

       음…. 해보면 어떻게 되려나? 조금 궁금해지긴 하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야 모르지.”

       

       

       죽은 이의 영혼을 보는건 처음이니까. 그에 대한 대처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걸.

       

       저승사자나 사신 같은게 존재하지도 않고. 이런 상황에서 죽은 영혼을 어떻게 할지도 정하지 않았는걸.

       

       아, 설마 내가 정하고 만들어야 하는건가? 사후세계를? 진짜로?

       

       귀찮게스리….

       

       

       「아무것도 모르는겁니까…?」

       

       “그러는 인간들이야 말로…. 그동안 죽음을 한두번 접한게 아닐텐데 왜 이제와서 죽은 자의 영혼이 나타난건지 모르겠구나.”

       

       

       천국 같은걸 따로 만들어야 하는걸까? 아니면 윤회전생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해야할까? 어느쪽을 선택해야할까? 모르겠네. 음.

       

       어느쪽이든…. 내가 또 빡시게 만들어야 하는건 확실하구만. 쯧.

       

       

       「이렇게…. 죽고 싶지 않은데…. 여동생을 두고 죽을 수 없는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흐음….”

       

       

       남자의 영혼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영혼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이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인지.

       

       반투명한 영혼이 조금씩 검게 물들고 있었다.

       

       

       “이건 또 신기한 현상이구만.”

       

       「되살려…. 나를…. 여동생의 곁으로…!」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지.”

       

       

       검게 물들고 덩치가 커져서 괴물처럼 변해가는 영혼은 나에게 달려들었고.

       

       

       “에잇.”

       

       「크아아악!」

       

       

       가벼운 딱밤에 상반신이 날아가버렸다.

       

       

       “흐음…. 이건 악령으로 변한 것인가? 곤란하구만 그래.”

       

       

       죽은 인간의 영혼을 방치하면 이렇게 변하는건가? 예전에 본 사신이 나오는 소년만화 같은 느낌이구만 그래. 거기선 악령의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크윽, 크아악….」

       

       

       상반신이 날아갔음에도 계속 꿈틀거리는 악령. 일부러 아주 약하게 건드렸는데도 아직도 형체를 유지하는건 제법이로고.

       

       

       “이미 죽은 것을 되살릴 순 없지만, 네가 네 동생을 지키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

       

       「커헉…. 큭…. 그, 그게 무슨….」

       

       “간단한 이야기지. 영혼인 너를 네 동생의 수호령으로 만들면 될 일이니.”

       

       

       보아하니 영혼이라도 어느정도의 힘은 있는 것 같고. 적당히 수호령의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듯 하니까.

       

       

       “그게 싫다면 너를 여기서 소멸시키는 수 밖에 없는데. 어쩌겠나?”

       

       

       상체가 천천히 복구된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뭐, 그런 느낌으로. 처음 마주하게 된 영혼을 제 동생의 수호령으로 붙여준 후, 남자의 시체를 땅에 묻는 것까지 본 나는 또다시 세상을 돌아다녔다.

       

       세상의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한 영혼. 그냥 동물 같은 것이 죽었을때에는 나타나지 않고, 인간이나 다른 지성체가 죽었을때에 생겨난 것으로 보아…. 지성체의 사고능력이 발달한 덕분에 나타나게 된 모양이었다.

       

       신의 존재가 죽음과 사후에 대한 생각을 촉발시킨 것일까? 음…. 그렇다면 불가피한 일이었던 모양인데.

       

       죽음을 맞이하는 지성체의 사념과 마력이 작용하여 나타난다고 할까? 아무튼 대충 그런 느낌으로.

       

       그런 영혼들을 내버려뒀다가는…. 세상이 악령 같은 걸로 넘치게 될 것 같으니까. 영혼을 거두어서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할테니까.

       

       좋아. 만들까! 사후세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없다.)

    (땅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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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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