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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금발 녹안의 엘프 검사, 실비아.

       

       실비아는 자신의 인사에 입을 떡 벌린 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레온과 아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 표정 봐. 둘 다 너무 귀여운데.’

       

       그나마 레온은 최대한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보였지만, 요 쪼그만 은빛 해츨링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실비아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동공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아르가 말랑한 앞발로 레온의 팔을 꼬옥 붙잡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너무 귀여워…. 드래곤의 해츨링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야?’

       

       당장이라도 헤벌쭉 웃으며 달려가 저 조막만 한 앞발을 붙잡고 행복하게 젤리를 만지작거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큼큼. 아냐, 자제해야지. 벌써부터 긍지 높은 엘프 기사의 품위를 망가뜨릴 순 없어. 어떻게 찾은 실버 드래곤의 해츨링인데,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

       

       실비아는 최대한 표정이 풀어지는 걸 막으며, 침착하게 레온과 아르를 향해 정식으로 인사했다. 

       

       “실비아예요. 보시다시피 검사구요.”

       “…레온입니다. 이렇게 ‘우연히’ 또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인연이란 게 있긴 있나 봐요.”

       “…….”

       

       레온이 살짝 경계하듯 말했지만, 실비아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가볍게 받아 흘렸다.

       

       “호오, 두 분이 구면이신가 보군요?”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본 마이어 씨가 옆에서 신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제 저녁에 온천 로비에서 잠깐 만났었거든요. 귀여운 사역마를 데리고 있는 테이머 분이라 금방 알아봤네요. 여기서 캐머해릴까지 길이 꽤 험한 걸로 아는데, 이 귀여운 아이를 보면서 가면 그 길도 짧게 느껴질 것 같아요.”

       

       그 말에 마이어 씨도 단박에 표정이 풀어지며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그렘 마을에서 히파르까지 오는 데에도 아르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요. 허허허. 그럼 이렇게 다 모였으니 바로 출발할까요?”

       “좋아요.”

       “…좋습니다.”

       

       레온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아르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마차에 올랐다. 

       

       “실비아 님도 앞쪽에 타시지요. 어차피 자리는 넉넉합니다.”

       “감사해요. 그럼.”

       

       마이어 씨를 포함해 넷이 모두 마차에 착석하자, 마차는 곧 히파르의 시끌벅적한 광장을 떠나 캐머해릴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

       “…….”

       

       덜컹.

       

       “…왜 그렇게 계속 쳐다보시는 거죠?”

       

       레온은 실비아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자신을 계속 바라보자 아르를 조금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아무래도 여전히 실비아를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좋아.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 얼굴만 보고 좋다고 헤벌레하지 않는 남자가 실버 드래곤의 계약자라서 다행이야.’

       

       외모를 비교적 평범하게 보이게 만들어 주고 엘프의 상징과도 같은 뾰족한 귀도 인간의 귀처럼 보이게 해 주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실비아가 인간들 사이에서 지내며 본 남자 용병들은 틈만 나면 실비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딱 봐도 자신의 사역마를 1순위로 생각하는 게 느껴져.’

       

       실비아는 대륙 최후의 은룡銀龍이었던 카르사유가 간신히 남긴 단 한 개의 알을 찾아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실비아, 절대 그놈들이 먼저 알을 찾아서는 안 된다. 대륙 전체가 위험해질 거야.

       -물론 카르사유 님도 절대 아무나 찾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셨을 거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알을 발견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두셨겠지.

       -가장 위험한 건 놈들이 그 자격을 가진 자를 찾아내거나, 그가 실버 드래곤의 해츨링을 데리고 레어 밖으로 나왔을 때 발견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놈들의 마수魔手는 이미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형태로 인간들 사이에 뻗어 있을 거야. 조심해야 해. 반드시 우리가 먼저 발견해 그를 지켜야 한다.

       

       부족장이자 그녀의 할아버지인 칼라얀의 당부가 실비아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울렸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본래 대륙의 균형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종족.

       

       비록 개중에서도 몇몇 성격이 더러운 종은 기분에 따라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과거 드래곤들은 대륙을 멸망시킬 뻔했던 마신 라데스 및 마신의 씨앗인 마왕들과 혈투를 벌여 라데스를 봉인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힘을 소모하고 반강제적으로 동면에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마신 라데스와 정면으로 맞설 정도로 강한 드래곤은 당시에 카르사유 님이 유일했다고 했지.’

       

       다른 드래곤들이 마왕들을 제압하는 동안 유일하게 마신과 정면으로 맞선 카르사유는 결국 동면에 들어갈 힘조차 남기지 못하고 모든 전투가 끝난 후 하나의 알만을 겨우 남긴 채 소멸했다.

       

       그리고 그 알은 카르사유가 직접 만든 레어 안에서,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홀로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것이었다. 

       

       ‘그 전투로부터 정확히 천 년이 지난 지금. 대륙에 여러 가지 운명적인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리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

       

       그래서 대륙의 균형을 수호하는 자, 드래곤의 조력자로서 명맥을 이어 온 엘프 부족 ‘라크 룬’의 부족장인 칼라얀은 실비아에게 카르사유의 알, 혹은 그것을 깨울 자격을 갖춘 자가 곧 나타나리라고 여겨, 그를 찾도록 한 것이었다. 

       

       ‘지금쯤 마신의 씨앗 중 하나인 마왕 하무트도 몰래 숨어 힘을 회복하고 있는 중일 테니….’

       

       실비아는 카르사유의 후손을 찾아 그가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훗날 대륙을 지킬 힘을 기를 수 있게 조력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말이 쉽지, 이 넓은 대륙에서 깨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를 알,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를 ‘자격을 갖춘 자’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깨진 바늘 조각을 찾아 맞추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찾아다녔지.’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한 채 대륙을 떠돌던 실비아는 마침내 반쯤 자포자기에 이르러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히파르 온천에 들렀고.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카르사유의 후손을 목격한 것이었다. 

       

       ‘처음엔 진짜 내 눈을 의심했었지.’

       

       뜨끈한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옆에서 어떤 여자 무리가 ‘와아! 너무 귀여워!’라며 호들갑을 떨기에 뒤에서 슬쩍 본 것이 은색 비늘을 가진 말랑한 해츨링이었을 때, 하마터면 실비아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혹시 몰라서 둘이 사람이 없는 곳에 갈 때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접근한 실비아는, 해츨링의 손을 직접 잡아 아르의 몸에 실버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것을 확인했고, 이어서 손등에 새겨진 영혼 계약의 문양까지 확인을 마치고서야 눈앞에 있는 이들이 자신이 찾던 이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대륙 서부에서 휴양을 즐기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마왕의 세력은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리겠지.’

       

       마왕 세력이 인간 측에 심어 둔 끄나풀들은 아마 대륙 동쪽에서 그 힘을 키우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일단 지금 당장은 안심이겠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하는 것은 당연히 금물.

       

       이들이 무사히 성장해 힘을 갖추도록 옆에서 지켜 주고, 힘을 갖춘 이후에는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실비아는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카르사유 님의 귀여우신 후손을 계속 옆에서 지켜보며 힐링도 하고 말이야.’

       

       솔직히 그간 부족의 숙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막에서 바늘 조각을 찾아 다니느라 실비아는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극적으로 실버 드래곤의 해츨링을 찾아 낸 데다가, 그 해츨링이 이렇게 귀엽기까지 하니….’

       

       벌써부터 실비아는 귀여운 아르를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자신의 정신이 치유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요? 제 말 듣고 계세요?”

       “네? 아아. 뭐라고 하셨죠?”

       

       상념에 젖어 있던 실비아는 레온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셔서요.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 싶어서….”

       

       솔직한 질문임과 동시에 실비아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 거냐는 질문을 조금은 내포한, 일종의 떠 보는 질문.

       

       레온은 실비아를 마주 보며 조금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실비아는 다시 침착한 미소를 되찾고, 레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그건…. 레온 님이 좀 제 스타일이셔서요.”

       “…네에에?!”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던 듯, 레온은 두 손으로 아르를 잡아 들어 자신의 품 안으로 데려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아르의 배를 꾹 눌렀다. 

       

       “쀽!”

       

       아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자 레온은 허겁지겁 아르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으앗! 미안, 아르야. 아팠어?”

       “쀼우, 쀼!”

       “다행이다…. 미안해, 좀 놀라 가지고.”

       “쀼우.”

       

       아르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레온이 엉덩이를 토닥여 주자 뀨 소리를 내며 환하게 웃었다. 

       

       아르를 달래 놓은 레온은 다시 실비아를 바라보며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 전에도 그렇고 그쪽이 농담 잘 하시는 건 알겠는데, 그런 농담은 자제해 주시면 안 될까요?”

       “후후, 농담 아닌데요.”

       “…….”

       

       레온은 얼굴이 벌게진 채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심신을 달래려는 듯, 아르의 앞발 젤리를 만지작거렸다. 

       

       실비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진짜 농담 아닌데.’

       

       아르가 가장 귀여운 건 당연하지만, 실비아 눈엔 레온도 꽤나 귀여워 보였다. 

       

       ‘이렇게 부족의 숙명을 짊어지고 지켜 준다는 명목하에 같이 다니다가 얼렁뚱땅 결혼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단 말이지.’

       

       그럼 아르도 계속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은가. 

       

       ‘단명종인 인간 출신이라지만, 어차피 실버 드래곤과 영혼 계약을 한 이상 수명은 걱정 안 해도 될 거고.’

       

       실비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물론 그래도 일단은 내 임무에 집중해야겠지.’

       

       레온과 아르를 지킨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젤리를 만지는 레온과 손을 꼼지락거리며 활짝 웃는 아르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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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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