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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도게자 백작가?”

         

       셀다스가 “과연.”이라고 중얼거리며 턱을 짚었다.

         

       “그쪽이라면 인력을 이용하는 데 문제없을 것 같군.”

       “그럼 의뢰는 도게자 백작과 만나는 방법으로. 완료까지 얼마나 걸리지?”

       “하루면 충분해. 도게자 백작이 오면 전서구를 보내겠다.”

         

       유능하군. 하루면 충분하다니. 그 정도면 그냥 이동 시간만 포함 시킨 게 아닌가. 이래서 제국 최고의 암흑 길드군.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종이에 적어 셀다스에게 건넸다.

         

       “그럼 내일 찾아오지.”

         

       나와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술집을 나왔다. 프란체가 말했다.

         

       “다행히 잘 진행된 거 같네.”

       “그러게요. 근데 말입니다, 공녀님.”

         

       프란체가 “응?”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협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

         

         

       협상.

         

       사업과 경영을 하는 자라면 무조건 터득해야 하는 능력.

         

       굳이 저 두 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협상은 어디서나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옷을 살 때라거나, 시장에서 반찬을 살 때라거나. 등등.

         

       현재의 프란체에겐, 협상 능력이 전혀 없다.

         

       “공녀님, 오늘부터는 수학 공부를 잠시 멈추고 협상을 공부하겠습니다.”

       “협상? 내가 굳이 배울 필요가 있는 거니?”

         

       당연하지. 너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회장이잖아. 원래 회사에서 부서로 분류되어 있긴 한데, 내가 전부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프란체의 능력은 계속해서 키워둬야 한다. 기껏 사업을 키우고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능력이 없으면 사라질 텐데.

         

       “공녀님.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우두머리는 공녀님입니다. 제가 모든 걸 다 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까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대비하겠습니다.”

         

       그렇구나, 하면서 프란체가 고개를 주억였다.

         

       “일단 협상을 하는 법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경청하는 프란체를 앞에 둔 채 나는 먼저 질문했다.

         

       “자, 공녀님. 협상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갈등이나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

       “맞습니다. 그게 가장 원초적인 목적이에요.”

         

       원초적인 목적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나는 내가 아는 협상에 대한 철칙을 모두 설명했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태세를 취해야 하는지, 기본적으로 알고 가야 할 게 무엇인지까지.

         

       프란체가 과연, 하면서 끄덕였다.

         

       “요컨대 이런 느낌이지? 객관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두고, 내 위치에 얽매이지 말고 실익을 탐색한다.”

         

       오, 그래. 그거야.

         

       “맞습니다.”

         

       프란체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완벽한 협상은 없으니 어느 정도 타협은 해야 하고, 이슈는 강하게 대응하되 인간관계는 부드럽게 대처하라는 거지?”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절대적으로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적에 대해서 간절해보이면 안 된다.”

         

       짝짝, 나는 손뼉을 마주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 정답입니다. 그리고 제가 셀다스와 처음 만났을 때 공녀님에게 알려드렸던 답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거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돈을 좋아하는 정보상이면 그에 맞게 굴어야지. 공짜로 정보를 사려고 한 건가? 이거잖아?”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요. 뭔지 아시겠습니까?”

         

       프란체가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입을 열었다.

         

       “일단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보여주고,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한 거지?”

         

       이거 완전 장원급제야. 이 정도로 이해가 빠를 줄이야. 뭐, 나는 교수에게 들은 걸 활용하고 게임 지식을 바탕으로 사용한 거긴 한데. 정보에 대한 건 내가 알려줄 테니 상관없겠지.

         

       셀다스를 포섭한 이유도 이거다. 내가 사라졌을 때 셀다스의 정보망이 내 역할을 대체해 주겠지. 이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맞습니다. 셀다스에게만 통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나중에도 쓸 일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타입의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위치에 얽매이지 말고 실익을 추구하라고 한 걸 기억하시죠?”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깁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내가 얘기해준 건 어디까지나 현대를 기준으로 한 지식. 귀족 작위가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까지 이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말하자면 위치에 얽매이지 않되, 공녀라는 직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상대방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 있을 수 있으니까요.”

         

       프란체는 계속해서 내 말을 경청했다.

         

       “아무튼. 이렇게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갔다면, 용건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네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은 있다.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과 직결되는 이야기다. 절대 간절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것. 만약에 이걸 보여줬다? 협상 구도를 절대 바꿀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공녀라는 직함을 최대한 이용해서 상대방의 우위를 잡고, 협상에 들어가면 여러 대체재를 말한 다음에, 굳이 상대를 선택한 이유를 말해주는 겁니다.”

         

       프란체의 눈이 번뜩였다.

         

       “선택한 이유에서 상대방의 명예를 존중하는 게 되겠네. 이건 인간관계에 포함된 이야기지?”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의외로 쉽구나.”

         

       아직 이론적인 부분이라 쉽다고 해도,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만 해도 대학생 시절, ‘저 교수가 대체 뭐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 나중 가선 조별과제를 통해 이해했지만.

         

       “실전은 바로 내일입니다. 도게자 백작과 협상하는 건 공녀님이 하시는 겁니다.”

       “사업에 대한 중요한 협상인데 내가 해도 괜찮을까?”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본래 실수에서 배우는 점이 가장 크니까요.”

         

       앞으로도 치러야 할 실전은 많이 남았으니 뭐. 실수해도 괜찮다. 원래 사람은 연속되는 실수로 배우는 거니까.

         

       여차하면 내가 개입할 거다. 도게자 백작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해야 하고, 사업 파트너로 무조건 데려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게 잘 풀릴 겁니다. 실제로 제가 온 직후, 다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프란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 항상 너를 믿고 움직여서 나쁠 건 없었지. 한 번 해볼게.”

         

       그래. 이제 점점 능력을 키워가기 시작하면서 독립을 준비해야지. 내가 진에게 먹히기 전에, 김공략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때까지.

         

       “잘 생각하셨어요. 도게자 백작과의 거래에 관한 준비는 이쯤으로 하고요. 나중에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을 혼자 이끌어가셔야 하니 계속 공부합시다.”

         

       순간 프란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시린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갔으며 이내 전신으로 퍼졌다.

         

       “혼자 이끌어야 한다고? 너는 없는 거야?”

       “네?”

       “그러고 보니 너에게 들은 적이 없어,”

       “뭘 말입니까?”

       “평생 내 곁에 있겠다는 걸.”

         

       뭐지. 눈치챘나?

         

       “계속 대답을 회피했지. 언젠가 내게서 떠날 생각이니?”

       “어…….”

         

       눈치가 왜 이리 빨라? 여기선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회피를 하긴 해야 하는데. 무작정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저 기만 밖에 안 되고, 결국엔 믿음을 배신하게 되는 거니까…….

         

       내가 정한 답은 이거다.

         

       “저는 노예 신분인지라 쉽게 떠날 수 없지 않습니까.”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소 애매한 대답이지만, 지금으로서 최고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음……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이런. 눈치챘군. 최고의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말했잖아? 내 편이라고.”

       “그렇죠…….”

       “그때도 말했잖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프란체는 내게 고개를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눈빛에 생기가 사라졌다.

         

       “약속이 지켜지면 떠나는 거야? 목적이 끝나면 사라지는 거야?”

         

       뭐지. 이쯤 되면 좀 무서운데. 괜히 심장박동이 날뛴다. 등골이 시려 오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러면 절대 노예 각인을 풀어주면 안 되겠네. 조만간 각인을 더 강화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어, 그건 좀 곤란한데. 뭐, 그래도 프란체가 노예 각인을 풀어주지 않는다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방법을 마련해뒀으니 상관없다.

         

       “대답이 없네. 사실이었나 봐?”

       “정 불안하시면 노예 각인을 강화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정말? 이 상태에서 더 강화하면 노예 각인은 절대 풀 수 없을 텐데?”

         

       방법은 있다. 다만 조건이 심하게 까다로울 뿐. 그래도 진의 몸과 내 지식이라면 문제없다.

         

       “그래, 노예 각인이 있는 이상 절대 내 곁에서 떠날 수 없을 테지. 너는 내 처음의 아군이자 마지막 아군이 될 테니까.”

         

       마지막 아군?

         

       “마지막 아군이라니요?”

       “있잖아.”

         

       프란체는 눈을 얕게 뜨고 말을 이었다.

         

       “나는 완벽히 내 것이 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믿지 않아. 언제 배신할지 어떻게 아니?”

       “…그래서 노예를 구매하신 겁니까?”

         

       프란체의 왼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맞아. 근데 그냥 노예상을 가면 어쭙잖은 노예만 있을 거 아니니? 그래서 제대로 된 노예를 구매하기 위해 공작령의 정보상으로 향했지.”

         

       검지로 나를 가리키는 프란체.

         

       “거기서 진 바렌베르크라는 인물의 정보를 얻었지. 전쟁에서 패배한 망국의 왕자가 곧 노예 매물로 올라올 거라고.”

         

       그렇게 해서 진 바렌베르크가 노예가 된 건가.

         

       생각해 보니 진 바렌베르크와 이어지는 히든 엔딩을 보는 방법은 소미레로 맨 처음부터 암흑 경매장에 가는 거였다. 거기서 진 바렌베르크를 구매하면 히든 루트가 열리는 방식이었지.

         

       프란체 데카르트의 삶은 처음부터 히든 엔딩이었던 거다.

         

       “난 처음부터 내 유일한 아군이 될 사람을 정해두고, 그 사람을 데려온 거란다. 그런데 네가 배신하면… 안 되겠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배신이라. 나는 이 이야기에서 고통 받는 너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고, 마지막에는 내가 살기 위해 움직일 예정이었다. 근데 이게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프란체, 너와 계속 있으면 언젠가 나는 사라진다. 진 바렌베르크의 인격을 고스란히 전부 받아들이면 그게 진정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미지의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라고 했나.

         

       나는 그 미지가 두렵다. 진의 인격을 다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사라지는지, 아니면 김공략이라는 인물은 온전한 채 인격만 변화하는 건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정보다.

         

       그러니 나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생각한 의무를 다하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공녀님.”

       “왜?”

         

       내 부름에, 프란체가 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실 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니?”

       “정말 숨기려고 했습니다만.”

       “들어줄 테니 말해보렴.”

         

       이걸 정말 말해도 되나. 많은 고민이 들었다. 이 몸은 사라지지 않지만,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니까.

         

       내가 복잡한 얼굴로 머뭇거리자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니?”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내가 사라졌을 때 프란체가 어쩔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런 행위 자체가 그녀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은 양심의 가책.

         

       하지만 선택을 돌릴 순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이해가 가게끔 말할 뿐이다.

         

       “저는 시한부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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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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