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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그리고 나는 내가 한 행동을 격하게 후회했다.

        

       부장은 내 생각보다도 더 축구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알려주겠다면서 나에게 ‘공과 친해질’ 시간을 가지게 해 준 것이다.

        

       안타깝게도 예사라의 운동능력은 고작 하루 열심히 뛴다고 공과 친해질 능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운동과는 담쌓고 지내던 내 전생이 시너지를 일으킨 것일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낸 건 있다. 예사라는 운동 관련된 직업은 되도록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거.

        

       나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내가 말 했잖냐. 그 사람은 축구에 꽤 진심이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담 쪽으로 가며 다리를 후들거리는 나를 보고, 남다운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말했다.

        

       “…….”

        

       어그로를 끌었던 것을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마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냥 속 편하게 공 몇 번 차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의 진심을 너무 얕본 모양이다.

        

       “뭐,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절대로 말을 걸지 않겠다고 다짐한 인간들을 하나씩 끌어들이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 멀었다.

        

       아직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신소희까지 포함해야 다섯이다. 물론 신소희는 학교 바깥의 사람이라 숫자에 포함해도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

        

       내 대답을 들은 남다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혹시, 네가 양쪽에 끼고 있는 그 여자애들의 태도가 너의 목적은 아니겠지?”

        

       “…….”

        

       확실히, 이렇게 비틀거리면서도 내가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양쪽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는 하늘이와 이수아 덕분이었다.

        

       그냥 부축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딱 달라붙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것도 과정 중 하나이기는 하죠.”

        

       하늘이 대답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데 이만한 것이 없긴 하니까요.”

        

       이번에는 이수아의 대답이었다.

        

       “…….”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남다운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뭐…… 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내가 참견할 건 아니겠다만…… 너 약혼자도 있지 않았냐?”

        

       “……아.”

        

       그랬지, 참.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무 조용하긴 했다. 원래부터 딱히 애정은 없는 약혼 관계였지만 그래도 그런 기사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놈인데. 원작에서도 자기 거 빼앗기는 건 더럽게 싫어해서 유하늘에게 틱틱대면서도 유하늘이 다른 남자랑 있는 거 보면 손목 끌고 다른 곳으로 가던 놈인데.

        

       물론 그때는 나름대로 애정이 있는 츤데레 상태이긴 했지만…… 예사라는 그거랑은 별개로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까놓고 말하면 재산 때문에 약혼한거니까. 예사라가 온전히 자기 것이어야 그 재산도 온전히 자기 것이 되는데, 대놓고 열애설이 터지고 수업시간 내내 서로 몸을 붙이고 비비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이라도 불안해지지 않을까?

        

       뭐, 그대로 포기해준다면야 나는 고맙지만.

        

       “본인이 신경 쓰이면 알아서 와서 물어보겠죠.”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넘겨버렸다.

        

       그래, 걔가 알아서 하겠지. 이전까지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예사라라면 모르겠지만, 그 성격이 완벽히 반전되었다는 것을 직접 본 윤다호였다. 다짜고짜 와서 지랄한다고 내가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아니, 너무 대충대충 넘기는 것 같은데…… 하긴, 내가 참견해서 뭐 하겠냐. 니 일은 니가 제일 잘 알겠지.”

        

       남다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언제나 우리가 담을 넘던……이라고 하기에는 고작 며칠밖에 되진 않았지만, 아무튼 담을 넘던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냥 정문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봤기에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정문으로 나가면 납치되는데요.”

        

       “보통 자기 집 차량에 타는 걸 납치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냐?”

        

       남다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담을 넘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래도 평일에는 매일 달리기를 해온 나다. 오늘은 조금 더 심하게 몸을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고작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넘어—

        

       “그럼 놓는다.”

        

       남다운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손을 놓았다.

        

       나는 그대로 담에서 떨어져서,

        

       “으엫.”

        

       그대로 땅에 발이 닿자마자 앞으로 푹 넘어졌다.

        

       —넘어지는구나.

        

       좋아, 앞으로는 그냥 달리기로 만족해야겠다. 그냥 말 몇 마디 섞은 걸로 만족하든가 해야지. 나는 아무래도 축구공과의 상성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그래도 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는 것만은 막기 위해 앞으로 손을 쭉 뻗고 버둥거리는데,

        

       말캉,

        

       하고, 뭔가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따뜻해서 기분 좋은 물체에 얼굴이 닿았다.

        

       “…….”

        

       “…….”

        

       그리고 잠깐 침묵.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신소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아, 미안!”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다가, 힘이 풀린 다리가 나를 지탱하지 못해 그대로 뒤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뒤로 넘어가려는 내 어깨를 신소희가 양손으로 잡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다리에 힘이 풀리기는 했어도 누가 지탱해주면 서 있을 힘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하지는 않았다.

        

       “너 뭐하냐.”

        

       신소희가 물었다.

        

       “그, 그러게.”

        

       그렇게 말하며 신소희를 곁눈질했다. 아마도 내가 얼굴을 그대로 묻었을 그곳을 슬쩍 보니, 신소희는 오늘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셔츠 단추를 세 개 정도 풀어두었다. 그 위에 카디건을 입어 단추를 채워놓았기에 가슴이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는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 큰 가슴이 모여서 확실하게 골짜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저 맨가슴 위에 그대로 얼굴을 갖다 박은 것이다.

        

       “사라야!”

        

       그때, 다급하게 외치며 하늘이가 담에서 뛰어내렸다. 아마 내가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그대로 담의 처마 아래로 넘어져 버린 것이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 양어깨를 잡은 신소희와 나를 보고 입을 살짝 벌렸다.

        

       신소희는 그런 하늘이에게 어깨를 살짝 움츠려 보였다. ‘뭐 이런 일도 있지’ 하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내 치마 아래를 봤을 때보다는 훨씬 침착하네. 혹시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하늘이는 나와 신소희를 번갈아 보더니, 얼른 내 옆으로 와서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었다.

        

       “……응?”

        

       ……그리고 바짝 달라붙었다. 그걸 정면에서 보고 있던 신소희가 순간 당황할 정도로.

        

       “사라야, 무슨 일—”

        

       뒤이어서 담 아래로 뛰어내린 이수아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바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얼른 내 쪽으로 오더니, 내 남아있던 팔을 끌어안았다.

        

       “…….”

        

       신소희는 잠깐 침묵하더니, 내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어, 그러니까…….”

        

       “아니야.”

        

       신소희가 뭐라고 묻기 전에 나는 얼른 부정했다.

        

       “아니라고?”

        

       신소희가 되물었다.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던 신소희는, 이내 미간을 살짝 모으면서 되물었다.

        

       “아니야.”

        

       내가 확고하게 대답하자, 신소희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내 옆에 서 있는 하늘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하늘이가 껴안고 있는 내 팔을 본다. 부축을 위한 것이라기에는 양손으로 내 팔을 껴안고 있는 하늘이의 몸은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이수아도. 자기 가슴 모양이 살짝 흐트러질 정도로 내 팔에 꼭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아니라고?”

        

       그 모습까지 천천히 둘러본 신소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

        

       “……그러니까, 요약해 보자면.”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 어느 골목 안쪽에 있는 조용한 카페.

        

       아무래도 학교 근처의 카페에 갔다가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선택한 그 카페는 그래도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아무래도 오래되어 조금 싸게 나온 건물을 빌려 인테리어를 말끔하게 꾸민 듯 했다. 물론 싸다고 해도 서울 한복판 가격치고는 쌀 거라는 의미였지만.

        

       카페의 구석에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신소희에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기사로 난 나와 하늘이의 사진도 보여주었고.

        

       신소희는 여전히 그 기사의 사진이 떠 있는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주말에 단둘이 만나서 놀던 사진을 어쩌다 찍혀 기사가 되었고.”

        

       “맞아.”

        

       “그런데 아무래도 그 기사는 너희들이 사귀고 있다는 뉘앙스였고.”

        

       “응.”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람들이 사귀고 있다고 오해하는 걸 이용해서 학교 내의 관심을 좀 끌어보겠다고?”

        

       “바로 그 말이야.”

        

       내 말에, 신소희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간이 모여서 그사이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팔짱을 낀 팔 위로 중량감 있는 가슴이 올라와서, 단추가 열린 부분의 그 계곡이 더 깊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 부분을 보고만 나는, 슬쩍 눈을 돌렸다. 전에는 눈에 보이긴 해도 이렇게 의식을 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거기에 내 얼굴을 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서 자꾸 그 감촉이 기억이 난 탓이다.

        

       내가 여자에게 이렇게 내성이 없던 인간이었나?

        

       ……없던 인간 맞지. 솔직히 처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신줄을 놨다가는 회장에게 어떻게 처리당할지 모르니까 일단은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있을 뿐이지.

        

       “왜?”

        

       한참을 생각하던 신소희가 그렇게 되물었다.

        

       “엉?”

        

       “아니, 그러니까. 교내에서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둘이 사귀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니야. 쟤도 끼어들어서 삼각관계인지 일처이처제를 재현하고 있는 건지, 뭐 아무튼.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해서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건지, 나는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으니까.”

        

       “……아.”

        

       그제야, 나는 신소희가 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바깥에 마음대로 못 돌아다닌다거나, 가정사 쪽으로 나름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대충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이 와 이수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두 사람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소희는 나의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 뭐, 말하기 싫으면 관두고. 너무 개인적이라서 그런 거라면, 뭐. 내가 억지로 들을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라고, 대놓고 토라진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줄게. 어차피 학교 안에서는 다 알고 있는 일이니까.”

        

       “아, 그래?”

        

       의자 뒤로 몸을 거의 누이면서 딴청을 피우던 신소희는, 나의 말을 듣자마자 얼른 내 쪽으로 몸을 살짝 숙였다.

        

       엄청나게 솔직하네.

        

       뭐, 솔직해서 나쁠 것은 없다. 거짓말만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신소희를 향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대략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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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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