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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내 말할 힘도 남겨주지 않았느냐.”

       

       이 얼마나 배려심 넘치는 처사인가.

       

       보통 수련을 하다 쉴 때는 거친 숨소리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

       

       불평을 할 힘조차 남지 않아서. 말할 힘조차 아까워서. 드러누워 체력을 온존하는 것조차 급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야 한다.

       

       그에 반해 지금 엔리는 어떤가. 투덜거릴 여력이 있지 않은가.

       

       이것이야 말로 내가 엔리를 신경 썼다는 증거였다. 이런 나의 배려를 몰라주다니 서운하구나.

       

       “당신은 악마야!”

       “힘이 생긴 듯 하니 다시 수련을 시작할까?”

       “…”

       

       다시 엔리가 흙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땡땡이를 바라는 아이같은 모습에 실소가 샜다.

       

       나는 엔리의 곁으로 슬며시 다가가 그녀의 허리 위에 앉았다.

       

       “흐억! 무겁잖아요!”

       “그럴 리가. 이 몸에 어디 군살이 있어 보이느냐.”

       “…있어 보이긴 하는데요.”

       

       그럴 리가.

       

       아피스 속 시절의 나는 한창 무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군살이 붙을래야 붙을 수가 없을 터인데.

       

       “어쨌든 조금만 쉬게 해줘요. 진짜 죽을 것 같아요.”

       “그러게 10초만 버티라는 데 왜 버티지를 못하느냐.”

       “데케이도 3초 컷이 나는데 제가 어떻게 10초를 버텨요.”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

       

       그 때는 내 진심을 내어 그를 박살낸 것이고 지금은 엔리 그대가 잘만 한다면 10초를 버틸 수 있도록 조정해주고 있지 않으냐.

       

       내 확신한다만 엔리 그대가 맹점을 눈치채기만 한다면 10초를 버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야.

       

       “거짓말 하지 마요!”

       “내 진짜 진심을 보여주랴?”

       

       한 번 당하고 나면 지금 내가 얼마나 배려를 해주고 있는지를 알게 되겠지.

       

       과연 그대가 1초라도 버틸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초침이 움직이는 것보다 그대가 날아가는 게 빠를 듯 싶은데.

       

       그리 말을 하자 엔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본인도 그리 생각하는 걸테지.

       

       “힘내거라.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으로 버틴 것이 7초였으니 이제 3초만 더 늘리면 되잖느냐.”

       “그 7초를 위해서 몇 번을 구른지 아세요?!”

       “모른다. 그대는 자신이 던진 돌멩이가 몇 번이나 구르는 지를 세느냐?”

       “저 돌멩이랑 동급이에요?!”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구나.

       

       어찌 보면 돌멩이가 더 나을 수도 있지. 적어도 돌멩이는 아무리 던저져도 투덜대지 않으니 말이다.

       

       “너무해!”

       

       엔리는 내 아래에 깔린 채로 발버둥을 쳐댔다.

       

       나 화났소! 라는 느낌을 팍팍 내는 것이 아이 같아서 귀여웠다.

       

       “좋다. 그럼 동기부여를 하나 해주마.”

       “뭘로요?”

       “만일 엔리 그대가 10초를 버틴다면 나를 골릴 기회를 한 번 주마.”

       

       한 번. 단 한번은 그대가 꾸민 꾀가 무엇이든 간에 넘어가 주겠다.

       

       물론 그에 따른 복수도 없을 것이야.

       

       그대가 어떤 식으로 나를 괴롭히건 간에 한 번만큼은 얌전히 당해주도록 하마.

       

       “마음에 들지 않느냐?”

       

       이건 흔히 얻을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무림에 있을 적에도 복수의 권리를 받은 자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대가 어찌 느낄지는 모르겠다만 이것은 내 호의의 증거나 다름 없었다.

       

       엔리는 발버둥을 멈추고 말없이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팍 들었다.

       

       “좋아요! 까짓 거 한 번 해보죠!”

       

       그 짧은 사이에 무슨 고민을 한 것일까.

       

       불안감이 등 뒤를 타고 내렸다.

       

       생각해보면 무림에서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자들은 보통 내 목숨을 빼앗기 위해 이 기회를 사용했다.

       

       허나 엔리에게는 나를 죽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권한의 방향성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이야기일 터인데.

       

       엔리가 나를 골리기 위해 택할 만한 것이라.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는 건 없었지만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 같았다.

       

       어떡하지.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말을 내뱉었어야 했나.

       

       으음.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자존심을 저버리고 힘을 사용할까.

       

       비난의 말을 듣게 되겠지만 내 언제 그런 것을 신경 쓰기나 했던가.

       

       더럽고 추하고 쓰레기 같아도 어쨌든 간에 이기기만 하면 그만인 것을.

       

       그렇지만.

       

       하아.

       

       그래. 그렇게까지 발악해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굴욕이라고 해봐야 뭐 별 것 일까. 하루 정도 이를 꾹 깨문 채 견디면 되겠지.

       

       “화령 씨! 비켜줘요!”

       “시작하겠느냐?”

       “네!”

       

       *

       

       “이번에 몇 초야?!”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내며 엔리가 다급히 물었다.

       

       – ㄲㅂ. 8초.

       

       “흐아아악!”

       

       8초라고? 겨우?

       

       나 방금 전에 엄청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8초 밖에 안 됐다고? 말이 안 되잖아.

       

       “10초가 왜 이렇게 긴거야!”

       

       10초라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다.

       

       노래 한 소절만 들어도 사라지는 시간이 10초고. 엔리의 허약한 몸으로는 50m조차 주파할 수 없는 게 10초라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10초를 못 버텨서 흙투성이가 되야 한다니!

       

       이번이 몇 트 째지? 아라 씨가 내기를 걸고 나서 적어도 백 번은 넘게 부딪힌 거 같은데.

       

       이거 되는 거 맞아?

       

       그런 생각이 든 엔리가 고개를 들어 아라를 바라보았다.

       

       아라는 뒷짐을 진 채 엔리가 다시 창을 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딘가 허술한 부분이 있는 현실의 아라와는 다른.

       

       게임 속 천마를 연기할 때나 볼 수 있는 진중하고도 압도적인 모습.

       

       엔리는 여전히 아라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최근 항상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봐야 한 달 남짓이다. 사람을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렇지만 하나. 아라가 무협이라는 것에 진지하다는 것만큼은 안다.

       

       오죽하면 그 냥냥권법이 자기가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했을까.

       

       그런 아라가 가르침을 주는 와중에 내기에서 이기겠다고 장난을 칠까?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아라는 자신이 말을 했던 대로 엔리가 최선을 다하면 10초를 버틸 수 있게 조절하는 중일 것이다.

       

       그럼 문제가 있는 쪽은 어딘가.

       

       당연히 엔리 본인이다.

       

       심호흡을 한다.

       

       아라는 말했다.

       

       창수의 기본을 가르쳐 줄 때부터 항상 언급했다.

       

       조급해져서는 안 된다고.

       

       그렇지만 지금 자신은 어떤가.

       

       바라는 보상에 눈이 멀어서 당장 바로 앞조차 보지 못하고 있지 않나.

       

       침착하자.

       

       조심스럽게 창을 들었다.

       

       창은 묵직했다.

       

       처음 용사냥꾼이란 캐릭터를 골랐을 적부터 엔리는 창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무기라고만 여겼다.

       

       그럼에도 용사냥꾼을 고른 건 어디까지나 용사냥꾼이 가장 쉽고 좋은 캐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용사냥꾼만을 플레이 한 지도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엔리에게 창은 거추장스러운 무기였다.

       

       그렇지만 이젠 조금이나마 창에 관해 알 것 같기도 했다.

       

       창은 거추장스러운만큼 굳건한 무기다.

       

       유리를 붙잡았을 때는 이만큼 듬직한 것이 없지만 불리할 때는 이만큼 거슬리는 것이 없다.

       

       그러니 불리할 때는 창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창은 불리 속에서 힘을 가지지 못한다.

       

       한 손으로 용사냥꾼의 창을 잡았다.

       

       용사냥꾼의 창은 신창보다 짧다. 그래서 한 손으로 잡아도 다루는 데 문제가 없다.

       

       “손을 쓸 셈이더냐?”

       “제가 싸워야 하는 거리는 손의 거리니까요.”

       “옳다.”

       

       아라가 웃었다.

       

       이게 정답인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가 주먹의 거리에서 싸우는 데 창으로 응수하는 것은 상대에게 한 점을 내어주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냥 말로 설명을 해주시지.”

       “그래서야 가르침을 주는 의미가 없어지잖느냐.”

       

       엔리는 무협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겉핥기로나마 들어보긴 했지만 딱 그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지금 아라가 말하는 가르침이 뭔 지는 알 것 같았다.

       

       직접 겪어서 깨달아야 몸에 새겨진다는 거겠지.

       

       조금은 어렵고.

       

       조급은 답답하지만.

       

       이것도 나름의 감성이 있네.

       

       차오르는 뿌듯함에 엔리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뱉었다.

       

       두 시간.

       

       아라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나서 시작지점에 서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두 시간이었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니까 어색하겠지.

       

       어쩌면 이전보다 버텨내는 시간이 더 줄어들지도 몰라.

       

       수도 없이 바닥을 구르게 될 거고, 무자비한 아라의 손속에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의심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인자한 웃음을 짓는 아라가 이 길이 맞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으니까.

       

       “시작하죠!”

       “그래. 가마.”

       

       엔리의 예상대로 패배가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아피스를 하며 주먹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엔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주먹은 보정을 받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덕택에 8초로 늘어났던 시간이 다시 2초로 줄어들었다

       

       “공격을 할 필요는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버티는 것이다.”

       

       다음에 엔리는 아라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 집중했다.

       

       확실히 창을 움직이는 것보다 주먹으로 받아내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그렇지만 숙련도가 문제였다.

       

       그녀는 여전히 주먹을 다루는 데 서툴렀다.

       

       시간이 다시 늘었지만 초가 3초가 되었을 뿐. 창을 쓸 때보다 못했다.

       

       – 도도새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왜 답답하게 창을 안 씀? 안 쓰니까 개발리잖아.]

       

       “여전히 조급하다. 그대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다. 보고서 움직여도 괜찮아.”

       

       – brea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층즘 쓰르그!…]

       

       “그렇지. 짧게 움직여라. 피해를 최소화하기만 해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조급해진다.”

       

       – 바코드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님도 답답하네. 하나도 안 느는데 이걸 왜 꾸역꾸역 가르치고 있음?]

       

       “내가 틈을 보이자마자 물러나려 한 것은 좋았다. 허나 생각해야한다. 일부러 틈을 내어준 것인지 아니면 그게 진짜 틈인지를. 상대의 노림수에 희생되어선 안 된다.”

       

       – 쿠쿠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안 된다니까. 다른 거 배우면 안 됨?]

       

       불신과 신뢰가 교차한다.

       

       엔리가 나아질 거라 믿는 이들과 평생 한 자리에 머물 것이라 믿는 이들이 다툰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채팅창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쩌면 매니저가 이모티콘 채팅으로 바꿨을지도 모르지.

       

       그치만 괜찮아. 상관 없어. 아아아무 상관 없어.

       

       엔리에게 보이는 풍경은.

       

       들리는 소리는.

       

       오롯이 하나였으니까.

       

       쓰러지고 다시 일어난다.

       

       또 쓰러지고 다시 창을 붙잡는다.

       

       더 이상 얼마나 긴 시간을 버티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창을 아예 쓰지 않을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손이 더 빠르기에 그걸 사용하라 했을 뿐. 네가 생각하기에 길이 보인다면 창을 휘둘러도 괜찮다.”

       

       다시.

       

       한 번 더.

       

       게임 속이기에 땀은 흐르지 않는다.

       

       몸도 멀쩡하다. 호흡도 그대로다.

       

       정신적인 피로? 어째서인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를 휘감은 것은 그저 고양감 뿐이었다.

       

       여전히 엔리는 최선의 상태였다.

       

       적어도 스스로가 믿기에는 그랬다.

       

       한 손으로 창대를 붙잡는다.

       

       앞을 보면 아라가 서 있다.

       

       오늘 지겹도록 본 모습이다. 오늘 잠을 자더라도 눈꺼풀 아래에 아라의 모습이 아른거릴 게 분명했다.

       

       “다시!”

       

       아라의 몸이 사라진다.

       

       엔리는 여전히 아라의 첫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내 아라가 엔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은 복부를 노리는 촌경이었다.

       

       손목을 쳐내 걷어냈다.

       

       연이어 머리를 노리고 주먹이 날아든다.

       

       고개를 숙여 피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기 무섭게 한 걸음이 따라 붙는다.

       

       아라는 엔리를 놓아 줄 생각이 없다.

       

       공방이 이어진다.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진다는 것을 엔리도 안다.

       

       그렇기에 아라만을 바라보았다.

       

       자잘한 타격은 허용해도 괜찮아. 그런다고 패배하지 않아.

       

       큰 동작은 중간에 끊어내. 상대가 답답함을 느끼도록.

       

       공격이. 공격이. 그리고 다시 공격이.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다가.

       

       엔리의 숨통을 막으려는 듯 쏟아지다가.

       

       어느 순간 폭풍의 한 가운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엔리는 폭풍 한 가운데에 있는 평온한 공간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창을 움직였다.

       

       그녀가 펼친 것은 창을 다루는 이가 가장 많이 했을 동작이었다.

       

       찌르기.

       

       그녀는 폭풍의 눈을 찔렀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그곳은 폭풍의 눈이 아니었다.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였다.

       

       엔리의 창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 젠장.

       

       자신의 눈앞으로 쏘아지는 주먹을 본 엔리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깝네. 될 것 같았는데.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충격은 전해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서 엔리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러자 저 멀리에 곰방대를 문 아라의 모습이 보였다.

       

       “화령 씨? 뭐해요?”

       “그대가 이겼다.”

       “네?”

       

       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대답을 다른 것이 대신했다.

       

       – 엔리 우승!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 우승! 엔리 우승! 엔리 우승!]

       

       엔리는 그제야 채팅창에서 쏟아지는 파도를 보았다.

       

       그건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쓰나미가 아닌 그녀의 고생을 씻어 내려주는 축복의 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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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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