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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었다. 정말로….”

         

         전투경찰은 성질머리가 더럽다.

         전투경찰은 양아치들이다.

         전투경찰은 말보다 손부터 먼저 나가는 놈들이다.

         

         뭐만 하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플레이어 일행에게 총부터 갈겨대는 NPC, 기업들의 하청 부대.

         

         오랜 경험과 외부 관찰자로서 쌓은 선입견에는 일부 맞는 말도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이런 데서 일하면서도 온화한 성격을 유지한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게 맞다는 것도 깨달았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달간의 개고생을 떠올렸다.

         

         

         브로커를 찾기가 귀찮았는지 아니면 능력이 없었는지는 몰라도, 도시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수제 위조 신분증 적발도 다수.

         

         타고 온 트럭 바퀴가 잠기자마자 메가 코프의 함정이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총부터 뽑았다가 테이저 건 10줄기가 전신에 꽂힌 채로 기절한 미친 인간.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건지는 몰라도 차도 없이 모래투성이 외투를 흩날리며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는 시민증은 어디서 발급받냐고 당당하게 물어보던 스캐빈저.

         

         장벽으로부터 좀 떨어진 위치에서 드론을 날려보내다가 포탑에 요격당한 후 도주해서, 뜬금없이 사막 한복판으로 관문경비대 전체를 출동하게 만든 괴한.

         

         품 안에 숨긴 하드웨어나 메모리 카드 좀 제출해달라고 했더니 바로 바이저 정면에다가 가래침을 뱉고 진압봉에 신나게 두들겨 맞은 쓰레기.

         

         특히나 드론 사건은 무슨 공습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고 기겁했고, 마지막 놈은 다른 대원들이 뭘 해보기도 전에 헬레나가 직접 검집을 휘둘러서 기절시켰다.

         ……죽어라 닦아냈는데도 아직도 바이저 앞부분이 조금 누레 보인다. 망할 놈.

         

         바로 어제 잡았던 데이터 밀수범은 귀엽게 보일 빌런들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을 정당화하는 보상.

         최근 아무리 푹 쉬어도 가시지 않던 목뒤의 뻐근함과 만성적인 두통이 한방에 날아가는 희소식이 방금 막 눈앞에 팝업되었다.

         

         [ 하베스트 플래닛 사회질서 유지부로부터 1,850,000 크레딧이 입금되었습니다. 귀하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

         

         기본급에 더해,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했던 우리 조에게 부여된 막대한 보너스까지. 그 누구라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사이버웨어 알람은 나에게만 표시된 게 아닌지, 팽팽하던 직장 분위기가 단숨에 느슨해졌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입금 내역을 알려주다니… 근무의욕 증진에 지대한 도움이 된다.

         

         덕분에 갑자기 부쩍 친절해진 경찰들, 그 태도변화에 막 떠나는 사람들이나 새로 들어오는 검문 대상자들이 당황하는 게 카메라를 통해서도 똑똑히 잘 보였다.

         

         아, 안심하세요. 여기는 지금 축제가 한창이니까!

         

         “…아.”

         

         무심코 쇼핑에 권유하기 위해 옆자리를 돌아봤다가 앤은 지금 자리에 없다는 걸 기억해냈다.

         

         난 그녀가 단순히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있던 DS3 근무조의 유일한 엔지니어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지휘부 직속. 무려, 주간 시간대의 치프 엔지니어라고 한다.

         

         능력이 충분하기에 얻은 직급이겠지만, 마냥 유약해 보이는 그녀가 실은 입장적으로 헬레나보다 위라니 조금 어색하다.

         

         어쨌거나 상부와 가장 가까운데다 엔지니어들의 탑인 앤은 출장이 굉장히 잦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외부는 아니고 관문 안에서 이곳저곳 다닌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관제실과 3번 게이트, 자판기와 화장실만 활동반경으로 삼은 은둔자인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쿵쿵…!!

         

         관제실 문이 울린다. 우리 선배님께서 돌아오셨다.

         

         “별 일 없었나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누가 잠깐 사이에도 들여다볼라 바이저만 냅다 뒤집어쓰고 관제실 문을 열었는데 곧바로 짓쳐드는 한기의 폭풍에 화들짝 놀라서 장갑 없는 맨손을 뒤로 물렸다.

         

         간혹 출장지에서 복귀한 앤의 몸에선 냉기가 풀풀 날린다.

         매정하다는 걸 돌려 말한 비유적 표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주변 공기와 제복이 차갑다.

         

         슬슬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왜 이렇게 냉방을 빵빵하게 돌리는지 모르겠다. 육체파인 경찰들은 몸에 열이 많아서 그런가? 정작 진압복 풀 세트를 착용하면 외부 온도는 체감하기 어렵던데….

         

         아무튼지간에,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외하고 모든 크레딧을 은밀하게 개설한 나만의 ‘깡통 적금’에 들이붓느라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단말기 구입 정도는 그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저기… 앤 언니? 괜찮으시면 오늘 근무 끝나고 괜찮은 단말기 고르는 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가 남아있는지 바쁘게 단말기를 조작하던 그녀의 몸이 멈칫했다.

         

         “……헬레나도 같이요?”

         

         “…아뇨, 저희 둘만으로.”

         

         더는 비겁하게 피하지 않을 테니 피차 할 말이 있다면 이제는 좀 시원하게 털어놔 보자는 뜻을 확실하게 전했다.

         사실 내가 말할 건 별로 없으니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겠지만… 아니다. 이것도 이기적인 발상이다. 연원모를 앤의 흥미부터 해결해주고 생각하자.

         

         “기쁘네요. 계속 물러나기만 하던 아샤가 다가와주니.”

         

         “…그건 정말 죄송했습니다.”

         

         시종일관 자신을 좀 마주봐 달라고 티를 낸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바빴다.

         

         담당 구역인 3번 게이트에 나날이 새로운 빌런이 등장할 때마다, 혹시 이 새끼 때문에 일이 터지는 건가… 의심하고!

         도시에서 관제하는 주파수 외의 전파가 난데없이 감청 되면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하고 조사하고!

         

         그렇게 꼬박 일 개월을 촉각을 곤두세운 채 벌벌 떨면서 지내면서 보낸 끝에…! 마지못해 인정했다.

         

         시기도, 그 방식도 모르는 위협에 무작정 대비하는 건 개인에겐 무리였다는 걸. …차라리 용병 일에 집중해서 나와 교대로 이들을 지켜봐 줄 어느 케어봇이라도 살리는 게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차일피일 뒤로 미뤘던 관계에 변화를 추구하기로 한 내 결심을 이해해주길 바라….

         

         – ……관제실? …DS3-CE2 엔지니어님? 스캐닝 결과는 이상 없습니까? –

         

         “아?!”

         

         다급한 헬레나의 통신을 듣고 얼른 다시 자판과 모니터에 달라붙었다.

         지나친 긴장은 느긋함만 못하다는 걸 몸으로 배웠어도 일을 방폐하는 건 안될 말씀이다.

         

         그런데… 방금 들어온 화물 트레일러의 스캔 데이터, 3D 모식도가 심상치 않다.

         출력된 모델링과 실제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트레일러 부분의 길이가 지나치게 차이난다. 이건 아마도….

         

         – …탐지된 트레일러 길이와 실제 간극이 관측됩니다. 가장 안쪽 내벽을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외부에서 측면을 쾅쾅 두들겨 이중벽의 존재를 확인한 경찰들이 톱과 용접기를 들고 우르르 진입한다.

         

         이쯤 되면 밀수범들의 수입이 궁금해진다. 월급쟁이보다는 더 벌겠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뭐 용병보다도 잘 벌어서 잡아도 잡아도 잇따라 나타나나?

         

         끼긱… 끼기기기기긱—!!

         덜컹… 덜컹…!

         

         “……?”

         

         두들기고 철판을 굽혀 뜯어내는 소음이야 예상 범주 내이지만, 들어간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발소리가 철판을 뒤흔든다. 딱히 교전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꽤 요란하다.

         

         이내 진입했던 경찰들이 밖으로 나온 후 수신호를 보내자… 헐벗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빠져나왔다.

         

         “…….”

         

         과연 저들은 밀입국자일까… 아니면 인신매매일까.

         

         우울함과 체념만이 공존하는 그들의 어두운 낯은 직시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벌금을 낼 여력도, 수입도 없는 범죄자는 수감하는 게 아니라 추방하게 되어있으니. 얌전히 조사가 끝난 뒤에 돌려보내질 것이다.

         

         …누군가를 구류하고 수감하는 것도 다 돈이 드는 일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그 좁은 비밀공간에서 줄줄이 끌려 나온 사람만 거의 스무명.

         

         “하아아…….”

         

         이번만큼은 헬레나도 경찰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는지 이마 근처를 움켜쥐고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상황정리와 범죄자 인도를 위해 3번 게이트는 또 폐쇄. 결국 적발한 나나 조장님이나 씁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퇴근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지휘부의 출장 명령이네요.”

         

         “…설마 또 그 중화기 무기고 점검인가요? 진짜 사람 다루는 게 험하네.”

         

         헬레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할 논리적인 핑계를 뒤늦게 고민하던 찰나, 오늘만 벌써 두번째 호출을 받은 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업무종료 직전에 일거리를 던져줘? 이거 완전 가혹행위 아닌가?

         

         만약 진짜로 이곳이 대대적인 공세에 노출된다면 지배계층인 기업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테니 신경 쓰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냅다 엔지니어부터 불러서 장비체계 점검을 시키는 건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명령은 명령.

         어쩔 수 없이 사적인 만남은 다음에 가지기로 하고 교대를 준비하는 와중, 그녀가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아니면… 아샤도 따라와서 제 업무를 좀 배워볼래요…?

         

         “…네?”

         

         …갑자기요? 곧 관제실에서 퇴실할 거라 머리를 가린 상태였기에 얼빠진 얼굴은 숨겨졌지만…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로서는 일하는 도중 겸사겸사 떠드는 게 아니라 제대로 마련된 자리에서 환담을 나누고 싶었고.

         앤도 비슷한 마음인 줄 알았는데 의외다.

         

         좌우지간 권한도, 명렁도 따로 못 받은 엔지니어가 불쑥 나타나 돌아다닌다면 당장 머리속에 떠오르는 근무 수칙과 규율만 해도 위반사항이 한두개가 아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드레이퓨스의 경고도 있었으니… 명령불복종 같은 일로 간신히 진정된 말썽거리를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순 없었다.

         

         “그냥 다음에, 뭣하면 내일 같이 쇼핑가도 전 괜찮아요.”

         

         “……그래요? 알았어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여기는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아쉽다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은 채로 앤이 훌쩍 떠난다.

         

         일단… 금일 경찰 소속 아나스타샤는 여기서 서비스 종료. 집에 돌아가서 간단하게 수행할 수 있는 용병 의뢰나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한 직후, 외부 카메라에 이상한 게 얼핏 보였다.

         

         “어…?”

         

         기어이 도시에 들어오지 못하고 퇴출당한 차량이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흙먼지 때문에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보니 몇 시간 전,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던 인신매매 트레일러다.

         

         한데, 카메라 가시거리 거의 끝부분에 다다른 트레일러가 불안정하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균형을 잃고 도로를 벗어나 황무지에 처박힌다.

         

         그것도 잠깐 이탈한 게 아니라 아예 비탈길을 굴러 완전히 뒤집힌다.

         

         가슴 언저리에 이는 소란을 애써 무시하고 최대한 빨리 통신 채널로 사고발생 사실을 전파했다.

         

         – 하베스트 플래닛 3번 게이트 권내에서 전복 사고 발생을 관측! 다대한 인명 피해가 예상되오니 DS3-1 조장님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

         

         바쁘게 장구류를 정리하며 움직이던 경찰들이 불만스러운 시선을 관제실로 향했다가 곧바로 우리들의 조장으로 그 대상을 바꾼다.

         

         그리고 대부분은 대답이 나오기도 전부터, 자신들의 상관을 보고 단념한 뒤 출동을 준비했으니….

         

       

       

         – ……경찰 측에 구호의무는 없더라도 도로 주변에 생긴 장애물을 치워야 할 책무는 있습니다. 관제실 통신으로 대기중인 야간조에게도 지원 요청 부탁드립니다. –

         

       

       

         …조장이 헬레나여서 정말 다행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아악!

    효도왕여포 님의 쿨한 5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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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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