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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아버지의 행동력은 폭주하는 비공정과도 같다.

     특히 어머니, 사랑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당장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것을 국경을 넘어, 제국 야시장에서 몰래 사 오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는 한번 결정을 내리면 막을 수 없다.

     나조차도.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건물이 일주일 만에 완성되는 거지.’

     이 시점에.

     “멘테 경. 여기, 내가 일주일 전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평지 아니었습니까?”

     “어느 분께서 기사들까지 동원하셔서 지은 거니까. 목조건물이잖아? 통나무집 정도야 뭐.”

     “통나무 저택이잖습니까.”

     “목수들이 자르라고 하는 부분을 기사들이 정교하게 자르기만 하면 되는걸.”

     “…….”

     목조건물이라서 일찍 지어진 건 이해할 수 있다.

     겉모습도 조금 투박하고, 심미적으로 단조로운 형태도 오직 빠르게 지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걸 신경 쓰지 않은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당장 누군가 이 목조건물에 들어와서 지내게 한 것처럼.

     실제로 그러하다.

     깡, 깡, 깡!

     보육원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공사 인부들이 새롭게 철근을 땅에 박아넣는다.

     승강기 설치 공사를 하고 남은 철근이 아닌, 지브롤터 백작령이 자체적으로 사들인 철근이 땅에 박힌다.

     “단 7일 만에 임시 건물을 짓고, 동시에 본 건물을 지으려고 하다니. 나 참….”

     “공주님들을 맞이할 방으로는 부족한가 봐?”

     “…….”

     “되게 싫은 눈치네. 하긴. 네 아버지가 아카데미 시절에 많이 시달리기는 했지.”

     멘테 경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물함을 열면 러브레터가 쏟아졌지. 화장실 가는 길에도 따라붙던 여자들도 있었어. 심지어 기숙사에 남장하고 침입한 영애도 있었거든.”

     “그걸 아버지는 그냥 두고 봤습니까?”

     “아니. 처음에는 안 그랬어. 막아주던 장벽이 더 이상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랬지.”

     멘테 경이 손을 세워 위아래로 흔들었다.

     “당시 약혼녀였던 카르멘 공녀가 백작의 주변에 달라붙는 여자들 다 쳐내고 있었는데, 파혼한 뒤로 네 어머니로 갈아탄 이후에는 다들 달려든 거야.”

     “한 번 마음이 바뀌었으니, 본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겠네요?”

     “그렇지. 덕분에 나도 고생을 좀 많이 했었고.”

     “멘테 경이요?”

     “학생회였거든.”

     “아.”

     이해했다.

     아카데미에서 그런 난리가 일어나는데, 관리자 격인 이들이 고생하지 않을 리가 없다.

     “변경백은 네가 그런 고생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 걸지도 몰라.”

     “반대 아닙니까? 너도 한번 고생해봐라, 그런 거.”

     “그런 거였으면 17살까지 가만히 놔뒀다가 아카데미에 던졌을걸? 아들이 자기랑, 아니 자기보다 더 고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제국의 황실?”

     “아, 그래. 걔들은 그렇겠네. 뭐라더라….”

     “사자는 자기 자식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 지금의 황제가 황태자에게 했던 말이죠.”

     어려서부터 강하게 자라야 한다.

     제국 황실의 기조다.

     “실제로 사자는 그런 동물이 아니지만요.”

     “그래? 그것도 신문에 나와 있어?”

     “신문은 제법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참에 같이 읽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됐어. 기사는 검만 잘 다루면 되고, 호위는 지키기만 하면 되잖아? 나는 뭔가 새로운 지식을 익히기에는 늙었단 말이지~”

     멘테 경은 손을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남자로 치면 아저씨라고. 아니다, 아줌마인가? 하항.”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자조하듯 저렇게 말하더라도, 저걸 함부로 물었다가는 바로 말린다.

     “보육원 이야기나 하죠. 아버지는 저 건물, 아마도 분명-”

     “누아르 아래에 있는 아이들 숙소로 할걸?”

     “…예?”

     생각이 엇갈렸다.

     “보육원에 새로 들어올 고아들이 아니고요? 멘테 경. 혹시 들은 거 있습니까?”

     “아니. 들은 건 아니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올 진짜 고아인 여자애들 말이야. 전부 10살 전후인 애들이라며?”

     그렇다.

     그렇긴 하지만-

     “여자애들을 그래도 좀 더 좋은 곳에서 지내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나무로 된 건물이기는 하지만, 애들에게도 좋은 수련이 될 거고.”

     “…이건 아버지와 논의해봐야겠습니다.”

     보육원의 책임자로서.

     * * *

     서재.

     “멘테 경이 말했느냐?”

     “예.”

     “함부로 무슨 말을 못 하겠군.”

     “저택 내부의 일은 제가 얼추 다 알고 있습니다. 특히 보육원에 관한 건 매일매일 확인하죠.”

     나는 아버지와 서재에서 따로 만나, 아버지를 추궁했다.

     “제국에서 올 여아들을 위해 보육원 방을 내어주기로 한 거, 사실입니까?”

     “그렇단다.”

     “그럼 기존의 아이들은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만.”

     “솎아내기를 할 뿐이다.”

     아버지는 조금 단호한 얼굴로 내 앞에 명단을 밀었다.

     “정원은 한정되어 있고, 예산도 정해져 있지. 너는 이 아이들을 활용할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가능성 없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정리하는 게 옳다.”

     “듣던 것과 다르군요. 저는 통나무로 지은 임시 건물에 누아르 휘하 기사 후보생들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극기 훈련을 위해 그것도 계획했다. 하지만 인원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도 맞아.”

     아버지는 아이들의 명단 중 몇몇을 이미 붉은색 잉크로 표시해뒀다.

     “이 아이들이 방을 비워줘야, 제2의 에단 세자르 같은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겠느냐.”

     “……이해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효율적인 인원 관리를 계획 중이다.

     “평범한 아이들은 전부 빼내고, 그 자리를 가능성 있는 이들로 채우면 되기야 하죠.”

     “대안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무능하거나, 벌점을 받았거나, 보육원에 있다고 행실이 방정맞거나. 이런 아이들을 쫓아내는 건 분명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돌봐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그냥 내보낸다면, 이 아이들은 지브롤터에 반감을 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별 신경 쓸 필요 없지 않겠느냐.”

     “이 아이들이 지브롤터의 일상을 적에게 알리게 된다면, 그 사소한 정보가 모여서 계획이 되겠죠. 암살계획.”

     “으음….”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할 것이다.

     쫓겨난 아이들이 보육원 구조만 말해도 암살자들이 들어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

     “그러니 아이들을 내보내더라도, 적의를 가진 채로 내보내면 안 됩니다.”

     지브롤터는 앞으로 수많은 적이 생길 것이며, 안 그래도 많은 적을 내부에서부터 늘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왕 내보낼 거라면, 우리 지브롤터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팔아치우는 게 좋습니다. 아, 인신매매는 아니고요.”

     아버지가 순간 움찔거리길래, 나는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했다.

     “이 명단에 있는 아이들은 이 보육원 안에서 평범하거나, 재능이 없는 축에 속하는 아이들입니다. 투자 가치가 없는 편이죠.”

     “그래. 어떻게 팔아치울 생각이냐?”

     “호랑이가 가득한 산에서는 여우가 졸개지만, 토끼만 가득한 산에서는 여우가 폭군이 되는 법.”

     나는 서재의 벽에 장식되어있는 왕국 지도를 가리켰다.

     “왕국 곳곳에 보육원이 새롭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파견을 보내도록 하죠.”

     “파견?”

     “예. 여우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보육원의 체계,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죠. 그 경험을 파는 겁니다.”

     “…제국의 기업에 대해 얼마 전에 배운 적이 있다.”

     아버지는 책상 옆에 놓여있는 사진기, 그리고 제국어로 쓰여있는 책들을 가리켰다.

     “각 지점에 보내는 ‘지점장’이라는 개념이 있던데, 그걸 차용하자는 것이냐?”

     “정확합니다.”

     지브롤터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길게는 3년, 짧게는 약 3개월 정도의 보육원 생활 경험이 있다.

     “노스트럼 곳곳에는 새로운 보육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으나, 저희처럼 운영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밭을 개간하지도 않은 채로 씨를 뿌린 채, 엘프의 숲에 있는 세계수와도 같이 자라기를 바라겠지.”

     “예. 그런 이들에게 이 체계를 파는 겁니다. 저희가 3년 동안 쌓아온 운영의 기술을. 직접 보육원에서 자라고 경험한 아이들이.”

     그리고 이 경험은 다른 보육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보육원 운영 ‘매니저’라고 할까요?”

     “그건 제국의 용어냐?”

     “예. 아니면 이해하기 편하게 집사라고 할까요. 지방마다 흩어진 이 집사들은 보육원 운영을 지원하며, 재능있는 아이들을 선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별된 아이들을 지브롤터로 보낸다?”

     “호랑이굴에서 살았기에, 집사들은 본능적으로 알 겁니다.”

     여우인 내가 잡아먹을 수 있는 토끼인지.

     아니면 조금만 커도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호랑이 새끼인지.

     “그렇게 사람을 파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 제일 좋은 건 이들이 대륙 곳곳으로 나아가 지브롤터에 우호적인 여론을 퍼뜨린다는 게 되겠네요.”

     “여론이라.”

     “예. 사실 궁극적인 목적은 무능왕에 대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입니다만….”

     반역이든 매국이든, 무능왕을 끌어내려도 왕국 전체에 큰 충격이 없도록.

     “단순히 지브롤터의 상황만 알리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이미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누아르 중심 체제.”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중 재능있는 아이들을 누아르 옆에 붙이더라.

     “보육원 집사들이면 귀족들과도 접점이 있을 테니, 귀족들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바로 들어가겠구나.”

     “예. 더욱이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편지 내용을 귀족이 몰래 훔쳐보고 지브롤터의 상황을 이해한다?”

     “그 내용, 우리가 쓰기 나름이겠군.”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눈을 감는다.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쓸모가 있는 곳에 둔다. 척후병이자, 첩자로서 운영하는 셈이로구나.”

     “가장 중요한 건 본인들이 첩자인지도 모른 채, 진심으로 지브롤터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곧 충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레이.”

     아버지가 손을 멈추며 나를 바라봤다.

     “역시, 그쪽으로는 네게 맡기마.”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지만 아이들을 임시 건물로 옮기는 건 그대로 진행하고 싶다. 여자아이들에게 허름한 공간을 내어줄 수 없다는 게 네 어머니의 의견이라서.”

     “…….”

     “네 어머니의 의견이라서, 싫으냐?”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아버지가 잠시 불안증세에 걸린 것처럼 손가락으로 탁자를 빠르게 두드리더니.

     “내가 셜롯을 한 번, 설득해보마.”

     “예?”

     “여아들을 신경 쓰는 것도 맞지만, 기존 체계를 무시할 수는 없지. 선배들을 내쫓고 신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셜롯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거다.”

     “…….”

     처음 아닐까.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내 편을 들어준 건.

     “감동적이네요.”

     “이런 걸로?”

     “예.”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은 나도 너처럼 같은 생각이었단다. 제국에서 올 여자아이들을 임시 건물에 넣는 거. 그 이야기를 했더니, 셜롯이 반대했지.”

     “여자아이라는 이유 때문입니까? 뭐, 어머니라면….”

     “아니. 너 때문에.”

     “……?”

     아버지는 심드렁한 얼굴로 찻잔을 손으로 두드렸다.

     “여자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그 아이들이 너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편을 먹고 기 싸움을 할 거라고 하더구나.”

     “…….”

     “차라리 방마다 흩어놓고 난 다음, 서로 편을 먹지 못하게 보육원에서 융화시키자고 하는 게 어떠냐고 그랬지.”

     “음.”

     역시.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도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인 걸까.

     “아직 건물에 가구가 들어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그동안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결정이 나면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며칠 뒤.

     “도련님. 그,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손님? 이 시간에?”

     “예. 백작님께서 빨리 와보라고….”

     “아버지가? 도대체 누구길래.”

     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한 명의 고아에 정신이 나가버릴 뻔했다.

     “나리아 공주님.”

     “저는 나리아 공주가 아닙니다, 도련님.”

     해진 빵모자 아래에 짧게 자른 금색 단발.

     허름한 조끼와 덕지덕지 기운 멜빵바지.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녹색의 눈동자와 하얀 피부.

     “그러니까, 고아시라고.”

     “예. 천애 고아입니다.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아니.”

     “저를 맡아주십시오.”

     다짜고짜 찾아온 공주는-

     “저는 ‘자베스’라고 합니다.”

     나리아라는 이름의 그 어떤 흔적도 없는 가명의 고아를 자처했다.

     “저는 아비 없이 자랐고, 어머니는 저를 여기에 버렸습니다. 부디, 자비를.”

     “…카르멘 왕비가 혹시 전하거나 하는 말이 있습니까?”

     방 안에는 오직 나와 아버지뿐.

     “예.”

     

     나리아 공주는 품에서 주섬주섬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아버지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저를 여기에 버리면서 맡긴 겁니다.”

     “버렸다는 표현은….”

     “죄송합니다, 백작. 이렇게 평소에 계속 말해둬야, 고아라는 걸 계속 상기할 수 있어서.”

     “…고아라고 위장하면서까지 이렇게 지브롤터에 왕녀를 보낼 이유가-”

     아버지가 편지 봉투를 뜯은 순간,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 미친 새끼가.”

     “아버지?”

     “봐라.”

     아버지는 내게 편지를 건넸고, 나는 카르멘 왕비가 휘갈겨 쓴 편지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인트 지오가 술에 취해 나리아 공주를 죽이려 했다.

     “…모르가니아는 왕도에서 너무나도 가까워, 저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미친 왕이라면 모르가니아로 달려와 저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칠 테니까요.”

     나리아 공주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당분간. 당분간이라도 이곳에서 머무르게 해주시옵소서. 변경백 각하.”

     순간, 스치듯이 보인 나리아 공주의 목 근처에는 칼에 베인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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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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