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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연약한 귀족영애, 레비 폴트가 ‘경’을 성공한 것을 목도하며 생도들은 난리가 났다.

         

       정녕 교관이 아니더라도 저 말도 안 되는 기예를 펼칠 수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

       아직 훈련받은 지 얼마 안 된 소녀가 해냈다는 것에 대한 감탄.

       그들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

         

       경을 배우고 싶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넘쳐흐르는 그들이었다.

         

       허나.

         

       “끄으으윽…!”

       “하, 할머니…? 왜 거기 계세요?”

       “정신 차려 인마! 너희 할머니 정정하셔! 너보다 오래 사실 분이라고!”

         

       ……지금은 좀 모르겠다.

         

       생도들은 각자 배를 부여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교관이 경을 체험시켜준다는 말에 가장 앞장서서 나섰던 이들이 모조리 흙바닥을 뒹구는 채 고통을 호소하고, 어떤 이들은 임사체험이라도 경험하듯 정신마저 혼몽해진 상태.

         

       뭐지, 이 익숙한 광경은?

         

       불칸에 올라오고 몇 번이나 겪은 극한 상황.

       그들은 단지 가르침을 원했을 뿐인데 어쩌다가 저리 됐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 다음 순서. 빨리빨리 나오도록.”

       “…….”

       “왜 그러고 있나, 배우기 싫어?”

       “…교관님, 왜 레비 폴트랑 달리 저희는 이런 취급인 겁니까?”

       “이런 취급이라니?”

       “어째서 문답무용으로 때리시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겁니다.”

         

       ‘경’을 체험시켜주겠다 했을 때만 해도, 레비 폴트처럼 친절히 등에 손을 대는 정도로만 생각했거늘.

       교관은 문답무용으로 배 정중앙에 ‘정권’을 먹였다.

       이후 생도들은 바닥을 구르는 꼴이 났고, 그들은 아득한 공포감마저 느꼈다.

         

       ‘뭐지?’

       ‘우리가 뭘 잘못했었나?’

       ‘교관 욕 적어놓은 일기 걸린 거 아니야?’

         

       반으로 쪼개진 통나무 꼴이 되고 싶지 않은 그들로선 당장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해야 하나 싶었다.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있었나 고민하며.

       잽싸기 그지없는 생존본능.

       그동안 불칸에서 구르며 터득한 비굴함이었다.

         

       “염병하고 있군.”

         

       그가 콧방귀를 꼈다.

         

       “레비 폴트의 경우는 신체내구력이 현저히 떨어지니 교관이 조금 친절히 힘을 인도해줬을 뿐이다. 하지만 너희는 경우가 다르다. 단련도가 다르며, 전신운동능력도 단기간에 제법 향상됐지. 그러니 본 교관이 직접 효율적인 수단으로 경을 체험시켜주는 것이다.”

       “구, 굳이 맞아야만 합니까?”

       “너희 몸 안에 경을 때려 박아야 하니까. 그로 인해 경을 온전히 느끼며 이른바 각성 상태가 될 거다. 고맙게 여기도록, 이거 아직 나밖에 못 하는 기술이다. 섬세한 요령이 필요한 기술이라서.”

         

       내가중수법.

       발타르의 수법을 겪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러한 편리한 수단도 개발하고.

         

       “주, 죽지는 않습니까?”

       “아무렴 걱정 마라. 몸 내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지겠지만, 죽는 사람은 없다, 장담하지.”

         

       제이크가, 그러니까 기사단의 유일한 친구에게 실험, 아니 도움을 받아 확인한 사실이었다.

       ‘낭심’이 조여지고 터지는 고통과 아픔을 두 시간 이상 겪는 부작용이 있긴 한데….

         

       주문쟁이한테 온종일 물고문 당하던 저보단 참을 만하지 않겠는가?

         

       “…쿤타가 봤을 때, 무척 야만적인 수단 같다.”

         

       야만전사라 불리는 종족이 내뱉는 야만적 발언.

       그들도 다를 바 없는 의견이다.

       허나 이한은 단호했다.

         

       “일단 겪어봐. 이게 가장 빠르다.”

       “나, 남녀차별입니다!”

       “아니지. 공평한 거지. 초보자랑 숙련자를 어떻게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 난 너희의 맷집을 믿는다.”

       “…차라리 좀 불공평하게 대해주십시오.”

         

       그들의 진심이었다.

         

       허나.

         

       “헛소리 말고 빨리빨리 오도록. 해 지겠다.”

         

       “…….”

         

       그들에게 다른 선택사항은 없었지만.

         

       * * *

         

       -털썩.

         

       “주, 죽을 것 같아….”

       “끄으으윽!”

       “…….”

         

       몇몇은 쓰러져서 나뒹굴고, 또 몇몇은 혼절했다.

       평생 기절할 분량을 불칸에서 다 채우는 느낌.

         

       허나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배 중앙부터 퍼져나가는 화끈함을 느꼈다.

       레비 폴트가 느꼈던 맥동보단 거칠지만, 그래도 분명히 느껴진다.

       태어날 적부터 함께 있었지만, 몰랐었던 강렬한 에너지.

       하여 느끼게 되자 깨닫는다.

       경의 정체가 다름 아닌….

         

       “‘질량’을 다루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투기법은 곧 몸속의 ‘생기’, 혹은 ‘기력’이라 할 만한 것을 한 순간 증폭시키는 수법이다.

       숙련된다면 수련자의 기량에 따라 10배에서 20배가량 능력치가 보장되니, 어느 정도로 대단한 기법인지 설명하는 게 입이 아프다.

         

       …반대로 그들이 새롭게 깨우친 경은 ‘깨달음’에 가까운 기술이다.

         

       신체능력을 증폭시키기보단,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질량’을 다루는 방식.

       아르노는 이러한 색다른 접근법에 감탄하며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군, 이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예가 가능한 거였구나.’

         

       통나무를 쪼갠 행위?

       분명 방금 전만 해도 놀라웠지만, 이론적으로 접근하니 마냥 불가능하지 않음을 알겠다.

       예를 들어 레비 폴트.

         

       ‘경을 깨우친 지금이라면 저 영애도 가능할 테지.’

         

       저 소녀의 몸무게가 39kg이라고 가정하면 얼추 가능할 거다.

       저러한 빈약한 몸으로 어찌 가능하냐고 할 수 있겠으나, 핵심은 질량의 사용 방식이다.

         

       ‘전신의 질량을 몸 곳곳에 자유롭게 전달하는 기예. 경은 그런 기술이다.’

         

       39kg이란 무게를 지닌 물체가 가벼운 건 아니지만, 이것이 사람에게 대입된다면 정말 가벼운 무게다.

       이는 신체의 질량이 온전히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인간을 이루는 질량이 잘게 쪼개져 있기에 가벼울 수밖에 없는 거다.

       한데 이곳저곳 퍼진 질량 전부를 발이나 주먹, 혹은 다리 등에 실을 수 있다면 어떨까?

         

       ‘39kg짜리 철환에 맞는다면 그건 이미 살상병기나 다름없지.’

         

       거기다 평균 악력×39kg의 질량, 주먹의 가속도마저 곱해졌을 때 이를 힘으로 환산한다면 어찌 될까?

         

       ‘39kg의 슬링 샷(Sling-shot)이라, …성벽도 뚫을 위력이겠군.’

         

       골리앗도 돌팔매질에 즉사했거늘.

       실현된다면 이만큼 무서운 기술도 없다.

         

       “이론적으로 레비 폴트조차 나무를 쪼개는 게 가능하단 얘기겠죠. 다만, 이러한 기술은 몸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겁니다. 자칫 쓰다가 자멸할 만큼.”

       “교관이 왜 그렇게 굴렸는지 알 것 같군. 이건 몸이 단단하지 않으면 애초에 쓰지도 못해.”

       “잘못 쓰면, 병아리랑 새싹들, 다 몸이 풍선처럼 터질 거다. 쿤타가 봤을 때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효율적이지. 요령만 안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발전가능성도 무궁무진하고.”

       “…….”

         

       웬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 로엔의 발언이었고, 그들을 합죽이로 만드는 타당한 의견이기도 했다.

         

       그래, 저 말대로 ‘경’은 수련자가 얼마나 성실히 훈련하고 신체능력을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체중 자체야 잘 먹고, 잘 훈련하다 보면 알아서 증가할 터이니.

       거기다 경은 마냥 체중만 다루는 게 아니라, 심장의 박동마저 에너지로 치환해버리지 않는가.

       숙련된다면 온몸을 이루는 모든 질량을 적절히 분배할 수 있으리라.

         

       결국.

         

       “육체가 가진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면에서 이는 투기법과 같다. 비록 그 과정은 더욱 험난하고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이 길에 마침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초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으음!”

         

       투기법이나 경이나 인간이 초인이 되기 위한 길이란 의견.

       그들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의 이러한 생각이 옳다면 이는.

         

       ‘하, 우리는 지금 [유파(流派)]의 창시자와 마주하고 있다는 건가?’

       ‘아이러니하네. 우리 영감 말고도 진짜 이런 양반이 있을 줄이야.’

       ‘대전사?’

         

       각자가 모두 생각나는 바가 있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

       그들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교관을 보았다.

         

       “…잘들 논다.”

         

       다만 이미 저들의 대화를 모두 들은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저것들 언제 사람 될까 하는 표정.

       왜 저리 과대해석 하고 난리일까.

         

       “그래봤자 투기법의 하위호환에 불과하지. 세간에 인정받을 만한 기술은 아니야.”

       “다, 당사자가 그리 말씀하시는 건 좀.”

       “내가 만든 걸 내가 평가하는 건데 어쩌라고.”

       “…….”

         

       창시자가 내린 평가는 엄격했다.

         

       “너희가 말하는 건 결국 몽상이고 이론에 불과해. 나도 이걸 계속 수련하지만, 아직 뭐라고 확답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초인은 무슨! 상상력도 좋다, 각본이라도 써보지 그래?”

         

       “…….”

         

       “너희가 그러니까 애들이 벌써부터 헛바람부터 들이키고 있다. 저 새싹 같은 것들 나대다가 뒤지면 너희가 책임질래?”

         

       “…으음.”

         

       통렬한 비난.

       허나 마냥 틀린 말은 아닌 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솔깃함을 드러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이들이 실제로 제법 많다는 것이 문제이리라.

         

       …이한의 비난에 빠르게 꺼져가긴 했지만.

         

       그렇게 이한은 헛바람이 든 놈들을 엄히 꾸짖었다.

         

       “저딴 개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마라.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 듣고, 투기법을 하루 만에 깨우친 녀석도 늙어죽을 때까지 닿지 못하는 경지가 ‘오러 유저’다. 괜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지는 거야.

         

       유난히 엄격하고, 어딘지 기대감에 불을 끄는 교관이었다.

       허나 왜일까.

       생도 전원은 그의 언변에 주목했다.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진실함이 느껴지는.

         

       오로지 그들을 위한 꾸짖음임을 바보라도 알게 해주어서.

         

       “경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기술이다. 왜냐? 하루라도 훈련을 게을리 하는 순간 약해진다. 결국 신체능력이 기반이 되는 수법이니 감안해야 하는 점이지.”

         

       “그뿐일까, 투기력은 나이가 들어도 어느 정도 완숙해지고 신체능력에 맞게 변화를 꾀하는 데 반해, 경이란 놈은 신체전성기가 지나면 몸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신체능력에 의존하는 기술이 가진 숙명이지.”

         

       “…그렇게 점차 쓸수록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일이 잦아지겠지. 그러니 항상 힘의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무식하게 사용하면 그대로 자멸하기 딱 좋으니까.”

         

       각박하기 그지없는.

       배움의 의지와 미래를 불안케 하는, 의욕을 뚝 떨어트리는 발언의 연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분명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가 말하는 유일무이한 장점이 저 모든 단점을 해소해주는 장점이기에 그들은 눈을 빛내었다.

         

       “재능이 없을지언정 ‘노력과 끈기’란 ‘재능’만 있다면 필히 성과가 따라온다는 걸 내가 장담해주마.”

         

       진솔 담백한 연설의 끝.

       가끔은 저러한 꾸밈없는 언변이 도리어 심금을 울릴 때도 있는 법이었다.

         

       적어도 그들을 속이지 않으리란 믿음을 안겨주었으니까.

         

       “길드나 용병들이 쓰는 투기법처럼 수명이 줄어드는 건 아니란 거잖습니까? 그거면 충분합니다.”

       “감지덕지하군요.”

       “기회가 있다, 언젠가 강해질 수 있다.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저는 족하렵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생도 전원이 진심을 담아 허리를 접고 고개가 땅에 박을 정도로 숙여졌다.

       비록 배우는 과정은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으나, 결국 그는 한참 앞서가는 자들의 뒤꽁무니라도 잡을 기회를 줬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고, 감사한 바였다.

         

       ─진심으로.

         

       “자식들….”

         

       간질거리는 훈훈함.

       저도 모르게 콧등을 슥 훑고 만다.

       나이가 드니 감수성이 생겼나?

         

       애들이 고맙다고 고개 숙이고 있으니 가슴이 찡하다.

         

       ‘이래서 나이를 먹는 건 싫어.’

         

       …눈물이 많아지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한은 제 방식대로 감동을 표현하기로 했다.

       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름 아닌.

         

       “-그럼 이제 익숙해져야지?”

         

       “……?”

         

       “지금부터 남은 10일 동안 매일매일 18대1 대련을 해주겠다. 너희가 경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

         

       쨍그랑, 하고….

         

       분명 근처에 유리도 없거늘 그들의 귓가에는 전구 부서지듯 소리가 울렸다.

       감동이 박살나다 못해 억장 무너지는 소리.

       붉어질 뻔했던 눈시울은 어느새 감쪽같이 소실하고, 그들의 눈은 죽어갔다.

         

       뭐요?

       지금 그런 분위기 아니었지 않나?

         

       “…….”

       “왜 그렇게 보지?”

       “…몰라서 물으십니까.”

       “뭐가?”

       “…공감이 없지 않습니까.”

       “강해지게 만들어주는 것만큼 확실하고 효율적인 공감이 없지 않나?”

       “…….”

       “자, 가자! 일단 대련하기 전 가볍게 100바퀴만 돌자!”

       “……악.”

         

         

       교관, 혹은 교수란 생물은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생물인 법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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