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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가 서울을 덮쳤다.

    전반적인 전자기기 사용 불가, 국지적인 통신 마비를 동반한 현상이었다.

    원인은 빠르게 밝혀졌다.

    강남 한복판에 자기구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한때는 강철탑처럼 공포를 샀고, 한반도에 심각한 피해를 줬던 오브젝트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미 대처 방법이 알려진 오브젝트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특징과 격리 방법이 널리 알려진 자기구는 전용 격리 장치를 가진 요원들에 의해 금세 격리되었다.

    하지만 자기구의 격리실패 사고는 다른 사건을 암시하고 있었다.

    오브젝트 박람회에서 오브젝트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그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촬영된 박람회장의 모습은 처참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오브젝트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버둥거리고 있던 것이었다.

    박람회장에 전시된 대부분의 오브젝트가 격리시설을 탈출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위험도가 높은 오브젝트들을 안전하게 격리중인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박람회였기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었다.

    [이번 박람회를 기획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저런 박람회장에 ‘회색 사신’같은 오브젝트를 출품하다니요? 인과를 명확히 따져서 처벌을  해야 합니다.]

    [박람회장에 <훔치지 않는 도둑.>을 전시할 생각을 한 사람은 살인죄로 잡아넣어야 해요!]

    [<훔치지 않는 도둑.>은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이 너무 높아서 정부에서 특별 관리하던 오브젝트가 아닌가요? 이걸 밖으로 꺼내서 전시하다니요?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TV패널들은 관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전문가들은 이미 박람회장 내부의 모든 사람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90%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박람회장에 전시된 오브젝트 중에 위험도가 높은 오브젝트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드론을 띄워서 박람회장을 촬영한 결과, 사망한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그 사람들 주변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돌아다니는 작은 크기의 회색 사신의 모양을 한 오브젝트가 관측되었다는 점이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게다가 박람회장 내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잠들어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박람회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박람회장을 군대로 봉쇄하는 것에 그쳤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이러했다.

    <현재 당장 군대를 진입 시킬 수는 없다.>

    <박람회장 외곽의 오브젝트의 밀집도가 너무 높고, 화기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오브젝트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가적인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무리한 진입 시도는 더욱 큰 피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어서 신중하게 진입할 생각이다.>

    <정확한 진입 시기는 밝힐 수 없지만, 박람회장에 전시된 오브젝트 리스트를 확보한 뒤, 철저하게 준비하고 장비를 갖춘 뒤 진입 할 것이다.>

    일견 맞는 말 같기는 했지만, 시간을 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답변이었다.

    ***

    한산한 법정 앞을 정정한 노인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섰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오무룡 협회장이었다.

    오무룡 협회장의 재판은 꽤 언론의 주목을 받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관심이 다른 곳을 향해있었다.

    박람회장에 배치된 고위험 오브젝트들.

    박람회장의 격리 실패 사건. 

    강남역 정전 사태. 

    미적지근한 군대의 반응들.

    그러한 현안 이슈들로 관심이 옮겨간 상태였다.

    오무룡이 미리 준비된 차량에 탑승하자, 그 차량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출발했다.

    “어르신.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정도 소란이면 재판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겠군요.”

    “피해자가 너무 적어.”

    쯧쯧, 혀를 차며 오무룡이 말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게나. 피가 좀 더 흐를 필요가 있어.”

    “충분히 시선이 끌렸는데,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까요?”

    “….”

    “네, 알겠습니다.”

    상당히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중년인이지만, 차가운 오무룡의 눈빛에 당황을 지우고 담담히 대답했다.

    ***

    우지끈, 하고 부서진 나무가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나무 주제에 재생력의 수준이 남다른 오브젝트였다.

    [인간이 나무의 악몽을 극복할 것.]

    이런 조건이 있는 건 이미 확인했지만 혹시나 해서 황금나무를 다진 나무로 만들어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효과가 없었다.

    보통의 수단으로 파괴할 수 없는 오브젝트만 아리송한 조건이 붙고, 쉽사리 파괴할 수 있는 오브젝트는 좀 더 직관적인 힌트가 주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머리와 몸을 잘라서 떼어 놓으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 당연히 죽는 조건을 힌트랍시고 알려준다.

    즉, 저 황금 나무는 보통의 수단으로는 죽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럼 힌트에서 알려준 것처럼 악몽을 극복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대충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물을 뿌리고 발로 걷어차 보았지만 전혀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대신 그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던 황금 사신만 화가 잔뜩 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투닥투닥.

    작은 주먹으로 때리는 황금 사신을 쓰다듬으면서 화가 풀리는 걸 기다렸다.

    다행히 황금 사신은 화를 금세 풀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박람회장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뚜방뚜방.

    인간이 나무의 악몽을 어떻게 극복하게 해야 할까?

    나도 같이 잠들어야 하는 걸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둑어둑한 밤이 어느새 아침이 되어버렸다.

    하루살이 황금 사신이의 시간이 소모되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의 수호가 유지되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 사건을 해결하는 편이 좋았다.

    ‘!’

    나무 근처를 벗어나서 꽤 멀리까지 걸음을 옮기던 중, 충격적인 살해 현장을 발견했다.

    ‘안!!!!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죽어버린 사체.

    티라노사우루스가 처참한 상태로 죽어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공룡은 멍청하니까,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황금 사신이에게 갈기갈기 찢겨진 것이다.

    나는 슬픈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박람회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부술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 악몽을 극복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너무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인간이 나무의 악몽을 극복할 것.]

    황금 나무에 손을 대보면 맥동하는 힘이 느껴졌다.

    인간을 잠재우려는 힘의 맥동.

    인간을 대상으로 한 맥동이라 그런지, 오브젝트인 나에게는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만약 이 맥동에 저항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장이라도 잠들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전직 인간’이니까 꿈속으로 들어갔다가 박살내고 나오면 극복으로 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맥동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야가 깜깜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Zzz

    ***

    여론의 질타로 중앙 연구소는 해체되었지만, 관계자들은 그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유령화가 가능한 오브젝트를 가둘 수 있는 연구소.

    위험 오브젝트를 별다른 리스크 없이 가둘 수 있는 연구소.

    비리와 불신으로 얼룩진 연구소였지만, 역시 필요한 연구소였던 것이다.

    ‘아귀 은닉의 발각.’

    ‘직원의 사망 은폐.’

    ‘송파구 붕괴의 원인을 제공.’

    그래도 중앙 연구소를 그냥 부활시키기에는 여론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선택했다. 

    비밀리에 다시 중앙 연구소를 세우자고.

    그리고 그 새롭게 만들어진 비밀 중앙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중앙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아왔단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나에게 말이다.

    “이상하군. 이상해.”

    하지만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중앙 연구소를 다시 세운다고 나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나를 감옥에서 몰래 꺼내오면서까지 필요로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나는 그 제안을 수락해서 지금 이곳에 서 있었다.

    새로운 중앙 연구소 앞에.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임명장.

    중앙 연구소 소장으로 누군가를 임명한다는 임명장이었다.

    30년 전의 아귀 사태로 죽었던, 그 남자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이었다.

    그 남자의 모습을 한 오브젝트를 연구소에 불러오는 것으로 중앙 연구소는 완성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쾅.

    임명장에 찍히는 도장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걸로 그 남자는 소장실에 처박혀서 영문 모를 종이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겠지.

    소장실에 들어서자, 이변이 있었다.

    “!”

    소장실이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소장이 사라졌다.

    ‘아, 이런 이유였군.’

    새로운 중앙 연구소의 부소장 자리가 나에게 넘어온 이유.

    소장 임명이 되지 않는다.

    “하, 하하하하하.”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웃고 있는 입가를 손가락으로 훔쳤다.

    “그 남자가 다시 살아났다.”

    그 남자의 아들이라 그런 걸까,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평생 그 남자를 증오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아마, 나에게 부소장자리를 제안한 자들은 아들인 내가 임명하면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 기대는 빗나가버렸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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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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