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

   “흐악!”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다급히 주변을 살피던 나는 여기가 숙소라는 것을 깨닫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칼이 연금술사를 조지는 걸 보고도 그 놈한테 쫓기는 꿈을 꾸다니.

   

   아무렇지 않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놈한테 죽을 뻔 했던 것이 트라우마로 박혀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손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나의 앞에는 지겹도록 모았던 창 하나와 오늘 처음 보는 창 하나가 떠올랐다.

   

   [아카데미에 입학하십시오]

   [주신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십시오]

   

   주신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라는 건 또 뭐야?

   

   [당신은 아르마디의 사도로 간택되었습니다. 교회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권위를 증명 받음과 동시에 아르마디의 축복을 몸에 새기십시오.]

   [보상 : 아르마디의 권능 중 하나.]

   

   아하. 난 또 뭐라고.

   

   어제 그 허접 주신과 했던 계약과 관련된 내용이구나.

   

   내가 던전에서 구출 된 이후로는 내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 한 번 안 해주더니 이런 식으로 독촉을 하겠다는 거야?

   

   하여간에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허접 주신이라니까.

   

   이런 식으로 귀찮게 굴지 말고 그냥 말을 걸어주면 안 되나?

   

   허접 주신의 행동에 투덜거리고 있자니 두근거리던 심장이 진정이 됐다.

   

   방금 전 나를 위협했던 악몽보다도 허접 주신의 쓸데없는 행동이 더 짜증났기 때문이다.

   

   허접 주신이 노리고 한 건 아니겠지만 도움은 됐네.

   

   난 몸을 일으킨 다음 바깥에 있는 시녀를 불러 들였다.

   

   “잘 주무셨습니까. 루시 아가씨?”

   

   ‘네.’

   “내가 잘 잤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내 말을 들은 시녀는 눈동자를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이마가 땅에 닿을 것처럼 정중한 사과를 건넸다.

   

   얘 왜 이러는 거야?

   

   평소에 항상 하던 인사말 같은 거잖아.

   

   루시가 언제 잘 잤다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고.

   

   <어제 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던 할배가 슬며시 목소리를 냈다.

   

   ‘그게 왜요?’

   <악몽을 꾸었는데 잘 잤냐 물었으니 무례를 저질렀다 생각하는 거겠지.>

   

   아아. 확실히 안 좋은 꿈을 꾼 사람한테 잘 잤냐고 물어보는 건 실례긴 하지.

   

   ‘근데 제가 악몽을 꿨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방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는데 어찌 모르겠느냐.>

   

   내가 일어날 때 질렀던 비명이 꽤나 컸나 보네.

   

   ‘괜찮으니까 고개 드세요.’

   “허접 시녀.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해 줄 테니까 고개 들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가씨!”

   

   시녀는 황송하다는 듯 소리를 치면서 고개를 들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물든 것이 자기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작 난 별 신경 안 쓰는 데 말이지.

   

   ‘그보다…’

   “그보다 허접 시녀. 내가 자는 동안 연락 온 거 없어?”

   

   “하나 있습니다. 아카데미 측에서 방문을 해달라 하더군요. 아마 어제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래? 마침 잘 됐네.

   

   어차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말야.

   

   원래는 주신 교회부터 들리고 소울 아카데미에 갈 생각이었지만 순서를 바꿔야겠네.

   

   어제 던전에서 구조된 후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강해져야 한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해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르마디의 사도가 되겠다고 한 이상 아그라는 지금 이상으로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내 목숨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개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게 닥칠 시련을 해쳐나갈 만한 힘이 필요했다.

   

   당장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을 챙겨두어야 해.

   

   위험에 빠지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해.

   

   살아남기 위해서.

   

   ‘시녀님…’

   “허접 시녀. 허접은 어디에 있어?”

   

   “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바깥에서 대기중입니다.”

   

   평소에 내가 하도 칼을 허접이라고 불러댄 탓일까.

   

   허접이라 했을 뿐인데도 시녀는 찰떡같이 내 말을 알아들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간 이 사람이 내 말의 본 뜻을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럼 시녀를 항상 옆에 두고 내 말을 해석해서 말하게 해달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준비가 끝난 건가요? 잘 됐네요. 바로 나가죠.’

   “그 허접은 주인의 곁에서 떨어지면 어쩔 줄을 몰라하는 강아지인 걸까? 어쨌든 잘 됐네. 준비가 끝나면 바로 나가자.”

   

   아카데미를 털어먹으러 가야 하니까.

   

   *

   

   어제 던전에서 구조된 나는 즉시 사제들에게 이끌려 가선 여러 가지 검사를 맡았다.

   

   무슨 저주를 받은 게 없는지. 외상이 남은 게 없는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나의 안전을 위해 진행된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안 그래도 던전에서 살아남느라 피곤했던 내 입자에서 그 검사들은 실로 고된 일이었다.

   

   중간부터는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고 나서 교회에서 빠져나왔을 무렵엔 이미 하늘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던 하늘을 본 난 다른 무슨 일도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곤 오늘 아침에 악몽을 꾸고 계집애 같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지.

   

   조이와 제이콥은 지금쯤 정신을 차렸을까?

   

   두 사람은 던전에서 구출될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에 나와는 다른 곳으로 이송이 되었다.

   

   교회의 사제들이 어련히 알아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둘을 기절 시킬 적에 내가 때린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야 하지?

   

   그 때 당시엔 최선의 판단을 내린 것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좀 과했던 것 같단 말이야.

   

   커다란 방패로 얼굴을 쳐서 날려버린 거니까.

   

   이게 판타지 세상이 아니었다면 살인 미수였을 걸.

   

   으으. 나중에 세례를 받으려 갈 때 두 사람의 상태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좋으련만.

   

   머릿속으로 생각을 거듭하며 걷고 있자니 나는 어느새 소울 아카데미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소울 아카데미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아카데미의 교수와 사제들이 모여서 무슨 논의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논의를 하는 거겠지.

   

   아카데미에 던전에 아그라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게 밝혀졌으니 그에 대비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기왕에 하는 거 제대로 된 대비를 해주세요.

   

   제가 이 학교에 재학을 하게 되면 비슷한 일이 지겹도록 일어날 건데 그 때마다 이 난리를 칠 수는 없잖아요.

   

   “안녕하십니까. 알른 영애님.”

   

   내가 소울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치려하자 그 옆에 서 있던 경비가 나를 가로 막았다.

   

   “사정청취 때문에 방문하신 겁니까?”

   

   예상은 했지만 어제 던전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부른 건가.

   

   아그라의 저주가 소울 아카데미의 인공던전을 덮친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정보를 원하는 거겠지.

   

   나도 어지간하면 아카데미에서 묻는 것에 답을 해줄 생각이었다.

   

   저들이 대비책을 세우는 게 빠르면 빠를수록 내가 아카데미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지지 않겠나.

   

   “아카데미 3동 2층에 있는 루카 교수의 연구실로 가시면 됩니다.”

   

   ‘…누구요?’

   “허접 경비. 다시 말해볼래?”

   

   “루카 교수의 연구실입니다. 알른 영애님.”

   

   취소.

   

   협력하겠다는 말 취소야.

   

   내가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냥 얌전히 협력을 해주고 말겠지만 그 정신병자랑은 그리 가까워지고 싶지 않거든.

   

   어제 그 미친놈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을 보였단 말야.

   

   근데 내가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직접 이야기해주면 어떻게 되겠냐고.

   

   완전히 그 놈의 눈에 들어버릴 걸.

   

   안 그래도 아그라랑 아르마디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거기에 루카 그 놈까지 추가하고 싶진 않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계획 변경이다.

   

   ‘죄송하지만 전 협력하러 온 게 아니에요.’

   “미안한데 난 이 허접한 아카데미에 협력할 생각이 없거든?”

   

   “그럼 어찌하여.”

   

   ‘항의하러 온 거에요.’

   “항의하러 온 거야. 허접 아카데미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내가 가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짐짓 웃어보이자 경비가 당황하면서 걸음을 뒤로 물렸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는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니 비켜 주시겠어요?’

   “그러니까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줄래? 네 떡대를 보고 있으면 어제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나쁘거든.”

   

   경비는 그 이상 날 제지하지 않고 자리를 비켰다.

   

   루시의 악명에 피해자라는 명분이 더해진 덕분이리라.

   

   그렇게 소울 아카데미의 안에 입성한 나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소울 아카데미 한 가운데에 있는 가장 거대한 건물 쪽으로 향했다.

   

   “루시 아가씨. 어디로 향하는 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교장실이요.’

   “허접한 아카데미 만큼이나 허접할 교장을 만나러 갈 거야.”

   

   이전에 말했던 것이지만 나는 지금보다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할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 노력에도 결국엔 한계가 있다.

   

   난 지금까지도 아카데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육신을 한계치까지 굴려댔다.

   

   지금 이 이상으로 훈련을 거듭한다 한들 더 빠르게 강해질 수는 없다.

   

   포셀이 말하길 지금의 선을 넘어버리면 오히려 몸을 해할 뿐이라 했으니까.

   

   하지만 말야.

   

   이 한계는 어디까지나 육신의 한계다.

   

   육체를 단련하는 대신 다른 걸 단련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단 소리지.

   

   마침 나에겐 따로 단련을 할 거리가 생겨났다.

   

   나는 어제 아르마디와 계약을 함으로써 그의 사도가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교회에 존재하는 여러 유용한 신성마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단 소리다.

   

   다른 마법들처럼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 없이 신에게 부탁을 하기만 하면 마력을 빨아먹고 기적이 펼쳐지는 훌륭한 마법을 말이다!

   

   육신이 회복되는 동안은 신성마법의 숙련도를 쌓고 마력이 회복되는 동안은 육체의 단련을 한다니.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사이클인가.

   

   이쯤에서 아마 의문이 생겼을 것이다.

   

   신성마법을 배울 거면서 왜 아카데미에 왔나 싶겠지.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신성마법이 여타 다른 마법과 계열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간에 마법이다.

   

   사용을 할 때마다 마력을 빨아먹는단 말이지.

   

   당연 마력이 적으면 단련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지닌 마력의 양은 아르마디의 자비를 세 번 사용하면 바닥이 날 정도로 허접하다.

   

   내 단언컨대 이 상태로 단련을 시작하면 채 삼십분이 지나기도 전에 마력이 바닥나서 쓰러지고 말 걸.

   

   이에 대한 해결책이 아카데미에 존재했다.

   

   ‘마력의 샘.’

   

   마력의 최대치와 마력의 회복속도를 늘려줌과 동시에 마력이 성장하는 속도를 늘려주는 소울 아카데미 필수 스킬 중 하나!

   

   원래는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고 나서 교장이 주는 여러 퀘스트를 해결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이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교장과 ‘협상’을 하면 귀찮은 퀘스트를 거치지 않고도 스킬을 얻을 수 있겠지.

   

   부디 교장이 협력적으로 나와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교장의 치부를 건드려야 하니까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적이었던 여자애가 사도가 되다니.

그 쪽도 많이 혼란스럽겠네요.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