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

    <45 – 입학식은 즐거워요>

     

    마침내 입학준비기간이 끝났다.

    대망의 입학식.

    지난 일주일동안은 개방되지 않았던 체육관에 모인 이천 명이 넘는 입학생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오와 열은 내다버린 혼돈 속의 질서를 보여주었다.

     

    ‘줄 꼬라지 실화야? 완전 개판이네.’

     

    친한 사람과 안면 있는 사람 주변에 아무튼 뭉쳐서 원형을 그리는 무리들.

    빛나는 주연과 조연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무리들이 형성되는 가운데, 단역들은 원의 끝자락에라도 비비려고 얼쩡거린다.

    엑스트라들은 그마저도 못하고 외따로 떨어진 소행성마냥 고독한 점이 되어 외딴별처럼 빛나기는 개뿔 그냥 무진장 고독하게 보인다.

    그런 고독함이 부러운 날이 올 줄이야.

     

    “오크노디, 안녕!”

    “새벽구보 왜 안 나왔어?”

    “후훗. 오크노디가 좋아하는 돌핀팬츠라도 입고 나올 걸 그랬나?”

    “어머. 오크노디가 돌핀팬츠를 좋아했어?”

    “입학식이라서 오늘만 특별히 교복을 입었는데 그냥 돌핀팬츠 입고 와버릴걸 그랬나?”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눈웃음을 짓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한 마디씩 말을 건네고 정신을 못 차리겠다.

    멍한 얼굴로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입학생들이 정원에서 꺾어온 꽃이 머리에 다섯 개나 꽂혀 있고, 품에는 간식거리가 잔뜩 안겨있었다.

     

    “인기 많아서 좋겠네.”

    “이런 인기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무리야. 넌 이 애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됐는걸.”

     

    이사벨의 말대로였다.

    지금도 거리를 두고 모여든 B그룹 입학생들의 시선이 호시탐탐 A그룹을 노리고 있다.

    중앙과 변방.

    제국과 왕국들.

    문명인과 야만인.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자 타인의 열등함을 끝없이 검증해야만 속이 풀리는 이들의 눈이 심상치 않은 기색을 띄고 있다.

     

    “나도 만지고 싶었는데.”

    “진짜 귀여워 보인다. 그치?”

     

    [번잡한 실내에서 먼 곳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정확히 식별해냈습니다.]

    [감각집중 경험치+3]

     

    …막상 엿들어보면 다른 의미로 심상치 않았지만.

    저런 반응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저 아이가 롯토를 몰아붙였다던 A그룹 수석… 확실히 변방에 있기에는 아까운 재목이네.”

    “남아도 아닌 여아의 성취가 가문의 견습기사들을 웃돈다니. 천부적인 재능이란 저런 것인가?”

    “그래봤자 힘없는 일개 평민일 뿐이야. 황녀님의 은혜에 보은하려면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치울 뿐이야. 설령 그게 A그룹 수석이라 하더라도.”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호적수로 손꼽히는 청색마탑주의 제자 스노우빌.

    동방검객 싱에 버금가는 강자이자 신성중앙제국에 귀순한 몰락무가의 후예, 혁무린.

    자신의 파벌과 함께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성중앙제국 2황녀의 추종자, 아냐.

     

    ‘엄청 미움 받고 있네.’

     

    제국귀족들을 적으로 돌린 탓인지 특히나 아냐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벤트 <시종의 도전>은 무조건 발동하겠어.

    그렇지만 청력에 집중했던 것은 날 향한 목소리들을 듣기 위함만은 아니다.

     

    데에엥-

     

    귓가에 들리는 종 울리는 소리.

    시간이 됐다.

    입학식의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군요. 기프트 아카데미의 명물.’

     

    체육관의 곳곳에 자리한 교관들.

    입학생들을 쳐다보던 그들의 눈이 번뜩이더니 모두가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펜과 사소한 흠결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며 벼르는 시선.

     

    “오크노..”

    “쉿.”

     

    뭣 모르고 말을 거는 이사벨에게 주의를 줬다.

    그 잠깐 사이에 이쪽을 바라본 교관만 셋이다.

     

    힝. 한 번만 봐주면 안 돼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니 교관들이 눈길을 돌렸다.

    이걸 진짜로 봐주네.

    근육거한남캐 시절엔 어림도 없었는데.

     

    “저기 교관들. 아까부터 뭘 적는 거야?”

    “계속 이쪽을 보고 있어.”

     

    누구도 말 한 마디 주의를 주지 않았지만 차츰 떠드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전투적으로 수첩 위를 춤추던 펜들의 움직임이 멎은 것은 모든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뭔가 조진 거 같은데? 하는 시선을 주고받은 뒤였다.

     

    -세계제일의 인재를 모아오라고 했더니 이번 기수는 악단에서 단체출장을 나왔나? 세계제일의 음유시인마냥 재잘재잘 수다가 끝나질 않는군!

     

    단상 위에 번쩍 하고 내리치는 섬광.

    입학생들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용의 머리가 단상 위를 가득 채웠다.

     

    “드래곤이다!”

    “요, 요, 용이야!”

    “세상에!”

     

    세속의 일에 관심이 많은 초월자.

    인간세계에 개입하는 유일한 드래곤.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장의 등장이었다.

     

    -귀는 먹었어도 눈은 똑바로 달려있구나. 그렇다. 너희들의 교장은 세계최강의 초월종이자 현세에 활동하는 유일한 드래곤이다.

     

    학생들은 열광했다.

    전설로나 전해지던 드래곤을 실물로 보게 되다니.

    감동에 벅찬 건 좋은데…

    이 사람들, 중요한 걸 잊고 있다.

    전설속의 드래곤들은 시기와 국가에 따라 조금씩 특징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멍청한 수다쟁이들과 지각생들에게 감점을 백만 점은 때려 박을 수 있는 폭군이지. 아카데미에서는 내가 법이니까.

    “…….”

     

    드래곤은 성격이 나쁘다는 것!

     

    -농담이다. 소지 포인트가 만점을 겨우 넘긴 입학생들에게 백만 점 감점은 너무 가혹하지.

    “휴.”

    -세계제일의 아카데미의 교장으로서 자비를 베풀어주마. 십만 점 감점이다.

     

    지각생 한 명이 물었다.

     

    “이것도 농담이신가요?”

    -현실을 부정한들 너희가 전 재산의 열배에 달하는 감점을 받고 파산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 모자란 열등생아!

    “…….”

     

    거대한 얼굴이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소리치니 박력이 보통이 아니다.

    파산부터 시작하는 아카데미 생활에 넋이 나간 감점자들 덕분에 나머지 입학생들은 신분과 강함, 자신감을 떠나 평등에 눈을 떴다.

    교장이 드래곤인 것보다 수다 한 번과 지각 한 번에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긴장감을 줬나보다.

     

    ‘조용히 있길 잘했죠?’

    ‘덕분에 살았어.’

     

    이사벨은 나 덕분에 살아난 줄 알아야해.

    뭣 모르는 플레이어들이 수다쟁이 친구를 사귀어서 입학식부터 친목을 도모한답시고 감점폭격을 당할 때 받는 충격이란.

    골 때리게도 그렇게 사귄 친구는 너 때문에 감점 당했다며 입학식 끝나자마자 호감도가 나락으로 간다.

     

    ‘학칙에 어긋나는 선택지는 대부분이 저런 기가 막히는 함정으로 이어졌지.’

     

    참고로 경비초소 침입도 감점폭격을 받을 수 있는 사유 중에 하나다.

    그걸 <숨기> 기능 하나로 회피했으니, 숨기 기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운빨로 아카데미에서 졸업하기>.

    게임의 억까요소에는 숨은 학칙 파악하기도 있다.

    실수로라도 규칙을 위반했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사항은 위반사실을 교관에게 걸리지 않는 것!

    숨기는 아카데미 졸업을 위해서는 언제 어느 때에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기본기이다.

     

    -1분 19초. 너희가 입을 다물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역대 기수들을 통틀어서 순위권을 다투는구나.

    “저희가 입을 빨리 다문 편인가요?”

    -그래,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헤헤.”

    -자랑스러운 기프트 아카데미 역사상 최악의 꼴통기수 순위권에 오른 것이 뿌듯하다면 말이다.

    “……….”

     

    멍청한 입학생들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세계제일의 초월종에게 역대 최저의 멍청이라고 욕을 먹는 참담함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궁금함이 많을 거다. 드래곤이 어째서 아카데미의 교장 노릇을 하는지. 앞으로 너희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인간은 호기심의 생물이니까.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주마. 나는 인간들의 문명에서 유익한 문화를 배웠고, 그것을 이 아카데미에 도입하였다. 바로 화폐제도다.

    “??”

    -자본을 움켜쥔 국가가 세계제일로 거듭나기 마련이니. 세계제일의 인재로 거듭나고 싶은 자, 아카데미의 화폐인 <포인트>를 모아라.

    -아카데미 외부에서 들여온 물품의 소지허가 및 사용허가, 교내시설이용 및 특수시설의 출입허가, 이 모든 것이 <포인트>를 지닌 자에게 허락되니.

     

    드래곤 교장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참고로 본가에 도움을 요청하여 금화를 받아온다면 포인트로 환전해줄 수도 있다!

     

    제국의 두 황녀 중 순한 성격의 3황녀가 넋 나간 얼굴로 손을 들었다.

     

    “뇌물을 달라는 말인가요?”

    -물론이다. 이 아카데미는 너희 하찮은 필멸자들이 지닌 금은보화를 받아내기 위해 존재하니까. 세계제일의 인재양성은 겸사겸사 하는 것이다!

     

    교장의 충격적인 연설에 넋이 나간 황녀와 제국귀족, 수많은 조직과 기관, 단체의 실력자들.

    이 순간만큼은 그룹과 신분, 소속조직을 막론하고 모든 입학생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생각했다.

    직업윤리는 내다버린 교장 밑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결정일까, 라고.

     

    -아카데미의 학생은 오직 <포인트>만을 생각해라.

    -포인트를 주는 교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포인트가 줄어드는 학칙에 위배되는 금기행동을 위배하지 마라.

    -신과 악마의 추종자들도, 신비와 지혜의 추종자들도, 냉병기와 화기의 추종자들도, 어떠한 비밀스러운 조직의 추종자들도 예외는 없다.

    -나의 탐욕, 나의 화폐보다 존귀한 진리와 지혜는 이 아카데미 아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태산처럼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드래곤 교장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짓눌릴 것만 같은 엄청난 마나의 압박감 저편에서, 문득 교장의 눈이 몇몇 재능의 원석들에게 스치는 것이 보였다.

     

    ‘원작게임에서는 이때 교장의 부름을 받은 애들이 주연급 캐릭터였지?’

     

    주연은 입학식의 날을 원동력삼아 최고의 인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부름을 받지 못한 조연들은 이를 시기하며 질투하거나 경외심을 품는다.

    단역은 그런 조연의 발치라도 따라잡기에 급급하고, 엑스트라들은 유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그래봤자 NPC들을 위한 이벤트.

    플레이어인 나와는 동떨어진 어딘지 먼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흠칫.

    쭈뼛.

     

    부름을 받은 주연들이 한 명씩 뻣뻣한 반응을 보이며 교장의 전언을 들었다는 티를 낸다.

    빛에 휩싸여 사라져가는 드래곤 교장.

    그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마냥 눈부시다고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과 같은 입장이 된 것에 아쉬움인지 홀가분함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던 도중이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손버릇 나쁜 어린 것아. 네게도 마찬가지임을 잊지 말라.

    “!!”

     

    잠깐이지만 분명히 뇌리에 남았다.

    드래곤 교장의 눈이 내게도 닿았고, 다른 이는 듣지 못할 주연들을 위한 말이 내게도 전해졌음을.

    선택받은 24명의 아이들.

    주연급 플레이어블 캐릭터.

    그 말석에, 원작게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25번째 아이로 내가 지목되었다.

     

    파앗.

     

    드래곤 교장이 사라지며 끝난 입학식.

    입학생에서 신입생이 된 넋 나간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생각했다.

     

    ‘손버릇 나쁜… 이거 들킨 거지? 스탯석 훔치고 다닌 거 들킨 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게 들키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