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

       4월에 접어들자 춘곤증이 교실을 덮쳤다.

         

       특별반이라고는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눈치를 보지 않는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처박고 단잠에 빠졌다.

         

       에테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자신의 권유로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화계마도시간이 되면 에테르는 선생님의 눈치조차 보지 않고 책상과 한몸이 되어 꿈나라로 향했다.

         

       ‘못 말린다니까.’

         

       그런 에테르를 로테가 몇 번이고 깨워봤지만 소용없었다. 성적이 자기보다 좋기도 했으니 굳이 깨워야 할 생각도 안 들었다.

         

       ‘그래, 알아서 잘 하니까.’

         

       이윽고 수업 종이 울리자, 하스펠트 교수는 로테를 시켜 교보재를 교무실로 나르게 했다. 비품실을 간단히 청소하고 나온 로테에게 하스펠트 교수가 화두를 던졌다.

         

       “살리에르 양, 혹시 플레어라는 마도에 대해 알고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로테의 걸음걸이를 멈추기에 충분한 단어를 품고 있었다.

         

       “플레어요?”

       “네, 화계마도에 재능이 있는 당신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겠죠.”

       “하스펠트 선생님이 계신 가문에서 틈틈이 연구하던 극강의 화계마도라고 들었어요.”

         

       플레어의 제반 이론은 하스펠트 교수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스펠트 가문에서 비원처럼 개발하려던 마도, 그게 플레어였다.

         

       “잘 알고 있군요. 그 플레어가 아직 미완성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그래요, 살리에르 양, 절 도와서 플레어를 개발해 볼 생각은 없나요?”

       “네?”

         

       로테는 제 귀를 의심했다.

         

       “당신이라서 특별히 얘기해주는 거예요, 로테. 살리에르 백작가도 화계마도에선 꽤 명망 있는 집안이잖아요?”

       “…….”

       “보수라면 웬만큼 드릴 수 있어요. 플레어는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마도에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로테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에겐 이미 다른 사람과 협업하기로 한 일이 있었다.

         

       하스펠트 교수는 그런 로테의 낌새를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끝까지 도와달라고는 말 안 해요. 적어도 이번 주 주말에 시간을 좀 내줬으면 해서요. 저 혼자 실험하기엔 어려운 일이 있어서요.”

         

       그 말뜻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로테도 잘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에테르가 만들어 둔 플레어 발생기에 대규모로 마력을 공급한 게 자신 아니었나. 그땐 마력초를 몇 개비씩 소비했으면서도 마력 고갈 증상이 나타났을 만큼 위험했었다. 그만큼 플레어에 쏟아부어야 하는 마력량이 상당함을, 로테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로테가 하스펠트 교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덴 이유가 존재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땐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어서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중간고사 끝나고 얘기하도록 해요.”

         

       로테는 고개를 숙인 뒤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야.’

         

       플레어를 개발하는 사람이 둘이라니. 심지어 그 두 사람 모두 로테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다는 것에, 로테는 충만함을 느꼈다.

         

       ‘중간고사 끝나면 하스펠트 선생님도 도와드려야겠다.’

         

       노블리스 오블레주. 높은 사람은 마땅히 그 지위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말뜻에는 비단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말이 아니었다.

         

       귀족과 귀족, 귀족과 나라. 플레어의 개발은 곧 마수를 박살내는 것이었으며,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승리는 곧 민생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중간고사 준비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까지. 할 일이 산더미였다. 로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숙사로 향했다.

         

       **

         

       며칠 뒤.

         

       “준비됐어?”

       “해볼까?”

         

       부실에 커다란 마전지가 깔렸다. 그 위로는 원환면 형태의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공간이동진’이라 불리는 마법진이었다.

         

       공간이동진 위로 플레어 발생 장치와 몇 가지 추가 장비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도 공간이 남아서, 사람 다섯 명 정도는 마법진 위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공간이동진은 버멜이 준비했다.

         

       “목적지는 엘랑카야 산맥 최북단이야. 준비 단단히 해.”

         

       위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 탓에 우리는 목표 지점에 가기 전부터 겨울옷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더워어어어!!”

         

       파앗!

         

       프레이의 그 말을 끝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끝없는 설원이 펼쳐졌다. 그 위로 솟아오른 암반은 최소 한 면이 절단난 상태였다. 수억 년 동안 갖은 풍파를 맞으며 형성된 누나타크 지형이었다.

         

       저런 암반이 보인다는 건, 곧 여기가 엘랑카야 산맥의 최북단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저 너머부터는 과학적으로 ‘육지’라 부를 만한 공간이 아니리라.

         

       “추워어어어!!”

         

       눈보라가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다행히도 그 세기가 심한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엘랑카야 산맥 북부의 평균 기온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소리였다.

         

       어…. 생각보다 그리 춥지는 않은데.

         

       “이럴 줄 알았어.”

         

       버멜이 공계마도로 플레어 격발장치를 감싸놓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실험장비가 얼어붙었겠지. 한시라도 빨리 실험을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실험할 수 있겠어?”

       “장치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야. 프로시딩할 때 쓸 참고 자료랑 데이터 시트지만 안 잃어버리면 돼.”

       “꾸물대지 말고 준비해! 일부러 재앙급이 드글거리는 곳으로 온 거니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틸레트로 돌아갈 공간이동진을 다시 짜 넣는 것이었다. 버멜의 실력으로는 그리는 데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단 도주로는 확보였다.

         

       다음은 카메라를 준비한다. 카메라는 혹시라도 있을 학회 발표에 가져갈 실물 자료를 제출하려는 목적으로 들고 왔다.

         

       곧바로 실험 장비를 세팅한 뒤 로테와 프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걸려던 찰나였다.

         

       “야! 한 마리 온다!”

         

       색적을 하고 있던 프레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땅울림이 점점 심해졌다. 지면이 흔들거려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뭐가 오고 있다는 감각은 느껴졌지만, 그 실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보들아! 아래쪽이야!”

         

       콰앙, 하는 소리가 일어나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땅을 찢고 튀어나왔다. 바닷가재처럼 생긴 녀석이었는데, 양 집게가 시뻘겋게 달궈져 있었다.

         

       어느 마수가 그렇듯이, 이 녀석도 몸에 철갑을 두른 채였다. 몸통 부분에는 LED 램프라도 달아놨는지 곳곳이 은은한 푸른빛을 띠었고, 전체적으로는 회색빛이었다. 두 눈은 필라멘트 전구가 내는 색깔을 닮았다.

         

       아니, 이따위 묘사는 좆도 필요없다.

         

       크다. 어림짐작으로 보건데, 집게 하나만 봐도 3m에 육박하는 크기였다. 몸통은 어지간한 아파트 수준이었다. 그 격차만으로도 전신의 털이 곤두세워졌다.

         

       “미친!”

       “빨리 준비하자. 시간 없어!”

         

       녀석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녀석의 집게발이 붕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것으로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이 사방으로 튀었다.

       

       “플레어 시준까지 얼마나 걸려?”

       “일 분… 아니, 30초만 버티면 돼!”

         

       지난 며칠간 추가 개량을 거치면서 플레어를 만들어내는 실험장비는 어느 정도 경량화가 된 상태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레이저 포인터를 켜고 끄듯이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예열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마력을 쏟아붓고도 잠깐을 기다려야 했다. 명중시키려면 난이도가 더 올라갈 테고.

         

       명중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아무 곳에나 쏴도 맞을 테니까.

         

       “프레이! 시간 좀 벌어줘!”

       “여기 온통 눈밭인데 시간을 어떻게 벌어! 난 지계마도사라고!”

       “이 빡대가리 꼬맹아! 눈 밑에 암반 있을 거 아냐! 그걸 쓰라고!!”

       “엑.”

         

       아, 진짜 답도 없네.

         

       그래도 프레이는 곧바로 반응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찢고 올라온 바윗덩어리가 가재의 집게발을 막아섰다.

         

       연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저 강철 가재가 연신 집게를 휘두르는 바람에 플레어를 준비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뭔가 했더니, ‘호마루스’잖아…! 이 녀석, 재앙급이야!”

       “뭐, 그럼 큰일 아니야?”

         

       제아무리 명문 틸레트라고는 해도, 아카데미 1학년생이 재앙급 마수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도 프레이가 겨우 집게발을 막아내고 있었다.

         

       빙의자인 버멜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엘프는 당장 공간이동진을 보호하느라 공격에 전념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오히려 재앙급이라니 환영이야.”

         

       기존의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플레어로 재앙급을 단번에 진압할 수 있는지가 이번 실험의 성패를 좌우한다.

         

       “됐어!”

         

       시준이 완료됐다. 프레이는 마지막 방벽을 전개한 뒤 곧바로 사탕 하나를 물었다. 마력초보다 비싸다는 마력 제공 식품, 마력사탕이었다.

         

       영하 20도의 눈보라 속에선 마력초에 불을 붙일 수 없었기에 마력을 잔뜩 응축해 놓은 또 다른 기호식품을 들고 온 것이었다. 프레이가 만들어놓은 장벽이 깨지자마자 나와 로테는 스크롤을 호마루스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호마루스의 눈과, 플레어를 담은 스크롤이 일직선으로 놓였다. 빔이 집속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집게보다도 더 새빨간 광선이 격발됐다.

         

       다음 순간, 눈보라가 멈췄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