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

       *

        

        

        얀스크 대학 기사학부의 현장 실습이 마족에게 테러 당했다. 이 문장이 방첩사령부에 전해졌을 때, 드미트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 새끼 감봉시켜.”

        “예, 중령님.”

        

        

        대학의 행사에 대해선 방첩사령부에서도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실습 현장의 안전 대책 또한 완벽할 정도로 준비 되어 있었다.

        

        왕세자파, 음. 지난 사건 이후에 조용하고.

        

        외국의 반정부 단체들. 팔다리 다 끊어진 병신들이 뭘 하겠나.

        

        하물며 마족? 그 녀석들이 이곳, 프리첸카야 인근까지 작전 세력을 투입할 여력이 남아 있을 리가 있나.

        

        따라서 객관적인 증거와 합리적인 추론 끝에 드미트리는 얀스크 대학에 위협 요인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머저리가 수도에 테러 조직을 심어 두고 대학 행사를 말아먹으려 든단 말인가.

        

        그 시간에 왕궁을 폭파시키고 말지.

        

        하물며 엔리케가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실시하는 실습현장에? 하하, 모자란 것들. 저런 것들도 봉급 꼬박꼬박 받아 처먹는단 말인가?

        

        

        그 결과, 세 번째 정보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드미트리는 마른 세수를 하며 껄껄 웃고 말았다.

        

        

        “…날 감봉시켜라.”

        “예, 중령님.”

        

        

        돌겠군.

        

        그는 외투를 챙기고 사령부를 빠져나갔다. 선배님을 만나러 가야 했다. 현장에 직접 나가 있으셨다니 뭔가 아는 것이 있으시겠지.

        

        

       *

        

        

        “있잖아, 에시.”

        “응, 맞아.”

        “아직 얘기 시작도 안 했는데.”

        “그 얘기 지금 네 번째 듣고 있단다.”

        

        

        에시디스는 심각한 얼굴로 이자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현장 실습 테러 소식이 대학 전체에 퍼졌을 때, 그녀는 그녀의 오랜, 그리고 거의 유일한 친구를 찾아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집에 도착하고 보니, 테러에 휘말렸던 피해자의 모습은 찾을 수도 없다.

        

        그녀는 부러진 목검 대여섯 자루 옆에서, 새 목검으로 허수아비 하나를 아작내고 있었다.

        

        수상할 정도로 수염에 세밀한 묘사가 들어간 허수아비가 이자벨의 일격에 박살나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들어봐. 내가 진짜 막 정신 나갈 것 같구 혼란스러워서 그래.”

        “…으응….”

        “그니까, 이건 친구 얘긴데.”

        

        

        에시디스는 ‘너 나 말고 친구 없잖아.’ 라는 냉혹한 팩트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에 간신히 멈췄다.

        

        그녀는 이렇게 친절하고 섬세한 음대생이다.

        

        

        “막 위험할 때마다 어디서 나타나서 구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비밀 얘기도 공유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봐.”

        “그거 되게 구체적인 가정이네….”

        “그럼 그 남자는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있어?”

        

        

        막시밀리앙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실종 4년이면 대한민국에서도 사실상 사망자 처리를 하는 이유와 같다.

        

        그러니 이자벨은 비공식적인 편부모 가정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평민이었으므로, 그녀에겐 틸레스 궁정이 제공하는 호의를 제외하면 특별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없다 하겠다.

        

        진짜 고아인 유리가 들으면 가슴을 치며 억울해할 일이었지만, 어쨌건 이자벨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진짜 가난한 유리가 들으면 가슴을 치며 억울해할 일이지만, 에시디스의 입장에서 이자벨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다. (이자벨에겐 마당 딸린 2층집이 있다.)

        

        에시디스는 일국의 공주다. 에이나르 대왕의 장녀이며 그가 가장 아끼는 자식이었다. 집 한 채 가격의 악기로 도적의 머리를 후려쳐도 타격이 없을 부자였다.

        

        그러므로 이 둘의 대화는 기묘한 이해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이자벨한테 접근해서 뭘 뜯어낼 것이 없을 테니까. 저건 꼬시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이들의 결론이 이렇게 내려졌을 때, 이자벨은 가슴을 치며 억울해했다.

        

        

        “그런데 왜 밥 먹자고 할 때마다 싫다고 하냐고!”

        “친구 얘기 맞지?”

        “아니 들어봐. 10살이나 어려, 예뻐, 착해, 공부도 잘하고 실기도 잘하고, 거기에 생활력도 좋은 여자애를. 좋아한다면서 왜 밀어내?”

        “그 친구를 되게 자기자신처럼 아끼나 보구나….”

        

        

        보통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사태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확증편향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에시디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내가 한번 알아봐 줄게. 마침 우리 삼촌이 그 아저씨랑 친한 사이라고 했거든. 혹시 모르잖니. 엄청난 바람둥이라 이 사람 저 사람 꼬시고 다니는 사람일지도.”

        

        

        그 정도였나? 이자벨은 냉정하게 이반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바람…? 여기저기 여자들을 홀리고 다녀…?

        

        음. 하관을 가리고 보면 그럴 만도… 그럴 수도 있나? 그래, 그럴 것 같긴 해.

        

        이자벨은 혼란에 빠졌다!

        

        슬프게도 이들을 적절히 저지해줄 유리는 지금 신학부 입원실에 누워 있었으므로, 미친 도끼 존윅은 여자를 만날 시간에 열 명을 더 죽인다고 설명해줄 사람이 이 자리엔 없었다.

        

        

       *

        

        

        이반의 하루는 분주하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대학에 출근해 가로수를 관리하고, 용사 자제들을 경호하고, 당일의 보고서와 고아원의 회계원장을 정리한 다음에야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휴식은 보통 병장기의 손질이다. 도끼날에 솜털이 소리 없이 잘려나갈 수준까지 갈아내고, 총기를 분해해 세척한 뒤 기름까지 먹인 후 소파에 기대 앉아 잠시 눈을 붙인다.

        

        그것이 이반의 하루였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실습 테러 사건 발생 이후 며칠째, 엔리케가 그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농성하는 까닭이다.

        

        

        “엔리케. 이젠 집에 돌아가라.”

        “무슨 소리야. 내가 약속 했잖니. 불침번, 응? 불침번 버려? 동료애 없어?”

        “…그냥 출근하기 싫은 것 아닌가?”

        “스승님은 슬퍼요. 어린 이반은 내가 뭐라 하든 다 믿어줬었어요. 내 이반을 돌려줘.”

        

        

        엔리케는 지난 실습 테러 사건 이후부터 고아원장실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중이었다.

        

        대뜸 50여 명의 귀족 자제들을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만든 장본인이다보니, 사방에서 이를 갈며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던 탓이다.

        

        

        “난 억울해. 아니, 나라고 알았겠니? 난쟁이들이 갑자기 들이 닥칠 거라고 예상하는 자식이 있으면 그놈 잡아다 고문 해봐야해. 쁘락치야.”

        “그렇군.”

        

        

        순식간에 마족 쁘락치가 된 이반은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그리고, 응? 괜히 다들 책임지기 싫으니까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 아냐. 어른이 덜 됐어.”

        

        

        책임지기 싫은 어른이 할 말은 아니다.

        

        이반은 그 자신이 설령 한 세기 넘게 살게 되더라도 저런 모습으로 늙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음. 내가 막 책임을 통감하고 퇴직하겠다고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 이젠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음.”

        “여행이나 갈까? 바다 어때. 산은 싫은데.”

        “왜 나도 같이 가는 것처럼 들리지?”

        “그야 너도 같이 가니까?”

        

        

        이반은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므로 1세기 전 노인의 주접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엔리케의 찻잔을 빼앗아 들며 말했다.

        

        

        “어차피 학부 측에서도 네게 별다른 책임을 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말 그대로 사고였으니까.”

        “그, 그렇지?”

        “그래. 애초에 책임 소재는 방첩사령부에 있겠지. 적성 세력의 침투를 사전에 저지하는 것이 그 치들 업무가 아닌가.”

        “틀린 말이… 아니야!”

        

        

        엔리케는 박수를 치며 일어섰다. 이렇게 단순한 것을 그녀가 깨닫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그냥 단순히 위로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반은 노인을 공경할 줄 안다. 이 미개한 세상과는 달리 대한민국엔 윤리와 도덕, 사회규범, 그리고 장유유서의 유교관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가 이렇게 공손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젠 돌아가라. 나도 할 일이 많다.”

        “아이고 그러세요. 우리 바쁜 제자님 시간 뺏어서 진짜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아!”

        “아무렴.”

        

        

        성 바실리샤 고아원은 그가 평생 일궈온 인맥과 자산을 모조리 쏟아내 만든 그의 역작이었다.

        

        이곳을 흡혈귀 노인을 위한 요양원으로 만들 계획이 없던 이반은 세상 상처 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엔리케를 원장실에서 쫓아냈다.

        

        

        “아, 참. 바다 간다는 건 농담 아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체험 학습. 그런 거 한 번 더 해볼까 싶더라구! 안 그래도 왕정 쪽에서 슬쩍 찔러 보던데?”

        “왕정에서?”

        “그렇다니까. 왜, 크라실로프가 좀 관광 산업이 부실하잖니. 대학 학생들이면 다 대귀족가문이고 나중엔 각자 한 자리 할 녀석들인데. 미리미리 홍보도 좀 하고 그러려나 봐. 국책 사업인 셈이지!”

        “…관두는 편이 나을 텐데.”

        

        

        취지는 알겠지만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아카데미 단체 관광은 반드시 끔찍한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바다라면 어인이나 크라켄 같은 기묘한 족속들이 개연성 없게 튀어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반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는 마족 쁘락치나 예언자 같은 취급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의 ‘상식’을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정도의 소양은 가지고 있었다.

        

        그는 떠나는 엔리케를 대충 배웅한 뒤에 자리에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좀 쉬겠군.

        

        그는 심신 안정을 위해 도끼를 꺼내 들고, 기름 먹인 천으로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

        

        이반이 애착 도끼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때, 에시디스는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자신의 삼촌을 비밀리에 접선해 첩보를 취득하고 있었다.

        

        

        ‘엔리케 교수와 사흘 간 같은 방을 썼음…?!’

        

        

        에시디스는 이 충격적인 정보를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엔리케 교수라면 아버지의 친구, 용사 파티의 일원이 아닌가!

        

        에시디스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학에서야 얌전하게 교수처럼 다니지만, 그녀의 본질은 흡혈귀다.

        

        그녀가 현역일 당시에 그녀에게 반했던 군인들이 한 전선을 통틀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뇌쇄적인 마력의 미녀, 그녀는 내심 그 시절 엔리케를 동경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엔리케와 비교된 순간 이자벨에겐 가능성이 너무 적다. 어리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용사 파티의 영웅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에시디스는 친구의 슬픈 사랑을 떠올리며 훌쩍였다.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어른들의 추악한 연애 놀음(아니다.) 사이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벨라는 모르게 해야 해….’

        

        

        친구를 적극적으로 꼬신(아니다.) 사람이 사실 대학 교수와 정기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맺는(아니다.) 끔찍한 바람둥이(오해다.)라는 사실을 담담히 털어 놓을 만큼, 에시디스는 대담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깡깡이 3세(바이올린, 1개월)를 꽉 움켜쥐며 맹세했다.

        

        저 남자를 자기 선에서 처리하기로.

        

        드로안의 전사는 친구와 형제를 위해서라면 손에 피를 묻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드로안 최고의 전사, 에이나르 대왕의 딸이다.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간악한 악적을 처단하기로 맹세한 정의로운 전사가 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어제 후기에 날짜를 잘못 적었더라구요.

    어제, 오늘, 내일까지가 예비군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아웃소싱 직원이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면 공가 처리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말 놀라움의 연속. 그것이 좆소다.

    절대로 공장에서 일을 하지 마!!!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