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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몇 번의 대본 리딩을 끝내고, 드디어 본격적인 무대 연습을 앞둔 시기.

       현재는 대본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더 바빠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나는 되도록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 들어간다?”

       “응.”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이지연을 곁눈질하며 적당히 마실 차를 준비했다.

       학교에서는 자주 나와 붙어 다니는 이지연이었지만, 정작 우리 집에 온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밖에서 만났고, 오히려 내가 지연의 집에 가는 편.

       

       ‘좋아.’

       

       여태까진 계속 망설였지만, 이번 세븐 라이브 3기생의 발표를 보곤 마음먹었다.

       적어도 한 번쯤은 말은 해보기로. 

       혹시 관심을 보일지 어찌 알겠는가.

       

       ‘배우 일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 많이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가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얼굴인데.”

       “너무해.”

       

       살며시 눈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지연이 양손으로 내 얼굴을 주물럭거렸다.

       

       “표정 변화는 없는데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야. 너 또 해괴한 생각하지?”

       “해괴한 생각이라니.”

       “너는 가끔 진짜 엉뚱한 발상을 하잖아.”

       

       누가 들으면 크게 오해할 말이었다.

       나는 이래 보여도 친구가 없는 걸 빼면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 으음, 여고생 맞지.

       

       “어머나, 지연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으흫, 그래, 진짜 서연이는 지연이 없으면 어쩔 뻔했니.”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과일 좀 사온다며 부랴부랴 옷을 입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놀고 있는 동안 과일이라도 깎아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너희 엄마.”

       “응.”

       “가슴 더 커지신 거 같아.”

       “……설마.”

       “그리고 전에 뵈었을 때랑 변함이 없으시네. 울 엄마가 보면 슬퍼할 거야.”

       “너희 어머니도 젊으시잖아.”

       

       그렇게 말하는 지연의 어머니도 상당히 외견은 젊으신 편이었다.

       

       “울 엄마는 피나는 노력이 들어간 거지. 나중에 아줌마한테 피부 관리 어떻게 하시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딱히 피부 관리를 한 적이 없다.

       그냥 자기 전에 가끔 팩을 해주는 정도?

       

       정말 무서울 정도의 동안이긴 했다.

       사실 정말 신기한 건 엄마가 아닐까?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평소처럼 영화나 볼래?”

       

       지연은 그리 말하며 커다란 TV를 향해 눈짓 했다.

       나와 지연은 보통 단 둘이 있을 때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라기 보단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토론을 하거나 연습을 해보는 자리였다.

       이지연은 이지연대로 배우에 진심인 터라, 여유만 되면 내게 연기에 대해 틈틈이 물어왔으니까.

       

       정작 연기 경력은 이제 본인이 더 김에도.

       

       “오늘은…….”

       

       나는 먼저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틀었다.

       

       “…….”

       

       그리고 거기서 손가락이 멈췄다.

       본래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요즘 이런 게 있다더라’ 하면서 버튜버 영상을 슬쩍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럼 이지연이 어떤 반응을 보일 테니 거기서 자연스레…….

       

       자연스럽게…….

       …….

       …음.

       

       ‘이거, 쉽지 않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멀뚱멀뚱 나를 보는 지연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게, 이거 이상하지?

       여기서 갑자기 버튜버 영상 틀면 뭔가 이상하잖아?

       

       ‘정신차려, 주서연. 버튜버가 부끄러워?’

       

       조금,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처음으로……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도 그럴 게 이지연은 애니메이션 같은 것도 연이 없는 진짜배기 인싸다.

       도무지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되지 않으니 쉽사리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지연이 그저 조금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나의 소박한 바람이 여기서 끝나나.

       

       “주서연.”

       “어, 응?”

       “……너 알고리즘에 왜 이렇게 이상한 게 많아?”

       

       TV에 뜬 유튜브는 당연히 내 아이디로 로그인 된 상태였다.

       당연히 주로 내가 자주 보았던 것들이 떠있다.

       

       당연히 그 중엔, 버튜버 관련도 있었다.

       

       “이거 그거네, 버튜버.”

       

       움찔.

       

       나는 차마 맞다고 대답도 못 하고 몸을 움찔 떨었다.

       근데 어떻게 안 거지? 

       알고 있으면 좀 더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던 순간.

       

       “저런 거 봐?”

       

       친구에게 들었을 때 가장 무서운 대사 탑3 중 하나가 이지연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열던 입을 닫았다. 

       그리곤 그저 움찔움찔 경련만 하고 있자, 이지연은 아, 하는 감탄사를 내었다.

       

       “말이 좀 그랬나?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진짜?”

       “뭐야, 너 반응이 이상해.”

       

       지연은 픽 웃었다.

       

       “아무튼 별로 볼 거 없으면, 나 보고 싶은 거 봐도 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튜브 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하는 지연을 보며,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실패했다…….’

       

       그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

       

       ‘흐응.’

       

       이지연은 채널을 돌리며 그런 서연을 힐끗 보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랫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서연.

       

       표정 변화가 드문 서연으로선 극히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지연은 그런 서연의 얼굴에 실소하곤, 슬그머니 서연의 유튜브 검색 기록을 살폈다.

       이래저래 지연은 지연대로 최근 서연의 관심사에 흥미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연극과 관련된 검색 기록에, 지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연극도 제대로 해볼 모양이네.’

       

       대체 왜 서연이 복귀작으로 저 연극을 골랐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에 대해 물어봐도.

       

       “다음 작품을 위해선 이걸 해야 해서.”

       

       라는 아리송한 답만 돌아올 뿐이다.

       

       ‘주서연이니 알아서 하겠지.’

       

       지연은 그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연극을 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그보다.

       

       ‘버튜버?’

       

       서연의 알고리즘에 보이는 이런저런 영상이 보였다.

       

       ‘흐음.’

       

       뭔가 매칭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지연도 정보로는 알고 있었다.

       지연의 친구 중엔 성우 학원에서 만난 이도 있었으니까.

       

       ‘이것도 결국 목소리로 하는 직업이었지.’

       

       여러모로 재주가 없으면 금방 망하는 것 같아서 관심은 없었는데.

       서연이 저런 반응을 보이니, ……조금 재밌었다.

       

       서연이 자신의 목소리에 자주 움찔 거리는 건 알고 있었고.

       지금도 뭔가를 하려다 대실패를 했는지 풀이 잔뜩 죽은 모습이다.

       

       아마, 그게 버튜버 관련으로 뭔가가 아닐까 추측할 뿐.

       

       “주서연.”

       “……응?”

       

       묘하게 시무룩해진 서연을 보며 지연은 풋, 하고 웃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뭔가 재밌는 게 떠올랐을 뿐이었다.

       

       ***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대 연습.

       

       미리 정보를 많이 찾아본 서연이었지만, 과연 이건 드라마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총 600 좌석의 중극장.

       숫자만 들었을 때는 그리 많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으나.

       막상 무대에서 보니 예상보다 체감이 크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하는 연기는 처음……은 아니네.’

       

       생각해보면 백설공주가 있었구나.

       서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무대에서 가만히 좌석들을 바라보았다.

       

       “왜, 겁나나?”

       

       그렇게 가만히 보고 있자,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면, 심청석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서연을 보고 있었다.

       

       “아뇨.”

       “그렇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워낙 날카로운 인상의 심청석이었기에, 그 미소는 마치 짐승 같이 야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런 모습만 보면 ‘배성학’ 역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근데 실력은 진짜.’

       

       이 무대에서 겪었던 그의 연기는 분명 대단했다.

       극장의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했었지.

       

       ‘그 정도가 되니 OTT 드라마까지 한 번에 출연이 결정됐겠지.’

       

       작은 드라마조차 출연하지 않은 그가 대형 OTT 드라마의 주역 중 하나로.

       어찌 보면 과거 태숨달 ‘연화공주’ 역을 맡았던 자신보다 더했다.

       

       그건 적어도 오디션을 보았지만, 심청석은 그것조차 아니었으니까.

       

       “미리 말하는데.”

       

       그는 미소를 지우곤, 나를 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대에 제대로 적응 못 하면 실력 반도 안 나온다. 몇 번이나 봤거든, 리딩에선 날아다니던 애가 무대에선 박살나는 거.”

       

       그는 그렇게 말하곤 아, 하고 뭔가를 떠올린 듯 말을 덧붙였다.

       

       “물론,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니야. 넌, 확실히 냄새가 다르거든.”

       

       ……냄새?

       그 묘한 표현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팁을 주자면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처럼?”

       “드라마는 재촬영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거든. 그러니까 힘을 빼고 하라는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 내게 다가왔다.

       

       “진심으로 힘을 빡 주고 연기하면, 오히려 틀릴 수 있어.”

       “하지만, 그게 보통 아닌가요? 힘을 주고, 전력을 다해 연기하는 게.”

       “음, 뭐. 보통이지.”

       

       그는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이건.

       하라는 거다.

       

       서연은 그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의도를 읽고자 했다.

       도발?

       아니면 흥미?

       

       읽을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서연은 자신의 감정에 무던해도, 타인의 감정에는 예민했다.

       물론 그건 일찍이 경험한 ‘정보’를 취합한 결과에 가까웠다.

       

       “홍정희 역은, 아주 중요해.”

       

       그는 서연을 내려보며 말했다.

        

       “악역이니까요?”

       “그래. 존재감 없는 악역은 없느니만 못하지.”

       

       심청석은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대본 리딩만 보면 그럴 일은 없을 테지. 그리고.”

       

       그는 슬슬 무대로 오는 다른 배우들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 한번, 제대로 연기해보고 싶거든.”

       

       제대로 연기해보고 싶다?

       그 말에, 서연이 무슨 말이냐는 듯 시선을 보내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멀어졌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

       

       연화 고등학교.

       사립 고등학교로 그 재학생 숫자는 대략 800명 언저리.

       

       예체능에 자신 있는 학생들이 많으며, 진학고로선 살짝 부족한 편.

       그래도 대충 평균은 하는 고등학교였다.

       

       “이번에 저희 학교에서 촬영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촬영이요?”

       

       그건 교직원 회의에서 나온 갑작스런 안건이었다.

       촬영이라니?

       드라마 촬영이라도 하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교장을 바라보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과거, 추억을 보다>라는 프로라고 해요.”

       

       그런 게 있었나?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예능이었다.

       그만큼 인지도 적고 인기가 없는 예능…… 이었으나.

       

       “아, 저 압니다. 아마 일요일 다섯 시에 하는 예능이었죠?”

       

       방송 시간이 주말 황금대였기에 아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반응에 교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구나 하고.

       

       “이거 잘만하면 학교도 홍보하고 할 수 있잖아요? 듣자 하니, 이번에 와서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를 재연? 맞죠? 그런 걸 한다고 합니다.”

       “네네, 제가 알기로 오래전 예능이나, 드라마를 학생들이 찍는 컨셉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송에 대해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홍보가 될까?’

       

       솔직히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아주 가끔 연기를 대단히 잘하는 학생이 나오거나, 엉망진창일 때나 조금 재밌었지만…… 글쎄.

       

       “크흠! 거기다 운이 좋게도, 저희 촬영 때는 게스트 배우도 함께 출연한다고 합니다. 연기를 돕기 위해서요.”

       “게스트 배우요?”

       

       이런 예능에 출연할 정도면, 보나마나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아니겠구나 싶어 말하자.

       

       “박정우 배우라고 합니다. 다들 알죠?”

       “와, 진짜요?”

       “박정우가 우리 학교에 오는 겁니까?”

       

       대배우의 아들, 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옛적에 내려놓았다.

       지금 대한민국 20대, 그리고 10대에게 있어 가장 만나고 싶은 배우 1위.

       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배우가 박정우다.

       

       “그러니 연극부…… 담당이 송다연 선생님이죠?”

       “아, 네네.”

       “미리 촬영에 참여할 학생들을 열 명 정도 선별해 달라고 하더군요. 가능하죠?”

       “물론이죠!”

       

       송다연 선생님은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연극부에는 현재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이지연이 있었으니까.

       비록 형식상이긴 하지만, 확실히 부원인 건 맞았다.

       

       ‘지연이라면 분명 나간다고 하겠지?’

       

       연기 욕심이 많은 그 아이라면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늦을 뻔했네용… 아슬아슬 했습니다.
    우선 올리고 교정…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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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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