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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A급 히어로, <괴력> 김은호.

       

        프로필은 평범하다. 조금 독특한 게 있다면 신체강화계열에서 보기 힘든 A급 능력자라는 사실 정도?

       

        “8강 상대인 이 녀석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할 예정이거나, 이미 했단 말이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나는 작게 입을 말했다.

       

        우습지 않나? 당장 A급의 히어로가 승천전 8강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성적을 거둔셈인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약에 손을 댔다는 것이.

       

        “안젤리카가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약물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 또한 존재했다.

       

        가장 좋은 예로 원작에서 밥먹듯이 등장하던 빌런을 떠올리면 된다. 약에 취해 이성을 잃고, 몸의 통제를 잃은 히어로들은 자신의 힘에 비해 약 하나에서 두 단계 정도 향상된 힘을 가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운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가진 능력이 근거다. 당장 <신속>이 극성으로 휘두른 쾌검 앞에서도 멀쩡했던 나인데, <괴력>이 날 어떻게 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들갑인가? 아니면 그저 나를 기권하게 하려는 수작?”

       

        어젯밤, 나를 찾아온 안젤리카를 떠올린 나는 컴퓨터 의자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녀석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신이 내린 예언처럼 내가 죽을까봐.

       

        아마, 그녀 입장에선 정말 나를 전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만약 랭커들이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진짜 세계 종말이 일어나는 건가.”

       

        일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원작에서 약에 손을 대는 이들은 모두가 D급에서 B급사이의,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히어로였다.

       

        궁금하지 않나. 단독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가졌다는 <원소술사> 같은 녀석이 약을 먹으면 어떤 힘을 보일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빌어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나는 의자에서 슬쩍 일어났다.

       

        지루하다.

       

        승천전 개최 덕분에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 좋았으나,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자니 숨이 콱 틀어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 나가볼까.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오늘은 8강의 첫 대진이 치뤄지는 날이다. 스타디움 티켓을 구하지 못했으니, 적어도 집에서 인터넷 중계를 볼 생각이었다. 

       

        8강에 진출한 <비를 내리는> 송수아의 경기인데 봐줘야지.

       

        끼이익!

       

        얇은 플리스를 걸친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춥지 않겠느냐고?

       

        다행히도 나는 열이 많은 체질이다. 정말 추울 경우엔 능력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예를 들면 열교환 따위를 거절하는 느낌으로.

       

        * * *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나는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빨리 임혜성 경기 보고싶다.”

        “나도. 그 사람은 진짜 전실이지. 역사상 처음으로 D등급 히어로가 본선에, 거기다 8강까지 진출했으니까.”

        “…….”

       

        인기가 많아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피곤한 일이었다. 송수아나 한유리, 안젤리카처럼 강한데 미모까지 출중한 히어로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겠지?”

        “뻔한 소리하고 앉았어. 그 얼굴에 그 능력인데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두겠냐?”

        “그건 그래. 듣기로는 송수아랑 제법 친한 사이라고 하던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가?”

        “히어로 아카데미 재학생만 접속 가능한 ‘히어로타임’. 거기 자유게시판에 항상 임혜성이 송수아를 좋아한다고 어그로를 끄는 놈이 있거든.”

        “……법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네. 수아 님은 착해서 고소하지는 않겠지만.”

       

        ……송수아가 착하긴 하다만, 그 게시글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거리를 걷던 나는 어느덧 아카데미 중앙지구에 접어들었다.

       

        몇 주간 승천전의 예선과 본선을 치른 지역이며, 수많은 갑부와 강력한 히어로들이 발에 채일 만큼이나 흔한 지역이었다.

       

        “입이 좀 심심한데.”

       

        간만에 바깥을 산책하니 금새 갈증이 느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내 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 이리 허름해?’

       

        중앙 지구에 있을 카페라고 하기엔 과할 정도로 허름한 카페다. 간판도 반쯤 기울어져 있는 데다가, 가게 외벽에 흙먼지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돈 벌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으니, 이내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이 동네는 참 비싼 동네다.

       

        아마 대강의 설정을 떠올리면 제주도의 심장, 히어로 아카데미의 중앙지구 땅값이 저 서울 강남보다 훨씬 비싸다고 했으니 더 말해서 뭐할까.

       

        그런데…… 그 중앙지구의 번화가에서 저따위로 장사하는 놈이 대체 누구일까.

       

        “…….”

       

        그래. 사장의 얼굴이라도 한번 구경하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이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돈이 얼마나 썩어 넘치면, 임대료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는 중앙지구에서 저런 식으로 장사하는 걸까?

       

        SNS 감성 카페나 빈티지 컨셉은 절대 아닐 정도로 더러운 외관인데 말이다.

       

        딸랑-!

       

        카페 앞에 다가간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곧장 퀴퀴한 냄새가 훅 풍긴다. 내 예상대로, 이 카페 사장은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우당탕! 쿵!

       

        “어, 어서오세요!”

        “……?”

       

        설마하니 손님이 올 줄은 몰랐던 건지, 이내 카운터 쪽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가게 외관과 달리 인사성 바른 알바생의 환영도 함께였다.

       

        “어, 어어? <현상거절>. 당신이 어떻게?”

        “뭐야? 여기서 알바하는 건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가게 알바생은 나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일전에 나와 본선에서 맞붙은 <뇌전검> 양하나가 카운터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보기보다 엄청 바쁘게 산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으나, 당장 이름표가 달린 앞치마를 보면 그녀가 이 가게의 종업원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어, 어떻게 가게에 들어온 거죠?”

        “어떻게 들어오냐니? 아직 가게 오픈 안 했어?”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허름한 카페 앞에 ‘OPEN’이라는 팻말이 달려있어 들어온 것 뿐인데, 혹시 오픈 전인 건가? 이런 백주대낮에?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도 놀란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양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양하나의 모습에 나는 카운터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결제는 히페로.”

        “어, 어어.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당탕탕!

       

        “으, 으아아!”

       

        그녀가 몸을 휙 돌리자 카운터 가득하던 온갖 집기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헌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바닥을 구르는 것들이 평범한 카페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란 거다.

       

        “숯돌, 검집, 단검. 이게 다 뭐야?”

       

        황당한 기분이 든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카페는 이상하다. 하긴, S급 히어로 중에서도 최정상을 차지한 <뇌전검>이 알바생으로 있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이상했지만.

       

        ‘S급 히어로이자, 차기 랭커, 학생회 임원, 거기다 이제는 카페 알바까지.’

       

        위이이잉!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저 구석에서는 원두를 신나게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페 상태를 보자니 정말 먹어도 괜찮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분의 시간이 지나자 양하나가 검은 액체가 든 유리잔을 들고 나타났다.

       

        턱!

       

        그리고는 내 앞에 조심스레 잔을 내려놓았는데, 일단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이만 오천원 입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어떻게 커피 하나 가격이 이만원이 넘어?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그것보단 싸겠다.”

        “제, 제 마음인데요!”

       

        당당한 양하나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카페의 주인이 이 녀석인 건가.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만약 손님이 오면, 제가 받고 싶은 대로 돈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네!”

       

        힘찬 양하나의 반응에 우스웠다.

       

        그러니까 이 카페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주인인 모양이다. 양하나는 내 예상처럼 카페 알바생이었고.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데? 아니, 그보다 가게 상태가 이런데 장사가 돼?”

       

        커피잔을 스윽 받은 나는 황당함을 가득 담은 질문을 던졌다.

       

        웃기지 않나. 아무리 할아버지 가게여도, 이렇게 더러우면 올 손님도 안 올 텐데?

       

        “할아버지가 제게 가게를 맡기면서 신신당부하셨어요. 절대로 가게를 청소하거나, 물건의 위치를 바꾸지 말라고요.”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데?”

        “세계를 유랑하셔요. 요즘 진법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셨거든요.”

        “허, 특이하신 분이네.”

       

        세상의 절반이 괴수의 손에 떨어졌는데 이 시국에 유랑이라. 원작에선 언급조차 없었기에 잘 모르겠다만, 그녀의 할아버지도 절대 평범하지 않을 위인이다.

       

        당장 그녀가 속한 가문이 세계 제일의 검가 중 하나인데 더 말해서 뭐할까.

       

        스윽.

       

        잔을 든 나는 카페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테이크 아웃을 할 생각이었다. 헌데 초보 알바생이 묻지도 않고 유리잔에 커피를 내줬다. 어쩔 수 없이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게 될 상황.

       

        “아니, 그보다 어떻게 들어오신 거에요?”

       

        카운터에서 총총총 나온 양하나가 내 앞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이 가게요. 할아버지께 듣기론 가게 전체에 ‘인식 저해’가 펼쳐져 있다고 하셨어요.”

        “……?”

       

        그런 능력이 있었나? 만약 존재한다면, 나처럼 현실조작계열 능력자의 작품일 거다. 그도 아니라면 <원소술사>급의 마법사거나.

       

        “나도 몰라. 그냥 길을 걷다보니 가게가 보여서 들어온 건데.”

        “이상하다…….”

       

        하얀 볼을 긁적거린 양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보니 평범한 또래 학생으로 보인다.

       

        내가 알던 대쪽 같은 성격에, 항상 올곧은 정의를 울부짖는 <검성>의 이미지가 붕괴하는 느낌이라고 해두겠다.

       

        ‘하긴, 그 전에 만났을 때는 상황이 좋지 않았었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승천전이 진행 중인 결투장 위. 당연히 서로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그 치열한 현장에서 친분을 나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 다음은 내가 사는 D등급 주거지구의 아파트 앞이다. 한가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게이트가 발생했고, 거기서 튀어나온 덩치를 양하나가 깔끔하게 베어버렸지.

       

        그리고 지금.

       

        나와 양하나가 다시 만난 곳은 허름한 카페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맡기고 여행을 떠나셨단다.

       

        “좋겠다. 할아버지가 월급은 두둑하게 챙겨주실 거 아니야.”

        “그… 렇긴 하지만, 꼭 좋지는 않아요. 아! 잠시만요? 저 통화좀 하고 올게요.”

       

        타다닥.

       

        그리 중얼거린 양하나가 서둘러 가게 뒤편으로 사라졌다.

       

        아니…… 딱히 다시 돌아올 필요는 없어.

       

        * * *

       

        ‘아이구! 우리 이쁜 손녀가 어쩐 일로 할애비에게 전화를 다 해?’

        “나타났어요! 손님이요! 손님이 나타났어요!”

       

        어딘가로 전화를 건 양하나는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가기를 맡기던 당시 신신당부한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 누군가 저 가게 문을 열고 나타날 경우, 지체 없이 이 할애비에게 전화하거라. 반드시! ]

       

        양하나는 무려 이 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가게를 맡은 시간동안 단 한 사람의 손님도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리어 그녀의 뇌리에 각인된 사실이었다.

       

        ‘뭬, 뭬야?!’

        “하, 할아버지?”

       

        헌데 곧장 돌아온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왜, 왜 그러시지?’

       

        양하나의 눈이 핑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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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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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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