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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아카데미에서 24시간 역마차를 운영하는 이유, 그리고 학생들의 무기를 관리하는 인원이 24시간 내내 상주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한밤중이라도 학생들은 자기 무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니, 무기뿐만이 아니다.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하는 학생들도 얼마든지 나온다.

        

       오밤중에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잠적하는 경우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가문에 갑자기 큰 사건이 터지는 경우가 더 많다.

        

       골골대던 가주가 사망해 바로 가문을 이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거나, 집안에서 결혼식을 서두른다거나, 정말 극단적으로는 국경 분쟁으로 인해 가문이 참전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거나.

        

       귀족 사회라는 것이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게다가 아카데미는 딱히 의무 교육도 아니다.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쉽더라도 그만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입학생을 아무리 꽉 채워 받더라도, 졸업할 때쯤 되면 학생 중 10퍼센트 정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카데미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비상 시스템을, 고작 엘리멘탈 독 하나 잡겠다고 썼다.

        

       “…….”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학교생활에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그런 일은 없긴 하지만.

        

       그냥…… 뭐랄까.

        

       인제 와서 생각하면 이 퀘스트 보상, 그냥 돈 주고 사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레오와 클레어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그레이스 남작가가 돈이 없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쓸데없는 것을 사느라 낭비하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게임에서도 ‘딱 필요한 수준의 생활비’만 준다는 설정이었기에, 퀘스트 없이 그냥 들어오는 돈만으로 무기를 완전히 업그레이드하거나 하는 건 불가능했다.

        

       서브 퀘스트를 하나도 하지 않더라도 메인 퀘스트만으로 돈이 들어오니 무기 업그레이드를 전혀 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등장인물들에게 풀템을 맞춰주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사실 초회차라면 자기가 주로 운용하는 캐릭터 위주로 아이템을 맞춰주지 않는 이상은 자금 운용이 상당히 빡빡하다. 무기와 방어구, 마르마로스 말고도 다른데도 돈 쓸데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황녀잖아.

        

       필요하면 그냥 대충 황제한테 편지 한 통 보내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들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

        

       엉덩이가 미묘하게 차갑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시신에 줄을 묶어 질질 끌고 와 그 위에 앉아있었는데, 누가 바람 속성 아니랄까 봐 시체가 더럽게 차가웠다. 차라리 얼음 속성이었다면 그 위에 앉을 생각도 못 했을 텐데.

        

       4월 말이기는 해도 아직 새벽에는 춥다. 어깨에 코트를 걸치고 있어도 그 사이로 으슬으슬 한기가 파고들었다.

        

       ……그냥 입고 있을까? 어깨에 걸치지 말고?

        

       “…….”

        

       턱에 손을 얹은 채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그리고 기각했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쪽이 더 멋지니까.

        

       내가 중2병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쪽 세계에서 군인은 이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제니퍼도 그랬고, 다른 군인들도 그랬다.

        

       그러니까 이쪽 기준으로 보자면 최신 유행이라는 소리다.

        

       유행을 따르지 못하고 추해 보일 바에는, 차라리 유행을 조금이라도 따르는 쪽이 나을 거다.

        

       그리고 뭐, 애초에 어깨에 걸치고 다니라고 망토처럼 앞쪽에 끈도 있었으니까.

        

       원●스 같은데 나오는 해군 장교들도 코트는 어깨에 걸치고 있었잖아? 일본 서브컬쳐 기준으로는 꽤 흔한 모습이다.

        

       그렇게 머리에 구멍이 난 엘리멘탈 독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저 멀리서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실비아?”

        

       클레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차 창문을 내리고 클레어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마부가 내려 마차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클레어가 뛰쳐나왔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소리인데.

        

       애초에 너희들 때문이라고.

        

       물론 시간을 돌린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잠깐 바깥에 나온 김에 의뢰 게시판에 걸린 의뢰를 수행했습니다.”

        

       “이 시간에?”

        

       그러니까, 이 시간에 나와 있는 너희가 할 말이냐고.

        

       아, 물론, 이 애들 기준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엄청나게 빠르게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루에 잠 몇 시간만 자더라도 명상과 수련을 통해……. 또 말해 뭐하겠는가. 어쨌거나 지금 이 시간은 이 두 사람 기준으로도 빠른 모양이었다.

        

       “혹시 뭔가 할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

        

       음.

        

       딱히 없었는데.

        

       그냥 너희들이 나보다 먼저 퀘스트를 깨버리는 걸 보고 오기가 생겨서 더 일찍 나왔다고 대답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그랬다.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간을 돌린다는 사실을 여기서 밝힐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나의 침묵을 뭐라고 받아들였는지, 클레어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혹시, 황실에서…….”

        

       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딱히 할 말도 없으니 대충 그런 것으로 해두기로 하자.

        

       애초에 거짓말도 아니다. 내가 황실의 명령 때문에 여기 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당장 말해줄 수 없는 이유 때문인 것도 있었고.

        

       나의 대답에 클레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잠깐, 이 사체를 싣는 것을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예.”

        

       우리가 다시 마차에 타고 돌아갈지 아닐지 몰라서 안절부절하고 있던 마부에게 그렇게 말하자, 마부는 얼른 움직여 마차 뒤쪽에 있는 철제 트렁크를 열어 두꺼운 천을 하나 꺼냈다. 겉 부분에 뭔가를 칠해둔 건지 번들번들했다. 아마 방수 효과를 위한 거겠지.

        

       역시 아카데미에서 운행하는 역마차답다. 학생들이 종종 의뢰 수행 후 증거로 이것저것 담아가는 모양이지.

        

       원래 가도 같은 곳에서 짐승을 사냥하면 마르마로스 조각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되곤 했지만, 이 세계는 현실이다. 그런 편한 시스템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몬스터의 사체에서 마르마로스를 정제하려면 전문적인 공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공정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므로, 사체 일부만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안전했다.

        

       아마 클레어와 레오도 그랬을 거고.

        

       혹시라도 피가 바깥으로 흘러 트렁크 안을 적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몇 겹으로 사체를 꽁꽁 묶은 뒤 힘을 합쳐 트렁크에 실어두고, 우리는 다시 마차에 탔다.

        

       “그나저나, 실비아 대단하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클레어가 웃으며 말했다.

        

       “머리에 딱 한 발로 짐승을 쓰러뜨리다니.”

        

       “두 분이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짐승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딱 한 발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널널했으니까. 빗나가거나 빗맞으면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고.

        

       “아니, 그래도. 저렇게 크면 검 한 번 휘둘러서 깔끔하게 처리하기는 힘들지.”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고 레오를 돌아보자, 레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는 실제로 조금 감탄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의외였다.

        

       “하긴, 이제 와서 놀라는 것도 조금 이상하려나. 실비아는 그때도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명중시킨 적이 있으니까.”

        

       “……별일 아닙니다.”

        

       클레어가 칭찬하는 것이 괜히 쑥스러워서, 나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사체의 상태가 양호하군요. 분명 훌륭한 마르마로스를 정제할 수 있을 겁니다.”

        

       머리에 총알 자국 딱 하나만 있는 시신을 확인하고, 아카데미 사무원 역시 조금 감탄했다.

        

       “하지만 마르마로스를 정제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그러니 이 엘리멘탈 독의 속성과 같은 속성의 마르마로스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실지요?”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상은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 자체는 게임에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아마 이 마르마로스도 다른 엘리멘탈 독, 혹은 짐승들에게서 정제해낸 것일 테니까.

        

       마력석에서 정제해내는 마르마로스나, 이런 식으로 특정한 속성을 타고난 생물체에서 뽑아내는 마르마로스는 근본적으로 같은 물질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각각 장단점이 있긴 했다. 광산에서 순수한 마력석을 캐낸다면 한 번에 다량으로 양질의 마르마로스를 얻을 수 있지만 광산 자체가 위험하다.

        

       반면에 이렇게 짐승을 잡아 뽑아낸다면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얻어낼 수는 있지만, 사실 양질의 마르마로스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짐승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받은 마르마로스도, 지난번 제니퍼에게 받았던 것 보다는 훨씬 초라하고 작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는 것은 또 아니겠지만.

        

       게임에서도 속성치가 조금 낮게 책정되어있긴 했는데, 오히려 이런 것은 슬롯을 덜 차지해서 애매하게 빈 부분을 채우거나 하는 쪽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마르마로스는 자연에 넓게 퍼져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지맥이 모이는 깊숙한 곳에 양질의 마력석이 응축되어 마르마로스 그 자체가 되거나, 아니면 여러 짐승을 사냥해 먹고 사는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하는 짐승들에게서 뽑아낼 수 있다……라는 이론이 있다고, 설정집에서는 설명하고 있었다.

        

       ‘최상위 포식자’라고 하니, 그렇다면 인간에게서도 마르마로스를 뽑아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인간에게서는 최고급 마르마로스를 뽑아낼 수 있다. 짐승처럼 온몸에 마력을 두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몸 안에 내재된 마력으로 매개를 통해 마법을 사용하고 검기를 내뿜는 게 이 세계관의 인간이다. 마르마로스를 뽑아내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배척되는 행위이긴 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설정을 ‘굳이’ 넣은 작품일수록 그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하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녀님. 처음으로 의뢰에 성공하신 분이 황녀님이니, 여러 학생에게도 본보기가 될 겁니다.”

        

       아니, 안 되었으면 좋겠는데.

        

       고작 두 사람 부지런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개고생했는데,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이 나를 본받겠답시고 부지런히 일하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어질 거 아니야.

        

       퀘스트 보상은 뒤로 갈수록 좋아진단 말이다.

        

       그렇게 의뢰를 완료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마르마로스를 클레어에게 불쑥 건넸다.

        

       “받으십시오.”

        

       “응?”

        

       얼떨결에 내가 내민 마르마로스를 받은 클레어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제게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다. 필요 없었다. 막상 얻고 나니까……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고생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 어, 응…… 고마워?”

        

       여전히 얼떨떨하게 반응하는 클레어, 그리고 그 옆에서 그런 우리를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는 레오를 그대로 두고, 나는 몸을 돌렸다.

        

       ……얼른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지.

        

       *

        

       “……딱히 피곤하지는 않습니다.”

        

       내 대답에도 앨리스는 전혀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앨리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어째 저 표정 요새 자주 보는 것 같은데.

        

       “혹시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야?”

        

       어떻게 다들 생각하는 게 이렇게 똑같을까.

        

       하긴 황제가 좀 수상해야지. 대놓고 ‘나 음모 꾸미고 있소’하는 것 같은 사람이니 누가 곧이곧대로 믿어줄까.

        

       그러니, 나는 나에게 생긴 모든 오해를 황제에게 죄다 덮어씌우기로 했다.

        

       어차피 의심받고 있는 사람이니 의심을 조금 더 얹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겠지.

        

       게다가 그 의심을 덮어씌우는데, 굳이 내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

        

       “…….”

        

       나를 보는 앨리스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꼬우면 평소에 좀 착하게 사시던가요.

        

       아니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수련을 시작하는 주인공들을 탓하시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웨이 님 후원 감사합니다!

    오류가 있었는데 제가 못 보고 넘겼었네요! 최대한 빠르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서 글을 쓰다보면 이런 식으로 못 보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게 되는데, 독자 여러분들께서 알려주시는 덕분에 글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께 완벽한 글을 보여드려야겠지만, 늘 부족한 저이기에 이렇게 종종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늘 저를 응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름의 경우에는 조금 더 발음하기 편한 이름으로 만들려다가 앞부분을 미처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다른 캐릭터의 이름에서도 이런 식의 오류가 났었는데 또 생겼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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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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