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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하늘고래~.”

         

       파스텔은 서류 뒷면에 고래 그림을 그렸다.

         

       깃펜을 휘적휘적.

         

       둥그런 몸통이 스윽.

         

       세모세모한 꼬리 지느러미가 뚝딱뚝딱.

         

       깃펜을 놓고 삐뚤삐뚤한 고래 그림을 살펴봤다.

         

       “완벽해!”

         

       미술관에 걸어놔도 좋을 그림.

         

       나, 혹시 미술 천재?

         

       파스텔은 혼자 감탄하다가 고래 그림을 다시 보곤 흠칫했다.

         

       허억.

         

       날개 지느러미를 안 그렸어!

         

       꼬리 지느러미는 그리고 날개 지느러미는 빼놓다니!

         

       경악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 완벽해~!”

         

       으아아.

         

       경악.

         

       경아악.

         

       난 미술 천재가 아니었던 거야?!

         

       한동안 경악하곤 다시 깃펜을 잡았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노력 천재 파스텔은 포기하지 않아!

         

       깃펜을 번쩍 들었다.

         

       “어머니, 제게 힘을 주세요!”

         

       뾰족한 깃펜 끝이 반짝.

         

       “이야압!”

         

       파스텔은 열정을 불태웠다. 서류 뒷면의 고래 그림에 깃펜을 휘저었다.

         

       “이야아압!”

         

       굉장한 함성!

         

       열정 백만 배!

         

       깃펜이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고래 위에 세모난 날개 지느러미가 덧그려졌다.

         

       삐뚤삐뚤.

         

       휘적휘적.

         

       “완벽해!”

         

       초슈퍼 미술 천재 파스텔은 거칠게 깃펜을 내려놓았다. 충격파가 일었다. 사무 책상이 흔들렸다.

         

       서류 뒷면의 고래 그림을 번쩍 들었다.

         

       “이것이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결실이다!”

         

       고래 그림이 번쩍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공전절후 지용무쌍.

         

       장인의 솜씨가 기적을 만들고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시대를 그었다.

         

       역사에 남을 걸작이 자체 발광했다.

         

       고래 그림 위로 황금빛 환각이 떠올랐다.

         

       [SSS급 고래 그림]

         

       우아앗!

         

       그림에서 빛이~!

         

       이것이 신화급 미술품의 아우라?!

         

       으아아.

         

       S급 착한 아이에 불과한 파스텔은 버틸 수 없는 등급 차이야!

         

       “눈이 멀 거 같아!”

         

       파스텔은 눈부셔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미술 천재 초위기!

         

       너무 뛰어난 결과물에 스스로 먹혀버리는 불운한 천재가 되기 직전!

         

       살려주세요, A급 보호자 악마님~!

         

       파스텔은 간절히 빌었다.

         

       혼자 노는 애한테 뭐라 하긴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는 악마 대신 검은 머리의 소녀가 사무 책상으로 다가왔다.

         

       결재 서류를 두둑하게 들고 온 엘리는 다크서클 진 얼굴로 고래 그림을 응시했다.

         

       악마 같은 몰골.

         

       파스텔은 움찔했다.

         

       우왓.

         

       악마님을 원했지 악마 같은 상태의 부하 직원을 원한 건 아닌데?

         

       매우 찔린 파스텔은 든 서류를 슬쩍슬쩍 흔들었다.

         

       서류 뒷면에 그려진 고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물결쳤다.

         

       “하늘고래~.”

         

       야호.

         

       엘리가 무시하곤 초췌하게 바라봤다.

         

       “파스텔, 서류 업무는 다 끝냈어?”

         

       으아아.

         

       고래 그림이나 그리며 놀고먹던 파스텔 진짜 초위기!

         

       화난 엘리의 하극상, 권력 잃은 파스텔은 꼬르륵.

         

       마석 냠냠이 불가능한 파스텔에게 남은 건 꾀꼬닥 뿐.

         

       덜덜덜.

         

       파스텔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몰골로 떨다가 엘리의 표정이 슬슬 심각해지자 슬쩍 책상 구석을 가리켰다.

         

       정돈된 서류 더미들이 있었다. 쌓으면 파스텔의 키만큼은 됐다.

         

       “다 했지.”

         

       다 했으니 노는 거야.

         

       엘리가 벙쪘다.

         

       본인이 해온 업무 서류와 책상의 업무 서류를 번갈아 보더니 본인보다 파스텔이 한 양이 몇 배는 많다는 걸 파악하곤 혼란스러워했다.

         

       “왜 나만 바쁜 거야?”

         

       억울함이 담긴 의문.

         

       이런이런.

         

       파스텔은 턱을 치켜세웠다.

         

       스스로를 척 가리켰다.

         

       “파스텔, 슈퍼 엘리트.”

         

       엘리를 가리켰다.

         

       “엘리, 그냥 엘리트.”

         

       압도적인 차이!

         

       납득이 안 됐는지 엘리는 얼굴을 문지르다가 초췌한 안색으로 서류 더미를 건넸다.

         

       “결재 부탁해…….”

         

       유감.

         

       어서 실무자 2호 더스틴이 와야 할 텐데 말이야.

         

       파스텔은 이번 하늘고래의 하늘섬 방문 관련 서류를 살폈다.

         

       하늘고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돈이 되기 때문에 인간 거주지로 하늘고래가 날아오는 기회엔 많은 상단이 개입했다.

         

       하물며 고래가 하늘섬 방문을 즐기는지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라 아예 이걸 기다리며 준비하는 상단도 수두룩했다. 돈이 돌고 모두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연례 이벤트다.

         

       문제는 돈만 보고 민폐를 일으키는 경우도 태반이라 특히 하늘고래가 아카데미 상공에 날아다니는 타이밍엔 각종 단속과 경계가 필수적이었다. 소속 불명의 상단 비공정이 아카데미 상공에 버젓이 날아다니는 상황은 두고 볼 수 없으니까.

         

       이와 관련한 큰 업무야 기사단과 교수진이 해결하는 편이지만 자잘한 영역 혹은 학생과 관련된 사항은 학생회로 넘어오는 편이다.

         

       “레너드는 아직 등교 안 했어?”

         

       인력 하청 줘야 하는데.

         

       “패거리 일부는 등교를 했는데 레너드는 안 보여. 물어보니 내일 비공정편으로 온대.”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이곤 속전속결로 서류 결재를 완료했다. 반려한 일부 서류를 엘리에게 넘겼다.

         

       “그럼 레너드와 업무 협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건 내일 다시 하고 오늘은 일단 퇴근해. 방학이잖아.”

         

       엘리가 초췌한 기색으로 반려 서류를 살폈다.

         

       “오늘 내에 할게.”

       “아니야아니야! 엘리 쉬어!”

         

       파스텔은 엘리를 보내곤 학생회실에 혼자 남았다.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하곤 의자에 앉았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하늘고래네요.”

       『그렇군.』

       “어떤 점이 돈이 되는 거예요?”

       『몇백 년은 기본으로 살아가는 하늘고래는 그 자체로 작은 생태계의 역할을 한다. 등 위에 세월이 쌓여 식물이 자라고 새가 날아와 둥지를 짓지. 생명이 순환하고 비바람이 도우니 하나의 원을 그려 자연이 만들어진다.』

         

       와, 연세가 느껴지는 선문답.

         

       “하늘섬엔 없는 각종 동식물이 있다는 거죠?”

       『맞다. 하늘고래가 날아온 여정에 따라 변하는 생태계라 매년 조금씩 동식물이 달라지지. 운 좋게 한몫 잡기 좋다. 게다가 하늘고래 자체의 부산물이 매우 값져서 상단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부산물?

         

       “고래를 잡아요?”

       『잡는다기보다는 덩치가 워낙 커서 각질 같은 부위를 조금 긁어가는 경우에 가깝다.』

         

       헤에.

         

       하늘고래의 부산물이라.

         

       파스텔은 묘한 표정으로 턱을 괬다.

         

       교단이 퍼트린 마석 각성제의 재료 중 하나가 하늘고래라 했던가?

         

       하늘고래 같은 고급 재료는 유통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거래 과정에 흔적이 남기 쉬웠다.

         

       네임드 범죄 조직이 고급 재료의 수급을 아무렇게나 했을 거 같진 않고, 연이 닿아있는 상단 혹은 교단의 자체 상단이 존재한다는 거겠지.

         

       교단과 연관된 상단인가.

         

       그런 상단이 손쉬운 재료 수급이 가능할 이번 연례행사에 빠질 거 같진 않다.

         

       파스텔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헤에.

         

       그렇구나.

         

       의자에 푹 기댔다.

         

       『왜 그러지?』

       “아니에요.”

         

       고개를 저었다.

         

       입꼬리를 문지르고 양볼을 두드려 기분 전환을 한 다음 활짝 웃었다.

         

       “그냥, 저도 이제 크래프트 상단의 주인이니 이번 연례행사에 참여해 보고 싶어서요! 완전 돈 벌 기회잖아요!”

         

       알아서 찾아온 돈벼락.

         

       양팔을 으쌰으쌰했다.

         

       “아싸! 아싸!”

       『괜찮은 생각이다만, 크래프트 상단은 이미 상행을 떠났잖나.』

         

       파스텔은 멈칫했다.

         

       허억.

         

       그러고 보니 절친 멜리사까지 보내버렸지.

         

       으아아.

         

       돌아와, 크래프트 상단.

         

       『아쉬워할 거 없다. 이건 엄연히 노하우가 쌓여야 고수익이 나오는 기회야. 첫 상행으론 밀무역이 월등히 높은 수익을 가져다준다.』

         

       악마의 합리적 계산.

         

       다르게 말하면 공감력 제로의 잔소리.

         

       “기회비용 같은 건 계산하지 말아요! 욕심쟁이는 원래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싶다고요!”

       『어이구.』

         

       파스텔은 머리를 굴렸다.

         

       돈, 돈, 돈!

         

       헛!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학생회 예산 상황을 살폈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학생회 예산으로 상단을 만든 덕에 곳간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럴 수가! 예산 상황이 이렇게 엉망이라니! 도대체 어쩌다가?!”

       『네가 이렇게 만들었지. 너덜너덜하군.』

         

       너덜너덜.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기획부장 겸 홍보부장 겸 봉사부장 겸 선도부장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어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부로 학생회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겠습니다!”

       『호오.』

         

       악마가 감탄했다.

         

       『드디어 예산을 횡령한 원흉이 드러나는 건가? 누구지? 부학생회장? 총무부장? 기획부장?』

         

       놀리는 목소리였다.

         

       파스텔은 미간을 좁혔다.

         

       “원흉은 악마님이잖아요!”

         

       책임 회피를 하시긴.

         

       『뭐라고……?』

         

       악마가 충격받았다.

         

       보호자의 말문을 단번에 막아버린 파스텔은 당당히 선언했다.

         

       “악마님을 감옥에 보낼 순 없으니 착한 저는 다른 해결법을 강구할 거예요.”

         

       팔을 번쩍 들었다.

         

       “오늘부로 학생회는 자금 마련에 총력을 다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선포합니다!”

         

       책상을 두드렸다.

         

       탕! 탕! 탕!

         

         

         

       #

         

         

         

       파스텔은 하늘섬 정박장을 기웃거렸다.

         

       비공정에서 학생들이 내렸다. 아는 친구들과 인사를 열심히 나눈 뒤 다시 기다리자 고학년 같은 건장한 체격의 남학생이 내렸다.

         

       파스텔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레너드!”

         

       사용인과 얘기하던 레너드가 움찔하더니 돌아봤다.

         

       “뭐냐, 네가 왜 여깄어.”

       “널 기다렸어!”

         

       방긋방긋.

         

       레너드가 묘하게 바라봤다. 손짓으로 사용인을 물리더니 한쪽 눈썹을 슥 올렸다.

         

       “정박장까지 와서 날 기다렸다고?”

       “맞아!”

         

       파스텔은 양팔을 펼쳤다. 그리곤 빙그르르 돌았다. 비공정이 늘어선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 정박장이야!”

         

       사람과 짐이 오가는 분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열차역 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기다려 준 친구는 매우 드무니 기분 좋게 받아들여도 좋아!”

         

       파스텔은 그렇게 말하곤 레너드에게 다가가 비밀스럽게 속닥였다.

         

       “난 모든 친구를 좋아하지만……, 넌 조금 특별한 친구라고 할까?”

         

       속닥속닥.

         

       레너드가 움찔했다. 물러나며 시선을 피하더니 대뜸 인상을 구기며 노려봤다.

         

       “얼마나 드문데?”

       “그게 궁금한 거야?”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통계 내기 곤란한데.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인원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다섯 손가락을 접은 뒤엔 반대 손가락을 접었다. 모자라자 하나씩 펴며 추가로 셌다. 그러고도 다시 접으며 새로 셌다.

         

       “스물, 스물하나…….”

       “완전 뒷순위잖아!”

         

       레너드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아니야아니야!”

         

       양팔을 파닥였다.

         

       “무려 중간 순위는 돼!”

         

       하청 업체 보너스가 가산된 순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레너드가 열불을 냈다.

         

       으에에.

         

       까칠하긴.

         

       별수 없네.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 줘야지!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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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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