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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애팔래치아 산맥에 자리 잡은 어느 탄광 도시.

       전 세계적으로 매년 급등하고 있는 석탄 수요량 덕분에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해나가고 있었다.

         

       공장이나 발전소에서부터 배, 비행선, 기차 같은 운송 수단까지.

       이 시대에 석탄은 어느 산업 분야에서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심지어 마차 한 대 없는 시골에서조차도 난방 연료로써 석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렇게 늘어난 수요량을 정작 석탄의 채굴량이 쫓아가지 못했다.

       대륙 곳곳에서 탄광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정작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채탄은 정말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일 치솟는 게 석탄값이요, 광부의 몸값이었다.

         

       오죽하면 연금술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소문도 떠돌았다.

         

       ‘돌멩이를 금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이라는 기말시험 문제에 당당히 ‘광차와 곡괭이’를 적어넣은 학생의 이야기나, 연금 재료를 채집하라고 학생들을 산에 보냈더니 전부 탄광 주변에서 석탄만 줍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전자의 학생은 성적으로 A+를 받았고, 후자의 학생들은 석탄 판 돈으로 재료를 모두 살 수 있었다는 후일담이 꼭 따라붙곤 했다.

         

       물론 연금술 아카데미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과장된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연금술사들이 다루는 물질 중엔 한 병당 석탄 몇 톤의 가치를 지닌 것도 많았다.

       저런 말이 나돌 정도로 그만큼 이 시대에 석탄이 가지는 위상이 커졌다는 소리다.

         

       도시와 갱도 사이에 세워진 석탄거래소는 도시 외부와 석탄 거래하는 일을 전담했다.

         

       3층의 커다란 목조 건물.

         

       거래소 측은 매시간 갱신되는 채굴량과 다른 지역의 소식통을 통해 전해 들은 석탄 거래가, 거래량을 고려해서 1층 로비의 게시판에 현재 판매가를 내걸었다.

         

       로비에 기다리고 있던 상인들은 그 가격을 보고 창구로 달려가거나, 머뭇거리거나,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곤 했다.

         

       창구를 왔다 갔다 하는 상인들은 수표가 주머니에서 나가는 만큼 손에는 계약서가 한장 두장 늘어가고, 목표량을 달성하면 계약서 뭉치를 들고 전신소나 공항으로 달려갔다.

       

       장기적인 석탄 공급 계약을 원하는 손님들은 2층으로 안내받았다.

       그곳은 주로 큰 상회의 대리인들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3층은 석탄 말고 다른 것을 다루는 상인들이 방문했다.

       석탄거래소에서 석탄 말고 무엇을 거래하냐 묻을 수 있겠지만, 이건 석탄의 중요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탄광의 채굴권과 소유권, 경영권에 대한 것이었다.

         

       소유권 거래는 별일 아니었다. 서류에서 이름 몇 개만 변경하면 되는 일이다.

       채굴권 거래는 조금 귀찮긴 했다. 각 갱도의 경영자들을 불러 모아 수수료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경영권 거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채굴량과 유통가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석탄거래소 소장의 맡은 편에 앉아 있는 10살짜리 소녀는 3개의 권리를 모두 거래하러 왔다.

         

       2주 전, 그녀가 거래소를 방문했을 때, 소장은 오늘이 4월 1일, 그러니까 키르쿠스의 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4월 1일은 광대들이 자기네들의 마신을 기념하는 날.

       어떤 장난이나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수십 kg는 나갈 것 같은 송아지만 한 기계와 그것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된 몇 명의 장정.

       거기에 기계와 연결된 금속 마스크를 쓴 녹색 머리칼의 소녀가 자신을 재계에서 손으로 꼽히는 대상회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했을 때는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소장이 사무실에서 응접실로 손님을 맞이하러 나가는 중간에 그의 비서가 그에게 ‘철가면’이라는 힌트를 주지 않았다면, 그는 첫 대면에서 뭔가 실수를 했을 것이다.

         

       철가면.

       그래. 들어본 적 있다.

         

       몇 년 사이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이는 베르그송 상회.

       엄청난 두뇌를 가진 참모가 가세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 참모의 정체가 바로 회장인 제랄 베르그송의 외동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아나이스 베르그송.

         

       태어났을 때부터 폐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에 걸려 5살 때부터 특별한 기계 없이는 생존이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한 소녀라고 들었다.

       이전부터 제법 똑똑하다는 소문이 상계에 돌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랄 베르그송 정도 되는 사람이 사방팔방 딸이 천재라고 자랑하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낙서만 해도 아이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기대하는 게 부모의 심리다.

       팔불출의 흰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문이 점점 실적을 낳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자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물론 그런 사람들조차도 그녀의 실력이 어디까지나 옆에서 조언 몇 마디 하는 정도를 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소장도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소녀를 보고 그 정도로 생각했다.

         

       아, 제랄 회장이 딸에게 현장학습을 시켜주고 싶었구나.

         

       그녀가 상회의 대리인으로서 실제로 뭔가 중요한 일을 처리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마 2층에서 나눠도 되는 수준의 이야기일 것이다.

       거기에 오가는 숫자만 0을 뒤에 한두 개 덧붙임으로써 베르그송 상회의 재력과 몸이 아픈 딸을 격려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소유권, 채굴권, 경영권을 입에 담자 소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한낱 10살짜리 소녀가 광산의 권리를 입에 담았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그녀가 거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도시에 있는 모든 탄광의 권리를 구매하길 원했다.

         

       물론 베르그송 정도 되는 대상회라면 충분히 이 도시의 모든 갱도의 권리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수십 개의 갱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유권, 채굴권, 경영권의 문제는 이 판에서 오래 묵은 상인이라 해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유권을 구매했는데 다른 갱도를 지나야 매장지에 접근할 수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갱도 통과료를 내기도 했다.

       채굴권을 구매했는데 이미 채굴할 만한 곳은 전부 파버린 속 빈 강정인 경우도 있었다.

       경영권을 구매해놓고 보니 지급해야 할 대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체불된 광부들의 임금이 쌓여있는 일은 이 바닥에서 흔했다.

         

       그리고 그 모든 권리가 갱도마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어떤 곳은 권리자마다 수익이 등분된 방면, 어떤 곳은 수직 깊이마다 비율이 달라졌고, 또 어떤 곳은 다른 갱도를 위해 광차 선로의 유지보수 의무가, 또 어떤 곳은 채굴된 석탄을 직접 가져가는 권리가 설정된 곳도 있었다.

         

       그 엉킨 실타래를 중간에서 조율해주는 게 바로 석탄거래소의 역할이었다.

       갱도마다 권리가 어쨌든 캐낸 석탄을 그들이 모두 일괄적으로 수거, 처리, 판매하고, 비용을 내부에서 계산해서 알아서 정산해주는 것이다.

       거래소는 그 대가로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겼다.

         

       그런데 소녀는 이 도시에 있는 모든 광산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있었다.

         

       설마…….

         

       뒤엉킨 실타래를 풀겠다는 건가?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물론 몇 달간 시간을 들여 수십 명의 직원을 동원하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말 그대로 가능은 하다는 소리다.

       그러나 그건 수지타산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럴 자원과 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상회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만만했다.

         

       소장은 한 번 해보라는 심정으로 석탄거래소의 자료실을 열람하게 해주었다.

         

       경험 삼아 온 현장학습.

       그런 거겠지.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소녀는 이곳에 온 지 2주 만에 석탄거래소의 간판을 내려버렸다.

         

       그녀는 호텔 방에 앉아 석탄거래소에서 가지고 나간 자료와 서류를 뒤적이더니 믿기지 않는 솜씨로 권리와 권리 사이에 얽힌 모든 경제적, 법률적 문제를 처리해버렸다.

         

       뒤엉킨 실타래에서 하나의 깔끔한 실을 뽑아낸 것이다.

         

       수십 개의 권리가 어떻게 오가고 어떤 가격으로 거래됐는지 파악조차 어려웠다.

       확실한 건 이제 이 도시에 있는 광산들의 모든 권리가 그녀 손에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대로.

       아니, 그 이상이었다.

         

       소장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소녀를 바라봤다.

         

       쉭쉭 거리는 바람 새는 소리와 차분한 눈빛.

       무엇보다 코와 입을 가린 금속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이것이 상계의 재녀라고 불리는 소녀.

         

       그 실력에 감탄했다.

       동시에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다.

         

       그녀가 내민 것은 자신들에 대한 해고통지서였으니까.

         

       언제나 시끌벅적했던 석탄거래소의 1층이 침통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2층 역시 다르지 않았다.

         

       뒤엉킨 실타래에서 가치를 창출하던 자신들은 더는 필요 없었다.

       모든 권리가 일원화된 지금, 아마 내일부터는 베르그송 상회의 직원들이 파견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모든 광산이 직접 운영될 것이다.

         

       “소장님, 서명 부탁드립니다.”

         

       마스크를 통해 나오는 울림.

       묘하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철가면, 아나이스.

         

       소장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펜을 들었다.

         

       이제 우린 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석탄거래소 직원들을 대량으로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이럴 때는 광부들이 그저 부럽구나.

         

       그렇게 막 서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사무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소장과 아나이스의 고개가 모두 돌아갔다.

         

       그곳에는 붉은 안색의 턱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있었다.

         

       아나이스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피에르 삼촌?”

         

       피에르는 아나이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후, 그녀의 옆에 앉았다.

         

       “삼촌이 어떻게 여기에 왔어요?”

       “네가 잘하고 있는지 보러?”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소장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피에르 모파상.

       베르그송 상회의 부회장.

         

       상계에서 수완가로 소문난 사내였다.

       그리고 이번에 자신들을 실업자로 만든 곳의 결정권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가 갑자기 이곳에는 왜?

         

       피에르는 느긋한 자세로 소장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상대를 앞에 두고 다리를 척 꼬는 여유까지 보였다.

         

       “아, 저 그림은 별로군. 떼어 버리고 싶은데.”

         

       그는 소장의 뒤편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그의 책상에 놓인 흑옥 장식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에이, 석탄을 뭐 책상 위에 올려둬?”

         

       그는 그렇게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원목 책상의 갈라짐, 커튼의 주름, 카펫의 먼지 따위를 트집 잡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소장의 안색은 굳어졌다.

       이곳은 무려 5년 동안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떠나는 마당이라 해도, 상대가 아무리 대상회의 부회장이라고 해도, 이런 무례는 참고 넘기기 힘들었다.

         

       “하하, 이런 방에서 살려면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살아야겠어.”

       “이보시오! 자꾸 무슨…….”

       “소장님.”

         

       피에르는 소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소장님은 얼마까지 받고 싶습니까?”

         

       무슨 헛소리냐고 고함을 치려던 소장이 멈칫했다.

       그가 던진 질문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4일
    -드디다주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죽지 않고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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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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