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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 * *

       

       

       

       자, 그럼 마흐노 문제도 되었고.

       

       

       “그 외에 현시점에서 문제가 될 일이 있습니까?”

       “브루실로프 장군의 군대가 폴란드에서 마찰이 있다고 합니다.”

       “폴란드에서요?”

       

       

       폴란드에서 마찰 일어날 일이 있는가?

       

       폴란드가 이 와중에 러시아를 공격한 건 아니겠지.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폴란드군이 영국을 믿고 시비를 건 모양입니다.”

       “폴란드라. 폴란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폴란드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독립하자마자 여기저기 쑤신 국가긴 하지.

       

       핵전쟁 일어나기 전에 한국에서 열심히 무기 사간 나라라 동맹 드립 나오고 같은 아픈 역사가 있다고 말이 많은 동유럽 국가지만.

       

       독립하자마자 어그로 잔뜩 끌고 확장 주의적 행보로 비호감 덩어리였지.

       

       하필 거기서 시비가 붙었다는 건가.

       

       또 전쟁은 아니겠지 설마.

       

       

       “전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겠죠.”

       

       

       지금 영국과 연이어 전쟁을 터트리는 건 좀 그래.

       

       애초에 영국이 우리를 잡을 생각이면 내전 중간에 중재해서 볼셰비키와 반갈죽을 시켜놨겠지.

       

       

       “예. 전쟁까지는 아닙니다. 폴란드에 있는 영국군이 대신 사과했습니다.”

       “그놈들이 대신요?”

       “독일 때문이겠죠. 프랑스와 영국은 지금 지쳤고. 혁명이 일어난 독일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저희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야 뭐.

       

       이거 러시아 완전 떡상한 거 아니냐.

       

       영국 놈들이 사과를 할 정도면 우리와 적대하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인데. 와! 내전을 겪고 약한 러시아가 순식간에 떡상!

       

       내가 굴린 스노우볼이 어마어마하게 굴렀다.

       

       

       “폴란드 쪽은 괜찮습니다만. 문제는 발트입니다.”

       “발트요?”

       “파벨 베르몬트 소장이 이끄는 서러시아 백군이 볼셰비키가 빠진 발트 3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싶다고.”

       

       

       그 사람도 팔자 편해져서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니다.

       

       적어도 러시아가 예전의 힘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순둥이인 국가로 야금야금 이익을 취해야 한다.

       

       

       “두마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그 발트 3국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넘어간 땅 아닙니까. 영국과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데요. 무엇보다 볼셰비키를 두들겨 잡을 때, 영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독립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까.”

       “우크라이나 동부를 먹은 것처럼. 최소한 3국 중 한 곳은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전 승리해서 지금의 땅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좋아해야 할 일 아닌가.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영국 영향력이 짙고. 그럼. 위치상. 에스토니아가 좋겠군요. 합중국에 합류하라고 해보세요. 그냥 제 의견일 뿐이니 차르는 전쟁만 반대한다고 총리가 두마에 알리면 되겠군요.”

       

       

       지금의 러시아 합중국은 본래 독립하고 싶어할 소수민족 국가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단합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로는 역시 볼셰비키 덕이라고 할까.

       

       자치권 확대라는 당근을 내밀면서. 볼셰비키가 앞으로 행할 벌레 같은 짓을 각인시켜주고 함께 볼셰비키와 싸우며 볼셰비키에 대한 공동전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미 베르몬트 장군과 에스토니아군이 싸웠다고 들었는데, 우리말을 따르겠습니까?”

       “싫으면 그때 가서 보면 될 일입니다. 굳이 영국에 밉보일 이유가 없죠. 그냥 말만 해보자는 겁니다. 지금은 전쟁할 때가 아니니까요.”

       

       

       굳이 싫다는 거 억지로 두들겨 팰 수는 없고.

       

       말했듯, 러시아는 양아치 국가가 돼서는 안 된다.

       

       에스토니아가 제안을 거절하면 뭐 영국과 싸울 것도 아니고.

       

       튀르키예 독립전쟁은 이쪽에 떨어지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대공황이 터질 때까지는 쥐죽은 듯 살아야지.

       

       오히려 우리가 그냥 넘어가서 러시아를 우습게 보고 발트가 깝치는 구도가 되면 그때 잡아도 되는 것이고.

       

       이제는 내부에 집중할 때지.

       

       발트는 그럼 적당히 선을 그을 수 있는 시점이고.

       

       문제는 결국 만주 쪽 아닌가. 이미 이야기가 다 된 시점인데, 일본 측에서 뭔가 말이 없다.

       

       

       “예.”

       “만주 분할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우리야 이미 북만주를 얻었다고 하지만. 남만주는 다르잖아.

       

       일본이 남만주 문제는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적당히 흘려넘길 생각인데. 이대로 라면 본래 존재해야 할 만주 쪽 군벌이 싹 다 사라지는 거 아닌가.

       

       

       “일본군이 얼마 전에 남만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우릴 상대하기는 힘들지만 바로 중국은 때려잡는 강약약강!

       

       

       “역시 일본군이네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깡패짓을 하고 있어요. 명분은 뭐라고 합니까?”

       “중국 마적들이 자꾸 압록강을 넘는다는 이유입니다.”

       

       

       고작 중국 마적들 때문에 남만주를 통째로 가져간다.

       

       과연 제국주의 뽕에 취한 놈들답다.

       

       아니면 중국이 지랄하면 우리가 연계해줄 거라 믿는 건가. 

       

       

       “그런 이유로 남만주를 통째로 가져간다. 역시 일본답네요. 하지만 그건 여러 의미로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만.”

       “황녀님이 주장하신 민족자결주의를 배웠더군요.”

       

       

       뭐?

       

       

       “민족자결주의.요?”

       

       

       내가 민족자결주의 비스무레한 걸 주장하긴 했다.

       

       러시아 내 소수민족을 존중하듯 민족마다 각기 나라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들 모두가 러시아 합중국 내에 있어야 한다고.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확대하면서 개편안을 실시하고. 뭐 그런 거다.

       

       즉, 나는 소수민족들은 존중받고 살아야 할 터전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소수민족들을 백군에 끌어들였다.

       

       그래. 일단 이건 뒤로 하고.

       

       설마 이것을 명분으로 들였다고?

       

       북만주를 점령한 아시아 기마사단은 운게른 휘하 사병 같은 집단이었다가 뒤늦게 백군에 편입한 식이라 우길 수는 있다.

       

       하지만 남만주는 아니거든.

       

       여기에 일본은 관동대지진 티캣도 끊어두지 않았나.

       

       내년에 터질 텐데.

       

       

       “잽스 놈들의 표면적인 명분은 황국신민인 조선인이 사는 남만주는 일본의 땅이라고 합니다.”

       “오.”

       

       

       굉장하네. 나를 보고 배운 건가.

       

       어떻게든 남만주 해 처먹고 싶어서 그랬을 텐데.

       

       워싱턴 회의에서 칭다오도 반환했을 테니 어떻게든 해먹고 싶을 거다.

       

       여기서 일본에 주의를 주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의 러시아로서는 중국땅인 남만주를 지켜주겠다고 일본을 까는 건 좀 그렇다.

       

       이럴 바에는 미리 물밑에서 주고받은 대로 남만주는 묵인한다.

       

       게다가 여기서 일본이 말도 안 되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나.

       

       조선인이 살고 있으니 남만주는 조선인의 땅이며 조선인은 황국신민이니 남만주는 일본의 영토.

       

       이 논리를 중국에서 인정해버린다면. 후일 이 마개조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남만주 붙여서 한국 독립시킬 때, 중국은 아무 소리도 못 한다.

       

       원래 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는 소리.

       

       굳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지.

       

       내가 원래 한국인이라서 남만주를 달아주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위치는 미국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에 딱이니까.

       

       후일 이 세계선의 한국이 친러국가가 될지 친미국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역사처럼 일본이 미국에 넘어간다면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러자면 좀 체급은 있어야지.

       

       

       * * *

       

       

       중국은 난데없이 남만주를 뜯기고 말았다.

       

       애초에 군벌 지역이고, 중국은 북벌 이전이라 그 지역을 온전히 중화민국의 영역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중국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장쭤린이란 마적 놈의 영역이긴 했지만 명실공히 중화의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처맞은 것이다.

       

       북만주는 러시아에 뜯기고.

       

       남만주도 일본에 뜯겼다.

       

       북양 정부는 곧바로 일본에 왕징웨이를 특사로 파견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만주는 우리 중화민국의 영토입니다!”

       “음, 그건 좀 어폐가 있군요.”

       

       

       그런데 정작 왕징웨이의 분노를 받아내고 있는 일본제국 외무성의 우치다 고사이는 얼굴이 굉장히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이미 모든 명분을 갖추고 질 수 없는 논쟁을 앞둔 자의 모습.

       

       왕징웨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뭐요?”

       “만주가 중화민국의 영토라니요. 본디 만주는 만주족의 땅 아닙니까? 청나라를 멸한 한족의 국가 중화민국이 만주족의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다니요.”

       

       

       멸청흥한.

       

       청나라를 멸하고 세운 한족의 중화민국이란 나라면서 어찌 그 청나라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일본 측은 조금도 이해도, 할 생각도 없었다.

       

       

       “뭐라고요?”

       “러시아가 북만주를 취하고 나서 남만주의 한족들도 대거 만리장성을 넘은 것으로 압니다만.”

       

       

       이미 러시아의 남하를 겪은 바 있는 동북 삼성의 한족들은 자의적, 또는 타의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이제 북만주에 남은 것은 러시아인으로 살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만주족과 일부 한족뿐. 더군다나 일본군이 최근에 수시로 만주로 넘어오기도 해서 군벌들이 발을 뺀 것에 불과한데. 그걸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민족자결주의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말하란 말입니다.”

       

       

       하여간 이놈의 지나 놈들은 말을 끝까지 안 들어먹는다.

       

       민족자결주의.

       

       모든 민족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겉으로는 탄압받는 소수민족들의 독립에 관련하여 좋게 써먹을 말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세계대전 패전국들에만 식민지를 토해내게 하려고 내뱉은 속 시커먼 주장으로 일본은 승전국이라 대한제국을 해방하지 않았다.

       

       

       “그 남만주에 조선인들이 많이 넘어가 살고 있지요. 자고로 그 땅에 사는 민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만리장성 이남이 한족들이 머무는 한족의 땅이듯, 남만주에 조선인들이 살고 있으니 마땅히 우리 일본의 땅이지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어찌 조선인이 사는 땅이 일본의 땅이란 말이오! 애초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가! 그 논리면 댁들은 조선부터 해방해야 하는데!”

       “식민지라니요? 대한제국이 일찍이 일본과 합병하여, 조선인 역시 일본의 신민이 되었으니, 마땅히 조선인이 사는 만주 역시 일본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합병. 그래. 말은 잘한다.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그래. 뭐 조선인이 과거 고구려의 영토다! 이러면서 떼를 쓴다면 왕징웨이는 아이고 그래. 니들 땅이었지요. 하면서 듣는 시늉만은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그런다?

       

       이건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합병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만주에 올라와 있는 조선인들은 식민지배를 피해 올라온 자들이 아닌가?

       

       

       “대체 그 무슨 미친 논리를.”

       “황국의 우방 대러시아 제국의 아나스타샤 차리나께서 우리 일본에 좋은 가르침을 주셨지 뭡니까.”

       

       

       또 아나스타샤 차리나란 말인가.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를 열심히 복구하고 있는 아나스타샤가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 무렵 중국에도 아나스타샤의 이름은 퍼져 있었다.

       

       세묘노프와 운게른의 아시아 기마사단이 퍼트린 소문의 주인공 몽골의 백인 대칸.

       

       러시아 제국은 몽골제국을 계승했다며, 공공연히 중국 군벌들에게 압박을 주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여차하면 몽골제국이 송나라를 따먹은 것처럼 중화민국이란 과실을 꿀꺽하겠단 소리가 아닌가.

       

       여기에 이제는 일본제국까지 한 숟갈 얹고 있다.

       

       

       “우리 일본은 만주에 사는 황국 신민인 조선인들을 중국 마적들로부터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정치 못하겠다면!”

       

       

       인정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우치다 고사이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굉장했다.

       

       

       “그리하시면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모두와 상대하시게 될 텐데 괜찮으신지.”

       

       

       일본인 특유의, 제국주의자 놈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얍삽하고 음험한 미소가 우치다 고사이의 입가에 번졌다.

       

       훗날 그 남만주가 한국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본은 열심히 러시아의 이름을 빌렸다.

       

       

       ‘가만, 설마 그럼. 일본제국과 러시아가 동맹이라도 맺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하면 이야기가 틀리지 않다.

       

       듣자하니 러시아는 독일에게 많은 땅을 뜯겼다고 했다. 그래서 취하기 쉬운 만주를 노린 것이고.

       

       일본도 워싱턴 회의로 인해 칭다오 반환을 해버려서 남만주라도 취하고 싶다. 그 말인 듯했다.

       

       지금 러시아도 일본도 대놓고 중국을 노리고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열강들은 조용하다.

       

       이건 이미 뒤에서 열강들도 묵인했다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정확히 말하면 유럽 열강은 앙카라 조약으로 막 모든 전쟁이 끝난 주요 열강들이 내부 문제로 눈을 돌린 탓에 지금 아시아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결국 왕징웨이는 굴복하고 말았다.

       

       몽골에 이어 만주까지.

       

       왕징웨이는 일본과 러시아가 너무 미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본은 만주 협상이 원활하게 돌아가자 혼자 러시아가 황국의 우방이 되었다고 착각 중입니다.

    현재 러시아에는 아직 독일 의용군이 남아있습니다.

    짝부랄 관련해서도 좀 나올 거 같기는 한데, 독일행은 안될 것 같네요.

    그리고. 그.. 이게 결국 플러스든 어디든 좀 유료 쪽으로 노리고 있는지라.. 지도 저작권 문제로 뭘 올릴 수 없는데. 대충 북만주 먹은 러시아 극동 영토와 일본제국 판도는. 하츠오브아이언4 라는 게임의 레드플러드 모드 극동 판도를 보시면 될듯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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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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