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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응? 고맙네.”

        “자넨 누구지?”

        “기숙사 관리를 맡고 있는 사감입니다. 이번에 11층에서 큰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무법자 놈들끼리 혈투를 벌였다고 하더군. 그중 한쪽이 ‘검은별’이었던가?”

       

        생활부 소속이라는 이쪽의 신원을 밝히자 11층을 지키던 치안대 소속 마법사들은 경계심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서 있는 발밑에서는 미약하게 위치노트의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갤러리의 차단 기능이 마비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지구에 있을 때도 딱히 연기같은 걸 배운 적 없음에도 목소리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누가 봐도 금이 간 벽돌에 튄 피를 보고 두려워하는 유약한 마법사 같았다.

       

        “세상에나! 저 같은 하층 출신이 많은 곳에 흑마법사라뇨! 당분간 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야겠습니다.”

        “걱정할 건 없네.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

        “조만간 전기도 다시 들어올 거고 치안부에서 새로 마련하려는 거점에 11층도 포함시킨다더군.”

        “그래서 이곳을 지키고 계신 거로군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큼큼, 뭐 그런 셈이지.”

        “어이 데런, 그건 아직 정식 공표되지 않은 사안이야. 이번 원탁회에서 발의하기로…….”

       

        낯간지러운 칭찬에 그들의 자세가 다소 흐트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배낭에 손을 넣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두 사람이 즉각 마장을 꺼냈지만 안에서 나온 것은 투명한 병에 담긴 음료였다.

        나는 자판기에서 뽑아 온 ‘트라팔가 호수 산 청정 얼음물’을 둘에게 건네며 말했다.

       

        “계속 근무 하시느라 힘드실텐데 이거라도 한 잔씩 드시죠.”

        “괜찮다. 우린 명령받은 일을 하는 것 뿐이니까.”

        “아뇨, 꼭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 같은 훌륭한 마법사 님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제겐 너무나 영광이니까요.”

        “아니, 그래도 지침 상…….”

        “단순히 안부를 주고받은 것 뿐인데 마치 마법적 가르침을 받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마탑을 비추는 등불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였군요!”

        “프레딕, 후학의 호의를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아.”

        “크흠, 그렇다면야…….”

       

        마치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부위를 시원하게 긁어 재끼는 듯한 사탕발림.

        나의 현란한 혀놀림에 금속 챙이 달린 로브의 후드 아래로 두 사람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사실 이번 사건은 치안대가 출동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말 그대로 뒤처리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듣기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신고가 누락되어 상부로부터 명령이 떨어지질 않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치안부의 표어까지 들먹이며 자신들을 추켜세우자 마법사들은 흡족하게 물병의 뚜껑을 열었다.

        참고로 정보부의 표어는 ‘전지(全知)를 발판삼아 전능(全能)을 추구한다’.

        생활부는 ‘복도에서 뛰지 마라’였다.

       

        “꿀꺽꿀꺽, 그러고 보니 자네 기숙사 사감이라고 했지. 정확히 어느 관을 말하는 거지?”

        “아, 그건…….”

        “오, 이 물은 죽음으로 맛있는…… 데? 커헉!”

        “데런? 억, 커억!”

       

        ‘과냉각’ 마법이 걸린 물에 닿자 순식간에 꽁꽁 얼어버린 두 사람.

        지난 사건 자판기 털이 사건 이후 분노에 찬 비나가 고안한 마법이었다.

        덕분에 엡실론 관에서 동상 환자가 속출해 지금은 판매 중지된 물건이지만 자판기 내부를 교체할 때 몰래 몇 병 챙겨 뒀었다.

        그 일로 크리스티나에게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난 비나는 니플헤이르의 본가에 호출당해 한동안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니 한 시간 안에 정신을 차릴 것이다.

        3위계 이상의 마법사들은 신체가 마법 저항력을 갖추고 있으니 더 빠를지도 모른다.

        데런과 프레딕을 옆으로 치워둔 나는 둘이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채 창을 조립했다.

       

        그리고 기감을 끌어올리며 바닥면을 향해 세 가지 묘리가 담긴 창을 힘껏 던졌다.

       

        콰아아앙——!!

       

        벽돌과 지반이 함께 무너지며 생겨난 작은 구멍.

        그 안에서 위치노트를 손에 꼭 쥔 채 벌벌 떨고 있는 붉은 머리의 마법사가 보였다.

        준비해온 로프를 밑으로 내렸지만 여섯 개의 저주가 중첩된 산태우기는 눈이 멀어 혼자 올라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직접 내려가 그녀를 안고 올라왔다.

        6일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대미궁에 고립되어 있던 터라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배낭에 있던 멀쩡한 ‘트라팔가 호수 산 청정 얼음물’을 입에 넣어주었다.

        니플헤이르가 공역에서 욕심내었던 만큼 단순한 물인데도 마나와 피로의 회복같은 부가적인 효과가 있었다.

       

        “지낼 만 했지?”

        “콜록, 콜록……! 크, 클락 님!

        “왜?”

        “저 말 잘 들을게요! 나쁜 짓도 안할게요! 산악 동호회에 몰래 잠입해서 명산 명단 빼온 다음 불태우고 다니지도 않을게요! 제발 다시 내려보내지만 말아 주세요……!!”

       

        혼탁하던 적안이 이채를 되찾고 몸에 수분이 충전되자 곧장 눈으로 내보내는 이자젤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반성을 제법 했나 보군.

       

        나는 그녀를 부축해 해주학파의 라운지로 데려갔다.

        마탑에선 무법자 신분에다 밖에서는 수배자, 치안대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검은별의 잔당인 이상 갈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비좁은 계단은 나름 평탄화 공사를 거쳐 물건을 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고, 안쪽에는 작은 사무실도 있었다.

        비품창고를 개조해 만든 숨겨진 방 역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딱 좋았다.

       

        수련의 층에 머무르는 인원이라고 해봤자 가끔 청소를 위해 들락거리는 토비를 제외하면 거의 나뿐이니 안전할 것이다.

        먹을 건 가끔 기숙사에 들어오는 음식들로 챙겨주면 되겠지.

       

        “당분간 여기서 지내.”

        “그…… 저어를 가두시는 이유가 뭔가요?”

        “싫어?”

        “아아 아뇨!! 저 실은 집착 당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완전 설레요!!”

        “얼씨구. 됐고, 네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이거야.”

       

        나는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흑마법사의 눈앞에 위치노트를 던졌다.

        이자젤은 책장에 올려져 있던 루퍼트의 분재에 눈독을 들이다 화들짝 놀라 바닥에 정좌했다.

       

        “나랑 같이 마법 하나 만들어야겠다.”

       

        검은별 출신의 범죄자를 굳이 거둬가며 이유.

        그건 바로 20층의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

       

        정령의 회랑(回廊)이라 불리는 20층의 시련은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을 회랑에 머무르는 정령들로부터 시험받는 것이다.

        성미가 고약한 정령들의 통과 기준은 재각각이지만 주로 기존의 것들과 동떨어진 마법일수록 부여되는 점수가 높았다.

       

        마리엘이 농땡이를 피우며 최대한 라운지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계산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학파도 없고, 본인의 신비를 이용한 마법은 모두 독자적인 형태였으니까.

       

        반면 저주명으로 높은 위계의 마법사들과 비비는 것과 달리 내 학문적 성취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온갖 시설이 즐비한 미티어와 글레시아 학파의 라운지에서 이용한 것은 오직 대련실 뿐.

        길게는 몇 달 동안 수련의 층에 틀어박혀 마법을 연구하는 이들과 달리 나는 빠르게 탑을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뒷받침 해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네? 하지만 저는 교수도 뭣도 아닌걸요? 마탑을 나올 때 학파에서도 파문당한 터라 신비조차 못 쓰는데…….”

        “대신 극마법의 대가지. 아니야?”

       

        산태우기는 오직 극마법 하나로 대륙에서 악명을 떨치던 마법사였다.

        나 역시 비나의 강의를 들으며 기초 정도는 꿰고 있는 분야였다.

       

        극마법의 특징은 술식의 구조와 마법의 작동원리가 모두 시전자의 사고에 기반한다는 것.

        그리고 상반되는 두 상태를 견지해야하는 만큼 극도로 불안정하고 복잡한 술식의 해석과 접목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거 뭔지 알지?”

        “대충은요. 제 때는 단순한 책자였지만 요즘은 꽤 인기 있다면서요? 오죽하면 검은별에서도 쓰는 사람이 많아 간부들이 공식적으로 금지 시켰어요. 마녀들의 농간이라니, 탑 안에만 있는 마법사들은 진짜 마녀들을 못 만나본 게 분명…….”

        “내가 만든 거야.”

        “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사고의 일부’를 서책의 형태로 간직하고 있는 특이한 인간이었다.

       

        처음 극마법을 배웠을 때, 그리고 저주명을 얻었을 때.

        갤러리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내 사고의 기반인 갤러리의 기능을 이용해 마법을 창조하는 것 역시 가능할 터.

        그 설계를 이자젤에게 떠넘…… 아니, 맡길 생각이었다.

       

        “이건 관리자용이야. 연구부의 다른 마법사들이 매번 찢고 해체하는 노트와는 다른 거지.”

        “저보고 이걸 해석 하라고요?”

        “난 코딩 같은 건 할 줄 모르거든. 대략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내용은 적어줄 테니까 열심히 노력해 봐.”

        “코…… 뭐요?”

       

        순간 코딩 노예라고 말할 뻔 했다.

        다행히 그녀는 노트를 손에 들고 갤러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게시물의 UI와 유사한 글 하나를 수기로 작성했다.

        그것을 보자 이자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뭔데요?”

        “누르고 싶게 생긴 커다랗고 빨간 버튼.”

       

        ====

        [이 버튼을 누르면 무고한 파딱 하나가 전술핵을 맞습니다.]

       

        누르시겠습니까? – 5P

        ====

       

        “어때? 실제로 작동하면 개쩔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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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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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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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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