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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큰일 났군.”

       

       “그러게. 세 명이면 충분히 무사할 줄 알았는데.”

       

       “저쪽도 조직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생각보다 너무 셌어. 과소평가했군. 하필 처음에 죽은 게 그 녀석이라서.”

       

       “마르모가 좀 약하긴 했지.”

       

       

       어두침침한 회의실.

       

       열두 가지의 동물 그림이 그려진 탁자에 놓인 주인 없는 의자들이 신경 쓰였다.

       

       평소에는 다들 북적였는데.

       

       나만 그 분위기를 느낀 게 아닌 걸까? 어쩐지 다들 평소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보스는 아직 안 왔어?”

       

       “보스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기억 안 나?”

       

       “아니, 십이지니 간부니 해도 결국 그 사람이 만든 조직이잖아. 보스를 보스라고 부르는 게 뭐가 나빠?”

       

       “나쁜 건 아니지만, 내가 하지 말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동등하게 대해달라고 했잖아.”

       

       “···아, 왔구나. 보스.”

       

       “하아. 너는 변하지 않는구나.”

       

       

       우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는 하지만, 보스는 용인데. 호랑이는 저기 앉아있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비췻빛 뿔이 아름답게 빛나는 보스가 자기 자리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당연하게도 자리에 앉을 줄 알았는데. 왜 자리에 앉지 않는 거지?

       

       

       “보스? 보스 자리는 거기인데?”

       

       

       질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보스가 창문을 향해 다가가더니, 갑자기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너희가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야? 햇볕 좀 쬐고 살라고.”

       

       “아악, 내 눈! 보스, 우리 빌런이니까 어둠의 자식들 맞거든! 빨리 커튼 쳐!”

       

       “···그런가?”

       

       

       다들 갑작스럽게 내리쬔 태양 빛에 괴로워하자 멋쩍게 웃은 보스가 다시 커튼을 쳐주었다.

       

       보스는 여전히 쓸데없는 걸 배워오는구나. 굳이 안 해도 되는걸. 우리를 배려해주려는 건 알겠지만, 이런 건 굳이 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한바탕 난리를 피우며 무거웠던 분위기가 풀어졌지만, 이내 자리에 앉은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다들 숙연해졌다.

       

       

       “네 명이 죽었어.”

       

       “···.”

       

       “이야, 사람들이 조금 없어졌다고 이렇게 허전할 줄은 몰랐네. 익숙해진다는 게 참 무서워.”

       

       “···보스.”

       

       “알아, 알아. 우리는 빌런이고, 언제 죽거나 체포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텅 빈 의자를 잠깐 응시한 보스가, 긴급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다들 들어봐. 계획이 수틀렸어.”

       

       “그래, 수틀렸지.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미르? 아카데미를 습격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랬지. ···계획의 수정은 없을 거야. 이대로 강행한다.”

       

       “뭐? 하지만, 그건···.”

       

       “전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거라고?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너도 알잖아.”

       

       “···목표. 그래, 잘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보스가 우연히 찾아낸 초대 교장의 수기에 적혀있던 비밀의 방. 그리고 그곳에 잠든 아티팩트.

       

       그게 조직의 최종 목표를 위한 열쇠였으니까.

       

       

       “그걸 가져야만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그래서 그 아이를 꾀었을 때 다들 기뻐했잖아? 쉽게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꼬신 보람도 없이 죽어버렸고.”

       

       “후우, 그래. 살아만 있어 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다른 간부들의 말에 한숨을 내쉰 보스가 우리를 향해 선언했다.

       

       

       “아카데미 내부에 숨겨진 아티팩트를 찾아야 해. 그래야만 우리의 염원을 이룰 수 있으니까. 더 계획을 미룰 수는 없어.”

       

       “···아라크네 때문이군.”

       

       “맞아. 그 성가신 녀석들. 빌런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모양이더라.”

       

       

       싫어할 만하긴 하지.

       

       빌런들은 아무리 좋게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는 범죄자다.

       

       그냥 범죄자도 아니고, 피해자가 손 쓸 도리도 없을 정도로 강해서 보복도 불가능한 범죄자.

       

       공권력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라크네를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

       

       쳇. 그 녀석들도 빌런 아니냐고.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

       

       편해서일까? 그 가능성이 제일 높긴 하네.

       

       아주 편하겠지. 손쓰기 힘든 골칫거리였던 놈들을 대신 처치해주니까.

       

       

       “그 녀석들을 정리하고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게 맞겠지만···.”

       

       “안 돼. 피해가 클 거야. 그 인원수가 몰살당했어. 전원이 합류해야 한다고. 공권력이 그걸 내버려 둘 것 같아?”

       

       “···어림도 없겠군.”

       

       “전원이 모이는 건 습격 당일로 충분해.”

       

       

       호랑이와 보스가 떠드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분명 조직이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질까 토론하는 거겠지.

       

       그들의 목소리 사이로 다른 간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귀를 닫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어려운 건 잘 몰라.

       

       보스가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항상 그래 왔으니까.

       

       나는 보스의 충견. 언제나 그녀의 곁에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애니. 애니!”

       

       “아, 보스.”

       

       “보스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너, 또 회의하는 데 잠들었구나. 중요한 내용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런 거 나는 잘 몰라.”

       

       “하아, 내가 널 어찌하면 좋을까.”

       

       

       보스가 한숨을 내쉬어도 나는 마냥 좋았다.

       

       보스가 나를 깨웠다는 건, 할 말이 있다는 거니까.

       

       

       “정해졌어?”

       

       “···응. 아카데미를 습격할 거야.”

       

       “언제?”

       

       “방학식. 그때가 가장 경비가 적을 테니까.”

       

       “그렇구나.”

       

       “···애니, 너는 항상 의문을 표하지 않는구나.”

       

       “보스, 아니. 미르는 항상 정답이었는걸.”

       

       

       쓰게 웃는 보스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나는 보스의 충견. 그저 따를 뿐.

       

       

       

       ***

       

       

       

       [방학식 날에 총공격을 하기로 했어요!]

       

       “···네?”

       

       [위버멘쉬요! 방학식 날에 아카데미 총공격! 불타는 아카데미!]

       

       “미쳤어요?”

       

       

       아, 실수.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걸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다행인 점은 작가님이 내 격한 반응에 화들짝 놀랬다는 점일까?

       

       순간 작가님이 화를 낼까 봐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그러지는 않았다.

       

       

       [왜, 왜요···?]

       

       “무슨 아카데미 소설이 방학식 날에 아카데미가 불타요? 방학 이벤트도 안 써요?”

       

       [에이, 안 불타요! 주인공이 멋지게 전부 막아줄 거니까!]

       

       

       미친 소리 하고 있네. 8명을 어떻게 다 잡아? 미쳤어?

       

       이렇게 된 이상 강하게 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님을 설득하는 것.

       

       ···나도 간부 8명을 상대하라고 하면 패배할 거다. 확실하다.

       

       세 명을 잡을 때도 허세가 먹히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꼴이었을지.

       

       그런데 유시우가 빌런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고? 장난해?

       

       총공세면 분명 강한 빌런들도 잔뜩 튀어나올 텐데.

       

       아직 그 정도로 유시우는 성장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게 보이긴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못 해요. 아직 그 정도로 주인공이 성장하지 못했다고요.”

       

       [하지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능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유시우한테 뜬금없이 불사조가 된다든가 하는 능력이 생긴다면야 가능하겠지만요. 작가님, 그런 거 못 하시잖아요?”

       

       [어, 네?! 모, 못하죠! 네! 개연성이 부족하니까!]

       

       

       ···뭐야? 왜 이렇게 놀라? 나도 아는 사실인데.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현실에서는 뜬금없이 누군가 묻지 마 살인으로 죽어도 슬퍼할 뿐이지만, 소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주연이 뜬금없이 묻지 마 살인으로 죽는 순간 바로 독자들이 폭발한다고.

       

       그렇기에 현실보다 더욱 개연성을 챙겨야 하는 게 바로 소설이다, 이 말이야.

       

       작가님이 만능이 아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님도 결국 소설을 집필하는 입장.

       

       아, 주인공이 너무 셌으면 좋겠다! 하면서 능력을 세 개 네 개씩 박아줄 수가 없다 이거지.

       

       능력은 한 명당 한 개라는 설정이니까, 주인공 편애한다고 능력 이것저것 쥐여주면 개연성이 박살 난다.

       

       강해진 능력이 점차 발전해서 새로운 능력이 되는 것처럼, 충분한 개연성이 쌓이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어쩔 수 없네요, 작가님.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학식이어야 하나요?”

       

       [방학식 날에 멋있게 빌런 잡고, 방학 동안 잔뜩 일상 파트 쓰고 싶었는데···.]

       

       

       계획이 있네?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뜬구름 잡는듯한 계획이지만, 기분파인 작가님이 계획을 세운 이상 방해하기가 조금 애매해졌다.

       

       이 계획 안 된답시고 억지로 묻으려 들면 반발이 생길 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이게 뭐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날아든 우주 스파게티 괴물이 날아온 것도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할까.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곧 있으면 기말고사.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방학식, 맞죠?”

       

       [네!]

       

       “어떻게 해야 남는 시간 동안 빌런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네···.]

       

       

       시간이 없었다.

       

       네 명의 간부를,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학식 이전에 처치해야만 했다.

       

       

       

       ***

       

       

       

       “아잇, 너 뭐해. 다시 해봐.”

       

       “아, 아르테···! 나랑 놀러 가지 않을래?”

       

       “자신감이 없어! 다시!”

       

       “···있지, 아멜리아. 이거 진짜로 해야 하는 거 맞아?”

       

       

       시우는 아멜리아가 원망스러워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차라리 비밀의 방을 찾아다니는 게···.”

       

       “집중 하나도 못 하고 있는 거 다 봤거든?! 이거나 연습해! 차라리 이게 더 가능성 있을 것 같으니까.”

       

       “···.”

       

       

       아멜리아의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뭘까.

       

       시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있지, 아멜리아.”

       

       “응?”

       

       “만약, 만약이지만 말이야. 아르테가 정말 나에게 반한 게 아니라면, 어떡할 거야?”

       

       

       아멜리아가 불퉁한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기에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당연히 사랑밖에 없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겠지. 지겹도록 들었다.

       

       

       “만약! 만약이라면 말이야!”

       

       “그 질문에 굳이 대답까지 해야해?”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정말 사랑하는 게 맞아? 그런 것 치고는 같이 놀자는 말 한마디 안 하는데?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 싶었지만 다시 의문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내 질문을 아멜리아가 아주 쉽다는 듯 대답했다.

       

       

       “만약 아르테가 네게 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없잖아?”

       

       “···그게 왜 문제가 없어?”

       

       “네게 반하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말문이 막혔다.

       

       아멜리아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러니까 다시 준비해! 자, 한 번 더! 자연스럽게!”

       

       “하아···.”

       

       

       어쩔 수 없었다.

       

       아르테가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다가 아멜리아의 심기를 건드린 건 다름 아닌 나니까.

       

       더 반박했다가는 아멜리아가 난리를 피울 것 같아서 따라주기로 했다.

       

       

       “아르테, 나랑 놀러 가지 않을래?”

       

       “오, 이건 좀 괜찮은데. 다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표지는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세용!

    ***

    AABABBA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맥과이어 댄스는 저도 좋아하지만, 제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기에 대답드리지는 못하겠네요!

    JJH27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선작 1만 감사 메세지,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가능했네요! 사, 사, 사···사랑해요!

    너부리이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야무지다니, 정말 감사한 표현이네요! 즐겨주시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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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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