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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뭘 봐?”

       

       일어나자마자 집 밖으로 나왔더니 대가리를 비롯한 잡귀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병신을 보는 것처럼.

       

       어떻게 진짜로 잠만 잘 수 있느냐고 얼굴에 써져 있었다.

       

       “어쭈…?”

       

       – ….

       

       대가리가 양손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깝죽거리는 걸 보니 아주 내가 만만해진 모양이다.

       

       오래간만에 방울로 푸닥거리를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이 아침부터 머리에 칼을 맞았나.”

       

       – …..

       

       시무룩 .

       

       대가리와 잡귀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머리에 큰 상처가 난 잡귀들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심하긴 했다.

       

       “…미안.”

       

       – ….

       

       “…그러게 누가 죄 짓고 죽으랬나.”

       

       – ….

       

       “세레나한테 제삿상 좀 잘 차려두라고 말해줄게.”

       

       잡귀의 숫자가 늘어났다.

       

       평소의 두배 정도로.

       

       어제 한번 모인 이후로 아주 터를 잡은 모양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집인데 무슨 귀신이 이렇게 많아…?”

       

       도깨비터도 아니고···.

       

       신당으로 걸어들어온 나는 밝혀진 촛불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문제없이 잘 타들어 가는 것이 별일은 없어 보였다.

       

       “음…”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촛불 하나.

       

       세레나가 촛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를 위한 초를 올려 줬다.

       

       어째 타들어가는 것이 다른 것들 보다 조금 빠른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별일 없으려나?”

       

       신당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 앞에 주저앉은 나는 한 곳에 모아둔 씨앗들을 움켜쥐었다.

       

       딸랑 –

       

       딸랑 –

       

       “어디 보자…”

       

       촤르륵 –

       

       “신빨 좋고…건강 좋고…”

       

       씨앗의 배열이 흡족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덕을 쌓다 보니 운기가 탁 트여 있었다.

       

       지금은 뭘 해도 쉽게 얻을 만큼 기운이 좋았다.

       

       “손님이 오겠네.”

       

       놓여진 씨앗 한 귀퉁이가 크게 뭉쳐 있었다.

       

       “한둘이 아니네.”

       

       여러 사람이었지만 목적은 둘이었다.

       

       첫 번째로 올 손님은···.

       

       “출세길을 열면서 오네.”

       

       그것도 아주 활짝 열려 있었다.

       

       무당 팔자에 출세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출세는 좋은데… 따라가면 고생 꽤나 하겠어.”

       

       딸랑 –

       

       두 번째 손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쯧…”

       

       점괘가 스쳐 지나가자마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지금 내 표정이 딱 삐뚫어진 자식새끼를 보는 부모의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이걸 받아야 하나?”

       

       꺼림칙한 손님이다.

       

       반가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닌···.

       

       아주 골칫덩이의 느낌.

       

       “마을에 못 나가겠는데?”

       

       오늘은 날이 손님만 받을 날이었다.

       

       “야, 대가리!”

       

       스윽.

       

       대가리가 벽을 뚫고 쫄래쫄래 다가왔다.

       

       “손님 오시니까 잘 보고 있어. 도착하면 알려주고.”

       

       끄덕.

       

       “두 번째 손님한테는 장난치지 말고…음…그냥 가까이 가지도 마.”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의 대가리.

       

       하지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하루를 통째로 잡아먹나…”

       

       딸랑 –

       

       방울을 흔들었다.

       

       “고집세고, 거만하고, 단단하고…호기심도 많네? 이게 뭐야?”

       

       귀족과 비슷한 인상이다.

       

       아마 첫 번째로 올 손님은 귀족이지 싶었다.

       

       딸랑 –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우 눈부셔.”

       

       두 번째 손님은 성직자 인 것 같다.

       

       굳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지간히도 말을 안 들어 처먹는 놈이구나.”

       

       느껴지는 인상이 딱 그랬다.

       

       덜 자란 개구쟁이.

       

       딸랑 –

       

       “두 손님이 다 고생길을 가지고 오네…”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고생길이란 말인가.

       

       팔자에 대한 한탄을 안 할 수가 없는 인생이다.

       

       “때려칠 수도 없고…”

       

       무당일을 때려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신병이 얼마나 무서운데···.

       

       재수가 없기는 물론이고 심하면 정신병에 불구까지 될 수가 있다.

       

       이곳에도 신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당팔자를 거부하는 사람치고 멀쩡하게 사는 사람을 몇 명 못 봤다.

       

       그조차도 동종업계 종사자가 되었지.

       

       물론, 제대로 된 무당팔자일 경우다.

       

       잡신을 받은 놈들은 해당 사항이 없다.

       

       “그만뒀다가는 최소 벼락이지.”

       

       한번 맞은 거 두 번을 못맞겠는가.

       

       “어쨌든…”

       

       이왕 가는 고생길 중에 마음에 드는걸 골라서 갈 생각이다.

       

       내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보자…”

       

       딸랑 –

       

       딸랑 –

       

       방울을 흔들수록 주변 공기가 변하는 듯했다.

       

       실제로 나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 덥고···.

       

       뜨거웠다.

       

       “여기는 불지옥이고…”

       

       딸랑 –

       

       두 번째 손님도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도 불지옥이네…뭐길래 이렇게 뜨거워?”

       

       따라가면 어디 불이라도 나는 걸까.

       

       재밌는 사실은 두 손님 모두 결국은 같은 곳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

       

       다른 목적으로 왔지만 결국은 하나였다.

       

       “어딜 가도 똑같네.”

       

       역시나 내 생각대로 선택지는 없었다.

       

       어디 인생이 마음대로 살아지겠는가.

       

       무당은 팔자대로 살아야지.

       

       “에라이…”

       

       괜스레 일어나서 신당의 먼지를 한번 털어 준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손님 맞을 준비나 해야겠네.”

       

       

       ***

       

       알루어드.

       

       성이 없는 이름.

       

       하지만 그의 모습은 누구나 귀족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품이 흐르는 모습이었다.

       

       하얀색에 가까운 백금발을 곱게 빗어 넘겨 질끈 묶은 머리.

       

       그 밑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이목구비가 은색의 갑옷과 어우러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허리에 메어진 검마저 먼지 한톨 없이 깔끔하기만 했다.

       

       그를 지칭하는 말들은 많았다.

       

       차기 교황 후보.

       

       고귀한 성기사.

       

       일리아의 자녀.

       

       교단의 여러 신들 중 대지의 신인 일리아를 따라 고행길을 걷는 알루어드.

       

       그는 지금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공동묘지 앞에 집을 짓고 살다니…”

       

       알루어드는 한스가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표정을 단정히 하세요. 생긴걸로도 욕을 먹습니다.’

       

       ‘마음도 가지런히 하세요. 꿰뚫어 봅니다.’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주세요. 5실버 아끼려다가 큰일을 당합니다.’

       

       ‘가벼워 보이지만 가볍게 보지 마세요. 특히나 갑자기 다른 사람 같을 때는 더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도통 알 수가 없는 말들이었다.

       

       그 외에도 이해가 안 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탁을 받는다고 했던가…”

       

       거기에다 영혼조차 볼 수 있다고 하는 그 사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려 네크로맨서의 음모에서 세계수와 엘프를 구했다고 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들은 것만 해도 어렸을 적부터 듣고 자라온 성자와 성녀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실제로 한스의 평은 이러했다.

       

       ‘성자가 아님에도 성자 같은 사람.’

       

       이 말 한마디가 알루어드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클라인에게 본인이 가겠다며 매달린 끝에 받을 수 있었던 임무였다.

       

       누구보다 성자의 이야기를 존경하는 알루어드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산다는 말인가.”

       

       인적이 없는 산속이었다.

       

       누구라도 묘지의 근처에 살라고 하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라…”

       

       길을 따라 올라가던 알루어드의 눈에 초라한 집 한 체가 보였다.

       

       내심 귀족의 집을 상상하고 있던 알루어드.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집이었다.

       

       평민이 사는 집이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검소한 축에 드는 집이다.

       

       알루어드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엘프의 은인이면서도 한없이 소탈한 분이시구나.”

       

       원했다면 대저택마저도 충분히 소유할 수 있었을 텐데. 

       

       곧 있으면 보게 될 그 사람의 모습에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리고 알루어드는 크리스와 마주할 수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

       

       소박하게 차려입은 검은색의 옷.

       

       치켜떠진 눈과 시선을 마주한 알루어드는 순간 몸을 굳혔다.

       

       ‘…무슨 눈빛이 이리도 강렬하다는 말인가.’

       

       편안 해 보이는 눈 속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서운 기세가 들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본 그조차도 움찔거리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멈춰 선 알루어드의 앞에서 크리스의 입이 열렸다.

       

       “진짜 더럽게 말 안 듣는 놈이네.”

       

       어느 누가 초면에 저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알루어드는 불쾌함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알루어드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크리스의 입은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 올 놈이 기어코 먼저 와 버렸네…참나…”

       

       말의 뜻만 들어 보면 마치 자신이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인 듯했다.

       

       이미 테이블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으니까.

       

       “거기 대충 앉아. 먹을 것 좀 챙겨 놨어.”

       

       “…제가 올 줄 알고 계셨습니까?”

       

       “또 올 거야. 조금 기다려야 해. 너무 빨리 왔어.”

       

       다시 한번 크리스와 눈을 마주한 알루어드는 그만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강렬한 눈이 자신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를 이렇게 만들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눈부신 놈이 먼저 와 버렸네…”

       

       이 말을 남기고는 크리스는 눈을 감아 버렸다.

       

       알루어드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다는 의사의 표시일까.

       

       먼 곳을 향해 돌아간 크리스의 고개.

       

       그 고개를 따라 시선을 돌리는 알루어드에게로 크리스의 말이 날아들었다.

       

       “거기가 아니야. 조금 더 옆으로.”

       

       “…옆으로 말씀이십니까?”

       

       크리스의 말을 따라 시선을 옮기려던 알루어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자기가 보는 곳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날 보지 말고, 저쪽을 보라니까?”

       

       크리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알루어드의 눈에는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혼을 본다고 했으니 그의 눈에는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알루어드가 크리스에게 물었다.

       

       “저곳에 무언가가 있습니까?”

       

       성자보다 더 성자 같은 사람.

       

       혹시나 현기가 어린 대답을 해주지는 않을까, 알루어드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예?”

       

       “어르신들이 너 느끼하게 생겼다고 고개 돌리고 있으래.”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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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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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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