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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쉬는 시간에 애들이 주로 모여서 노는 강의동 옆 정원으로 가니 역시나 저쪽에 나이틀리와 추종자들이 있다.

       

       “야! 나이틀리! 뭐 좀 물어보자!”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자 추종자들은 모두 도망치고 나이틀리 혼자 남아 팔짱을 끼고 나를 기다렸다.

       

       “뭔데요?”

       “너네 뭐 있냐? 애들이 자꾸 나만 보면 피하는데?”

       “글쎄요?”

       

       나이틀리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 거라면 당사자들한테 물어보셔야지 왜 저를 찾아 오셨어요?”

       “물어보려고 했는데 도망쳐 버려서. 그래도 네가 나랑은 제일 가까운 학생이잖아.”

       

       그 말에 나이틀리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저 말고는 친한 학생이 없는 건가요?”

       “뭐, 개인적으로 그런 학생은 딱히 없지.”

       

       그러자 나이틀리의 숨소리가 살짝 불규칙해졌다.

       

       “저밖에 없다는 말씀이시죠?”

       “글쎄.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저밖에 없는 거죠?”

       “그래. 너밖에 없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 거 있으면 말해 봐.”

       

       집요한 물음에 대충 대답하자 나이틀리이 입이 귀에 내걸렸다.

       

       “뭐, 그런 말이 있었어요. 교수님하고 저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아시잖아요.”

       

       교수와 여학생 사이에 그렇고 그런 사이라…. 짐작은 가네.

       

       “그래서 애들이 나를 피하고 있는 거냐? 그거 뭔데? 어디서 퍼진 근거 없는 헛소문이야?”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지요, 교수님. 아니뗀 굴뚝에 연기 나나요?”

       “무슨 근거를 말하는 건데?”

       

       그러나 나이틀리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아, 설마 너랑 나랑 개인교습하느라 붙어 있던 것 때문이라는 건가? 그거 오해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이렇게나 됐다고? 도중에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양념을 뿌린 게 분명하다.

       

       그게 누구일까…. 누구일까…. 누구인지 알겠네. 한번 제대로 캐볼까?

       

       “교수님. 듣고 계세요?”

       “어? 말했냐?”

       “저랑 오늘 개인교습하실래요?”

       “오늘? 오늘은 하는 날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꼭 정해진 날에 정해진 내용만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그 말을 하며 나이틀리가 교태로운 눈웃음을 지었다.

       

       이스메라의 가식적이지만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눈웃음을 몇 번이나 본 나였기에 딱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어린 게 벌써부터 저래서야 원.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과감히 가죠? 억울할 바에야 해버리는 거 어때요?”

       

       나이틀리가 셔츠를 손가락으로 살짝 들추며 다소 어색한 태도로 입술을 핥았다. 저런 미친.

       

       키르린은 내가 조금은 알고 있다. 그 바보 순둥이 다크엘프가 어느 순간부터 내게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거.

       

       그런데 나이틀리도 저럴 줄은 몰랐네.

       

       아마 콧대 높은 공작영애님이니 지금껏 모든 일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독점하려는 것이겠지? 웃기고 있어, 어린 게!

       

       “시끄러!”

       “아악!”

       

       살짝 꿀밤을 먹이자 나이틀리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몸을 웅크렸다.

       

       “왜 때려요! 맞는 말이잖아요!”

       “맞는 말이지. 쳐맞는 말!”

       

       주먹을 들어올리자 나이틀리가 호다닥 도망쳤다.

       

       에휴, 저걸 진짜 아빠한테 확 돌려 보내 버릴까 보다.

       

       제딴에는 나름 머리 쓰고 있다지만 그래도 애는 애네.

       

       그나저나 이거 아마 힌드라스타의 분탕질인 것 같은데….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어차피 그놈 잡아다 족쳐 봐야 스스로 뭔가 불지는 않을 거고….

       

       “펠레미아!”

       

       막 심리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펠레미아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급하게.”

       “너, 혹시 최근에 애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 들은 거 없냐?”

       “글쎄요. 어떤 것 때문이시죠?”

       

       아까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말해주자 펠레미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확실히 기류가 수상하네요. 제가 좀 확인해 볼까요?”

       “그래줬으면 좋겠다. 뭔지 모르겠는데 이게 학업 분위기를 흐리면 곤란하지.”

       “알겠어요. 오늘 퇴근 전에는 알아보고 결과를 보고드릴게요.”

       

       펠레미아가 망토를 휘날리며 스르륵 아이들 틈으로 섞여 들었다.

       

       펠레미아는 심리전 교수로 협박, 회유, 설득, 세뇌 등의 전문가.

       

       분명 뭔가 알찬 정보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약속대로 펠레미아가 교수실로 찾아왔다.

       

       “수석교수님. 몇 가지를 알아 봤는데요.”

       “말해 봐.”

       

       펠레미아가 자신이 알아온 것들을 내게 알려주었다.

       

       1. 가장 먼저 디안-나이틀리의 관계를 미심쩍은 분위기로 언급한 것은 특기생 소피에임.

       

       2. ‘전학생이라 궁금해서 그러는데 두 사람 종종 둘이 있는 것 같던데 뭐 있나?’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으며 이게 사태의 시발점임.

       

       3. 당시 소피에가 그 발언을 한 배경은 아카데미 동문으로 나가는 디안-나이틀리를 목격하면서임.

       

       4. 소문이 퍼지며 점점 와전되었고 지금은 디안 교수와 하녀가 부부 사이인데 나이틀리와 불륜하고 있다는 설, 그 하녀가 디안-나이틀리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는 설, 디안이 나이틀리를 강간하고 그것을 약점삼고 있다는 설, 브룬고원에서 야생마를 탔던 게 아니라 디안을 탔다는 설, 이번에 아카데미로 잡혀 온 트롤은 아카데미 동문 숲에서 디안-나이틀리가 정분을 통하던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두들겨 맞고 감금되었다는 설, 원래 디안은 귀가 긴 여자가 취향이라 키르린-이스메라….

       

       “그만그만.”

       

       더 들었다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아 손을 들어 펠레미아의 말을 막았다.

       

       “그러니까 소문의 시초가 소피에 학생이라는 거지?”

       “맞아요. 하지만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처음 힌드라스타의 말에는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제3자의 눈에야 그런 거고.

       

       힌드라스타가 어떤 드래곤인데. 분탕의 귀재가 보험 하나 안 들어 놨겠어?

       

       나한테는 자기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거였고 어쩌고 저쩌고 발뺌할 거리를 미리 만들어 뒀을 터.

       

       분명 아카데미에서의 내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럼 당장 떠오르는 건 세 가지.

       

       첫 번째는 잘못된 여론을 바로잡는 것.

       

       아무리 헛소문이라도 전투수석이 개별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이 도는 거는 아카데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두 번째는 이번 일을 오히려 기회 삼아 여론선동 및 정보수집 관련 수업으로 활용하는 것.

       

       현장임무 중에는 적대국에 침투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혹은 역으로 우리쪽에 퍼지는 유언비어와 선동의 진위여부를 판별하는 것들이 있다.

       

       이번 사태가 딱 그런 상황과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써먹는다면 유익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힌드라스타 정신 재무장. 이 녀석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럼 일단 난이도가 낮은 세 번째부터 빠르게 해결해 볼까.

       

       책상에 기대어 둔 실습용 목검을 집어 들며 교수실을 나섰다.

       

       

       # # # # #

       

       

       트롤이 갇혀 있는 아카데미 폐건물 옥상.

       

       수업을 임의로 빼먹은 힌드라스타는 어디선가 구해온 선베드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여유롭게 봄햇살을 즐기는 중이었다.

       

       디안 교수님하고 나이틀리가? 아카데미 동문 밖 숲에서 뭘 했다고? 그거 트롤 잡으러 간 거 아니었나? 트롤은 웨이버 교수님이 잡았고. 솔직히 사냥 전이나 후에 충분히 시간 있었을 거아냐.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야간침투 때 나이틀리만 따로 다른 경로로 가지 않았어? 그게 심화수업이 아니라…. 야생마 잡아올 때도 나이틀리가 따라갔다고 하던데. 그럼 말을 탄 게 아니라 교수님을 탄 거야?! 누가 그러지 않았나? 나이틀리 걔, 정략결혼 피해서 여기로 도망친 거라고. 그런데 나이틀리네 아버지 여기 왔을 때 디안 교수님이랑 엄청 친해 보였지 않아? 그러면 나이틀리의 새로운 결혼상대가 디안 교수님인가? 디안 교수님 귀족이었어? 나도 모르지. 그런데 귀족인 것 같기는 해. 아카데미에 디안 교수님이 눈치 보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아니면 숨겨둔 비밀황자? 여튼 나이틀리랑 디안 교수님이랑 교수실에서 서로 물고빨고 했다는 건 사실인 거지? 그 집에 같이 사는 하녀는 그럼 어떤 관계야? 누가 그러던데? 딸이면서 아내면서… 아, 복잡해! 하… 이렇게 디안 교수님을 빼앗기는구나…. 졸업하면 고백하려고 했는데…. 지랄하네. 디안 교수님이 너 같은 애를 무슨.

       

       자신이 만든 눈덩이가 굴러가며 미친듯이 덩치를 키우자 힌드라스타는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그래, 이 맛이야. 이 맛에 분탕치는 거지! 계속 굴러가라고!

       

       여기다가 갇혀 있던 트롤까지 풀어놓으면 더욱더 재미있어 지겠지?

       

       아, 미치겠다! 흥분돼서 주체할 수가 없어!

       

       히죽히죽 웃던 힌드라스타에게 무언가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비켜. 햇빛 가리잖아.”

       “나랑 얘기 좀 하지.”

       

       짜증을 내던 힌드라스타가 기겁하며 몸을 일으키다 선베드를 뒤집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디, 디안…?”

       

       디안이 실습용 목검을 어깨에 걸친 채 힌드라스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지금 수업 들어가려고 했어!”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진짜야! 본체일 때 일광욕을 하던 버릇 때문에 잠깐 여기 왔던 것뿐이라고! 이제 갈 거야!”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뭐? 할말이라도 있어? 어? 그럼 해. 그렇게 폼 잡고 있지 말고!”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하아, 그래. 알았어. 미안해. 디저트 카페에 네 이름 달고 외상 좀 했어. 금방 갚을게.”

       “뭐…?”

       

       아, 쓰읍. 이게 아니었나? 괜히 말했네.

       

       “어쨌든 이제 됐지? 나 간다?”

       

       디안이 말없이 걸음을 옮겨 퇴로를 막았다.

       

       “뭐야, 진짜! 뭔데! 왜 사람 겁주고 난리냐고!”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잠시 디안을 보던 힌드라스타는 결국 이실직고했다.

       

       “맞아. 내가 괜한 말을 했어. 너랑 그 여자애가 밖으로 나가길래 뭔가 싶어 인간들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이렇게 됐을 줄이야.”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미안하게 생각해. 과한 호기심이 문제였지 뭐. 하지만 나도 억울한 건 있어. 혹시 전투수석한테 따로 심화과정을 배우는 반이 있나 싶어서 그런 거였다고. 나도 명색이 특기생이잖아.”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힌드라스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어쩌라는 건데, 대체! 나 진짜로 그것만 물어봤다고! 다른 말은 절대 하지 않았어! 순수한 의도였다고!”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내가 뭐라고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응? 넌 그냥 나를 패고 싶어서 그런 거지? 내가 정말로 주도적으로 선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거지? 그런 거지! 그런 거였냐고!”

       

       디안이 아무 말이 없다.

       

       “씨발 진짜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에!! 애초에 오해하게 만든 건 너였잖아!!!!”

       

       

       # # # # #

       

       

       콰아앙!

       

       갑작스러운 굉음에 이스메라 교수가 깜짝 놀라 창가로 뛰어갔다.

       

       저기 멀리 트롤이 갇힌 폐건물 옥상에서 분홍머리 특기생이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사람 살려요!!”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몸을 던진 것은… 디안 교수?! 뭐야?!

       

       그러나 두 사람은 눈 깜빡하는 찰나 시야에서 사라졌고 이스메라 교수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닌가 눈을 의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현생이 너무 바빠 음침농쭉TS당한 것마냥 능지가 떡락한 상태라… 폼이 영 좋지 않읍니다… 하루하루 연재하기도 벅차서… 죄송해요죄송해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잘하겠습니다… 이제 조만간 다시 여유로워지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읏… 으읏… 잘하려고 했는데…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우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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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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