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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아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저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처럼 잠깐 아팠다가 눈물 조금 흘리니까 사라지는 그런 아픔이었다. 이세린이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눈을 비비며 눈물을 살짝 흘려주자 사라지는, 그런 아주 작디작은 아픔.

         

       하지만 그 충격만큼은 절대 작지 않았다.

         

       [ 영시(靈視) 대책을 해놓았다고? 그것도 그냥 영시도 아니고, 권능의 힘으로 행하는 영시를 막을 정도의 대책이라니? ]

         

       악마는 놀란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윽, 눈…. 교무실 엿보려고 했을 때보다 더, 더 깜짝 놀랐어.”

         

       세린은 눈에 힘을 주어서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이아린은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세린은 그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직 스마트폰만을 쳐다보았다.

         

       “노린내가 이제 안나….”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짐승의 냄새가 이제는 더 나지 않았다.

         

       [ 냄새뿐이 아니다. 아마 더는 비밀도 볼 수 없을 것이니라. ]

         

       악마는 그리 말하고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 계약자야, 네 피가 이어지지 않은 오빠는 상당히 유능한 주술사였나 보구나. 정체불명의 저급한 의식이나 하길래 뭔가 싶었지만, 권능을 통한 영시를 막아낼 정도라면….]

         

       낙타가 콧김을 뿜어내며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이세린이 손에 들고 있는 이아린의 스마트폰이 아닌,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이세린은 항상 해오던 대로 별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했고.

         

       『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사람을 가려가며 하거나, 대책을 세우고 하는 게 좋을 것이야. 』

         

       그녀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내용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 아니에요 』

       『 나 훔쳐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

       『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해 보이잖아요 』

       『 그냥 이건 이상해서 확인해보려고 했던 거에요 』

       『 나 이상한 취미 없어요 』

         

       이세린의 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이아린이 오오, 하면서 감탄의 탄성을 내지를 정도였다.

         

       이세린은 변명하듯 문자의 폭탄을 진성에게 쏟아냈고, 평소에 보인 음침하고 말을 더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중하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 변명이라기보다는 자기주장을 밀어붙여서 강제로 설득시키려는 듯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진성의 문자는 짤막했다.

         

       『 거짓말하지 마라. 』

         

       맨날 길게 문자를 보내는 진성답지 않게 짤막한 한 줄의 문자였다.

       하지만 긴 문장을 압축시키기라도 한 듯 그 한 줄이 보내는 파괴력은 꽤 강렬했고, 이세린은 다시 한번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끌끌. 계약자야. 이건 네 오빠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비밀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은 본성이요, 취미가 아니더냐? 계약자야. 호기심이 많은 내 계약자야. 이건 그냥 인정하는 것이 맞는 것 같구나. ]

       “아, 아냐….”

         

       이세린은 부정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진성의 문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권능에 의존한 나머지 영시막이나 방어저주 같은 것에는 신경을 채 쓰지 못한 것 같구나. 아린이와 함께 일본에 오면 내가 만들어서 챙겨주겠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 훔쳐보다가 들키거나, 곤욕을 치르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그거 만드는 데 크나큰 수고가 드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부족한 재료가 있으니 만약 올 거라면 그 재료만 구해서 와주면 좋겠구나. 』

         

       진성은 그녀가 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예 단정을 짓고 있었다.

       이세린이 문자 폭탄을 보내든 말든, 그 생각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 이미지…. 이상해졌어….’

         

       이세린은 시무룩한 상태로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이아린에게 그녀의 스마트폰을 건네주고, 자신의 스마트폰 역시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악마가 그것을 저지했다.

         

       [ 멈춰 보아라. ]

       ‘왜?’

         

       악마는 이세린에게 온 진성의 문자를 가만히 보았다.

         

       [ 어찌하여 네 오빠는 계속해서 너희를 일본에 부르려 하는지 모르겠구나. ]

         

       악마가 느끼는 것은 위화감이었다.

         

       보통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그저 가족을 챙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여행하고 있는 곳이 좋아서 가족에게도 추천하고 싶어 권유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이아린 이세린 자매가 교환 학생으로 와있다고는 하지만 아예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저런 권유는…. 그래.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그냥 평범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 가는 것이 결정되기도 전에 좋은 정보가 있다며 일본에 둘을 데려가려고 했던 진성의 모습을 본다면 무언가 위화감이 생긴다.

         

       의문.

       의문이 계속해서 생긴다.

         

       좋은 정보란 무엇인가?

       러시아에 당첨되었다고 했을 때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휙 일본으로 간 이유는?

       일본에 간 것이 분명한데도 한동안 안부도 없이 잠잠했던 이유는?

       영시를 했을 때 보인 여우의 모습은 무엇인가?

       영시에 대한 대책을 한 이유는?

         

       대체 동생들을 일본에 부르려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너희 둘에게 위해가 가는 일은 없을 터이지만…. 하지만 햇빛과 쇠의 냄새, 그리고 오늘 맡은 노린내까지. 대체 왜 그런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고, 대체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구나. ]

       

       가뜩이나 이질적인 업을 가지고 있는 진성이다.

       그런 진성이 악마조차 짐작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이아린과 이세린에게 있어 좋기만 한 일일 것인가?

         

       악마는 불확실한 것에서 둘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 계약자야. 나의 계약자야. 나를 믿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줄 수 있겠느냐? ]

       ‘으, 응? 응! 나는 우리 그레모리 믿어!’

       [ 그래, 귀여운 계약자야. 믿어줘서 고맙구나. 자, 따라 적어보아라. 한창 적응 중이라서….]

         

         

        * * *

         

         

         

       『 한창 적응 중이라서 일본에 가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미안해요. 』

       『 오라비! 나도 일본 구경 가고 싶은데 지금은 힘들 것 같고 나중에 방학하면 데려가 줘! 』

         

       진성은 이세린, 이아린에게 온 문자를 보며 웃었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다마는.”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의 케이스에 붙어있는 고리 하나를 떼어서 바닥에 버렸다.

         

       빛을 빨아들일 듯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는 가시는 플라스틱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지만 광택은 하나도 나지 않았고,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풍화되며 먼지 더미가 되어 바람에 휙 날려 사라지는 것이 예사 물건은 아닌 듯했다.

         

       진성은 고리가 사라지자 허공을 움켜쥐어 슬라임의 몸 안에서 작은 가시 두 개를 빼내고는 그것을 구부려 고리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벼서 재로 만든 뒤, 고리 하나에 재를 잘 발랐다.

       재는 발리기가 무섭게 액체라도 되는 것처럼 고리에 녹아들었다.

         

       그러자 고리는 아까 진성이 땅에 버렸던 것과 똑같은 모습을 한 장식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진성이 만든 것은 검은색이면서도 고급스러운 광택을 띠고 있었다는 것.

       진성은 그것을 스마트폰 케이스에 붙였다.

         

       “옴-”

         

       그리고는 허공에 떠 있는 고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리세에게 다가가서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그녀는 갑자기 머리카락을 뽑히게 되어서인지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찔끔 눈물을 흘렸다.

         

       진성은 아까와 똑같이 리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벼서 재로 만든 뒤 허공에 떠 있는 고리에 잘 바른 뒤 그녀에게 주었다.

         

       “선물이다. 네 스마트폰 케이스에 달아두도록 하거라.”

       “서, 선물이요?”

         

       리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리를 받았다.

       그리곤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리 물어보는 리세에게 진성은 답해주었다.

         

       “영시(靈視)를 막을 수 있는 주물(呪物)이니라. 의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대단한 힘은 없으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보다는 월등히 뛰어날 것이니 스마트폰에 붙여두도록 하거라.”

       “아….”

       “혹여나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도 효과를 보진 못할 것이다. 네 머리카락으로 만들었으니 너에게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누군가 영시를 한다면 바로 눈치챌 수 있을 터이니 누군가 감시한다거나 하는 것도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해요….”

         

       리세는 약간의 감동과 얼떨떨함을 섞어 중얼거렸다.

         

       “남자한테 이런 거 받는 건 처음이에요….”

       “별건 아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축지를 사용해 어디론가 이동했다.

         

       리세는 진성이 이동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고리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렸고, 그 모습에 호기심이 든 것인지 새타니가 슬라임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고 기괴한 몸놀림으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펄쩍펄쩍 뛰었고, 머리를 회전시키며 끊어지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 도.”

       “나도 보자.”

       “궁, 금, 해.”

       “궁금, 해.”

       “나도.”

         

       그러더니 자기한테 달라는 듯 슬쩍 손을 내밀었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손톱과 지저분한 손에서는 악취가 풍기고 있었고, 빨리 얹어달라고 재촉하듯이 손가락은 촉수처럼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새타니는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며 리세를 쳐다보았고.

         

       “안돼요.”

         

       리세는 몽중몽 속에서 겪었던 공포를 떠올리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잠, 깐.”

       “잠깐만.”

       “잠깐 볼게.”

       “바로 돌려줄게.”

       “궁금해.”

         

       하지만 한 번 거절에도 새타니는 미련이 남는다는 듯 계속해서 리세 주변을 맴돌았고, 떼쓰기는 리세가 새타니에게 느끼는 짜증이 몽중몽에서 느낀 공포를 이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안된다니까요!”

         

       그러자 새타니는 이내 시무룩해졌는지 고개를 떨구고는 다시 슬라임에게 다가가 머리로 기어올랐다.

       슬라임은 왜 또 자신을 괴롭히냐는 듯 몽글거렸지만, 새타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슬라임의 머리를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내려쳤고, 슬라임은 다시 새타니를 벽 쪽으로 집어 던졌다.

         

       리세는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가 얼른 스마트폰 케이스에 고리를 달았다.

         

       “흠흠.”

         

       그리곤 새타니가 다시 떼를 쓸까 봐 얼른 본청 밖으로 나갔다.

       그 걸음걸이는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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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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