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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백우진이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궁수를 내려놓고 당당하게 허리를 편 순간.

         

       유화연의 머릿속에선 수천, 수만 가지 생각들이 들불처럼 퍼져 속을 뜨겁게 만들었다.

         

       사람이 저리도 바뀔 수가 있는 걸까, 바뀔 수 있다면 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만 가능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을 속여온 것은 아닐까. 난데없이 생겨난 약혼자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약한 척하며 자신을 시험한 것은 아닐까.

         

       ‘대체 왜….’

         

       수년간 바라왔던 모습이 바로 저기에 있다. 지친 그의 마음을 달래주고, 상처 입은 가슴을 어루만져주며 떠올렸던 이상적인 그림을 비로소 그가 자아내고 있었다.

         

       허나,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먼저 손을 놓아버렸다.

         

       괴로웠다. 비무대 위에서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이 마치 너의 생각이 틀렸다고 비난하고 힐난하는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심장이 조이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문득 백우진에게 파혼을 고하던 날,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은 제게 원하는 걸 얻길 바란다고 하셨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바라는 건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였다. 아버지와 뱃놀이를 떠나 만났던 그 현숙한 여인처럼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그런 것들이 다 무에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헤어진 그 날부터 하루에 하나씩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이고 나면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것만 같은 그런 것.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잃어가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몰라 매일 같이 찝찝하고 불안한 기색이 하루에 몇 번이나 가슴어림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쾌한 마음이 더욱 커진 것은 제갈연지를 보았을 때부터였다. 자신의 자리였던 곳에 어느새부터 그녀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 스스로 박차고 나온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절정은 제갈연지와 비무대 위에서 마주했을 때였다. 자리를 비켜주어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오는 그녀가 어찌나 얄밉고 짜증나던지.

         

       그 탓에 무척이나 감정적으로 비무를 치렀고, 상대의 피를 보면서까지 승리를 거머쥐긴 했으나 다음 비무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도 하지 못하고 기권하는 것으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야 말았다.

         

       지금에 와서야 유화연은 자기가 이제껏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당신이었어요….’

         

       백우진이었다.

         

       제갈연지와 함께 있는 그를 볼 때면 함께 했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잃어버렸고, 그가 자신에게만 보여주었던 해맑은 미소가 남들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로 인해 충전했던 생기를 잃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보살피는 쪽은 자신이라고 여겼다. 섬세한 도자기처럼 쉽게 깨지고, 상처 입기 쉬운 그를 자신이 부둥켜안고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자신이 그를 보듬어주었듯, 그 또한 구김 없는 미소와 말들로 자신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었음을.

         

       받은 건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준 것만 기억하고 있었음을.

         

       “아, 아아…!”

         

       높게 쌓아올린 성벽이 무너지고 연약한 속내가 드러났다.

         

       “소, 소저! 괜찮으시오?”

       “무슨 일이래.”

       “몰러.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저러고 있네.”

         

       주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곳에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지독한 후회와 상실감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대체 왜 이제야…!”

         

       왜 이제야, 자신의 품을 벗어나고 나서 빛나기 시작했냐고 그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왜’는 오로지 자신에게로 향해 있었다.

         

       왜.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으아, 으….”

         

       한참을 울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몰골은 좌절과 절망에 젖어 있었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비무대 위를 다시 한번 쳐다본 뒤, 돌아섰다.

         

       그녀의 귓가에 백우진이 했던 마지막 말이 다시 재생됐다.

         

       부디 원하는 걸 얻기를 바라.

         

       “당신이었어요….”

         

       내가 원하는 건.

         

       지금까지 쭉 곁에 있었던, 어리석은 탐욕에 눈이 멀어 이제는 놓쳐버린.

         

       “백우진…, 당신이었어요….”

         

       처연한 목소리가 구슬픈 곡조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 * *

         

         

       하루아침 사이에 많은 것들이 뒤바뀌었다.

         

       남궁세가의 자랑이자 용봉 비무제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남궁수가 패배했다. 그것도 같은 우승 후보인 명진, 한백도 아니고 학관 내에서 둔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백우진에게.

         

       백우진이 보여준 모습이 충격적인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남궁수의 제왕검형에 맞서는 정체 모를 검술을 선보이는 순간에 이를 지켜보던 무림맹주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정파 무림의 홍복이라며 탄성을 내지르는 걸 본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허나, 그것이 남궁수의 패배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간 사람들은 남궁수가 패배했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상대가 보여준 무위가 어마어마해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무였다고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않을 테니까.

         

       “허억, 허억!”

         

       남궁수가 깨어난 것은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난 뒤였다.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은 백우진의 소악마 같은 미소와 점차 속도와 크기를 불리며 다가오는 주먹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다시금 드러눕고 말았다.

         

       “끄으윽!”

         

       수련을 하다 보면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무리한 초식을 전개하다 내상을 입어 기혈이 단단히 꼬여보기도 했고, 가문의 어른들과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벌이다 어느 한 곳 부러져본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리하여 고통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여긴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단언컨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내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악몽쯤으로 치부했던 조금 전의 단편이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차라리 잊고 있었으면 아니,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은 잔혹한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무자비하게 난타했다.

         

       “내가, 내가…, 졌구나.”

         

       가문의 자랑인 검술이 모두 가로막히고, 이윽고 뼈를 깎아내듯 익힌 제왕검형마저 백우진의 손아귀에서 무너졌다.

         

       “내가 졌어….”

         

       패배에는 익숙했다. 허나, 그가 겪은 패배에 또래에게 겪은 것은 없었다.

         

       사실상 첫 패배와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백우진이라는 것이 그에게 더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으, 으으…!”

         

       잃어버린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모두가 우러러볼 신룡의 자리, 남궁세가에 대한 자부심, 주변인들의 시선 그리고 유화연.

         

       “으아아아아아아아!”

         

       귀곡산장에서 나올법한 갈라지고 찢어진 거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누군가가 황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 도련님!”

         

       세가에 있을 적 남궁수를 호위하던 무사 중 한 명이었다.

         

       “금방 의원을 불러 오겠습니다!”

         

       남궁수가 고통에 몸부림친다고 여긴 호위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남궁수가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멈춰라…!”

         

       그의 명령에 재차 돌아선 호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남궁수의 눈이 광기와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를 부축해라, 당장.”

       “예? 하,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명령이다! 당장 내 몸을 일으켜세우지 않는다면 네놈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스산한 기운에 방의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위는 하는 수 없이 남궁수의 등과 허리를 받쳐 그가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까스로 일어난 남궁수의 신형이 갸우뚱하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쿠당탕!

         

       “도, 도련님!”

       “크으으…!”

         

       제 몸 하나 제대로 겨누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가 자꾸만 더해졌다.

         

       “대체 내 몸이 왜 이렇게 된 것이냐.”

       “그, 그것이….”

         

       들려온 호위의 말은 가관이었다.

         

       백우진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자신의 위에 올라타 무자비한 구타를 날렸다고.

         

       “이 개자식이…!”

         

       분노가 몸을 잠식하려 하자 호위가 황급히 그의 몸을 흔들었다.

         

       “진정하십시오, 도련님!”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은 남궁수가 호위의 도움을 받아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갈 데가…!”

         

       호위를 대동한 채 방을 나서려던 그의 눈에 동경에 비친 제 얼굴의 상태가 드러났다.

         

       “내, 내 얼굴이!”

         

       양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 모양새가 꼭 어릴 적에 보았던 웅묘(熊猫)와 꼭 닮아 있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도리어 냉정해진다고 한다. 지금의 남궁수가 그러했다. 짧은 시간에 워낙 여러 번 분노해서 그런지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다.

         

       “얼굴을 가릴 걸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남궁수를 침상 위에 앉혀놓은 뒤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호위가 깊게 눌러 쓰는 흑립과 복면을 가져와 내밀었다.

         

       이를 이용해 얼굴을 제법 가린 남궁수가 호위의 부축을 받아 방을 나섰다.

         

       ‘놈을 막아야 한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백우진이 이대로 승승장구하지 못하게 막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결승전에서 그가 승리한다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반드시 막아야 해!’

         

       세가의 무사들을 대동하여 놈의 몸을 성치 못하게 만들까 생각했으나 이미 자신에 의해 세가의 검술을 모두 견식한 녀석에게 들킬 염려가 컸다.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은 다른 이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곳 정무학관에도 하오문의 문도들이 암암리에 활약하고 있다는 것쯤.

         

       남궁수가 힘겹게 향한 곳은 학관 가장 외곽에 있어 인기도가 굉장히 떨어짐에도 배짱 영업을 하고 있는 ‘운중 객잔’이라는 곳이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손을 비비며 다가와 두 사람을 반겼다.

         

       “지부장을 만나러 왔다.”

       “예…? 지부장이라니요? 저희 객주님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가 꺼벙한 표정을 지으며 발뺌하려 하자 남궁수의 눈이 서슬퍼렇게 빛났다.

         

       “지부장을 불러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 모두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 것이다.”

       “히, 히익!”

         

       귀기마저 서린 듯한 눈빛에 겁을 먹은 점소이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달음박질을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지부장으로 보이는 40대 중년의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남궁수의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

       “인사치레는 되었다. 내 오늘 긴히 맡길 일이 있어 찾아왔다.”

       ”어떤 일이시온지….“

         

       지부장이 고개를 살짝 들며 묻자 남궁수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우진을 결승에서 패하게 만들어라.”

         

       돈이라면 네놈들이 달라는 대로 내어줄 터이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회 빌드업 on,,,!

    9시에 딱 맞춰서 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길어지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내일은 보다 더 정각에 맞춰 올 수 있도록 노력 하겠나이다,,,

    느낌상 이번 화에서 여러분들이 댓글을 많이 쓰실 거라 사료가 되어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발언의 수위에 유의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저는 또 내일 집필을 위해 일찍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고, 가시기 전에 선작, 댓글, 추천, 알람 설정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닷!!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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