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0

        

       “외국의 이야기?”

         

       엘라는 의아하다는 듯 아나스타시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알기로 아나스타시아는 외국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러시아, 한국, 독일 정도?

       그나마도 따로 몸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 되지도 않는 만큼,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간접 체험이라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행을 자주 다닌 친구한테 이야기를 듣고 다닌 것도 아니고, TV에서 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한 것도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여행 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야기들을 즐기지도 않았다.

         

       그런 아나스타시아의 입에서 외국 이야기가 나오다니.

         

       의아할 수밖에.

         

       “후훗.”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엘라의 의문을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게 바로 언니의 능력이라는 듯, 어서 존경하라는 듯 가슴을 활짝 폈다.

         

       “이것이 바로 언니의 대단함이랍니다. 이 언니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외국 이야기를 알 수 있어요!”

         

       인터넷이나 TV를 뒤적거리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듣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외국을 체험할 수 있는 능력.

       아나스타시아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이 언니는 꿈을 돌아다니다 보면 외국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꿈을 탐험하는 능력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으며 엘라를 바라보았다.

         

       “동생도 겪어봐서 알죠?”

         

       “거기는….”

         

       엘라는 아나스타시아가 ‘꿈’을 언급하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단한 능력도 맞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도 맞긴 하는데….

       그렇다고 좋은 공간이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 정신력을 깎아내리는 듯한 기괴한 풍경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영영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니까.

       게다가 그뿐이 아니다.

       평범하고 유치해 보이는 꿈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악몽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다른 사람이 꾸는 악몽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꿈을 매개로 거는 저주를 보았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기괴하고, 예측할 수 없고, 소름 끼치는 공간.

         

       엘라가 생각하는 꿈의 공간이란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다.

       평범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잠이 드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만드는 그런 공간.

         

       “…솔직히 말해서 그리 유쾌한 곳은 아니지 않나요?”

         

       “저런! 꿈의 멋짐을 모르다니…. 너무 불쌍하네요!”

         

       꿈에서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오히려 엘라를 보고 딱하다는 듯, 꿈의 멋짐을 모르는 그녀가 불쌍하다는 듯 동정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꿈은 흥미로운 것이 넘쳐나는 곳이랍니다! 왜냐하면…. 흥미로운 곳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하곤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의자 하나를 끌어서 적당한 위치에 앉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과 하늘에 떠 있는 달의 빛, 그리고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꿈속의 이야기.

       꿈을 탐험한 이야기.

       아나스타시아가 꿈에서 겪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말이다.

         

       “으음. 며칠 전 일이에요. 저는 그날 꿈을 탐험하고 있었어요. 그래요, 마치 탐험가처럼 말이에요. 꿈이라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해적처럼, 정글을 헤치고 돌아다니는 고고학자처럼 그렇게 저는 꿈을 돌아다닌 것이랍니다….”

         

       이렇게 표현하니까 좀 멋있게 느껴지죠?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바다에는 역경이 있는 법이 아니겠어요? 저 역시 해적들이 그렇듯, 끔찍하고 사악한 존재에게 습격당했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화장, 비행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능숙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 거기에 무리 지어서 비행하며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을 파괴하는 끔찍한 생물! 그것은….”

         

       “바로?”

         

       “…사악한 펭귄 군대였어요!”

         

       사악한 펭귄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란 말인가!

         

       “펭귄들은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었어요.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수많은 펭귄이 비행하고 있었고, 그 펭귄들은 땅에 적이 보이면 터지기 직전의 수르스트뢰밍 통조림 폭탄을 떨어뜨리며 생화학 공격했답니다. 정말 잔혹한 풍경이었어요….”

         

       아나스타시아는 먼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잔혹한 전쟁을 봐버린 사람처럼.

         

       “수르스트뢰밍의 끔찍한 냄새 때문에 빙하 위에서 자라나던 파릇파릇한 풀들은 전부 시들었고, 평화롭게 콜라를 마시던 북극곰들은 코를 움켜쥐며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답니다. 정말 끔찍하죠?”

         

       아나스타시아는 공감을 바라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다른 소녀들은 쉽게 공감해주지 않았다.

         

       아니, 해주지 않은 게 아니다.

       할 수가 없었다.

         

       펭귄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폭탄을 떨어뜨렸고, 그 때문에 북극곰이 도망을 갔다고?

       여기에 슬픔과 분노를 느껴달라고?

         

       그게 되겠는가.

         

       “흥. 하긴 그렇겠죠. 이 언니가 보기에도 정말 대단한 풍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 초현실적이면서도 장대한 규모의 전투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일 테니까.

         

       “어쨌든 저는 그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답니다. 꽤 필사적이었어요. 하늘에 떠 있던 펭귄들이 점점 저에게 가까워지고 있었고, 저 멀리에서는 거대 거북이 항공모함에서 펭귄들이 쉼 없이 날아오르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다른 방향에서는 바다표범 탱크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그래서 저는 완벽히 포위되기 전에, 허겁지겁 도망을 쳤답니다.”

         

       “….”

         

       “….”

         

       “….”

         

       소녀들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들어도 그냥 평범한 개꿈처럼 들리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듣는 것만으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저 내용을 듣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아무리 들어도 개꿈처럼 들리는 저 이야기에 도대체 ‘외국’과 ‘괴담’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를 때쯤, 아나스타시아의 말투가 바뀌었다.

       마치 지금부터 무서운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하듯, 무겁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이다.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그리 으스스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도망을 쳤을까요. 저는 이상한 건물을 발견하고 말았답니다.”

         

       “이상한 건물…?”

         

       “네에. 이 언니가 보기에도 참 이상하게 보이는, 그런 건물이었어요.”

         

       그녀는 꿈속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눈동자를 위로 움직였다.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사용했을 법한 거대한 경기장 같은 모습이었다고 할까요? 커다란 공이 땅에 절반만 박혀있는 듯한 모습의 그 건물은 단순하면서도 특이한 모습이었어요.”

         

       “….”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처럼 경기장의 외벽은 곳곳이 벗겨져 있었어요. 조금만 더 벗겨지면 구멍이 뻥 뚫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심각한 수준으로요. 게다가 금속으로 된 부분은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휘어지거나 부러진 부분들도 가득했답니다. 게다가 먼지와 오물이 어찌나 많이 묻어 있는지, 본래는 하얀색이었을 외관은 아주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요.”

         

       “폐허였나 보네.”

         

       “넹. 딱 그 단어가 맞을 거예요. 건물은 다 쓰러져가고 있었고, 건물 근처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어요. 게다가 건물이 있는 땅덩어리 하나만 뚝 떨어져 나온 것처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기까지 했으니, 좋은 분위기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러니까 더 재미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들어갔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었다.

       천진난만하고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가 지을법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들어갔을 때 본 것은….”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기 위해 말을 멈췄다.

         

       마치 중요한 부분에서 ’60초 후 발표하겠습니다!’라면서 광고를 틀어버리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수많은 의자들이었어요.”

         

       “의자?”

         

       “넹. 의자. 그것도…정말로, 정말로 많은 의자가 있었어요.”

         

       의자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산속에서도 그루터기를 잘라 대충 만들어낸 의자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

       평범한 물건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물건이…평범하지 않은 숫자로 있다면 어떨까?

         

       “무릎을 제대로 펼 수조차 없을 것 같은 좁은 간격으로, 의자가 가득 있었어요.”

         

       거대한 경기장.

       그 안에 빼곡하게 존재하는 의자들.

         

       “게다가 의자는 새하얀 의자여서, 멀리서 보면 마치….”

         

         

        * * *

         

         

       의자들이 줄을 맞춰서, 가지런히 놓여있다.

       각각 원을 그리며 그렇게 있다.

       거대한 원 속의 또 다른 원.

       그 원 속의 또 다른 원.

       원 안에는 원이, 또 원이, 원이.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동심원처럼 그렇게 원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작게, 계속해서 이어진다.

       끔찍한 생물의 이빨이라도 되는 것처럼.

         

       올림픽 경기장이 어떤 괴물이 벌린 아가리이고, 의자는 그 아가리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이빨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의자들은 수많은 이빨처럼 있었다.

         

       그리고 그 이빨의 가장 중심.

       혓바닥의 역할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 혓바닥은 녹아내린 듯한 사람의 형상이었으며, 연설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열기에 녹아내린 플라스틱 병정처럼, 녹아내리다가 만 촛농처럼 생긴 그 사람은 연사라도 되는 것처럼 외친다.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징그러울 정도로 빼곡하게 달린 은은한 조명의 불빛을 받으며 외친다.

         

       『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에는, 괴물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