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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0

    <450 – 그들이 사랑하는 방법>

     

    하비는 물었다.

     

    “그때 왜 혁명군을 믿지 못했어?”

    “놈들이 일으킨 또 다른 참사를 보았으니까.”

    “이번엔 달랐어. 혁명군은 달라질 수 있었어.”

    “미안하다.”

    “너무 늦었어.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도움이 절실했을 때, 결국 내 곁을 지켜준 건 혁명가뿐이었어.”

    “…미안하다.”

     

    하비가 폐부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기침을 내뱉었다.

    입가를 가린 그녀의 손에 피가 묻어났다.

     

    “혁명가가 나쁘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정말로 나쁜 건 너 같은 용사였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혁명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 용사의 과업을 핑계대며 방관하고 우리가 혁명군에 가세한 뒤에는 반역도당이라며 싸잡아 부르는 잘나신 정의.”

    “…”

    “혁명가는 기회를 주었어. 아버님에게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알더라도 그는 지켜보고 싶었던 거야. 제국이 정말로 악인지, 자신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

    “제국은 끝내 잘못되었어.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매 순간 늘어나겠지. 그래서 혁명가는 멈출 수 없는 거야.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들의 입장에서 싸워줄 사람은 자신뿐이니까.”

     

    디스트로이어의 입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다.

    악당들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그 죄목을 논할 수 있는 입이지만 감히 그녀를 악당이라고 부를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 뻔하지. 그토록 부모를 싫어했으면서도 끝내 부모를 닮아버린 자식의 이야기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패배를 겪어야만 했어.”

    “아버님이 개발한 품종을 따라잡을 수는 있었어. 하지만 제국각지에서 재배한 품종들이 전부 동일한 성질을 유지하지는 못했어.”

    “일회용 마법스크롤의 대용으로 쓰일 수 있던 건 결국 아버지가 일군 아버지의 꿈이 담긴 농장에서만 가능한 결과였으니까.”

     

    그 결과, 하비가 개량한 신세대 마계종 이색튤립은 무기로서의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있지, 신기한 거 알려줄까? 그렇게나 고생해서 만든 튤립이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농부들의 손에서는 한 세대 만에 사람 잡는 식인식물이 되더라?”

    “아버님은 간과했지만 재배하는 땅이나 자연마나의 농도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었어. 재배하는 사람의 심상도 튤립에 영향을 미쳤던 거야.”

    “아버님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순수했어. 나는 그렇지 못했고. 밖의 사람들은 조금도 그러지 못했지. 그래서 다시 마계종 튤립이 되었어.”

     

    튤립은 제국의 강자들 대신 이를 재배한 농민들을 먼저 몰살시켰다.

    마법이 아닌 쟁기에, 튤립을 뽑아드는 손길에도 반응하는 물리적 동조현상을 동반하면서.

     

    “덕분에 많은 걸 알았어. 오늘 날 우리가 만드라고라라 부르는 사람 잡는 식물도, 네펜데스라 부르는 사람 잡아먹는 식물도 그 뿌리는 모두 마계종 튤립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선인과 악인이 나뉘듯이 식물들도 그 형태와 성질, 발아를 위한 생존전략이 변화한 거야.”

     

    어린시절의 디스트로이어와 하비의 순수함은 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서로 장래를 약속했다.

    성인이 되어 재회한 두 사람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뒤였다.

    더 이상 그들은 같지 않았다.

    흡정초로부터 태어난 나무의 요정 드라이어드와 꽃의 요정 알라우네가 다르듯이.

    마계종 튤립으로부터 태어난 네펜데스와 만드라고라가 다르듯이.

     

    “죽여.”

     

    그녀는 디스트로이어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을 자신의 목에 들이밀었다.

    과거의 혁명가가 그랬던 것처럼.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잖아.”

    “여기서 널…”

    “살려 보내면, 그러면 뭐라도 달라질 것 같아? 천만에. 단지 연구를 계속할 뿐이야. 어리석은 아버님이 그랬듯이 나 역시 혁명가가 돌아볼 걸작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할 뿐이겠지.”

     

    튤립파동.

    제국에 식량난을 초래하였으나 그 이상으로 많은 농민들을, 튤립을 토벌하려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식인종 튤립과의 전쟁.

    그런 참사를 초래한 하비를 디스트로이어가 살려두더라도 제국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숨어산다면 살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하비에게는 숨어 살 의지가 없었다.

    그녀에겐 아버님의 복수가, 혁명가의 인정이 살아갈 이유이기에.

     

    “죽여. 혁명군에 대한 너의 편견이 만들어낸 괴물을.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기 전에 끝내.”

     

    피부까지 침식한 튤립의 줄기가 핏줄처럼 솟구친 그녀의 손바닥의 촉감에 디스트로이어는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우는 건 10점이야.”

    “죽일 거다.”

    “그건 좀 낫네. 50점은 쳐줄게.”

    “널 죽인 뒤에는… 제국도, 마법협회도, 아카데미도. 반드시 언젠가 내 손으로 전부 무너뜨릴 거다.”

    “흥. 진즉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100점이야.

    웃는 얼굴로 고한 그녀가 디스트로이어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다음 순간, 그녀가 겪은 물리현상에 동조하며 튤립의 가시들이 날카롭게 솟아나 하비의 몸을 안팎에서 파고들었다.

    수백 개의 가시에 관통당한 시체는 구멍투성이가 되어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피웅덩이에 잠겨 힘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하비의 공허한 눈을 디스트로이어의 손이 덮어주었다.

     

    “미안하다. 너에게는 그렇게 끝난 일이겠지만… 내게는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야.”

     

    디스트로이어는 사방으로 가시를 세우며 내지르는 최후의 튤립농장을 가로질렀다.

    모든 튤립들이 튤립과 동조한 하비와 함께 사멸을 선택한 지옥도의 한복판에서 그는 마침내 찾아 헤매던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혁명군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전달의 종이>였다.

     

    ━━━

    하비는 죽었다. 다음은 네 차례다, 혁명가.

    ━━━

     

    곧이어 종이의 여백에 답신이 떠올랐다.

     

    ━━━

    혁명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너의 아둔함은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할 것이다.

    ━━━

     

    답신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혁명가는 하비에게 일말의 마음도 없었음을.

    그는 이용했을 뿐이다.

    제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디스트로이어, 그가 혁명군의 접선시도를 어떻게 대응할지 꿰뚫어보고서.

    그럼에도, 여지를 허락한 것은 자신이었다.

     

    ‘두 번 다시 너의 수작에 당하지 않겠다.’

     

    그날, 디스트로이어의 시간은 멈추었다.

    긴 용사행의 끝에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재회할 소꿉친구가 있다는.

    마음의 안식처.

    한줌의 위안마저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조금 긴 오늘을 바라보는 일년살이도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잊지 못하는, 어제와 같은 매일을 살아가는 과거살이가 되었다.

     

     

    * * *

     

     

    숙연한 분위기의 강의장.

    이슈타르와 헤스티아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 구석이 많은 이야기였으니까.

    오크노디는 달랐다.

    굉장히 불만이 많은 얼굴로 씩씩거렸다.

     

    “오크노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군.”

    “당연하죠!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잖아요.”

    “호오. 그건 어떤 이야기지?”

     

    오크노디가 당당하게 외쳤다.

     

    “사랑!”

    “…사랑?”

    “혁명가와 사랑에 빠진 하비가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는걸요.”

     

    연애기분에 빠진 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핀잔을 주려던 디스트로이어는 오크노디가 정말로 소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혁명가는 하비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처지, 행동이 불러올 결과, 이 모두를 인지하고도 이용했을 뿐.”

    “그래도 하비는 혁명가를 사랑했잖아요? 사랑에 빠진 여자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알고 싶어요!”

    “너… 설마 좋아하는 남자가 있냐?”

     

    이토록 심각한 이야기에서 주목한 것이 고작 그런 사소한 대목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런 그녀를 탓하거나 훈계하지 않았다.

    순간의 편견이 그에게 주어졌을지도 모를 기회를, 하비에게 존재했을 다른 가능성을 닫았다.

     

    ‘그런 실수는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다.’

     

    디스트로이어는 아무리 어리석고 아둔하게 들리는 질문일지라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하비의 애정은 부친의 꿈을 앗아간 제국을 향한 복수이기도 했다. 자신이 다른 의미로 사랑했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혁명가에게 투영한 것이지. 아버지의 꿈을 지지했던 남자의 소망을, 아버지의 꿈 대신 이루고자 했던 것.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었다.”

     

    손가락을 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오크노디의 얼굴에 안도가 어렸다.

     

    “에이, 뭐야. 나랑 똑같네!”

    “…뭐? 너랑 똑같아?”

     

    너 이 자식, 어디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정색하고 노려보는 시선에 오크노디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면서요? 그래서 저도 싱의 목표를 대신 이루어주려고 열심히 싱을 성장시켜주고 있어요!”

    “싱이라면 분명… 동방페도검객이라 불리던 녀석인가. 그녀석의 꿈은 대체 무엇이냐.”

     

    오크노디가 손가락으로 셈을 헤아리다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음. 동방에서 한 십만 명쯤 사람을 죽이는 일?”

     

    숙연한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멈출 줄 모르는 무서운아이 상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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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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