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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0

       클레어는 얼핏 봐서는 그냥 일을 충동적으로 벌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용의주도한 성격이다.

        

       이건 원작에서 악당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 일행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그냥 멋대로 살려주는 듯하면서도 미리미리 선택지를 지워두고, 황제의 명령에도 충실하게 따랐었다. 막판에 황제의 뒤통수를 쳐버리는 바람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도 온전히 클레어가 한 일이고.

        

       이건 나 때문에 밝게 자란 클레어도 마찬가지였다.

        

       “산타복…….”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 클레어는 용의주도하게도 산타복을 미리 사두었다.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미리’ 산 건 아닐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장식을 살 때 미리 사두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우리가 이쪽 세상으로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 산 모양이다.

        

       하지만, 지구, 그것도 한국의 유통망을 얕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한 시간에 사면 다음 날에도 도착하는 게 택배였으니, 아마 클레어는 머릿속에 ‘크리스마스 특별방송’을 떠올린 순간 바로 산타복을 샀을 것이다.

        

       용의주도한 건,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한참 전에 이미 주요 인물들의 치수를 전부 조사해두었던 것이려나.

        

       “산타가 무엇입니까?”

        

       레나는 붉은 천과 흰색 털로 이루어진 원통형 원피스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산타는, 1년 내내 착하게 지낸 아이에게 선물을 주러 오는 할아버지야.”

        

       “할아버지의 복장으로는 안 보입니다만…….”

        

       “여자들이 입는 옷이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 옷이라고 설명해두고, 레나에게는 웃으며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걸 보니 조금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논리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굳이 산타복을 원피스 형태로 만들 필요가 없긴 하지.

        

       내 생각에, 아마 이 색 조합이 여러모로 여자한테도 잘 어울리는 색 조합이라 그런 코스튬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유니언 잭이나 성조기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키니 같은 것도 굳이 그 나라 사람 아니더라도 입잖아. 뭐, 이쪽도 너무 성적인 이미지가 되어서 일반적인 비키니에는 쓰지 않고 거의 2D 한정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다 같이 세상을 구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앨리스!”

        

       클레어는 레나의 뒤로 와락 달려들어 양손으로 그 귀를 막았다. 레나의 머리가 클레어의 움직임에 따라 휘청휘청 움직였다.

        

       “여기 오늘 산타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애가 있는데 무슨 짓이야!”

        

       걔도 우리랑 나이 차이 한 살 인가밖에 안 나지 않아?

        

       아니, 게다가, 레나는 산타가 있건 없건 딱히 신경 안 쓰는 표정이었다. 하긴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으니.

        

       클레어도 진심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좌우에서 막고 있던 레나의 귀는 금방 풀어주었다.

        

       “뭐, 애초에 산타라는 건 실제로 있는 할아버지보다는 좀 더 개념적인 존재에 가깝잖아? 부모들이 아이들을 착하게 만들기 위해 꾸민 이야기이기도 하고, 실제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기도 하고 말이야.”

        

       “과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직접 산타가 되자는 소리군요.”

        

       “물론이야. 자, 레오와 제이크 것도 준비했어.”

        

       “우리 건 수염이 있네.”

        

       “그야 산타는 ‘할아버지’잖아.”

        

       그런 것 치고는 여자가 입는 옷은 짧은 원피스형밖에는 사지 않았다.

        

       “저, 저도 입는 겁니까?”

        

       “물론이지, 로티. 아마 제이크가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을걸.”

        

       “기대하고 있어.”

        

       “…….”

        

       제이크는 로티가 쏘아보자 씩 웃어 보였다.

        

       “자, 자, 나머지 사람들도! 얼른!”

        

       클레어의 성화에, 우리는 남녀를 나누어 각자 방에 들어갔다.

        

       *

        

       “치, 치마가 조금 짧은 것 같은데요?”

        

       “미아, 네가 평소에 입어 보곤 하던 마법 소녀 복장이랑 크게 차이 안 나는 길이야.”

        

       “그, 그런가요? 하지만 그건 폭도 더 넓고 레이스도 달려있어서…….”

        

       확실히 미아의 복장은 여러모로 경찰 아저씨들이 좋아할 법한 복장이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라에서는 합법인 복장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아는 이 나라에서는 성인으로 되어있으니까.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딱히 알몸인 것도 아니니 법에 걸릴 일은 없겠다. 면적만 보면 수영복보다는 훨씬 건전한 복장이니까.

        

       “아하, 그렇군요. 조금 알 것 같아요.”

        

       샤를로트가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무엇을 말입니까?”

        

       “확실히 이렇게 입고 방송하면 시청자 수가 평소보다 훨씬 늘어나기는 하겠군요.”

        

       “…….”

        

       눈을 번쩍 뜨고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를 보고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러시나요? 우리는 이미 이것보다 민망한 복장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이것보다 민망했다고요?”

        

       듣고 있던 소피아가 경악했다.

        

       산타복 디자인은 치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같았다. 어깨를 드러내고, 가슴골은 아슬아슬하게 드러내지 않게 가리고. 치마는 교복 치마와 거의 비슷하거나 아주 살짝 짧게 느껴지는 정도.

        

       확실히, 크리스마스에 여캠들이 입을 것 같은 복장이긴 했다.

        

       “그럼요. 운동할 때 입었던 옷을 보시면…….”

        

       소피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 나중에 보여줄까.

        

       확실히 조회수가 아주 좋게 나온 영상이긴 했다. [으꺅 디스펜서]와 [으꺅 리믹스]만큼 조회수가 잘 나오긴 했다. 노란 딱지도 덩달아 먹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수치스러운 영상의 내용이 떠오를 것 같아, 나는 시선을 다시 슬쩍 돌렸다.

        

       “아주 훌륭해. 멋진 산타가 되었구나, 로티.”

        

       “나, 남들 보는 곳에서 이러시면…….”

        

       남들 보는 곳에서 이러시면, 이라고 하면서도 손으로 ‘지탱하고’만 있지 ‘밀어내지는 않는’ 로티를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 애정행각을 하려면 남의 집에서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옆에 있는 레오가 불쌍하지도 않나.

        

       “레오, 이쪽으로.”

        

       나는 레오에게 다가가 그 팔을 덥석 붙잡아 끌었다.

        

       “어, 어, 왜?”

        

       그리고 그 끌고 온 레오를 소피아 옆에 붙였다.

        

       “헉!?”

        

       숨을 들이마시는 소피아의 다음 반응을 굳이 보지 않은 채, 일행에게서 다소 떨어져 있는 릴리 베이커를 향해 다가갔다.

        

       “의외로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는 않으시네요.”

        

       내가 말을 걸자, 릴리는 살짝 당황했다가 조금 웃어 보였다.

        

       “아, 네. 저는 평민이라 평민 지역에서 자랐잖아요? 비교적 부유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니라서요.”

        

       아, 그런가.

        

       주점 같은 곳에서는 치마 길이가 짧은 웨이트리스가 많긴 했다.

        

       게다가 그 세계는 20세기 초반인 주제에 비키니도 있고 바니걸도 있는 세계였다. 아마 단순히 치마가 짧은 복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봤을지 모르지.

        

       “게다가 황녀님들이나 귀족분들도 이렇게 입고 있는 걸 보니 조금 용기가 나네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더 할 말은 없었다. 본인이 즐긴다면야.

        

       “자, 자!”

        

       클레어가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럼 산타들이 모두 모였으니, 각자 준비해 온 선물을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레어를 따라 다들 짝짝짝 손뼉을 쳤다.

        

       음, 좋네.

        

       확실히, 크리스마스 느낌이 산다.

        

       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껴본 지 한참 되었으니까.

        

       여자친구도 없이 집, 학교만 왔다 갔다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법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 대단한 것을 교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서로에게 개수 맞춰 준비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서로 딱 한 개씩만 준비해오기로 했다.

        

       선물은 제비뽑기로 받는 식. 만약 자기 번호가 나오면 다시 집어넣고 다시 뽑는 심플한 방식.

        

       그리고 내가 가지게 된 것은—

        

       “아, 그거 내 거네.”

        

       앨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번호는 3번.

        

       직접 손으로 싼 듯한 소박한 포장지를 풀자, 안에서는 작은 열쇠고리가 나왔다.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산 거야. 원래는 기념품으로 들고 갔던 건데, 이렇게 다시 왔으니 다른 사람 주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강아지 모양의 작은 조각이 달린 열쇠고리였다.

        

       하지만 귀엽네.

        

       “감사합니다.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뭘. 그냥 길 가다가 산 건데.”

        

       하지만 앨리스는 분명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아, 나는 언니 거다!”

        

       사회를 맡았던 클레어는 내 번호가 적힌 1번 선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내용물은…… 오?”

        

       클레어는 내가 넣어둔 내용물을 보고 클레어는 눈을 반짝였다.

        

       “목걸이네!”

        

       “비싼 건 아닙니다만.”

        

       남녀 불문하고 좋아할 만한 것이 뭔지 고민하다가, 나는 목걸이로 골랐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했는데, 막상 사보니 그렇게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

        

       “아냐, 고마워, 언니!”

        

       클레어는 바로 목에 목걸이를 했다.

        

       가운데 달린 초승달 모양의 장식이 반짝였다.

        

       “어때?”

        

       “잘 어울립니다.”

        

       자랑하듯 가슴을 내밀어 보이는 클레어에게, 나는 웃으며 말해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스더Esther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소설을 읽어주시는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글을 씁니다. 글 쓰는 것을 아무리 좋아해도,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 글을 계속 붙잡고 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죠. 저도 여러분께서 글을 읽어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긴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끈기가 없는 성격이라서, 가끔 쉬고 싶다고 한 번 쉬고, 쉬다보면 또 계속 쉬고… 그러다가 쓰던 글을 놓아버리게 되었겠죠.

    제가 작가라고 자칭할 수 있는 것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이니, 그저 여러분께서 재미있게 읽어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있게 읽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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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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