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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1

       동틀 무렵 기절하듯 잠든 백우진이 깨어났을 땐 이미 해가 가장 높이 떠올라 있을 때였다.

         

       “…….”

         

       기분 좋은 숙면 뒤 찾아온 맑은 정신.

         

       이를 통해 자신이 잠든 방 안을 둘러보던 백우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용선아의 침소.

         

       야릇한 냄새가 풍기는 커다란 침상 위에 제 양옆으로 누운 눈부신 나신의 두 여인.

         

       심지어 모녀 관계.

         

       점입가경으로 자신에게는 각각 아내, 장모가 될 사람.

         

       ‘끄아아아아악!’

         

       차마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어 속으로 울부짖는 백우진.

         

       자신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일 수가 없다.

         

       사람의 탈을 쓰고서 어찌 장모와 아내 될 여인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아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추스르는 백우진.

         

       침상 위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침소 곳곳에 내동댕이친 의복을 하나둘씩 껴입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고 침소를 나섰다.

         

       “…….”

         

       속에서 난동을 부려대던 감정은 금세 가라앉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의 자신은 짐승이었다.

         

       그러나 백우진은 단언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어떤 사내도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약간 천재지변 같은 거지.’

         

       사내 화나게 만드는 방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미부인과 그 재능을 물려받아 무섭도록 성장하는 딸.

         

       이걸 참을 수 있다면 그 사내는 고자거나, 남색을 즐기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굉장히 역겨운 자기합리화.

         

       하지만 어쩌겠나,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심지어 더 빼도 박도 못하는 건 그때로 회귀를 한다고 해도 제 선택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거다.

         

       그러니 별수 있나.

         

       ‘이제부터 쓰레기로 사는 거야.’

         

       쓰레기로 사는 수밖에.

         

       쓰레기는 쓰레기인데 내 여자에게는 헌신하는 쓰레기.

         

       이 정도면 어떻게 목숨 잃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스갯말들로 앞으로의 행보를 정리하는 사이 다다른 침소 앞.

         

       평소 자신을 보필하던 시녀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어머나!”

         

       백우진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물러나는 시녀.

         

       이윽고 빠르게 신색을 회복한 그녀가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언제 밖에 나가셨어요?”

       “아, 그게…,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수련도 할 겸 나섰소만.”

         

       궁색한 변명을 던져 보았지만, 시녀의 표정은 여전히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으음…, 새벽에요?”

       “그렇소만…?”

       “이상하네요. 새벽에 분명 제가 대협의 침소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음.”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도리어 그녀 쪽에서 먼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가씨들께서 대협을 애타게 찾고 계셔요.”

         

       그녀가 말한 아가씨들이란 당선영, 제갈연지, 도경 등을 말하는 것일 터.

         

       그녀들을 떠올린 순간 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벌써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챈 걸까.

         

       “대협께서 아침부터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셔서 걱정하고 계시답니다.”

       “아.”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

         

       한시름 덜어낸 그가 시녀에게 물었다.

         

       “소저들은 어디에 있소?”

       “당 아가씨 방에 모여 다과를 즐기고 계셔요.”

       “알겠소.”

         

       그리 대답한 백우진은 곧장 복도를 거닐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걱정했다는 그녀들에게 얼굴도장이나 찍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후 도착한 당선영의 방.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선 그는 하하호호 웃으며 다과를 즐기고 있는 여인들을 보았다.

         

       방에서 차를 즐기는 여인의 수는 당초 예상했던 셋이 아닌 다섯이었다.

         

       당선영, 제갈연지, 도경 외에도 설수연과 금여울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그들 다섯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일제히 쏟아졌다.

         

       “이제야 모습을 나타내네?”

       “안 보이셔서 걱정했잖아요, 공자님….”

       “가가, 우리 사이가 어디 가면 간다고 말할 정도는 되지 않아요?”

         

       쏟아지는 폭격!

         

       세 사람의 것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으나.

         

       “하아…, 옛날에도 말없이 사라지고 그러시더니 지금도….”

         

       설수연의 한숨 섞인 전생 공격.

         

       “정말 너무해! 언니들이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물론 나도!”

         

       언니들에게 예쁨 받을 목적이 다분해 보이는 금여울의 공격까지 더해지자, 참지 못한 백우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일단 용서부터 구하는 게 최고다.

         

       이에 한층 수그러들기 시작하는 분위기.

         

       그때 당선영이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어, 음.”

         

       아아.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했던가.

         

       순수한 호기심에 무심코 던진 물음에 백우진은 궁지로 내몰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려 얼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땀방울.

         

       ‘어떡하지?’

         

       백우진의 눈앞에는 두 개의 길이 보인다.

         

       대충 얼버무려 상황을 모면하는 길과 솔직하게 대답하고 속만큼은 후련해지는 길.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에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

         

       잠시간의 고민 끝에 백우진은 마침내 하나의 길을 택했다.

         

       “…잠시 용 소저랑 담소를 좀 나누느라.”

       “…….”

       “…….”

       “…….”

         

       삽시간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최저치를 찍고 조금씩 반등하는가 싶었던 분위기가 그대로 피를 토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담소…라고.”

         

       뚝뚝 끊겨 흩어지는 당선영의 음성.

         

       그가 담소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 방 누구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말대로 담소를 나누었을지 모른다.

         

       다만, 평범하게 안부나 묻는 담소 따위는 아니었을 터다.

         

       예컨대 짙은 애정이 담긴 말을 나눈다던가 하는 식이 아니었을까.

         

       “또 늘어난 거예요…?”

         

       제갈연지의 서늘한 물음에 더욱 어깨를 움츠리는 백우진.

         

       잠깐 후회했다.

         

       ‘그냥 얼버무릴 걸 그랬나….’

         

       아니, 아니다.

         

       그녀를 받아들인 이상 언제고 밝혀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용서를 구하는 게 장기적으론 옳은 선택이리라.

         

       “나중엔 숨만 쉬어도 여자가 들러붙겠네.”

         

       도경의 비아냥거림에 설수연이 살벌함을 더했다.

         

       “지금이라도…, 숨을 못 쉬게 해야 할까요.”

       “그, 그러면 죽는데요 언니…?”

       “후후…, 괜찮아요. 숨만 붙어 있기만 하면 살릴 수 있어요. 어떻게든….”

       “그, 그러니까 숨을 안 쉬면 그 숨이 안 붙어 있다니까요…?”

         

       마음을 까맣게 그을려 가는 설수연을 애타게 말리는 금여울만 애처로울 따름.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다섯 여인 중 가장 큰 언니로 군림하고 있는 당선영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

         

       이런 와중에도 최소 소명할 기회를 주다니.

         

       실로 큰언니다운 처사.

         

       이에 백우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밝히지는 않았다.

         

       거짓을 고하지는 않았으나, 진실의 일부를 은폐했다.

         

       그렇게 하여 숨긴 것은 용선아의 존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서사는 용설란과 자신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둔갑했다.

         

       ‘이게 맞아.’

         

       그녀와의 관계는 비단 홀로 죄를 뒤집어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칫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라도 하면 북해빙궁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터.

         

       그런 와중에 용선아가 정말로 회임이라도 하게 되면 그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얼마나 따가운 시선과 구설수 속에서 자라날지.

         

       “…그렇게 된 거야.”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표정들을 보니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

         

       궁금했다.

         

       과연 생각을 마친 여인들은 제게 무슨 말을 건넬지.

         

       동시에 두려웠다.

         

       그 말들이 하나 같이 듣고 싶지 않은 가혹한 말들일까 봐.

         

       ‘참으로 우습구나.’

         

       그러다 문득 제 꼴이 우스워졌다.

         

       그토록 두려웠으면 있는 여인들에게나 잘할 것이지, 왜 자꾸 늘리기를 늘린단 말인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돌이켜보면 불가항력이 작용하기도 했다.

         

       사내로 태어나 어찌 제게 거침없이 달려드는 여인을, 심지어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으랴.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세계에서 말이다!

         

       이래서야 그녀들에게 욕을 듣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즈음.

         

       가장 먼저 생각을 마친 당선영이 정적을 깨고 물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니.”

         

       하나 그 물음은 백우진이 아닌,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게 된 동생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 말을 받은 것은 여인들 내에서 둘째 언니로 취급받는 제갈연지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

         

       백우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나온 말이 괜찮다니.

         

       뭐가 괜찮단 말인가.

         

       하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으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궁주님께서 먼저 제안하셨다고 하니까 서사는 괜찮겠어요.”

         

       도경도.

         

       “조금 밉긴 하지만…, 빠르게 이실직고하셨으니 봐드려야 하는 거겠죠.”

         

       숨만 붙여 놓겠느니 뭐니 하던 설수연도.

         

       “전 언니들만 괜찮다면 저도 좋아요, 헤헤!”

         

       벌써 막내를 탈출하게 생긴 금여울까지.

         

       “그렇다면…, 하아, 막내를 맞이하러 가야겠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는 당선영.

         

       그녀의 뒤를 따라 하나둘씩 일어나 방을 나섰다.

         

       이내 텅텅 비어버린 방 안.

         

       “이게 무슨…?”

         

       홀로 덩그러니 남은 백우진의 의문에 답해줄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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