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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1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 챈 순간 난 즉시 신성을 끌어 올려 메이스에 실었다.

   

   이 숲이 여왕의 것이라면 이 시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여왕일 테니.

   

   “자. 잠시만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무슨 말? 나는 썩어가는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는데.”

   “…끄으으.”

   

   요정여왕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지만 그 속에서 새어 나온 것은 울분이 담긴 비명뿐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문이 생겨났다.

   

   정말 요정여왕이 이 시련의 끝이 맞나?

   

   악신에게 오염된 것치고는 너무 어설픈데?

   

   정말로 요정여왕이 악신 아래에 굴복한 상태였다면 이미 눈이 돌아가서 나를 공격하는 게 정상이잖아.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아줌마. 썩어가는 아줌마와는 달리 내 시간은 귀하다구.”

   “그. 으. 예. 알겠습니다.”

   

   메이스를 내리며 이야기를 듣겠단 의사를 드러내자 요정여왕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지나오는 과정에서 보셨을 겁니다. 이 숲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응. 닭장냄새 나는 아줌마가 멀쩡해 보일만큼 역겨운 게 한 가득이던데?”

   “…그 닭장 아줌마라는 표현 좀 안 써줄 수 없나요?”

   “왜? 아줌마한테서 썩은내가 나는 건 사실이잖아?”

   “아무리. 하아아. 알겠어요. 하여튼 어둠에 먹혀버린 요정들을 보셨다면 이 숲이 처한 위기에 대해 아셨을 겁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 숲은 어둠의 악신에게 집어삼켜졌습니다.”

   

   요정여왕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멀스멀 숲을 침범해가는 어둠의 권능.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던 요정들.

   

   이상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저는 스스로의 실수를 다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이러한 광경뿐이었죠.”

   

   요정여왕은 실패했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이야기가 달랐을지 모르지만 요정의 숲 절반 이상을 먹히고 대부분의 요정들이 어둠의 악신 아래로 흘러들어가게 된 순간 그녀는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요정들을 아이처럼 생각하는 요정여왕은 결코 다른 요정들에게 공격을 가할 수 없으니까.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요정여왕이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버티는 것이었다.

   

   언젠가 구원이 올 것이라고 믿고.

   

   위대하신 신들께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고.

   

   세상의 위에서 악신과 맞서는 영웅들이 이 곳에 자리할 것을 믿고.

   

   버티고.

   

   또 버티는 것.

   

   “결국 아줌마가 낡고 무능하단 걸로 요약되는 이야기 아냐? 아줌마답게 말 진짜 더럽게 많네.”

   “그건…그렇겠지요.”

   

   화조차 내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요정여왕을 보며 그녀의 미래를 생각한다.

   

   요정여왕의 발악은 결국 끝까지 보답 받지 못한다.

   

   그녀는 어둠의 악신에게 결국 잠식당하고 전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자신이 지켜야 할 자연을 해치고 자신의 아이처럼 느껴지던 요정들의 목숨을 내던지며 나아가다 결국 영웅들에 의해 토벌당하지.

   

   문제는 요정여왕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요정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쓰러트리고 쓰러트려도 다시금 되살아나는 개념적인 존재니까.

   

   결국 영웅들이 택한 것은 요정여왕을 숲 채로 봉인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영원히 자신의 꿈에서 살아가도록. 처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영원한 잠 속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염치가 없는 것은 압니다. 허나 주신의 뜻을 품은 영웅이시여. 부디 이 숲을 구해주십시오. 저의 무능으로 인해 잘못되어 가는 요정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나는 고개 숙이는 요정여왕에게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이 곳은 간슈의 시련.

   

   이미 일어났던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공간. 이 장소에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기록되어 버린 역사를 뒤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 잔챙이가 기어들어왔군.

   

   숲의 어둠 너머에서 음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내 머릿속에 여태까지 겪어온 악몽들이 차오른다.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던 칼의 목검이.

   

   무너져 내린 날 뭉개버리기 위해 쏘아지던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이.

   

   미물을 바라보듯 하던 나크라드의 시선이.

   

   공포가.

   

   공포가.

   

   끝없는 공포가.

   

   하나 둘 차오르며 내 숨통을 조른다.

   

   진정.

   

   손이 떠는 것이 느껴진다.

   

   호흡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진정해야 해.

   

   생각이 끊긴다.

   

   이건 단순히 시련일 뿐이야.

   

   바닥에 무언가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목소리는 진짜가 아냐.

   

   힘이 빠진 다리가 꺾인다.

   

   괜찮아.

   

   싫어.

   

   괜찮아.

   

   살려줘.

   

   아무 문제없어.

   

   죽고 싶지 않아.

   

   괜찮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제발 살려.

   

   “…후으으.”

   

   입술을 꾹 깨물고서 무너져 내렸던 신성을 다시금 끌어올린다.

   

   머릿속에 스며들었던 어둠이 걷힘에 따라 정신이 돌아온다.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정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요정여왕의 눈이 보였다.

   

   그 눈동자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실로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하하. 젠장. 지금 이게 모든 힘을 품고 있던 어둠의 악신인가.

   

   선신과 악신이 전쟁을 벌이던 신화의 시대에는 이런 적을 상대해야 했던 건가.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싸움을 했던 거야.

   

   베네딕정도면 강하긴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만 하네.

   

   얼굴을 쓸어 올리는 걸로 감정이 터져 나온 흔적을 정리한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방패와 메이스를 주워 들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도망쳐요.”

   

   그러자 요정여왕이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당신에겐 아직 저 자를 마주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도망쳐야 해요. 살아남아서 이 숲에 대한 이야기를.”

   “아줌마. 뇌까지 썩었어? 어디로 도망치란 거야?”

   

   검게 물든 숲을 바라보며 묻자 요정여왕이 입술을 달싹인다.

   

   그러는 동안에도 숲에 자리한 어둠은 점차 짙어져간다. 어둠의 악신이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을 위해 아껴두던 힘이 있어요. 그를 사용한다면 당신 하나 정도는 내보낼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아줌마는 완전히 썩어버릴 텐데?”

   “괜찮습니다. 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뿐이니.”

   

   요정여왕의 이야기에 혹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차오르고 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숨은 여전히 다급하고.

   

   머리에서는 계속해서 경종이 울린다.

   

   그렇지만 무너질 정도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진 않다.

   

   “미안한데 썩어빠진 아줌마한테는 별로 도움 받고 싶지 않아. 괜히 얽히면 닭장 냄새까지 옮을 것 같잖아.”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당신은!”

   “뭐 어때? 저 음침한 히키코모리 완전 개허접이란 말야. 나한테 처발리고 질질 짜면서 도망친 좆밥이 힘 좀 생겼다고 뭐 달라지겠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면 저를 상대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나만큼이나 만전의 어둠의 악신을 많이 상대해 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저와 직접 눈을 마주했던 할아버지조차도 나보다 저걸 많이 보진 못 했을 걸?

   

   당연하게도 나보다 저 히키코모리 새끼를 많이 쓰러트려보지도 못했을 테고.

   

   “가만 지켜보고나 있어. 썩어버린 아줌마.”

   

   나는 불가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맞다.

   

   온갖 난리를 쳐도 내 어투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지능을 올리기 위해 몰래몰래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무의미했던 것처럼.

   

   아무리 매도를 해도 얼빠여우가 좋아하기만 할 뿐인 것처럼.

   

   그렇지만 소울 아카데미에선 다르다. 던전 안에서만큼은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썩은물이라는 것은 실낱같은 희망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존재니까.

   

   “평~생 혼자 살아야할 텐데 멍하니 있는 데도 익숙해 져야지.”

   

   애써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끝마친 나는 점차 커져가는 떨림을 억지로 외면한 채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흐흫. 어찌 보면 잘 된 일이야.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컨텐츠잖아.

   

   던전 공략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는 미니 게임이라는 게 좀 짜치기는 한데.

   

   어쩌겠냐. 이런 거라도 새로 내줬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퍼먹어야지.

   

   – 미물주제에 내게 대적하려 하는가.

   “그 미물한테 처발려서 찌그러진 허~접이 재잘재잘 떠들어 봐야 하나도 안 무섭거든♡ 또 찌그러지기 전에 골방에 처박히는 게♡…”

   

   어둠의 악신을 상대하기 위해 입을 나불거리던 그 순간 주변의 풍경이 흩어지고 도서관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 맞은편에 서 있는 간슈는 무척이나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가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나는 꼬맹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마음을 가득 채우던 긴장이 흩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몸에 힘이 풀렸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 온 할아버지가 날 지탱해 주었기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면 바닥에 그대로 널부러졌으리라.

   

   “정말 자네는 한결 같군.”

   

   애써 외면하던 공포를 지우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으려니 간슈가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입을 나불댔다.

   

   이 개같은 꼬맹이가. 자기가 시련에 장난질을 쳐놓고 사과는 못 할망정 저 지랄을 떨다니.

   

   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 해.

   

   “네가 몸도 마음도 쪼끄마한 쫌팽이인 것처럼?♡”

   “…음. 내가 방금 전에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 그 정도 모욕은.”

   “다리 사이에 있는 것도 분명 작겠지?♡ 손가락 마디 정도는 되려나?♡ 아니 애초에 있긴 한 거야?♡ 하는 꼴이 너~무 치졸해서 좆도 도망쳐버렸을 것 같은데♡”

   “…”

   “쿠흐흫♡ 사실로 때리니까 많이 아파?♡ 미안해라~♡ 내가 눈치가 없었네♡”

   

   방금 전 죽을 뻔 했던 울분을 담아서 할 말 못 할 말을 다 내뱉었더니 금새 간슈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손에 핏줄을 세웠으면서도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내 안의 가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좀 더 괴롭히면 울지 않으려나.

   

   눈물을 질질 짜면서 용서하지 않겠다고 더듬대며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어디를 건드리면 좋을지에 대해 약점파악에게서 조언을 구하려던 그 순간 할아버지가 내 정수리를 꾸욱 눌렀다.

   

   머리를 어깨 안 쪽으로 집어넣을 듯한 괴력에 놀라 재빠르게 고갤 돌렸더니 할아버지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갤 저었다.

   

   “그쯤 하거라.”

   “뭐야. 할배. 저런 꼬맹이가 취향이었던 거야?”

   “…그런 것이 아니다. 자꾸 입술을 움직이다 얻어야 할 것조차 못 얻을 수 있다 이야기하려는 것 뿐.”

   

   얻어야 할 걸 못 얻는다뇨?

   

   시련을 통과한 순간 간슈는 [역사 확인]을 줄 수밖에 없는데요?

   

   선신의 약속이라는 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라고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간슈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다가와 책 하나를 건네줬다.

   

   “그 안에서 바라는 축복을 골라라. 내 어떤 식으로든 그를 건네 줄 테니.”

   

   간슈가 건네 준 책의 제목은 [신들의 권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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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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