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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1

    <451 – 마마의 소양>

     

    이 아이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찌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이런 충격적인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혁명가. 대리인. 총수.

    삼대거악이란.

    그들의 의지를 물려받은 후계자란 모두 저런 방식의 사고밖에 할 수 없는 건가?

    순간의 아연함에 말문이 막힌 디스트로이어는 오크노디의 모자가 구깃구깃 접어지며 정수리를 조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야얏. 제가 뭐 잘못 말한 것도 아닌데 왜 때려요. 히이잉.”

     

    모자. 오크노디의 영혼친구가 깃든 마도구.

    밤새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단짝이 오크노디를 혼낸다.

    그 모습을 보고 헤스티아가 정신을 차렸다.

     

    “오크노디. 죽여야 한다는 십만 명의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죄 없는 농민?”

    “설마요. 당연히 싱과 여동생을 속이고 이용해온 동방의 권세가를 멸문시키려는 거죠. 걔들만 다 죽이면 동방은 말 잘 듣는 순한 개가 되어서 일석이조!”

    “싱을 도와주기 위해 나쁜 사람들을 죽일 예정이라는 거지?”

    “맞아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오크노디는 속으로 생각하는 정보와 입 밖으로 내뱉는 정보의 차이가 커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해서 탈이야.”

    “히히. 그래도 헤스티아는 알아줬잖아요.”

     

    천재는 범재의 마음을 모른다.

    답을 내놓아도 해답을 풀어쓰기를 어려워한다.

    헤스티아는 대충 천재감수성으로 오크노디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었고, 덕분에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디스트로이어에게는 깊은 감명을 남길 광경이었다.

    자신도 저렇게 혁명가를 믿을 수 있었다면 하비를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강의가 헛되지 않아 다행이군.’

     

    디스트로이어는 모처럼 선심을 쓰기로 결정했다.

     

    “저녁 식사시간이군. 레어요리가 먹고 싶으면 따라와라. 좋은 걸 먹게 해주마.”

     

    오크노디가 신나서 따라오자 헤스티아가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뒤따랐다.

     

    “중간고사는 다들 잘 치르고 있나.”

    “그럭저럭 즐기고 있어요!”

    “1학기보다는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학년수석의 자리를 되찾을 겁니다.”

     

    재미와 적응, 탈환인가.

    각자가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답이다.

     

    “헤매고 있지는 않아서 다행이군. 그래도 한 가지 충고를 해주지.”

    “충고요?”

    “강의 도중, 감정적 동요를 유발하는 절단신공으로 이야기에 몰입했다가 청자를 울컥하게 만드는 화법에 걸려 일순간 기척을 들킨 감시자가 있었다.”

    “헉! 정말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강의를? 대박이다. 누가 그렇게 강해요?”

    “모른다. 전대용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삼대거악이 보낸 감시자일 수도 있고, 꿍꿍이를 모를 드래곤교장의 소행일 수도 있지.”

     

    이슈타르가 수저를 내려놓고 디스트로이어 교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저희를 식사자리에 초대한 건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군요.”

    “그렇다. 너희를 부른 건 경고를 위해서이지, 결코 소일거리 삼아 재배했던 텃밭에서 너무 많이 자라난 말랑쥬시무우의 처리가 곤란했던 것이 아니다.”

    “…”

     

    이슈타르가 굉장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겸사겸사 고민 상담을 원한다면 하나씩만 들어주지. 아카데미 생활을 하며 생긴 걱정거리는 없는가.”

     

    헤스티아는 고민이 없었다.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을 익히며 신체를 탈바꿈할 단초를 마련한 그녀는 단련 외에 관심이 없었다.

     

    이슈타르는 고민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의 고민은 재단장학생이 되어버린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지에 대한 고민이지만 이 사실은 남에게 알릴수록 자신의 약점이 될 뿐이었다.

     

    오크노디는 고민이라고는 전혀 모를 천진한 아이.

    디스트로이어는 괜한 소리를 했다고 여겼지만 뜻밖에도 오크노디가 손을 들었다.

     

    “하잇! 질문 있어요!”

    “의외군. 네게도 고민이 있다니. 그래도 잘 생각하고 물어라. 사람에게 펼치는 고문법이 고민된다거나 하는 황당한 질문이라면 대답하지 않을 거다.”

    “그런 건 아니고 엄마가 궁금해서요.”

    “엄마?”

    “저는 파파는 있는데 엄마는 없잖아요.”

    “…!”

    “그래서 말인데 엄마는 어떤 사람인 걸까요?”

     

    헤스티아가 크게 움찔했다.

    디스트로이어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삼대거악의 협력자는 거악들의 꿈을 지지하고 실현시켜주고 싶어 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잖아요. 파파의 마마도 그랬을까요?”

    “그건 경우가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어떻게요?”

    “친자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주워온 아이라면 다르니까. 실제로는 어떠냐.”

    “넹?”

    “너는 재단이사장의 친자식이 맞냐?”

    “몰루!”

     

    머리가 지끈거리는 대답이었다.

     

    “그걸 네가 모르면 어쩌자는 거냐.”

    “그래도 몰루는 건 몰루?인 거여요.”

    “모르고 싶은 거냐, 정말로 모르는 거냐.”

    “정말로 몰루!”

    “…일이 더 심각해졌군.”

     

    디스트로이어는 진지하게 상담에 응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어느 경우로도 너는 골치 아픈 상황에 놓였군. 데려온 아이라도 진실을 모른다는 것은 기억소각을 당했다는 증거다. 재단에 데려와지기 전에 무얼 했는지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으니 뭘 알 수가 없겠지.”

    “마자요! 아무것도 몰루!”

    “반대로 이사장의 친딸이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면 이 또한 이사장이 너를 단 한 번도 친딸로 대우하지 않았거나 기억을 소각했다는 증거다. 어느 경우에서건 사랑의 결실로서 대우받지 못했음을 의미하지.”

     

    오크노디는 특별하지만 특별한 아이로서 사랑받고 자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기이할 정도의 지식수준과 전투능력, 암흑마나의 적성과 가끔씩 드러나는 충격적인 언동 등을 고려하면 학대 받고 자란 아이에 가깝다.

     

    “네 엄마는 이사장에게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혁명가와는 다른 의미로, 차라리 녀석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게 어떤 건데요?”

    “그건…”

     

    아무리 그라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네가 이사장의 친딸이라면 네 엄마는 그에게 강제로 임신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너는 사랑 없는 임신의 결실로 자라났다고.

    여자는 특별한 혈통이나 비밀을 지닌 인물이겠지만 그렇기에 너를 증오하고 있을 거라고.

    살아있다면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는 그런 말들을 어떻게 마마가 궁금하다는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건넬 수 있겠는가.

     

    “피가 이어진 엄마가 아니라도 엄마가 될 수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와, 모성애! 저도 알아요. 모성애가 있어야 아이를 아끼는 엄마라는 거죠?”

    “그렇지.”

    “사랑은 다른 사람의 꿈을 대신 이뤄주려고 하는 거라고 강의 겸 시험시간에 배웠고요!”

    “복습은 잘하는군.”

    “그럼 내 목표를 도와주는 사람이 엄마구나!”

     

    …결론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뭔가 아닌 것 같다며 고개가 기울어지는 헤스티아를 도도도 달려온 오크노디가 덥썩 붙잡았다.

     

    “헤스티아는 제 꿈을 도와줄 수 있어요?”

    “네 꿈이 뭔데.”

    “살아남기요!”

     

    ……이 아이, 그렇게나 위험한 처지였던 걸까.

    디스트로이어조차 측은한 마음을 품을진대 헤스티아가 태연할 리가 없었다.

    가슴이 울컥해진 그녀가 호언장담했다.

     

    “도와줄게.”

    “히히. 역시 헤스티아는 제 마마가 맞았어요!”

    “…바보 같아.”

     

    한 소리 하는 이슈타르에게도 오크노디가 고개를 휙 돌렸다.

     

    “ㅁ, 뭐.”

    “이슈타르도 도와줄 거죠?”

    “내가 왜 도와줘? 넌 삼대거악의 후계자인 다크프린세스고 나는 당대용사야.”

     

    오크노디의 왜곡된 마마관에 자신까지 휘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슈타르의 강경한 거부의사에 오크노디는 시무룩함을 감추지 못했다.

    괜히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자 이슈타르는 억울해졌다.

     

    “애초에 결혼도 안한 십대 여자한테 엄마가 되어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힝.”

    “애 돌보기 좋아하는 아카디아나 이사벨한테나 가버리던지, 왜 나한테 난리야.”

     

    디스트로이어가 혼란스러운 식사자리의 분위기를 정리하였다.

     

    “조언을 마무리하지. 네 목적이 생존이고 생존을 도울 여자를 찾는 거라면 브론즈 교수에게 의지해라. 세계제일의 도적인 내게 닿지는 못해도 그녀 정도면 능히 생존을 도울 수 있을 거다.”

    “브론즈 교수님이 마마…?”

     

    오크노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저 작고 이쁘장한 머리에서 무슨 황당한 상상이 그려지고 있을까.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떠는 모습을 보아 제대로 된 상상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런 마마는 필요없어…”

    “정신 차리고 마음 단단히 먹어라. 중간고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디스트로이어는 세 학생을 배웅해주었다.

     

     

    * * *

     

     

    파시블 예프는 강의를 염탐하면서 몇 번이고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

     

    ‘절단신공. 상대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어 잠복상태에서 강제로 풀려나게 만드는 무서운 화법이었군요. 세계제일의 도적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된 자리였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공간을 뒤틀고 쥐어짜내는 힘에 사람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도 남을 깊은 상처도 입었지만 언데드였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연금마법으로 만들어낸 인공피부 따위, 아무리 깊에 베인들 목숨에 지장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군요.’

     

    혁명가는 사람의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어 행동과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었다.

    협력자란 그의 뜻대로 휘둘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삼대거악의 다른 한 명인 재단의 총수도 <지령>이라는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장치로 수많은 장학생들을 부려먹고 있다.

    자발적인 협력은 부족할지라도 그 위험성은 결코 혁명가보다 낮다고 할 수 없다.

    오크노디는 그런 이사장의 후계자로 암암리에 소문이 나고 있는 인물.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현역용사에게 오크노디 또한 장차 저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함과 동시에 일말의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두라 조언했지만… 그것이 이 강의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파시블 예프.

    불가능을 모르는 플라잉스켈레톤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복수대상은 제국, 혁명가, 그리고 아카데미. 그런 그가 수석장학생 오크노디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어쩌면, 재단의 힘을 이용해서 더욱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저 남자가 세상을 뒤흔들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것도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와 당대용사 이슈타르를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염탐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오크노디와 사다코 교수, 당신들이 선을 넘는다면 저는 이 정보를 가만히 끌어안고 죽지는 않을 겁니다.’

     

    까망과 엉무새들이 기다리는 수인휴게실을 향해 걸어가는 파시블.

    분위기에 취해 비장한 각오를 담아 저벅저벅 걸어가던 그의 귀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오늘은 무슨 강의가 더 남아있냐?”

    “1학년은 <지식판정으로 마법쓰기>라는 강의가 남아있다던데.”

    “재미없겠네.”

    “꼭 그렇지만도 않을걸? 시험상대가 거물이래.”

    “얼마나 거물인데?”

    “황색마탑의 원로회가 왔대.”

    “뭐? 아니 그런 굉장한 거물들이 1학년 애기들 시험장에는 왜 오는데?”

     

    비장하게 걸어가던 파시블의 걸음이 자연스럽게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마탑의 원로들은 현역에서 물러나서 명예직이나 들고 후계양성이나 하는 뒷방 늙은이들이잖아.”

    “그런데?”

    “심심풀이 삼아 키운 제자들이 있을 테고.”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지네 제자들이 아카데미 수강생에 비해 꿀릴 게 뭐 있냐고 대결하러 데려왔대.”

    “맙소사. 원로라는 작자들이 제국교수들 무서운 줄 모르고 누가 더 제자를 잘 가르쳤나 싸우러 오다니!”

    “뭔 헛소리야? 그 늙은이들은 제자들을 몇 년은 가르쳐왔을 테고 수강생들은 한 학기 중간고사까지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찔끔찔끔 배운 게 다인데.”

    “아니 미친! 그럼 양학을 하러 왔다고?”

     

    들을수록 정말 가관인 이야기였다.

    파시블도 분통을 감추지 못하고 혀를 찼다.

     

    “…응?”

    “왜 그래?”

    “저 사람 아까 반대편으로 지나가지 않았어?”

     

    자연스럽게 유턴해서 행인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던 파시블이 괜히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줍는 척 허리를 숙였다.

     

    “이게 여기 떨어져있었군.”

    “…”

     

    행인들은 미심쩍은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파시블은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자기를 이상하게 여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포장지를 활짝 펼치고 품에서 꺼낸 볼펜으로 사인을 하려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닛, 강제행동조종마법?!’

     

    기겁해서 전신에 마력을 크게 순환시켜 간섭술식의 영향에서 벗어난 파시블.

    덤불 속에서 일어난 2학년이 칫 하는 소리와 함께 떠나는 모습에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틈새시장을 노리던 벨로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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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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