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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1

        

       그 외침은 절망 속에서 갓 끄집어낸 듯 생생한, 질척한 무언가가 담겨있었으니, 말이 끈적이고 무거워 입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음이라. 소리는 무거워 내려앉으려 하고, 쉬이 귓가로 향하려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 뭉그적거리기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녹아내린 사람은 외치고 또 외친다.

         

       『 괴물이 있습니다. 그 괴물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에 존재합니다! 』

         

       타르처럼 달라붙는 목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목을 쥐어짜고, 목을 혹사하고, 그리하여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녹아내린 아스팔트에 살갗을 가져다 대는 것처럼 끔찍한 열기와 고통이 느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외치고, 외치고, 또 외친다.

         

       피를 토하며.

       녹아내린 몸으로.

         

       그는 말한다.

         

       『 외치고 또 외칩니다. 저는 제 몸을 불사르는 심정으로,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톱 하나까지 모두 바치겠다는 심정으로 고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귀한 시간을 내어서 모여주신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우리의 소중한 땅에는 괴물이 있습니다! 』

         

       비어있는 의자로 만들어진 띠를 두른 채.

       넓은 공간 안에 징그러울 정도로 빼곡하게 차 있는 그 빈 의자를 향해.

       그는 외치고 또 외친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그는 녹아내린 귀로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머릿속으로 들었고, 녹아내린 눈으로 빼곡하게 자리에 들어찬 사람을 상상했다. 이제는 제 기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린 피부만을 유일한 창구로 삼은 채, 남자는 외치고 또 외쳤다.

         

       그 모습은 검은 덩어리가 소리를 외치는 모습이라.

         

       멀리서 보면 그것은 바로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괴물의 혓바닥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 땅의 풍요로움을! 저기 러시아처럼 두꺼운 신발을 신었음에도 발이 얼어붙고 썩는 것을 걱정해야 할 만큼 춥지도 않고, 저기 중동처럼 물을 틀면 펄펄 끓는 물이 흘러나올 만큼 덥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신발을 신지도 않고 맨발로 가까운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두껍지 않은 옷을 걸치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

         

       검은 덩어리는 외쳤다.

       피인지 끈적한 오염 물질인지 모를 역겨운 것을 꿀렁꿀렁 토해가며.

         

       『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축복이란 곧 보물이며, 보물은 노리는 이들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축복 속에 숨겨진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땅에서 우리 곁에 함께하는 저주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은!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

         

       녹아내린 사람이 말한다.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말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비어버린 공간에.

         

       『 자그마하지만 물리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독거미! 길을 가다가 마주하는 캥거루!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벌레처럼 생긴 게!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끔찍한 독성을 가진 해파리와 문어! 조금 풀이 무성한 곳에 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악한 악어들!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와 닮았지만 실제로는 지옥에서 온 것만 같은 딩고들! 사막의 오아시스를 오염시키고 풀을 뜯어 먹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줄여나가는 낙타! 농작물을 망치고 사람을 공격하는 에뮤! 그리고 호주의 생태계를 박살 내는 토끼와 여우들까지! 』

         

       끈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벽면에 부딪혀 반사되고, 반사되고, 또 반사되며 유일한 청중에게로 도달한다.

       그렇게 도착한 소리는 끈적하게 귓가에 달라붙고, 기분 나쁘게 꿈틀대며 머리로 움직여 그 뜻을 전달한다.

         

       『 아, 우리는 자연이란 이름의 위협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주하면 다치고, 고통을 겪고, 목숨까지 위험한! 그런 불쾌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축복의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가입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며, 극복하기 힘든 것입니다! 』

         

       저 녹아내린 이가 외치는 소리가 더더욱 기분 나쁘게 들리는 것은 저 조명의 탓일까?

         

       『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최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최악을 겪어본 적이 없으며, 최악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최악을 우리는! 우리는 모두 대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악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달린 조명은 빛을 뿜어내는 눈알처럼 기분 나쁘게 아래를 비추고 있다.

       촘촘하게 틀어박힌 채, 수많은 눈이 달렸다는 신화시대의 괴물의 피부처럼 기분 나쁜 모습으로 빛을 비춘다.

         

       그 빛은 찬란하고 밝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이 기괴한 장면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니까.

         

       『 아무것도 모를 수 있었을 수 있습니다. 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지(無知)가 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지식이 우리의 목숨을 구원하기 때문이니,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온 위협을, 위험을, 위기를! 그 괴물을! 』

         

       혓바닥처럼 되어버린, 혓바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말했다.

       과장된 몸짓으로, 사람의 형체조차 찾기 힘든 몸임에도 나는 아직 멀쩡하다는 듯 행동하며 말했다.

         

       『 그 괴물은 마주하는 순간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입니다. 마주하지 않았다면 피할 수는 있으되, 마주한다면 숙명처럼 다가와 우리의 목숨을 수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이고, 살아서 겪는 모든 것보다도 가장 끔찍한 결말을 우리에게 선사해줍니다. 이것은 운명이고 필연이지만, 차마 마주하기 싫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하고자 발버둥을 치고, 뛰고 또 뛰어야 합니다. 등을 보인 채, 연인을 버리고, 배우자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피가 이어진 모든 가족을 죄다 버려버린 채 도망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존재는, 그 괴물은…!』

         

       

         

        * * *

         

         

         

       “…죽음입니다.”

         

       아나스타시아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녹아내린 사람’을 흉내 내기 위해 연설을 하는 것처럼, 나름 큰 목소리로 흉내를 내던 것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느낌으로.

         

       “…으음. 좀 오싹…하네요?”

         

       이러한 아나스타시아의 방법은 통했다.

       모두가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목소리를 확 깔자 앞서 말했던 내용이 확 와닿으며 듣는 소녀들에게 닭살이 돋게 했다.

         

       특히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꿈속에 방문한 적이 있었던 유경험자인 만큼, 아나스타시아가 보았을 기괴한 풍경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히힛.”

         

       아나스타시아는 소녀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기쁨이 담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위해 다시 표정 관리하고 목소리를 깔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꿈속의 기괴한 존재가 늘어놓았던 이야기였다.

         

       “죽음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두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입을 가지고 있으며, 무저갱처럼 깊은 목구멍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막을 걸어 다니고, 숲을 걸어 다니고, 해변을 걸어 다니며 동물과 사람의 근처에서 이웃처럼 존재합니다.”

         

       적막한 어둠.

       담장 저 너머로 들리는 자동차의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린 공간.

         

       아나스타시아의 소곤거림이 소녀들의 침묵 속에서 퍼졌다.

         

       “괴물은 두 눈으로 동물을 봅니다. 코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입으로 그들에게 소리를 냅니다. 그렇게 동물과 사람을 멈춰 세운 뒤 괴물은 두 발로 그들에게 접근하고, 두 팔을 뻗어 그들을 붙잡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붙잡은 괴물은 제 얼굴을 드러냅니다. 감히 최악을 만난 것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자의 목숨을 수확하기 전에, 그들의 영혼을 뽑아 제 몸에 담기 바로 직전에! 그 괴물은 어설프게 얼굴을 덮고 있던 가죽을 벗어 던지고, 살점 하나 없는 뼈를 드러낸 채 이렇게 말합니다.”

         

       “….”

         

       “저는, 죽음입니다.”

         

       휘이이잉-

         

       아나스타시아가 그 말을 입에 담은 순간, 찬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 서늘함은 계절에 맞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것이라, 소녀들은 그 서늘함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녀들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나스타시아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이 분위기를 즐겨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초.

       2초.

       3초….

         

       그렇게 정확히 10초가 되었을 때.

         

       아나스타시아는 방긋 웃으며 외쳤다.

         

       “자, 얘기는 여기까지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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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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