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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2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백우진이 도리어 괴로워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한 여인이 있었으니.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백우진이 막 용선아의 침소를 나섰을 무렵.

         

       얼마 안 있어 두 번째로 눈을 뜨게 된 그녀 또한 백우진처럼 제 얼굴을 감싸 쥐었더랬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새록새록 떠오르는 문란한 첫날 밤의 기억에 몸이 움츠러든다.

         

       “미쳤던 게 분명해….”

         

       어젯밤은 명백히 미쳐 있었다.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그런 광란의 밤은 이루어질 수 없었으리라.

         

       마음속 저변에 얕게 깔린 후회라는 진창 위에서 질척이는 발.

         

       그래서 어제의 일을 후회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단호히 대답할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루어져선 안 되는 관계로 찾아오는 후회는 고작 제 발밑만을 진척일 뿐.

         

       어제의 기쁨은 그곳을 제외한 세상 전체에 가득 차 있는데, 어찌 후회의 감정 따위로 이 기분을 희석할 수 있단 말인가.

         

       “읏….”

         

       그때 생각에 또 한 번 몸이 달아오르는 용설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어미가 해주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북해빙궁의 여인들은 하나 같이 성욕이 강하다는 것.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 말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따금 스스로 위로하는 날이 있기는 했으나 어미가 말했던 강렬한 성욕과는 거리가 먼 담백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

         

       그런데 아니었다.

         

       어제부로 실감했다.

         

       ‘나도 북해의 여인이 맞았구나.’

         

       그녀 또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성욕이 담백했던 건 그저 사내가 주는 쾌락이 어떠한지를 몰라서 그랬을 뿐이라는 것을.

         

       ‘아, 어떡해…♥’

         

       이제 자신은 백우진이라는 사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도.

         

       한 마리 야수처럼 제 몸을 탐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을 배배 꼬아대던 그녀는 널찍한 침상에 고이 잠들어 있는 제 어미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이, 일단 나가자.’

         

       후회는 둘째 치고 부끄러웠다.

         

       땅에 떨어진 옷을 주섬주섬 주워 대충 입은 뒤, 빠르게 제 침소로 돌아온 그녀.

         

       그와 제 몸에서 나온 온갖 액체들이 뒤섞인 몸을 씻어내기 위해 탕에 들어갔다 개운한 기운으로 나왔을 즈음.

         

       “저어, 소궁주님.”

         

       문 밖으로 시녀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니?”

         

       젖은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대답하자.

         

       “아가씨들께서 소궁주님을 뵙고 싶으시다고 찾아 오셨는데….”

       “…아가씨들?”

         

       북해빙궁 내에서 시녀들에게 아가씨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를 고르자면….

         

       정무학관 시절부터 백우진이 이끈 조의 조원들이자, 혼인을 약속한 부인들뿐.

         

       “어머나.”

         

       놀란 그녀가 젖은 머리를 말리던 수건마저 내던진 채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엔 사뭇 다른 표정들을 짓고 있는 다섯 여인이 서 있었다.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낌새를 느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앗!”

         

       그 모습에 다섯 여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눈치 빠른 막내가 들어온 듯하다.

         

         

       * * *

         

         

       한바탕 난리가 벌어질 거란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맞을 각오로 넙죽 엎드렸던 백우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그녀들에게 다가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노력을 다짐하던 그녀 또한 고작 며칠 만에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언니, 이거 언니한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어머머…, 이거 너무 짧은 거 아니니?”

       “언니는 다리가 예쁘시니까 괜찮아요!”

       “그, 그러니? 그러면…, 막내 성의가 있으니 한 번 입어나 볼까?”

         

       보이는가?

         

       저것이 고작 언니, 동생이 된 지 하루 만에 나누는 대화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이 잘 풀렸는데 마냥 의심할 수만도 없는 노릇.

         

       “잘 된 거지, 뭐.”

         

       약간의 찝찝함마저 털어낸 그는 곧장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파손 상태이긴 하지만, 어쨌든 수행신주를 무사히 손에 넣는 데에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리따운 부인과 장모까지 얻었으니 달성률은 10할을 넘어 12할에 달했다고 해도 무방한 상태.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냐.

         

       “슬슬 다음 장소로 떠나야지.”

         

       이제는 제법 정든 혹한의 땅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

         

       마음 같아선 조금 더 길게 묵고 싶지만, 문제는 언제나 시간.

         

       총 다섯 개의 신주 중 네 개가 천마와 백우진의 손아귀에 각각 두 개씩 주어졌다.

         

       그로 인해 백우진은 그녀가 어떤 신주들을 손에 넣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손에 들어온 목행신주와 수행신주를 제외하면 남은 신주는 총 셋.

         

       그중 하나인 토행신주는 북해와 마찬가지로 새외 지역 중 하나인 서장 포달랍궁 인근의 대고원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추측대로라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신주는 화행신주와 풍행신주가 되리라.

         

       “결국 토행신주를 빨리 손에 넣어야 한다는 건데….”

         

       신주를 전부 모으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계획은 다섯 신주를 모두 모아야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그중 두 개는 제 손에 들어온 상황.

         

       어느 정도 그녀의 계획을 방해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는 있으나, 마음 놓기엔 이르다.

         

       상대는 천마다.

         

       고금제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힘을 지닌 최강의 여인.

         

       아리따운 금발 대신 흑발을 끼얹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 백우진은 허공에다 대고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넌….”

         

       그녀의 힘은 이미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다.

         

       그 말은 무엇이냐.

         

       거창한 것 없이 직접 나서기만 해도 중원 전체를 발아래 둘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녀 또한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고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을까.

         

       백우진은 좀처럼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 내게는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여전히 오리무중인 계획이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그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나았다.

         

       조금씩 천마를 상대할 실마리를 찾아가고는 있지만, 고작 첫걸음밖에 떼지 못한 상황.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 계획의 핵심으로 보이는 신주를 하나라도 더 손에 넣어야겠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쉽다.

         

       북해빙궁은 사내들에게 있어 천국이나 다름없다.

         

       왜냐?

         

       “구 공자님, 잠시 몸의 대화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모, 몸의 대화라니…, 어, 어찌 그런!”

       “장 도사님! 혹시 손금도 보실 줄 아셔요?”

       “으허, 으허허! 내가 뭐든 잘하지만 그중 가장 잘하는 게 손금인 건 또 어찌 아시고!”

         

       저것 봐라.

         

       북해의 여인들은 하나 같이 음기를 짙게 품고 태어나 살결이 곱고 아리땁다.

         

       동시에 북해의 사내들은 강한 음기 탓에 사내다움과는 거리가 먼 성격으로 태어난다.

         

       그렇다 보니 북해의 여인들은 사내에게 다가섬에 있어 거침이 없다.

         

       그러한 연유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

         

       “말세다, 말세야.”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구왕수와 장삼이라니.

         

       어쩌면 이곳은 또 다른 이세계거나, 평행세계 따위가 아닐까.

         

       백우진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았다.

         

       “허험…, 대련을 말하는 것이었구려? 난 또.”

       “또 뭐요? 이상야릇한 생각이라도 하셨나요? 가령…, 대련 후 함께 씻는다던가.”

       “아, 아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어머, 싫으신가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대담한 여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구왕수.

         

       “엣헴…, 잠시 손 좀 잡겠소.”

       “어머, 박력 있으셔라.”

       “허허, 이 정도로 무얼.”

       “아하하…! 간지러워요, 도사님. 이거 정말 손금 봐주시는 거 맞아요?”

       “물론이오.”

         

       아리따운 여인의 손을 대뜸 잡으며 손금을 보기는커녕 콧구멍이나 벌름거리는 장삼.

         

       “음, 결정했어.”

         

       저 꼴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백우진은 여인들 틈에 쌓인 장삼과 구왕수에게 다가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건넸다.

         

       “얘들아, 닷새 뒤에 떠날 거니까 준비하렴.”

       “엑.”

       “떠, 떠나다니?”

         

       떠나기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 그들을 향해 백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왜, 싫어?”

         

       단숨에 발령된 백우진 경계경보.

         

       두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울적해진 두 사람을 보니 백우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 * *

         

         

       떠날 채비를 하는 닷새 동안 백우진은 용선아와 세 번의 밀회를 추가로 가져야만 했다.

         

       “곧 떠난다고?”

       “예,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떠난다는 백우진을 향해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짓는 그녀.

         

       “닷새 뒤라고 했던가?”

       “예.”

       “그럼 그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겠어.”

       “…무얼 말입니까?”

         

       얼빠진 물음에 그녀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후계자 만들기 아니겠나…♥”

       “…….”

         

       그렇게 떠나기로 결심한 첫날을 제외한 사흘 밤을 그녀의 침소에서 지새웠다.

         

       마지막 날에는 심지어 그날 이후로 봉인했던 양사주까지 다시 꺼내어 마신 뒤 밤일에 열중했을 정도.

         

       회임이라는 것이 곧바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이나, 두 사람은 확신했다.

         

       “무조건 생겼겠어.”

       “무조건 생겼을 겁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확신할 만큼, 밤에 진심이었다는 뜻.

         

       그렇게 떠나기 전날까지도 용선아와 함께 밤을 보낸 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머니…, 저 없이도 잘 지내셔야 해요?”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시간은 좀 오래 걸렸다.

         

       평생을 북해에서 나고 자란 여인이 마침내 고향과 어미의 곁을 떠나는 날 아닌가.

         

       “내 걱정은 말고 네 서방이나 잘 챙기거라.”

         

       눈물 흘리는 딸을 달랜 그녀는 곧장 백우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고마웠네. 자네가 해준 일들은…, 내 절대 잊지 않겠네.”

       “별말씀을.”

         

       그녀의 감사 인사에 가볍게 고개 숙이던 백우진은 보았다.

         

       “후후.”

         

       제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 그녀의 손길을.

         

       그 움직임이 꼭 이리 말하는 듯했다.

         

       여기에 네 피를 이은 아이가 있다.

         

       “여정이 끝나면 꼭 찾아오게. 그때 자네가 보아야 할 것이 있을 테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비록 남들에게는 비밀로 해야만 하는 부적절한 관계지만, 그녀는 제 아이를 가졌다.

         

       당당히 밝힐 수 있는 날이 오게 될는지는 몰라도 아비로써 나 몰라라 해선 안 되겠지.

         

       걱정이 앞선다.

         

       부모에게 사랑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하나 지금은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두기로 했다.

         

       제 부인, 그리고 아이가 발 뻗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에.

         

       “이제 출발하자.”

         

       마침내 백우진이 등을 돌렸다.

         

       단단하게 언 땅을 성큼성큼 밟아나가며 멀어져가는 뒷모습.

         

       이를 지켜보던 용선아가 쓰게 웃었다.

         

       “당분간은 적적하겠어….”

         

       딸도 떠났고, 사위인지 서방인지 모를 이도 떠나갔다.

         

       한동안 적적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테지.

         

       하나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위험에서도 제 앞길을 비출 테고, 제게는 지켜야 할 또 다른 생명이 생겼으니.

         

       “음…, 갑자기 시고 단 과일이 먹고 싶구나.”

       “바로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제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떠나가는 시녀를 보며 그녀는 희게 웃었다.

         

       평소에 찾지 않는 신 음식을 찾다니.

         

       아무래도 제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움튼 것이 분명한 듯하여.

         

       그녀는 제 곁을 지키고 선 또 다른 시녀에게 말했다.

         

       “북해에서 가장 유명한 의원을 불러다오.”

       “예? 아, 예….”

       “아, 그리고 솜씨 좋은 산파도 한두 명쯤 있어야겠구나.”

       “……?”

         

       명령을 들은 시녀의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 고장 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연신 웃으며 제 배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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