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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2

       요즘 들어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상으로 피곤함을 제어하는 일은 있어도, 이런 식으로 에너지가 남아 잠이 오지 않는다니.

        

       살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궁리하고, 뭔가 연습하고, 시간을 돌리고.

        

       시간을 돌리면 신체적인 피곤함은 가신다. 하지만 자지 않으면 정신적인 피로는 계속 누적된다.

        

       몸은 편하지만 쉬지 않고 일한다는 스트레스를 지속해서 받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잤었다. 잘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어떻게든 자고,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은 어떻게든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에너지가 너무 남아돌아 잠이 오지 않는다니, 웃기기도 하지.

        

       아래쪽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아서 경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누가 뒤에서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안 자?”

        

       클레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클레어가 내 쪽을 향해 누워 나를 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왜, 내일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건 아닙니다만.”

        

       장난스럽게 물어보는 클레어에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에너지가 조금 남았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저도 체력이 조금은 늘어난 모양입니다.”

        

       “그래?”

        

       부스럭부스럭, 클레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클레어의 자리는 바로 창가였으니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내 옆에 앉을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한밤중에도 서울은 밝았다. 막상 내려가 보면 닫힌 가게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계속 돌아다니는 게 어디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우리 둘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혹시, 가족을 다시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클레어가 속삭이듯 작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그러고 싶으면 말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고마운 말이네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으응…….”

        

       우리가 대화하는 소리에 앨리스가 깬 모양이다.

        

       앨리스도 내 옆자리였다. 그러니까, 사실 누웠던 순서로 따지면 클레어, 나, 앨리스 순이다.

        

       내가 클레어를 넘어가 창문 앞에 앉아있었을 뿐.

        

       “뭐야…… 두 사람 다, 안 자?”

        

       “어차피 내일도 쉬는 날인걸.”

        

       “날짜 지나갔습니다.”

        

       “그래? 그래도 오늘이 쉬는 날인 건 마찬가지잖아.”

        

       클레어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앨리스는 입을 가리고 하품하면서도 이쪽으로 기어 왔다.

        

       어깨에는 이불을 두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목소리를 들으니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잠이 깰 필요도 없는 시간인데.

        

       우리 모두 밤늦게까지 영화를 봤으니, 저렇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사실 영화 보는 와중에 절반 이상은 잠들었고.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쪽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그래?”

        

       앨리스도 딱히 뭔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이 깨어 있는 걸 보고 다가온 모양이다.

        

       “참 재미있었다.”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놀고 싶을 만큼.”

        

       “내가 도와줄게.”

        

       클레어는 자신 있게 자기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여러모로 힘들어질 거야. 다 같이 모여서 오기도 그럴 거고. 이제 시간도 똑같이 흐르잖아.”

        

       “그렇다고 우리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게다가 후속작도 해야 하고.”

        

       맞다.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시리즈 완결까지 플레이하고 싶었다.

        

       “두 사람 다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납치해서 모을 테니까.”

        

       그 말에 앨리스가 쓰게 웃었다.

        

       “황녀 두 명을 납치하는 순간부터 너는 대역죄인이 되는 거야.”

        

       “어차피 다른 세상으로 도망갔는데 누가 알겠어? 아마 증거도 없을걸.”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때가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황녀 본인이 그러기야?”

        

       앨리스가 나를 흘겨보았다.

        

       “저는 업무가 너무 많아지면 가차 없이 도망갈 생각입니다.”

        

       “그럼 나는 그 업무 위에 다른 업무를 올려놓고 기다리겠어.”

        

       무섭기도 하지.

        

       우리 세 사람은 작게 웃었다.

        

       “끙.”

        

       앨리스 옆자리에서 자고 있던 샤를로트가 그런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에 살짝 비친 것을 보고 그쪽을 봤더니, 샤를로트는 눈을 비비며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다들 뭐 하고 계시나요? 안 주무세요?”

        

       다 일어나겠네.

        

       샤를로트도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곁으로 와 옆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요?”

        

       같은 질문을 또 듣네.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그냥 이쪽 세상에 관한 이야기.”

        

       앨리스가 나의 대답을 그대로 베껴서 똑같이 들려주었다.

        

       “그렇네요.”

        

       샤를로트는 살짝 미소 지었다.

        

       “꿈같은 이야기에요. 돌아가면서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네요.”

        

       “걱정하지 마. 네가 왕이 된 다음에도 내가 기꺼이 납치해줄 테니까.”

        

       “국제분쟁이라도 일으킬 생각이야?”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클레어의 말에도 조금 일리가 있었다.

        

       클레어가 황녀인 세계에서는 클레어 역할이 이런 역할이었잖아. 물론 본인한테 말하면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응.”

        

       “결국 미아까지 깼네.”

        

       기어코 초기 5인방이 모두 깨버리고 말았다.

        

       “무슨 이야기를……?”

        

       “별건 아니고, 그냥 이쪽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똑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듣는 건지.

        

       거실에선 우리 말고도 다른 애들도 자고 있었다. 여기서 더 깨면 기껏 잠든 것이 아까울 지경이 된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밤을 새우자고 했어야지.

        

       “…….”

        

       우리 다섯 명은 잠깐 나란히 앉아 말없이 저 밖을 바라보았다.

        

       자동차가 불빛을 반짝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인도를 잘 찾아보면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보일 거다.

        

       “여기 처음 왔을 때는 눈앞이 막막했습니다만.”

        

       나는 다소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솔직히 혼자서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늙어 죽었을 거예요.”

        

       정확히는 이 아파트도 사지 못했겠지. 복권을 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테니까. 인터넷 방송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다섯 명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에이, 그렇게 고마워야 할 건 없어.”

        

       클레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손을 휘휘 저었다.

        

       “……네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조금은 감상적으로 받아들여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원래 자매라는 관계는 다 그런 거랍니다.”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두 사람 재회한 지 1년이 안 되지 않았나요?”

        

       “기간 따위는 상관없어.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그런 것 때문에 연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니까.”

        

       클레어가 샤를로트의 말에 억지를 부렸다.

        

       뭐, 그래도 어느 정도 동의하긴 한다. 클레어는 나를 보는 순간에 바로 알아봤으니까.

        

       “저도……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살 수는 없었겠죠…….”

        

       말줄임표가 많긴 하지만, 딱히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미아는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다. 영화를 결국 끝까지 다 봤으니까.

        

       아마 그래서 저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뭘 그렇게 보세요?”

        

       샤를로트가 자기한테 모이는 시선을 느끼고 그렇게 물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던 샤를로트는, 그래도 치워지지 않는 우리의 시선을 보고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네, 네, 저도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었네요. 분명 앞으로 아카데미에 다니는 시간도 즐겁고 행복하겠죠. 됐나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얼굴이 조금은 붉어졌을 거다.

        

       우리 네 사람은 만족스럽게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날씨는 조금 추웠다. 난방을 돌리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창문 앞에 대놓고 앉아있으니 냉기가 조금은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동시에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잠깐 입을 닫고 있다가— 

        

       “만약에, 지금 이 순간이 어느 기나긴 이야기의 끝이라면.”

        

       —다소 뜬금없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이 순간을,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네 사람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다들 말이 없었다.

        

       슬슬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때 쯤에야, 클레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야기의 마무리로는 더할 나위 없지.”

        

       앨리스도 덧붙였다.

        

       “기나긴 시련 끝에 결국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냈다는 이야기인가요? 해피엔딩이죠, 물론.”

        

       샤를로트는 웃으며 말했다.

        

       “……마침내, 모두들,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냅답니다.”

        

       미아가 졸린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

        

       입가에, 나도 막을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길고 긴 이야기였다.

        

       앞으로도 우리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건 계속되겠지만, 일단 그 장대한 이야기 중 한 장의 대단원이 끝났다.

        

       그리고, 그 끝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해피엔딩이라고 부를만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긴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고했던대로 if:if:가 남아있고, 본편의 후일담도 조금 적을 생각입니다만, 지구 외전 본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조금만 적어보자고 생각했던게 정신을 차려보니 무려 3개월째 쓰고 있네요.

    여러분 모두 이 이야기를 읽으시며 즐거우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말,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부디 제가 글을 쓰며 느낀 즐거움이,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전해질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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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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