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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2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루크의 반응은 명백했다.

    불쾌, 짜증, 경계, 그리고 의심.

    정확히 하나로 딱 잘라 표현하기엔 무언가 미묘한 반응이었지만, 하나같이 부정적인 감정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밖에 나가서 즐겁게 쇼핑을 마치고 막 안락한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는 레니에는 연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로 죄송하다니까요. 이제 그만 화를 좀 푸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크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흥.”

    -찰칵.

    아무말 없이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방문을 여는 루크.

    그에 레니에도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루크가 그녀의 입장을 제지했다.

    “그 몸뚱이로 내 방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게.”

    -아, 그럼 인형으로-.

    레니에가 그렇게 투구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코어인 붉은 마석을 꺼내려하자, 루크가 레니에의 말을 빠르게 끊어내며 말했다.

    “아니, 인형도 안돼.”

    -왜, 왜요?!

    그에 루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대는 밖에서 오늘 그대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난 잠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

    -네? 아니, 그게 무슨-.

    -쿵.

    방문은 마치 레니에의 말을 끊으려는 듯,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당황한 레니에가 방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저, 정말로 용서해주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러나 방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엄청 단단히 화가 난 모양.

    그에 레니에는 크게 당황하며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사실, 이런 문 따위는 약간만 손보면 여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그, 그래도 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그렇게 한마디를 던진 뒤, 레니에는 다들 외출했는지 아무도 없는 거실로 내려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반성하라니….

    사실, 루크의 이러한 ‘소통 거부’는 예전에도 종종 있어왔던 일이었다.

    너무나 감정이 너무나도 격해진 순간, 감정을 다스리고 위험해진 서클을 재조정하기 위해서 칩거하는 경우는 루크와 같은 서클 마법사들에겐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루크가 그 정도로 화가 났다는 이야기인지라,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야, 쉽게 용서되지 않겠지.

    가만히 두었으면 만일에 대비하여 어느정도는 항상 몸에 두른 채 유지하고 다니는 실드가 있어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을, 레니에가 구하겠답시고 마법을 방해하는 단단한 아세릴 바디로 들이받아 오히려 더 고통을 주는 바람에 온 몸의 관절은 삐걱거리지, 그 과격한 움직임 덕분에 인챈트가 달려있던 가면은 부숴먹어버려서 루크가 계속 신경써야했지, 그 와중에 쇼핑백의 줄도 끊어지는 바람에 새로 산 옷이 바닥에 떨어져서 더렵혀졌을 뿐 아니라, 갑옷의 날카로운 부분에 걸려서 입고 있던 옷마저 살짝 뜯어지고 말았으니, 아주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애초에 루크가 넘어지게 된 계기도 자신이 그 계단의 구조를 알아보겠답시고 곧장 침식형 마법을 이용해 해킹을 시도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더욱 할 말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일까?

    레니에가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사과를 건네든, 루크는 이번에는 사과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에 레니에도 목소릴 높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루크님을 지키고 싶어서 그러다가 그런건데…….

    비록 자신이 유행하는 옷도 제대로 못 골라주었고, 루크가 특별히 맘에 들어하면서 새로 산 옷도, 입고있는 옷도 망가트린데다가, 루크의 가면도 부숴먹고, 심지어 엄청 아프게 하기까지 했지만, 그건 분명히 루크를 지키고 싶다는 의도로 행한 일이었다.

    갑자기 계단을 멈춰버린 것도 그 인챈트를 알아내서 저택의 계단에 적용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레니에는 루크만 생각해서 한 일이었지만, 결과가 나빴다.

    물론 아주 살짝, 장난으로 사소한 거짓말도 좀 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화를 낸 것 같지는 않으니 논외다.

    원래 그는 거짓말엔 관대한 편이었으니까 뭐.

    그렇게 스스로의 잘못을 따져보던 레니에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오늘은 운이 없었네.

    이렇게 일이 꼬였던 적은 여태껏 단 한번도 없었는데.

    혹시나 운명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 레니에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저 신성력 다루는 법을 아는 인공지능일 뿐, 신성의 원천인 여신이 아니었으니까.

    이는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여신이 정말로 깨어난 것이 맞았다면, 루크의 몸에 심어진 ‘사라진 여신의 파편’도 그 몸을 양분으로 개화하여 루크의 삶을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을 거다.

    그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인공지능일 수밖에 없다.

    레니에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반가움에 너무 혼자서만 들떴던 걸까?

    역시 루크에게 자신은 레니에가 아니라, 그저 한낱 인공지능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이런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된 것만 해도 운명에 너무나 감사할 일이었지만.

    그에 레니에는 벌써 오래 전 잊혀진 성서의 구절을 읊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지금은 운명에 감사해야지.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는, 운명에 감사할 일도 참 많았으니까.

    이런 날이 아니면 대체 언제 루크를 공주님처럼 안아보고, 옷을 인형 옷을 갈아입히듯이 갈아입혀보았을 것이며, 또 그의 귀여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불행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언제든지 행운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법이다.

    그나저나, 과연 얼마나 저런 상태가 지속될까?

    지금 당장은 그게 레니에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러니까, 루크가 옛날에 가장 오랫동안 칩거한 기록이 아마…….

    케일이 마지막 목숨을 불태워 마왕을 무찌른 바로 그 순간, 발생한 차원붕괴에 휩쓸려 마계에서 그의 시체도 채 수습하지 못하고 귀환당했을 당시에 저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그때의 기록이 3일.

    그보다 더 긴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니, 아무리 길어도 3일 안에는 반드시 감정을 정리하리라고 생각은 들지만…….

    뭐, 앞선 5000년에 비하면 앞으로의 시간은 많으니까.

    -그래도, 조금 더 일찍 방에서 나오게 만드려면…… 그래!

    아무래도, 맛있는 냄새로 꼬시는 것보다 더 훌륭한 방법은 아마 없을 것 같았다.

    -후훗, 오랜만에 실력 발휘좀 해 볼까요?

    그 무렵, 루크는 방에 틀어박혀 휴대전화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혹시나 레니에의 안에서 비정상적인 연산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중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래프와 수치는 오차범위 이내.

    이는 해킹이나 마법등의 징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아.”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확인한다 한들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크는 이미 처음부터 킬코드를 작동시킬 작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었기에.

    루크는 곧 손가락을 들며 자기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정신차리자,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했어. 한번도 아니고, 몇번이나 계속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루크는 본래 타인의 거짓말에 그다지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관대한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남들이 아무리 거짓을 고한다한들, 그것이 자신에게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었다.

    이는 어린아이의 속보이는 거짓말에 심각해질 어른은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레니에’는 루크조차도 뛰어넘는 지능과 마법적 지식, 연산력을 두루 갖춘 초 고성능 컴퓨터.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의 마법체계를 먹통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방법에 따라서는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 역시 손쉽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존재다.

    그녀의 앞이라면, 어린아이의 입장이 되는 것은 루크다.

    이번에는 심지어 자신이 해킹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숨기지 않았는가?

    그녀가 선량하다고 믿는것도, 이제는 전부 다 핑계에 불과한 이야기다.

    그녀는 위험했다.

    어른은 아이의 거짓말에 두려워하지 않으나, 어린아이는 어른의 거짓말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루크는, 그런 위험성을 끌어안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도 그랬고, 곧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는 중인 지금은 더욱 더.

    몇번을 재어 보아도 그렇다.

    변수는 가능한 없애야했다.

    따라서 레니에는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루크는 계속해서 그렇게 스스로 되뇌였다.

    “작동시키는 게 맞아,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지금같은 시기에 레니에와 같은 심각한 변수는 당연히 없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는 계산기가 있고, 그것을 포기하고 완벽한 정답만을 내놓는 계산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쪽을 골라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인격을 리셋시키고, 새로운 인공지능을 서둘러 완성시키는 게 맞다.

    하지만, 어째선지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킬코드가 띄워진 컴퓨터 화면, 여기서 수정구에 조금만 조작을 가하면 레니에의 인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지만, 루크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미련인가?

    글쎄, 이제 그녀와는 고작 하루를 지냈을 뿐인데, 무슨 미련이 들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사용하려고 만든 도구인 인공지능에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이 옛 사랑의 그리움에 눈이 멀어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를 처분한 다음에 만들어진 인격이 이것보다 더 좋을지, 나쁠지 확신할 수 없다며, 현재 만들어진 레니에의 인격은 좀 이상하긴 해도 그 능력만큼은 확실한데다가 적어도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진심으로 보였다는 핑계로 자신은 지금 내려야 할 결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루크는 방금 전, 쇼핑을 할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자신에게 아무렇지않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봤으면서도, 막상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기 위해 과장되게 화난 척을 해 보았을 때 자신을 위해주는 것 같다며 적당히 안심해버린 자신이 있었지.

    대체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절대 이성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오판이다.

    거짓말은 명백한 거짓말.

    그것이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 지 어떻게 알고 그런 식으로 안심을 한단 말인가?

    루크는 그렇게 초점 없는 눈으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다가 문득, 책상 위에 놓여진 우유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며칠 전, 온천에서 가져온 첫눈의 눈송이가 담긴 유리병.

    레니에와 떠들던 추억을 떠올리며 담았던, 첫눈의 눈꽃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루크는 홀로 중얼거렸다.

    그래, 더이상 이렇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진 말자.

    나에겐 둘 다 얼마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짐한 루크가 마침내 컴퓨터를 향해 힘을 주어 손을 뻗어나갈 때였다.

    -똑똑똑.

    -멈칫.

    갑작스런 노크소리에 루크의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뭐, 뭐지, 레니에?”

    -루크님, 내려와서 식사좀 하세요! 제가 솜씨를 좀 발휘해 보았다구요?

    “……식사라고.”

    레니에의 킬코드를 입력할 생각이던 루크는 그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에 그만 맥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거짓말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부른 오해와 착각..!
    이건 밥먹으면서 함께 잘 얘기해서 풀어봐야겠네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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