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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2

        

       아나스타시아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분위기는 싸늘해져 있었다.

         

       어느덧 깊어진 밤이 품은 차가움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나스타시아가 했던 이야기가 그만큼 으스스했기 때문일까?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이상하네~ 이야기만 들으면 딱히 무서울 만한 느낌은 아닌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 느낌이란 말이야….”

         

       이아린은 엘라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그렇게 방금 들은 이야기를 평했다.

         

       딱히 무서울 필요가 없는데도 묘하게 찝찝한 이야기라고.

         

       실제로 아나스타시아의 이야기에는 괴물도, 귀신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기괴한 꿈의 내용만이 있을 뿐이었다.

       허무맹랑하고, 조금은 기괴한…꿈이라는 배경이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어째서일까.

       묘하게 등줄기를 서늘하게 자극하며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듯한 기분은.

         

       이아린은 계속해서 잔향처럼 남은 찝찝함에 몸서리를 쳤다.

         

       “꺄악!”

         

       물론 무릎베개를 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아린이 친 몸서리는 자연스럽게 전염되며 엘라 역시 몸부림치게 했다.

         

       “근데 이거 오라비가 좋아할 만한 느낌인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이아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이야기.

       왠지 오라비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

         

       평소에도 주술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미스터리나 괴담 같은 것도 열심히 모으던 것이 기억이 났다.

         

       괴담과 전설에는 반드시 원전이 존재하고, 그 원전은 문화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던가. 문화를 알면 그 문화권의 주술 역시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는데….

         

       뭐…이아린 입장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이야기였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확실한 건, 박진성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아린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곤 ‘두두두두’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맹렬하고 빠르게 아나스타시아가 했던 이야기를 쓴 뒤 박진성에게 보내버렸다. 진성이 이 내용을 빨리 확인하고 반응을 보이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방금 누구한테 보내신 거죠?”

         

       “응? 오라비한테 보냈는데?”

         

       “아니, 이 시간에…말인가요?”

         

       “응. 이 시간에 100% 깨어 있을걸?”

         

       이아린은 확신했다.

       이 시간에 박진성이 깨어 있을 것이며, 금방 자신의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낼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예상대로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오면서, 오라비한테 답장이 왔다는 알림이 떠오른 것이다.

         

       “봐봐. 이 시간에 깨어 있을 거라니까.”

         

       그녀는 히힛, 하고 웃고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나스타시아가 해준 이 특이한 이야기에 박진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적어도 글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느니라. ]

         

       짤막한 한 줄.

         

       이아린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뭔 뜻이지…?”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뭔가….”

         

       이상한 점은 없다.

       그냥 평범한 말이다.

       평범한 말인…데.

         

       “뭔가 이상한데…?”

         

       왜일까?

       묘하게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까 아나스타시아가 했던 이야기가 잔상처럼 남은 까닭일까?

       그래서 진성이 보낸 문자 역시 이렇게 찝찝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일까?

         

       무언가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이성은 딱히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본능과 이성의 갭에서 오는 묘한 찝찝함.

         

       이아린은 그 찝찝함을 도저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이아린의 불편함을 감지한 것일까?

       이세린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사뿐사뿐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스마트폰에 온 진성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직접 본 것처럼 말하네…?”

         

       자그마한 혼잣말.

         

       하지만 이아린의 귀에 이세린의 말은 천둥처럼 다가왔다.

         

       “아!”

         

       그렇다.

       진성의 답장에서 느껴진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실제로 확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

       마치 실제로 확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괴물을 만나보기라도 한 것처럼….

         

       오싹.

         

       그 순간, 이아린의 머릿속에 아나스타시아가 말했던 녹아내린 사람의 모습이 떠오름과 동시에 팔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냥 찝찝한 꿈 이야기로만 여겼건만….

         

       “흐, 흐흠. 저기, 얘들아?”

         

       이아린은 몸을 일으킨 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세린은 평소처럼 호기심이 넘쳐흐를 것 같은 감정을 숨긴 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고, 엘라는 아나스타시아가 했던 이야기가 꽤 무서웠던 모양인지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나스타시아는….

         

       아나스타시아는 이아린과 엘라가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덜덜 떨어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동생들을 귀여운 눈으로 바라보는 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도 늦은 것 같은데 들어가서 자는 게 어떨까?”

         

       이아린은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의연하게 말했다.

         

       들어가서 자자고.

       이건 절대로 겁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 거라고.

       이 시간은 그냥 자야 할 시간이라서 그런 거라고 말이다.

         

       “네. 이 언니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크흠,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너무 늦게까지 노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수면 부족은 피부에 악영향을 주는 법이랍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다 안다는 듯 이아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엘라 역시 이아린의 말에 동의했다.

       혹시 아나스타시아가 마음을 바꿔서 ‘밤새도록 괴담을 해보자!’라고 말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세린은 아까 진성이 보낸 문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인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자든 늦게 자든 큰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녀들은 대충 의자를 정리한 뒤, 침대가 들어있는 텐트로 향했다.

       세 자릿수 가격의 커다란 캠핑용 침대가 있는 텐트였다.

         

       “저기, 토끼야? 침대도 넓은 데 같이 쓰지 않을래?”

         

       “수작 부리지 마세요.”

         

       “그렇지만 침대가 너무 크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 옆자리는 게이밍 오목눈이가 와서 잘 테니까요.”

         

       어느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캠핑용 침대 위에 누운 엘라, 그리고 침대 위에서 편히 쉬고 있다가 엘라가 눕자 자연스럽게 옆자리를 차지한 게이밍 오목눈이.

       자리를 차지한 게이밍 오목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눈싸움으로 붙었다가 결국 패배하고 소파에 가서 드러눕는 이아린.

       SF 영화에서 볼법한 캡슐 안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소형 암막 텐트로 들어가 있는 이세린까지.

         

       그녀들의 캠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 * *

         

       

         

       소녀들이 캠핑을 마무리하고 꿈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악귀와 악령들이 돌아다니는 끔찍한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는 진성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흐음.”

         

       진성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 이아린이 보냈던 문자.

         

       아나스타시아가 보았던 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문자였다.

         

       거대한 공간에 빼곡하게 자리해 있는 의자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던 녹아내린 사람.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생생하고 기괴한 풍경이다.

         

       ‘기괴한 모습이라….’

         

       하지만 소녀들이 소름 끼쳐 했던 그 묘사는, 진성에게는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어차피 꿈이라는 것은 무의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무의식이 분해되고 조립되는 과정에서 기괴하게 가공되기도, 이상한 상징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꿈의 성질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꿈에서 나오는 존재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할 만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꿈이라는 매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자 일상이다.

         

       중요한 것은 꿈에서 본 것이 얼마나 기괴하냐, 얼마나 끔찍하냐가 아니라.

         

       ‘메시지.’

         

       꿈이 보내는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스타시아가 이번에 괴담이라고 꺼낸 꿈의 풍경 이야기는 매우 직관적이고, 직설적이었다.

         

       따로 해몽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흐음….’

         

       꿈에서 녹아내린 사람은 말했다.

         

       호주에 괴물이 있다고.

       그것은 자신을 죽음이라 칭하고 있다고.

         

       ‘죽음이라.’

         

       그래.

       그 말이 딱 맞다.

       안에 숨겨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에는, 죽음이 있다.

         

       ‘횔레(Hölle).’

         

       회귀 전, 독일의 국회의사당(Reichstagsgebäude)을 박살 내며 나타나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존재.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람의 영혼을 수확하고 다녔던 남자.

       행적만이 허무맹랑한 괴담처럼 떠돌다가, 결국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자.

         

       사람일 때의 이름은 알지 못하고, 사람처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괴물에 가까웠던.

       그렇기에 지옥이란 뜻의 독일어, 「 횔레(Hölle) 」 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

         

       그리고 시간이 뒤틀린 지금.

       횔레라는 명칭 대신 꿈속에서 ‘괴물’, ‘죽음’이라고 불렸던 그 빙의술사가.

         

       호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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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제목 오타…
    즉시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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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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