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지켜야 할 것은 ( 4 )
성지에는 광물을 무한하게 채취할 수 있는 광산이 있다.
원리는 나도 모른다. 대충 그러려니 하는 중이다.
“내가 지금 성지에 있는 광산을 아마… 8층까지 개발했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 광산 개발에 소홀히 했기 때문에 그리 깊게 파지는 못했다.
8층에서 나오는 수준의 광물로도 어지간한 적은 거의 다 때려잡을 수 있었으니까. 구태여 광산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 크다.
이제는 그 안일했던 생각의 업보가 고스란히 돌아올 시간이다.
“어…. 그런데 무기를 만들어서 그 넓고 긴 땅굴을 전부 채울 수 있을까요? 엄청나게 많은 무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리아가 의아하게 질문했다.
좋은 질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니까.
“상식으로 이 일을 생각하려 하면 안 돼. 드워프들은 24시간 무보수 무휴식의 고강도 노동이 가능한, 태어나기를 일꾼으로 태어난 종족이니까 할 수 있어.”
못 해도 해내야 한다.
플랜 C까지 가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우선 잠깐 실험이나 하나 해보고 가자.”
8층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은 ‘날카로운 흑요석’. 성지에서 가져온 흑요석 하나를 차원의 틈 너머로 던졌다.
파삭!
균열을 넘기 무섭게 바스러지는 흑요석.
겨우 8층 광물로는 어림도 없다.
별빛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광물 자체가 차원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
“후. 좋아. 광산 무한 개척 시간이다.”
한번 해보자고.
* * * * *
타캉! 카강! 카앙!
성지에서 열심히 풀무질하고, 망치로 두들기는 드워프들.
들뜬 이두박근이 용솟음치고, 수북한 턱수염은 뜨거운 열기와 흙먼지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짧은 팔다리는 비좁은 갱도를 다니는데 용이했고, 두꺼운 손 가죽에 어울리지 않게 온도 변화에 예민했다.
그들은 태어나기를 천생 광부이자 대장장이로 태어난 종족이다.
오죽하면 드워프들이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신을 위해 망치를 두들길 때와 광물 채취할 때였겠는가.
아. 고된 노동이 끝난 다음 시원한 맥주를 먹을 때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튼.
드워프들은 요즘 약간의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으으음. 요즘 어깨가 좀 쑤시는구먼.”
“형님도? 이거야 원. 나도 그런데.”
“쩝. 내 곡괭이에 텁텁한 흙을 먹여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담금질은 원 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광산을 개발하고 싶은 그들의 욕구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손이 근질거리고, 어깨가 덜덜 떨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광산에 쳐들어가서 마구잡이로 흙을 파헤치고, 바위를 쪼개고 부수고, 기둥을 세워서 안전 통로를 확보한 다음에, 레일을 깔아서 광물 운송 카트를 설치하고 싶다!
“아ㅡ! 엉망진창으로 광산 파고 싶다!! 새로운 광물로 무기 만들고 싶다아!!”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등신아!”
드워프들의 맏형, 오푸스 팔락이 그나마 점잖게 형님 행세를 하며 동생들을 달랬지만.
오푸스 팔락도 어쩔 수 없는 드워프.
광산을 마구마구 개발하고 싶은 욕구는 차츰차츰 쌓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위대하신 분께서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기에 광산을 저대로 두는 것 아니겠냐.”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아쉬워서 그러는 거지.”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괜히 시원한 맥주를 들이켠다.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로 맥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엘프와 밤의 일족이 사라진 술집은 조금 쓸쓸한 느낌이 있었기에, 드워프들은 괜히 더 크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으음?”
“허?”
한순간에 모든 드워프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머리가 찌르르 울리며 기묘한 전파가 타고 흐르는 느낌. 드워프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 이건!’
위대하신 분의 명령.
《광산을 개발하라.》
광 산 개 발!
모든 드워프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술집에서 달려 나가는 드워프들의 눈에는 뜨거운 희열과 무한한 쾌락이 가득했다.
“크하하하하! 광산! 광산 개발이다!!”
“끼얏호우! 끼얏호우! 끼얏호우! 끼얏호우!”
“광산 개발!!! 아아!!!!! 바위도 존나 단단하겠지!!! 내 크고 단단한 곡괭이로 사정없이 부수고 쪼개주마!!!”
짧은 팔다리로 용케 공중제비를 돌며 달린다.
혓바닥을 밖으로 까뒤집고 눈에는 광산 하나만 보이며 달리는 그 모습은, 음. 오크들도 질색하며 도망칠 모습이었다.
까캉! 캉! 까앙! 카앙!
드워프 수십이 달라붙어서 순식간에 광산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쪼개고, 기둥을 세우고, 카트 운반용 레일을 설치한다.
미개척 광산이 개발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았다.
“흐하! 흐하하하! 새, 새로운 광물! 츄르릅! 츄흐르릅!”
“이 미친놈아! 그걸 왜 빨아 먹어! 흙 털고 먹어야지!”
더러 흥분을 이기지 못한 드워프들이 흙도 털지 않은 새로운 광물을 할짝대는 작은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 정도면 완만하게 광산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위대하신 분에게 바치나이다. 그대의 땅에서 나온 그대의 것을 마땅히 주인에게 바치나이다.”
성지의 중앙에 위치한 순백의 신전.
오푸스 팔락은 정중한 태도로 새로운 광물을 신에게 바쳤다.
짧게 반짝이던 광물이 뿅,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께서 공물을 받으신 것이다.
‘이번 광물은 시퍼런 색이었지.’
만지기만 해도 뼈가 시릴 듯 차가운 광물이었다.
대장간으로 향하는 오푸스 팔락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서 빨리 새로운 광물로 무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찌르르르ㅡ
순간 머리를 타고 흐르는 미약한 전류, 그리고 느껴지는 거대한 의지.
‘어?’
위대하신 분의 의지가 다시 한번 모든 드워프들에게 전해졌다.
《광산을 개발하라.》
또?
연속으로 광산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만 드워프들에게 세상에 이렇게 기쁜 소식일 수가 없는 노릇이다.
투두두두두ㅡ!
한 무리의 물소가 초원을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드워프들이 광산으로 내달리고 있다.
“위대하신 분은 진정 위대하시도다!! 오오, 찬미합니다!! 그대를 찬미합니다!!”
“크헤헤헬! 다 비켜! 내 크고 단단한 곡괭이로 광산의 미개척 구역을 마구마구 개발해주겠어!!”
광란 상태에 빠진 드워프들이 광산을 엉망진창으로 개발했다.
9층을 지나 10층, 11층, 12층, 13층… 연이은 광산 개발이 두 자릿수를 거의 다 채워 갈 때쯤.
“……거, 형님. 우리가 광산 개발을 좋아하는 건 맞는데…. 이건, 그, 조금….”
지나치지 않나?
뒷말을 애써 삼킨 트리비우스 팔락.
옆에서 세듀스 팔락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요 며칠 동안 드워프들은 원 없이 광산을 개발했다.
정확히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지금 있는 곳이 90층에서 100층쯤일 것이다.
“우리 분명 8층에서 시작하지 않았어?”
위대하신 분께서 새로 만들어주신 광산용 승강기의 숫자를 확인하니, 어느새 107층.
정말 미친 듯이 광산을 개발한 것이다.
징글징글하게 광산만 팠더니, 그간 쌓인 광산 개발 욕구 불만은 모조리 해소됐다.
오히려 담금질을 하지 못해서 몸이 근질거릴 지경이다.
“…위대하신 분에게 바치나이다. 그대의 일꾼이 당신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을 돌려드리옵니다.”
며칠 동안 질리도록 반복해온 봉헌 의식.
제단에 올려진 새하얀 광물이 반짝이는 빛에 휩싸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푸스 팔락은 돌아서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요 며칠간 광산만 개발했으니, 이번에도 광산을 개발하라는 위대하신 분의 의지가 내려오리라 예상한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찌르르르ㅡ
《무기를 만들어 봉헌하라.》
“…오오!”
드디어!
요 며칠간 미친 듯이 광산만 파던 나날에서 해방이다.
물론 광산 개발도 너무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야금술도 사랑했다.
광산 개발과 야금술.
어느 한쪽의 불균형은 참 괴로운 것이니, 양쪽의 균형이 맞아야 건강한 드워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찌르르르ㅡ
뒤이어지는 위대하신 분의 의지.
《100,000 개의 무기를 만들어 봉헌하라.》
“……?”
그 순간.
성지에 있는 모든 드워프들의 몸이 덜컥 멈췄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위대하신 분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몇 개, 의 무기를 만들어서 봉헌하라고?
‘시, 시시시시, 십ㅡ, 십만 개?!’
오푸스 팔락이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십만? 십만 개의 무기를 만들라고?
“자, 자자, 잘 못 들었습니다…?”
《100,000개의 무기를 만들어 봉헌하라.》
변치 않은 위대하신 분의 의지.
오푸스 팔락의 입술이 살짝 떨렸지만, 애써 의지를 다집았다.
십만 개라고? 드워프 형제들이 지금 50명 조금 넘게 있으니까 한 명당 2,000개씩 만들기만 한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할 수 있다, 으음. 할 수는 있어.’
최소한의 휴식과 수면, 식사를 2교대로 돌아가면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일주일의 기한을 주겠노라.》
“……….”
오푸스 팔락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 *
“………그, 위대하신 분이시여? 이건 아무래도…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
플랜 A. 드워프들을 부려 먹어서 차원의 틈에 생긴 땅굴을 채운다는 계획이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드워프들을 써도 불가능한 노가다가 있다니.”
차원의 틈에 생긴 땅굴은 크고, 넓고, 길다.
정확하게 측정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지상의 차원 전역에 걸쳐 이어진 땅굴이니 더럽게 길 것이다.
거울 속 보이는 드워프들이 미친 듯이 망치를 내려치고 있다. 쉴 새 없이 불똥이 튀고, 풀무질하고, 광석을 제련한다.
내가 드워프들에게 요구한 것은 차원의 땅굴 아주 일부분을 채우기 위한 십만 개의 무기. 종류 무관, 외형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개수만 맞추면 된다.
하지만 정해진 기일까지 납품 수량을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드워프들의 근무 복지를 위해 여러 건물을 새로 설치해줘도 안 되는 건가….’
나도 한 사람의 노동자다. 무리한 요구를 받은 드워프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 복지 건물을 올렸다.
크게 증축된 신식 대장간은 물론이고, 대장간 옆에 설치된 푹신하고 편안한 침실, 맥주뿐만 아니라 와인, 보드카를 마실 수 있도록 추가된 술집, 초고속으로 광산을 왕복하는 승강장 등등.
아. 거기에 노동 효율을 올려주는 이베르의 춤까지.
– 삐이이이이….
며칠 동안 엉덩이를 쉴 새 없이 흔든 이베르가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무리였나.”
광산을 107층까지 파냈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광물은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차원의 압력에 버티기는 버텼다.
새로운 드워프도 대폭 만들어내며 지금 드워프들은 총 200명에 달했다. 그중 에픽 드워프는 일꾼 1호 혼자였고, 나머지는 유니크 드워프까지 승급시켰다.
이걸 전부 소화시키는 막대한 재화는 어디서 나왔냐고?
…내 지갑에서 나왔다. 적금 만기를 코 앞에 두고 줄줄 흘러나가는 돈을 보고있자니 눈물이 절로 나더라.
“어흑.”
내가 할 수 있는 건 총동원했다.
그런데도 무리였다.
“무기를 제작해서 땅굴을 채운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무기의 수량은…. 으음. 위대하신 분이여, 이걸 좀.”
영혼의 바다와 아르고스의 연산력으로 계산하던 케넬름이 말없이 나에게 거울을 내밀었다.
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플랜 A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차원 붕괴까지 남은 시간은 26일.
“플랜 B로 넘어가야 하나…?”
플랜 A를 시작한지 5일차.
개같이 멸망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앗. 떡밥 회수… 물론 정말정말 중요합니다…!! 이 작가, 열심히 펼쳐놓은 떡밥을 주워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 그런데 본편 1,000화 외전 1,000화를 쓰라구요…? 어, 으음… 와, 나비다!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