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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3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알른 가의 영애시여.”

   

   저택에서 빠져나와 아래로 내려가자 두 숲의 주인이 인간의 형상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베네딕이나 라샤에게 비견될 만한 덩치를 지닌 곰과 노신사의 형상을 취한 거인의 나무.

   

   둘은 겉에서 흘러나오는 강자의 분위기와는 달리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실력은 허접해도 예의는 아는구나? 인성까지 허접하면 어쩌나 했는데.”

   

   거기에 여느 때처럼 대응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마 내게 입은 은혜가 너무도 큰 탓이겠지.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히죽 웃었더니 곰이 눈동자를 반짝였다.

   

   “와아. 정말 작고 예쁘시네요.”

   

   그녀의 어투에 깃든 것은 분명한 동경이었다.

   

   자신의 덩치가 큰 탓인지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곰에게 인형 같은 나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듯 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곰을 보며 살짝 불안하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거인의 나무가 자신의 지팡이로 곰의 허벅지를 때렸다.

   

   “쿤. 은인께 무슨 망발인가. 부디 교양을 좀 갖추게.”

   “그으. 죄송합니다. 미르발.”

   “사과할 대상은 내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은인님.”

   “됐어. 신경 쓰지 마. 너 같은 둔탱이 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귀여운 걸 어쩌겠어?”

   

   얼빠여우나 변태사도를 비롯한 변태들에게 단련된 덕분인지 수줍은 곰의 모습은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최소한 얘는 놀리면 얼굴이라도 벌게지잖아.

   

   얼빠여우나 변태사도는 바로 숨이 거칠어진다고.

   

   “실로 자비로우시군요. 알른 영애.”

   

   이런 내 모습에 거인의 나무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존중을 보였다.

   

   그러니까 이런 멋진 노신사가 여태까지 평생 동정으로 살았다는 거지?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채 계속 혼자였다는 거잖아.

   

   골방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왜 웃으십니까?”

   “응? 아냐. 신경 쓰지 마. 그냥 동정 나무의 추한 꼴을 생각했을 뿐이니까.”

   “동…”

   

   노신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아무래도 이에 관해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응이 좋아서 살짝 기분이 들뜬 그 순간 옆에 있던 뮤러가 다급히 나와 나무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영애께서도 많이 바쁘신 분이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고.”

   “본론이라니? 무슨 할 말 있어. 멍멍아?”

   “예. 알른 영애. 영애께서는 저희의 은인이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응당 보답을 해야지요.”

   “보답? 너네 허접들이?”

   “본래 시험을 넘어서야만 받을 수 있는 축복을 건네드릴 생각입니다.”

   

   …진짜로?!

   

   이런 걸 기대하진 않았던 나는 눈을 퍼뜩 뜨며 곰과 나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것으로 보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니까요.”

   “…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띄게 굳은 나무를 보고 있자니 좀 더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솔직히 나무가 분통을 터트리고 다른 이들이 말리는 모습을 약간 보고 싶긴 하지만.

   

   참자. 참고 빨리 끝내자. 기껏 쌓아 놓은 은혜를 이런 식으로 날리는 건 좀 그렇잖아.

   

   “줄 거면 빨리 내놔. 너네랑 같이 있는 거 시간 아까우니까.”

   “그으럼 잠시만요.”

   

   슬며시 앞으로 나온 곰이 바닥에 무릎을 꿇어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와. 왜 얘가 무릎을 꿇었는데 나보다 시선이 높은 거야?

   

   진짜 억울해. 허접 주신이 페도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저. 제가 무슨 잘못을?”

   

   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당황했는지 곰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생긴 것만 보면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부술 것 같은데 실상은 손을 먼저 내미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니 조이가 겹쳐 보이네.

   

   조이도 생긴 것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일 것 같은데 속은 빙구니까.

   

   방금 전만 해도 어버버거리다가 도망쳐 버렸는걸.

   

   좀 아쉬웠어.

   

   좀 더 건드리면 진짜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는데 말야.

   

   “저어…”

   

   곰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나는 점점 더 울상이 되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곤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어?! 어. 어어어.”

   “뭐해? 안 줄 거야?”

   “드. 드려야죠! 그으. 잠시만요.”

   

   곰은 병아리 보듯 내 손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힘조절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내 몸의 내구도를 생각해보면 곰이 전력을 다한다 해서 크게 상할 것 같진 않은데.

   

   겉으로 보기에만 가녀려 보일 뿐 속에는 온갖 것을 박살낼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으니까.

   

   “제가 드리는 축복은 곰의 괴력입니다.”

   

   곰의 괴력이라는 축복은 무척이나 단순하며 강한 능력이다.

   

   순간적으로 근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주거든.

   

   대신 한 방을 날리고 나면 그 후로 한참 동안 공격력 감소 디버프가 걸리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한없이 유용한 기술이다. 그도 그럴 게 어차피 난 일격에 모든 걸 거는 사람이니까.

   

   “은인님처럼 가녀리고 귀여우신 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축복이지만 부디 잘.”

   “야. 둔탱아.”

   “네?”

   “나한테는 너도 귀엽거든? 생긴 건 무슨 짐승처럼 생겨서는 히이잉거리는 꼴이라니. 진짜 너~무 가소로워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니까.”

   

   괜히 헛소리 하지 말고 계속 질질 짜기나 하라 이야기해 준 나는 멍하니 앉아 있는 곰을 지나쳐 나무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동정 나무라 불린 충격이 가시질 않는지 나무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과 사적인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제가 드릴 축복은 나무의 목소리입니다. 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스레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아니. 야. 줘도 이런 개같은걸 주는 건 아니지.

   

   이거 진짜 쓸데가리 없는 거잖아!

   

   나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뭐하는 데!

   

   이야기하는 나무들의 지능이 없다시피해서 쓸모 있는 정보를 건질 수가 없는데!

   

   너 속에 담아 두고 있었지! 방금 전에 동정 나무라고 부른 거에 꿍한 거지!

   

   오냐! 그렇게 대응한다면 나도 똑같이 돌려주마!

   

   대마법사가 되도 모자랄 네 동정력이 어떤 건지 한 번 느끼게.

   

   “미천한 것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쿤과는 달리 숲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게 아닌지라.”

   

   …어.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속에 차오르던 말을 다급히 집어넣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의례적으로 고맙다거나. 이걸로 충분하다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괴악한 단어로 번역될 게 뻔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 숲으로 가서 할 일이 많은지라.”

   

   나무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듯 다시금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듯 뮤러도 가보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이 곳의 일 때문에 미뤄둔 것이 많다면서.

   

   “혹여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리나를 통해 연락해주십시오.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분위기 상 곰도 떠날 기미를 보일 때라 슬며시 고갤 돌렸지만 곰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갤 갸웃거리기만 했다.

   

   얘는 자기 숲 관리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건가?

   

   내가 숲을 회복시켜두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얌전히 있던 얼빠여우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서 앞을 가렸다.

   

   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달라붙는 거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는데 도대체 뭔.

   

   “루시!”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갤 돌리니 방금 전 한바탕을 하고 온 듯 엉망인 얼굴을 한 프레이가 보였다.

   

   그건 옆에 있는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단순한 대련이 아니라 진짜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흙투성이였다.

   

   “루시!”

   “저리 꺼져! 바보 검사!”

   

   그 꼴로 내게 달려들려는 프레이의 이마를 밀어내고 있으려니 옆에서 아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태를 보아 하니 멀쩡해 보이는 군.”

   “왕자님께서는 평소보다 더 불쌍해 보이시네요. 이 정도면 다리 아래에서 구걸을 해도 되겠는데요? 아니다. 지금 돈 드릴까요?”

   “왜 걱정을 해줘도 난리인 거냐.”

   

   짜증을 내는 아서를 보고 쿡쿡 웃은 나는 뒤 편에서 따라오는 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칼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기 무섭게 활짝 웃었다가 이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허접견. 너는? 멀쩡해?”

   “물론입니다. 아가씨가 한 고생에 비하면 제가 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래. 그렇단 말이지.”

   

   방금 전에 받은 보상을 써먹어 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던 난 바로 칼을 붙잡아서 내 앞에 세웠다.

   

   “허접견. 진짜 전력을 다해서 후려칠 테니까 알아서 받아내.”

   “아가씨의 공격이라면 무엇이라도 기꺼이.”

   

   웃음을 짓는 칼을 보며 나도 마주 웃었다. 그리고는 메이스를 한 손으로 꾹 붙잡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메이스에 신성을 깃들인 채 전력을 다해 내리치는 것.

   

   허나 여느 때와 다른 점은 여기에 곰의 괴력이 더해진다는 점이었다.

   

   축복을 의식하고 그를 사용하고자 마음 먹은 순간 전신에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에 찬 광전사가 된 것처럼 눈 앞에 있는 모든 걸 박살낼 수 있을 듯한 감각.

   

   메스가키 스킬의 고양감과는 다른 들뜸에 한층 더 미소를 짙게 하고 있으려니 반대편에 선 칼이 당혹스러운 듯 입을 나불댔다.

   

   “아. 아가씨?! 그. 그 공격은.”

   “뭐해? 받아내야지. 허접견.”

   “큽.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칼의 검 위에 색이 담긴 오러가 깃든다.

   

   내 메이스의 끝이 태양처럼 빛난다.

   

   서로가.

   

   서로가 가진 빛으로.

   

   자신의 빛이 더 우월함을 증빙하기 위해 달려든다.

   

   콰아아앙!

   

   서로가 부딪힘에 따라 울려퍼지는 폭음의 끝에 남은 색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로의 색이 부딪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드디어 칼과 맞상대 할 수 있는 수준에 닿았단 사실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나는 사색이 된 칼의 표정을 보고 고갤 갸웃했다.

   

   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우와.

   

   팔이 덜렁덜렁이네.

   

   관절인형도 이 정도는 아니겠.

   

   “끼야악?!”

   

   뒤늦게 부서진 팔에서 고통이 차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버클럭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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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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