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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3

        

       그리하여 진장명이 가짜 가슴을 차고서 어떠냐는 듯이 당당히 가슴을 편다.

       청이 그를 보며 말했다.

         

       “정교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는 했네요.”

         

       변장으로 가짜 가슴을 달면 당연히 그를 강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달았으니 강조하지 않으면 그냥 부한 옷을 입은 몸통 큰 여인처럼 보일 뿐이니까.

       큰 가슴은 옷의 태를 망치는 법이다.

         

       그러니 모아서 골을 노출한 진장명이다.

       어째 갑자기 의의양양해져서 어깨가 들린 모습을 보니, 가짜를 달았음에도 자신감이 뿜뿜 마구 뿜어져나오는 품새다.

         

       그에 청이 척,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서 가짜 가슴을 쥐어 본다.

       물론 가짜라서 진장명 역시 놀라기는커녕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청을 바라본다.

         

       “어때?”

         

       “음. 뭔가, 미묘하네…….”

         

       가짜 가슴 치고는 용하다는 거지, 뭐라고 하지, 확실히 탄력? 아니면 무게감? 너무 몰캉하니 물풍선 같은 느낌?

       알고 만져서인지 아닌지 확실히 가짜라는 느낌이 있네.

       모르고 만지면 나았을라나?

       이게 바로 붉은 환약인가?

         

       그에 진장명이 제 가슴을 쪼물쪼물,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위화감을 느끼기는 하는 모양.

       그러나 어쨌거나 아가에서 가슴이 댑따 큰 아가가 된 진장명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만.

       천유학이 거기에 찬물을 촤악.

         

       “그런데 내가 말하지 않았냐? 제일 좋은 분장이란 성별을 바꾸는 거라고.”

         

         

       —-

         

         

       한 남매가 시장을 누빈다.

       누가 봐도 남매라고 할 만큼 닮은 얼굴.

       사실 닮은 부분이라고는 같은 모양으로 두껍게 칠한 눈썹 뿐이지만, 신기하게도 딱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닮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특이한 점이라고는 누나가 사내처럼 훤칠하고, 동생인 쪽은 키가 많이 작다는 점 정도일까.

         

       분장한 청과 진장명이다.

       청이야 어디 큰 상단에서 큰 일을 할 것 처럼 영민하게 생긴 여인의 꼴을 하고.

         

       진장명은 영락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머리를 하나로 땋아 사내처럼 흰 띠를 둘러 늘어뜨리고 영웅건을 찬 도련님.

         

       턱에 다부지게 키워 각을 주고, 미간에 살을 붙여 높인 후에 코끝까지 직선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뺨에다 커다란 흉터를 하나 딱 붙여놓으니 계집의 태는 온데간데없이 아주 청수한 꼬마 도련님이 탄생하는 것이다.

         

       다만 굉장히 뚱한 표정이라.

       누가 봐도 심통이 났구나 하고.

         

       “왜 그리 꼴이 났어?”

         

       “몰라.”

         

       “귀걸이 못 차게 해서 그래? 자, 그러면 우리 귀걸이 보러 갈까? 아예 특이한 걸로 차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에 진장명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남장할 때 끼면 나중에 못 차잖아. 혹시 아주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에이,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귀걸이 보고 눈치채고 그럴까.”

         

       “조금이라도 위험이 될 것 같으면 싫어.”

         

       “음. 장명이가 현명하긴 하네……”

         

       조금이라도 청에게 위험이 될 것 같으면 싫다는 말이다.

       하지만 청은 그리 알아듣지 않았다.

       쪼그만한게 자기 위험은 엄청나게 챙기는 거 봐라, 꼬맹이가 겁도 많지, 하고.

       말은 정확하게 해야 전달되는 법이다.

         

       천유학은 상세한 지도를 구해 보겠다면서 자리를 비웠다.

       그러면서 너희 둘은 얼굴도 비출 겸 가명 대서 알리면서 노산에 대해 좀 탐문을 해 보라고.

         

       ‘엥, 어디서 탐문을 해요? 막 물어보고 다닌다고 뭐 수상한 게 나올까요?’

         

       ‘산꾼들이 알 거 아니냐. 약재상에서부터 좀 수소문 해 봐라.’

         

       물론, 이렇게 말한 천유학도 딱히 정보를 물어올거라고는 별 기대를 안 했다.

       그냥 즉묵 시내에 가명을 좀 알려서 원한을 사더라도 엉뚱한 데를 헤매도록 만드는 수작질일 뿐이라고.

         

       그에 청이 적잖이 감탄했더란다.

       와, 이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야 신투를 하고 그러나? 내가 차기 신투여도 괜찮은 건가? 어디서 똑똑한 꼬맹이 하나 주워다 곧장 대를 넘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어쨌거나.

       청의 가명은 정해진 바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청이 약재상을 기웃거린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고, 손님. 찾으시는 물품이 있으신가요?”

         

       좋은 옷 입고 무엇보다 그 비싼 애체를 휜 콧날 위에 척 올려놓았다.

       애체는 유리나 수정을 깎아 만드는 것이라서 대단히 비싸고 귀한 물건이다.

       당연히 청의 고향처럼 시력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장인이 만든 것 중에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을 골라 가져오는 식이다.

       물론 가짜 애체라서 그냥 평평하게 깎인 유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비싸다!

         

       거기에 옆에 낀 귀공자까지.

         

       돈 많아 보이는 손님의 등장에, 약재상이 단박에 뛰쳐나오고 마는 것이다.

         

       “삼을 보려고 하는데요.”

         

       “아아, 삼을 보시러 오셨구나! 어떤 삼을 보려 오셨습니까요? 지금 저 물 건너 동이에서 온 고려삼이 물량이 괜찮습니다.”

         

       “음, 건삼 말고. 생삼 나온 거 없나요? 노산 정기를 받아서 좀 싱싱한 걸로.”

         

       “아이고, 말도 마세요. 지금 산꾼들이 산에 들어가질 못해서 노산에서 나온 약재가 아주 씨가 말랐습니다.”

         

       “그럼, 복령이나 삽주도 없고요?”

         

       “예예. 건약재는 조금 있습니다만, 생약은 지금 어디 가도 구하실 수가 없습니다.”

         

       “쯧. 이게 무슨 난리통이야. 노산 산삼이 좋다고 해서 남녕에서 올라왔더니만.”

         

       그에 진장명이 걱정 말라는 듯 말을 척 올려붙인다.

         

       “녀녕! 누님, 즉묵에 약재상이 여기뿐이지는 않잖소. 다른 곳을 찾아봅시다.”

         

       음. 장명아. 목소리를 너무 깔지 않았니?

       누가 들어도 수상할 정도로 꾸며낸 목소리잖아.

       그리고 이름을 강조하랬다고 너무 부자연스럽게 강조하면 어떡해.

         

       청이 찔끔했지만, 사실 듣는 약재상은 별 생각이 없다.

         

       어쨌든 그렇게 시장을 돌며 약재상을 순회하며 꼬치구이 먹고, 과일꼬치도 먹고, 각종 병이며 떡이며, 와 어묵! 음? 뭐야? 진짜 어묵이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가짜 어묵은 또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원의 어묵은 신녀문이 있는 호북성의 특산으로 그 역사가 삼천 년이 넘는 아주 고급 식재다.

       민물 생선의 살과 돼지고기를 잘 갈아낸 후에 달걀과 전분으로 갱을 만들어 푹 쪄낸 중원의 어묵이다.

       청이 상상하는 그런 맛은 아니었다.

       너무 고급지다고 해야 하나?

       물론, 굉장히 맛있지만.

         

       그런데 시장판에서 파는 이 어묵은?

       어쩐지 올라오는 고향의 맛에, 아앗.

       그래, 가끔은 이런 싸구려의 맛이 필요한 건데.

       약재상이고 탐문이고 뭐고, 나는 당장에 이 그리운 어묵을 좀 먹어야겠다.

         

       “국물은 됐고, 건더기만 스무 그릇 어치 담아서 줄래요?”

         

       “예? 방금 스물이라고 하셨습니까요?”

         

       “스물. 여기 돈 받고 빨리 내놔요.”

         

       한 번에 스물 어치를 팔게 된 어묵 노점 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꼬불이 어묵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중원의 어묵은 두부 모양으로 삶아 얇게 썰어내거나 한 입 크기로 둥글게 삶은 것들 뿐이니, 그건 어쩔 수 없고.

         

       “언, 녀녕 누님? 그거 다 먹게, 요?”

         

       “너도 먹어 봐. 완전 맛있다. 맛있어.”

         

       “이게?”

         

       어쨌거나 도중에 시장 간식 탐방으로 그 목적이 바뀐 청이 돌연 진심에 들어갔으니.

         

       청의 진심 처먹기는 놀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모자란 중원에서는 대단히 귀한 구경거리다.

       청의 고향에서도 먹는 구경이 본격적인 유희로 떠오른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자연히 지나던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다.

         

       생겨 먹기는 지성이 펄펄 넘치는 어여쁜 미인이 어묵 그릇을 쭈욱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뜨거운 김이 펄펄 오르는 어묵을 아주 콱콱 입에 욱여넣어 볼때기 가득 채워서 우물거리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구경꾼이 구경꾼을 부르는 법.

       뭐야, 어묵집에 불이라도 났나?

       혹시 뭔가 대단히 잘하는 집인가 하고 또 사람이 붙었다가, 세상에 저게 뭔 어묵을 아주 처먹는 여인이 있네! 그런데 예쁘다!

         

       진장명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모양.

       청의 소매를 꼭 붙들고 콱콱 잡아당긴다.

       어서 가자는 소리다.

         

       하지만 청은 요지부동.

       지금 이때를 놓치면 또 언제 먹겠는가.

         

       그리하여 빠른 속도로 어묵이 줄어든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구경꾼들도 점점 더 신기해지고 만다.

         

       과연 여인은 어묵 스무 그릇을 다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점점 줄어드는 그릇.

       좌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처먹는 것도 미인이 처먹으면 복스럽게 보이는 법이라서, 어묵이나 한 그릇 할까.

         

       그리하여 마지막 한 개를 입 안에 넣는 순간, 좌중에서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청이 그에 좌중을 돌아보며 양 손을 번쩍 들고는 그 열렬한 호응에 응수하며 승리의 외침을 내지르는 것이다.

         

       “제가! 바로! 언연영이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작살내는 육식광녀! 그것이 바로 저! 언연영인 것입니다!”

         

       육식광녀? 고기에 미친년이라고? 그런데 왜 어묵을?

       에이 이 사람아, 물고기는 고기 아닌가? 어육도 육인 법이지.

         

       그 순간이었다.

         

       “주인장! 여기 열 그릇 더!”

         

       육식광녀의 놀라운 선언!

       깜짝 놀란 좌중이 헉 숨을 들이켠다.

       스무 그릇을 처먹고 열 그릇을 더?

         

       그러나 고요도 잠시, 와아아!!! 좌중이 열광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육식광녀!” “어녀녕!” “육식광녀!”

         

       사실, 한 그릇에 딱히 건더기가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았다.

       청의 고향에서 쓰는 전문 단위계로 변환하자면 이 꼬불이 쯤 된다.

       어묵 사십 꼬불이에 이십 꼬불이 정도는 청에게 있어서 그리 어려운 도전이 아니다.

         

       다만 좀 물리긴 하는데…….

       마침 사람들이 몰렸으니까 이참에 이름을 더 팔아둬야지.

         

       그렇게 청이 꾸역꾸역 어묵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이봐, 낭자. 언여녕이라고 했나? 이딴 싸구려 어묵 말고 제대로 된 걸 먹는 것이 어떤가? 즉묵노주에 제대로 된 연회를 즐겨야 즉묵에 왔다고 할 수 있겠지?”

         

       이건 또 뭐야.

       청이 고개를 돌리니, 껄렁하니 칼을 찬 사내놈 하나, 아니 사내놈과 그 뒤로 사내 여럿이 청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야 다 마구 처먹기 진기명기 차력 행사도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

       안 그래도 보물 찾아 어슬렁거리는 놈들 가득한 즉묵이다.

       화장으로 가리고 콧대가 휘었어도 가장 유력한 천하제일미의 미모는 가려지지 않는 법.

       거기에 병기도 없이 만만해보이는 미인을 보았으니 벌레가 꼬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청이 한참 행사 중에 난입한 사내새끼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뭐야?

         

       꽤 매끈하게 생겨서는 여자 여럿 울렸을 상이었다.

       그러니 아마 자신 있게 들이댔겠지만.

         

       “말씀은 감사하지만, 슬슬 배가 차서요.”

         

       “어허, 언 낭자. 비싸게 굴지 말고.”

         

       그에 청의 눈썹이 꿈틀.

         

       이 자식이 초면에 낭자는 무슨.

       낭심을 콱 조져버릴라.

         

       낭자는 청의 고향 식으로 따지자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뭔가’가 있는 상태에나 쓰는 표현이다.

       친구는 그냥 소저. 연인은 가가에서부터 온갖 동물 갖다붙이는 닭살 돋는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니, 낭자라는 말을 쓰는 구간은 딱 그 정도에 있는 것이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어찌 모르는 사이에 함부로 외갓 사내를 따라나서겠습니까? 그런 무도한 말씀은 거둬 주시지요.”

         

       “모르는 사이라니. 거 섭섭하게.”

         

       “그럼 아는 사이인가요? 저는 그쪽을 처음 뵙는데요.”

         

       “어허. 이름 알고 얼굴 알면 아는 사이가 아닌가? 나는 서호칠절의 대형 파운슬이다. 그럼, 이제 우리 아는 사이 아닌가?”

         

       청이 잠시 기다려 보았다.

       하나. 둘.

         

       딱히 유명한 놈들은 아닌지 크게 외치는 소리는 안 들리지만, 청의 초월적인 청력에 서호칠견이니 발정파씨니 작게 수근거리는 말소리가 잡힌다.

         

       사파 놈들의 별호란 본인이 주장하는 바와 세상이 부르는 소리가 다른 법이다.

       보통 뒤에 한 글자가 달라지는데, 세간은 보통 마귀 개 돼지 오랑캐 노예 등등으로 낮잡아 부르는 것이다.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그러면 이제 비켜 주시겠어요?”

         

       “어허. 왜 이래? 비싸게 굴기는. 그러지 말고 딱 한 잔만 하지? 응?”

         

       “대낮부터 술이라니요.”

         

       “그럼, 밤까지 마시면 될 것 아닌가?”

         

       “죄송하지만 저 역시 볼일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어허.”

         

       그리고는 손을 뻗어 청의 손목을 척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청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새끼, 먼저 건드렸다 이거지.

         

       그리하여 청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다고 팔을 휘두르려 할 때렸다.

         

       “그만!”

         

       청의 시선도, 잔뜩 불쾌하던 진장명의 시선도, 서호칠견의 시선도, 어찌 돌아가나 지켜보던 구경꾼들의 시선도 한데 몰린다.

         

       거기에 얼굴을 가린 무인이 한 명.

       허리 뒤에 교차로 맨 도검을 보아 쌍검을 쓰는 무림인인 모양.

       

       그에 파운슬이 청의 손목을 놓고는 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간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게 익숙한 태에,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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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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