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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3

    현재, 루크는 식탁에 앉아 ‘레니에’의 흥얼거리는 콧노래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루크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아무리 장작도 배가 불러야 팰 수 있는 법이라지만, 정말 어렵사리 큰 결심을 내린 지금 한가롭게 식사를 할 때가 맞는가 싶다.

    당장 결단을 보류해야 할 근거로 ‘기껏 만든 음식이 식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론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으니까.

    그녀를 삭제하고 다시 만든다면 걸리는 시간이 얼마가 될 지 모르는 지금은, 말 그대로 일분 일초까지 전부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낭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음식 다 됐다면서?”

    애초에, 그녀가 음식을 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문제다.

    사실은 처음부터 음식은 차려져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음식 다 식으니까 빨리 내려오라는 말에 서둘러 내려왔더니, 그를 맞이하는 건 텅 빈 테이블 뿐이라니…….

    그것을 지적하자, 레니에가 생긋 웃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 끝나요!

    “……이렇게 또 거짓말을.”

    아니, 그럼 다 되지도 않았는데 다 됐다며 불렀단 말이 아닌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거짓말이 아주 능숙한데다 일상적이었다.

    이런 유치한 거짓말은 예르나도 안 하는데 말이다.

    그러자 레니에가 대꾸했다.

    -막 완성된 요리가 제일 맛있잖아요? 그러니까 멍하니 기다리지 마시고 식기를 좀 놔 주시겠어요?

    “내가?”

    결국 루크는 할 말을 잃었다.

    인공지능이 주인을 시켜먹는다니,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이럴 거라면 미리미리 식기도 전부 세팅을 해놓고 불렀어야지.

    물론, 그랬으면 레니에는 아마 없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루크가 황당하다는 듯이 레니에를 쳐다보자, 레니에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루크님께서 제가 다른 인형들을 써도 된다고하시면 제가 하구요.

    “……됐네, 내가 하지.”

    -감사합니다!

    루크는 그렇게 식기를 정돈하며 속으로 경계심을 불태우는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 와중에 냄새는 좋군.’

    그나저나, 그녀가 만드는 스튜에선 상당히 그럴싸한 냄새가 났다.

    그것도 요즘 쉽게 맛볼 수 있는 공장제 향신료들의 자극적인 향기가 아니다.

    은은하게 침샘을 자극하는 수수하고 따스한 느낌이 드는 향기, 그래서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느낌의 냄새.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냄새가…….

    이 냄새를 대체 어디서 맡아봤더라?

    —-

    눈을 감고 그 냄새를 음미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루크를 깨운 것은 레니에의 목소리와, 마침내 자신의 앞에 내어짐으로 더욱 깊어진 음식의 향이었다.

    -자, 완성이에요!

    “드디어.”

    루크의 앞에 놓여진 것은, 마치 스테이크처럼 큼직하니 잘 익혀진 고깃조각이 들어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그다지 별다른 특징은 없는 걸쭉한 스튜였다.

    맛있어보이기는 하나, 이미 현대의 다양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대부분 맛본 루크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반적인 가정식.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너무나 환상적인 미식경험으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아 생각을 재고하게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바로 그런 메뉴였다.

    고작 이거 하나를 먹기 위해 자신은 그 방에서의 결단조차 미뤄두고 이렇게 앉아서 식기를 손에 들고 있었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루크의 자조적인 웃음기를 요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석한 레니에는 크게 반색하며 물었다.

    -어때요, 맛있을 것 같죠?

    “하…. 그래, 뭐.”

    그래, 거짓말은 못한다.

    솔직히 맛이 있어보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반응하면 자신이 무슨 음식에 환장해서 이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살짝 기분이 나쁘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무슨 레시피지?

    어딘가 익숙한 것 같은 향인데, 어떤 식으로 만든 것인지, 또 어디서 먹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안 난다.

    그래선지 약간 답답하고 먹먹한 감정도 느껴지는 것 같다.

    “…….”

    그래도,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이 음식만 다 먹으면 정말로 킬코드를 작동시킬 거니까.

    이는 이미 속으로 다 결정해 놓은 사항이고, 절대 바뀌지 않을 결과이다.

    루크가 그렇게 다짐하며 큼직한 고기를 먹기 좋은크기로 잘라내고 있을 때 쯤, 레니에가 물었다.

    -그나저나, 루크님, 왜 옷도 안 갈아입고 그러고 계셨어요?

    “생각할 거리가 있어 바빴다.”

    -으음, 그렇군요.

    루크의 대답에 그녀는 납득을 했는지, 아니면 루크가 방에서 혼자 무얼 했는지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엔 루크가 물을 차례였다.

    “그나저나, 너야말로 그건 무슨 꼴이냐.”

    루크가 지적한 레니에의 차림새는 앞치마 차림에 부서진 것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어떻게든 고쳐서 씌워둔 가면에 한 손에는 국자를 든 기묘한 행색.

    다이튼의 대형 앞치마든, 접착제와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서 거의 누더기가 된 가면이든, 모두 반짝이는 화려한 갑옷에는 도저히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아니었으므로,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의 일종이라고 생각할지도.

    하지만 루크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정확하게는 자신의 투구에 씌워진 그 가면에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레니에는 자신의 가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아,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거.”

    뭐, 앞치마야 요리를 하려고 입은 거라면 할 말이 없다지만, 그러면 대체 저 마법적 효능도 없는 망가진 가면은 왜 쓰고 있단 말인가?

    “그 가면, 내가 그냥 버리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자 레니에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가 이걸 어떻게 버려요, 루크님께서 주신 건데요. 반성한다는 의미로 제가 고쳐봤어요.

    “고쳤다고?”

    갑주로부터 방출된 마력이 덧씌워져 더이상 인챈트도 먹지 않고,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그 폐품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저 조각들을 전부 가져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루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레니에는 표정이 없는 갑옷에 불과한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루크에게는 마치 해맑게 웃는 표정이 가면에 드러나는 듯 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깔끔하지요?

    그에 루크는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아니, 전혀.”

    -너무해.

    “글쎄.”

    뭐라고 반응해야 할 지 모르니, 루크는 그저 고기를 썰어내는 일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잠깐의 침묵, 이후 레니에가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루크님.

    “뭐가?”

    -오늘 저 때문에 곤란을 겪으신 일 모두 다요. 괜히 같이 다니고 싶다고 갑옷을 써서 귀찮게 한 거, 가면 부서진거, 새로 산 옷 더러워진거, 넘어지신거랑 허리 다치신 거, 제가 옷 제대로 못 골라서 시간 낭비하게 만든 거……. 전부요. 정말 반성하고 있어요.

    그녀의 사과는 루크에게 꽤나 진정성이 있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은 그녀의 진심이 담겨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루크의 대답은 여전히 쌀쌀맞은 분위기였다.

    “레니에.”

    -네?

    예상 밖의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듯한 레니에의 목소리.

    그에 루크가 말을 이었다.

    “그대가 내게 사과할 일은 그게 전부인가?”

    레니에가 뭐라고 많이 떠들기는 했지만, 루크는 애초에 그렇게까지 많은 일을 마음에 담아둔 적은 없었다.

    루크가 그녀를 위험하다 판단한 근거는 그저 단 한가지,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

    그러니 그녀의 사과는 핀트를 잘못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모르는 이상,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루크로서는 판단할 방법이 전무했다.

    맘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거라면 사과따윈 거짓말로 지어내도 상관이 없는 게 아닌가?

    인공지능에 마나의 맹세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닌 노릇이고 말이다.

    -네, 네? 제가 또 무슨… 잘못을 했어요?

    허나 레니에는 거짓말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의 잘못들을 고백하는 나열들 속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건 한마디도 없지 않았으니까.

    그래, 거짓말은 애초에 잘못이라 염두에 두지도 않은 거겠지.

    그게 아니면 이런 사과가 나올리가 없지 않은가.

    “됐네, 말을 말지.”

    -자, 잠깐만요! 제가 뭔가 불쾌하게 해 드렸으면 사과드릴게요. 뭐죠?

    레니에의 물음에 루크는 그녀를 살짝 흘겨본 뒤, 다시 자르던 고기를 향해 시선을 내리며 답했다.

    “아냐, 그대는 몰라도 되네.”

    -루크님!

    레니에가 물었지만, 루크는 그에 대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가 잘못인 줄을 모르는데 이게 잘못이라고 말해봤자 딱히 의미도 없고, 어차피 킬코드를 입력하고나면 다 의미없는 논쟁이 될 게 뻔하니까.

    그 반응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레니에가 되묻는다.

    -루크님? 혹시 아직 화, 났어요?

    “아니? 내가 화를 왜 내나. 전혀 아닐세.”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레니에에게 화가 난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상위존재인 그녀가 두려운 것이었으니까.

    그 ‘시가르마타’조차도 기본적으로 마법사인이상 진실의 서약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건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니, 당연히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 대체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최대한 고친다니까요? 네?

    레니에의 질척이는 듯한 태도에 루크는 태연하게 잘라낸 고기 한점을 들며 대답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대는 그대의 입장에선 충분히 잘 반성 했으니까.”

    그래, 자신의 입장에서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아주 조목조목 잘 짚었지.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한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달까?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마음을 굳힌 셈이었으니.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든 음식은 적어도 맛은 있어보였으니.

    -아뇨, 그건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레니에가 무어라 떠들든, 루크는 집어든 고기 한점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압.

    그순간, 루크는 그 맛을 기억해냈다. 

    곧이어 루크의 눈앞에 돌연 어떤 장면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한 숲 속, 전사, 마법사, 성직자로 보이는 세명의 모험가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서 웃고 떠들며 야영 준비를 하고있는 모습이 말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하나의 기억이었다.

    ‘레니에, 이게 정말로 맛있을 거라고?’

    ‘정말이에요! 이건 신의 계시라니까요?’

    ‘아니, 이렇게 역겹게 생긴 게……?’

    ‘맙소사, 어린애가 따로 없네요! 이거 제가 엄청 정성들인건데요? 완전 맛있을 거거든요?’

    ‘반찬투정인가, 케일? 어린애처럼 너무 투덜대지 말게. 생긴건 이래도 맛은 반드시 있을테니까. 항상 그렇듯이 말이지.’

    ‘아니 뭐, 근데 진짜로 맛은 있겠지만…’

    그 기억 속 이름모를 요리와 비슷한 맛.

    아니. 

    사실 맛은 거의 비슷하지 않았으나, 그 맛에 대한 느낌이 굉장히 닮아 있었다.

    과거, 레니에는 요리를 잘 했다.

    그녀가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배우는 성격은 전혀 아니었으므로, 딱히 요리를 연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항상 그녀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어떤 것으로 요리를 하든 마치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처럼, 그것 또한 하나의 법칙이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 스튜와 고깃조각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루크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놀란 레니에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이런, 너무 맛이 없었나요…? 맛을 전혀 안 보기는 했는데, 아니 못 보기는 했는데! 혹시 뭘 잘못 넣었나요? 아니면, 역시 너무 뜨거우셔서 그런건가요?! 아! 죄송해요! 제가 또 이런 바보같은 실수를! 루크님이 지금은 고양이혀라는 걸 깜빡했어요! 얼른 식힐 테니까–! 아, 진짜 오늘 왜 이러지!

    “아니 잠깐, 그런 거 아니니 제발 진정좀 하게. 일단 음식은 좋으니까.”

    너무나 소란스런 레니에의 모습에 루크는 일단 감동은 잠시 뒤로하고, 그런 레니에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엄마밥특) 밥 다됐다 해서 컴퓨터 하던거 끊고 헐레벌떡 나가면 다 안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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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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