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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3

        

         

       진성은 회귀 전 지옥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빙의술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마법사였으며, 무신론자였으며, 주술사였던 빙의술사를.

       지옥이란 명칭으로 불리며 공포로 군림했던 그 주술사를.

         

       ‘참으로 대단한 이였지.’

         

       횔레.

       그는 자신의 어떠한 신상 명세도 밝히지 않으며 활동했다.

       이 빙의술사는 자신의 정체가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며, 사람일 적 가지고 있던 그 어떤 특징조차 내보이려고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돌았다. 사람과 마주하지 않도록 오지를 떠돌아다니며 만남을 최소화했으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야 할 때는 분장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정신병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자 하는 강박증이 있었을 수도 있고, 마법사로서 평범하게 지냈을 적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도피하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

         

       혹은 그것은 주술과 관련이 있었을 수도 있다.

       사람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사람으로 변장하고 다니는 잔인한 주술, 자신이 죽인 사람의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는 도플갱어와 관련된 주술, 거울에 비친 것처럼 자기 적과 똑같은 생김새와 행동을 하면서 교란하는 주술….

       그가 사용하고 다녔던 그 수많은 주술을 쓰기 위해 그런 짓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정신병도, 주술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원대한 목적을 위해 자아를 버리기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위는 모른다.

       그 빙의술사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을 꺼렸으며,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과거 자신과 연관이 있었던 사람과도 마주하기를 거부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나마 진성이 그와 영양가 없는 대화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진성이 같은 주술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니, 어쩌면 주술사라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다른 주술사의 목적에 대해서, 진성이 이루고 싶어 하는 목적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기에 대화에 응해준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추측만은 할 수 있었다.

       마법사로서의 과거, 주술에 관심을 보인 후에 보인 이상 행동들, 주술사로서 세상을 떠돌며 벌인 행적들….

       거기에 진성이 직접 그와 이야기하며 알아낸 작은 정보들까지.

       그 모든 것을 합친다면 어렴풋이나마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이능을 사용하는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을 소환할 수도 있고, 평범한 검으로 철 덩어리를 반으로 자르고 산조차도 가를 수 있다. 환골탈태를 통해 유전자를 뒤바꿔서 인간을 초월할 수도 있고, 혼자서 화염으로 된 폭풍을 만들거나 성층권에 거대한 돌덩이를 올려보낸 뒤 낙하시켜 지표면과 충돌시킬 수도 있다.

       생물이 아니었던 것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평범한 금속들의 물질 구조를 바꿔서 검강을 둘러서 휘둘러도 잘리지 않는 미친 강도의 합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라에 풍년이 들게도, 흉년이 들게도 할 수 있고, 거대한 땅덩어리를 오염시키는 것도, 거대한 호수를 오염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한 줌도 되지 않는 능력자뿐.

       능력자 대부분은 사람을 초월한 듯한 이러한 이적을 발휘할 수 없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상위권의 능력자들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아래에 있는 이들은 그저 위에 있는 이들의 흉내라도 내면 다행이다. 흉내를 내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따라만 하고…. 혹은 그것조차 따라 하지 못한 채 재능의 벽에 허덕인다.

         

       그렇게 층이 내려간다.

         

       층이 내려가고, 흉내의 수준도 내려간다.

       가진 능력도 내려가고, 가진 재주도 내려간다.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마침내 피라미드의 아래 단계.

       가장 많은 능력자가 속해있는 그 단계까지 내려간다.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건강한 신체, 반려동물 수준의 특이한 생물의 소환, 피부 노화를 늦추는 수준의 미용….

         

       특이하긴 하지만 그저 그뿐인 재주만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

         

       저게 나쁜 것은 아니다.

         

       약하기는 하지만 이능은 이능.

       사용하는 에너지에 따라 지능이 발달하거나 건강해지거나 젊어 보이는 등의 메리트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부자들이 건강을 위해서 귀한 약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조금이라도 수명을 늘리기 위해 발악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연예인들이 피부 미용을 위해 입이 떡 벌어지는 돈을 내며 관리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공부를 잘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는 학생들을 생각해본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이 만족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는 이들이던가.

       어느 곳으로 가나 사람은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린다.

       이를 좋게 말하면 향상심이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부나방과도 같은 성질이라.

         

       수많은 재능있는 이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부를 위해, 명예를 위해…안주할 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린다. 자기 몸을 태워 가며, 자신을 가로막는 환경과 재능이라는 벽을 느끼면서도 달리고 또 달려 나간다.

       마치 길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달리고 또 달린다.

         

       몇몇은 벽이 없는 것처럼 나아간다.

       몇몇은 벽이 있어도 가볍게 뛰어넘으며 나아간다.

       몇몇은 벽을 부수며 나아가고, 몇몇은 도움을 받으며 샛길로 나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은.

         

       벽에 가로막혀, 나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

         

       횔레라 불릴 남자는 그 흔하디흔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신동, 영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고, 학교에서는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거기에 마력을 다루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까지 발견되기까지 했으니, 그의 삶은 축복으로 가득 찬 것임이 틀림없었으리라.

         

       그래.

       그는 분명히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기프트(Gift).

       탤런트(Talent).

         

       영어권에서 재능을 말할 때 사용하는 것처럼, 그는 태어날 때부터 축복을 선물 받았고, 재능을 선물 받았다. 뭇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훌륭한 것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축복은 때에 따라서는 높은 곳에서 사람을 떨어뜨려 죽이는 끔찍한 독,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만드는 끔찍한 독이 되기도 한다.

         

       그 독은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라.

       비교하고, 견주며, 마침내 패배하는 그 순간 수많은 악감정이 휘몰아치며 사람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보잘것없는 것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과 싸워서 졌을 때 느끼는 그 끔찍한 패배감, 재능의 차이를 실감하고 이기지 못할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는 열등감, 다른 이들을 질시하면서도 따라잡을 수가 없어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무력감, 즐거웠던 삶을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꿔놓는 절망감까지.

         

       그 모든 감정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찬란하게 빛나던 재능을 돌덩이로 바꿔놓으며, 그 광채를 없애고 볼품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한때 재능 있던 영재는 돌덩이가 되었다.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인재들이, 천재라 불렸던 이들이 몰려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평범한 재능을 가졌음을 실감하였고, 높은 곳까지 갈 수 없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마법사가 되겠다는 입학 때의 꿈은 온데간데없이, 평범한 마법사의 삶을 살게 된다.

         

       엄청난 아티팩트를 만들며 이름을 떨치는 마법사의 삶도 아니고, 연구소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연구하는 마법사의 삶도 아니다. 전투를 위한 마법을 갈고닦으며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는 마법사의 삶도 아니고, 군대에 들어가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마법사의 삶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노동자로 사는 삶.

       양산형 아티팩트를 만드는 공정에 투입되는, 평범한 마법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이라 할 수는 없다.

         

       재능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던가.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을 느끼고 그것에 계속 도전하는 대신, 적당히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저 남자는 철이 없던 시절에 꾸었던 꿈을 버리고 현실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법을 배울 때의 포부와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미친 듯이 달려서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좀 느리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나쁜 일인가?

       미친 듯이 뛰는 대신 속도를 늦추고,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이 나쁜 일인가?

       천천히 걸어가며 맑은 공기를 한껏 즐기고, 길가에 나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지저귀는 산새의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거니는 것이 나쁜 일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성공한 삶 대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쁘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남자는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취미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맞는 여자를 만나서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직장에서는 나름대로 인정받아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때로는 자신과 함께 마법을 배웠던 이들이 뉴스에 나오거나 잡지에 실렸을 때 잠깐 질투하기는 했지만, 이내 그럴만한 재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성공한 이들을 부러워할지언정 시기하지는 않았고, 성공한 이들이 TV에 나와서 으리으리한 저택과 비싼 차를 자랑하는 것을 보아도 질투하지 않았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부유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자신과 마음이 맞는 아내도 있다.

       곧 세상에 나올 아기도 있다.

       그들을 태우고 다닐 자동차도, 그들과 함께 살 집도 있다.

         

       그는 행복했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영원하지 않은 법이라고 하던가.

       남자의 행복은 거기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의 아내가 마약을 한 채 시속 200km로 질주하는 차에 들이받혀 사망한 것이다.

         

       아무리 행복이 영원할 수 없다고는 해도, 너무나 짧은…심할 정도로 짧았던 행복이 그렇게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 끝을 맺는 그 순간.

       남자에게 찾아온 것은 끔찍한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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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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